최은옥(47·가명)씨는 지난해 여름 경기 의정부교도소에 있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다. 1평 조금 넘는 방에 여성 수형자 3명이 머물렀는데 어떨 땐 5명이 머무르기도 했다. 물론 어깨를 펴고 누워 잠자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1985년 몸서리치며 고민했던 문제를 2008년 최씨도 똑같이 느껴야 했다. 벽에 매달린 선풍기는 밤 12시가 되면 자동으로 꺼졌다. 간혹 마음씨 좋은 교도관이 새벽 4시까지 선풍기를 틀어주는 ‘시혜’를 베풀기도 했다.
얼마 뒤 충북 청주여자교도소로 이감했다. 거기나 여기나 동료 수형자들은 저녁에 배달되는 그날치 조간신문을 열심히 봤다. 이유는 두 가지. 세상 돌아가는 걸 알기 위함이 첫째였고, 잠잘 때 침낭 밑에 깔기 위함이 둘째였다. 신문을 깔지 않으면 습기 때문에 새벽녘 바닥이 축축해졌다. 수감 기간 내내 그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 그래도 이곳은 한 달에 생리대 10개씩을 지급해줬다. 11월13일 서울의 한 제과점에서 만난 최씨는 “의정부교도소에서는 단 한 번도 생리대를 지급받은 적이 없어, 사서 써야 했다”고 말했다.
1평 방에 ‘열덩어리’ 셋이 부대껴교도소 안의 권력관계는 바깥 세계보다 단순하고 확실했다. 모범 재소자로 인정받은 작업반장 등이 교도관의 권력을 일부 나눠가졌다. “죄를 졌다고 인격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어떤 교도관은 나이가 많건 적건 재소자에게 반말만 했다. 지난봄엔 동료 수형자가 부당한 처우를 고발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편지를 썼는데, 해당 교도관이 뜯어보고는 “앞으로 잘할 테니 취소하라”고 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됐다. 이는 별도 형식으로 돼 있는 인권위행 우편물을 검열하지 못하도록 한 국가인권위원회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었지만, 늘 그렇듯 유야무야됐다.
최씨는 스무 달가량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교정이나 교화를 받는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고 했다. 교육이라곤 인근 대학의 교수가 와서 하는 인성교육 정도였다. 살인범이건 경제사범이건 다 똑같은 교육을 받았다. “편집증 증세를 보이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불안했다”는 최씨는 그런 이들은 교도소가 치료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살인죄로 10년째 복역 중인 한 재소자는 등이 조금씩 굽는 증세를 보이는데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주변의 안타까움이 컸다는 게 최씨의 전언이다.
지난 7월 교도소 문을 나선 최씨의 경우는 2008년 한국의 교도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올해는 1908년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투옥하기 위해 이 땅에 서대문형무소(당시 이름 경성감옥)를 처음으로 세운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수형자들을 사회에서 격리만 한다는 기존 개념을 넘어 교정·교화에 나서겠다며 형무소는 1961년 교도소로 이름을 바꿔 달았지만 변한 건 그리 많지 않다. 한 번이라도 교도소를 다녀온 이의 절반 이상은 다시 교도소에 들어간다. 법무부가 발행한 을 보면, 특히 전체 수형자 가운데 4번 이상 교도소에 들어간 이의 비율은 2000년 12.2%에서 2006년 15.0%로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교도소 탓만 할 노릇은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교정·교화 시스템이 실패했다는 근거로 삼는다. 100살을 맞은 근대적 자유형 체계, 교도소는 전면적인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최씨 경우처럼 교도소의 과밀 수용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법무부 교정본부는 11월12일 현재 전국의 수형자는 모두 4만8508명으로, 4만3100명인 정원의 112.5%에 달한다고 밝혔다. 더구나 포항교도소와 청송제3교도소의 경우 교도관 인력이 확보되지 않아 일부 건물을 비워두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수형자들이 느끼는 답답함은 통계치 이상인 것이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은 “문제 해결을 위해 교도소를 더 짓기보다는 교도소 수용 인원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석방과 집행유예를 확대하고 구속 재판은 줄이면서 가택 구금 제도를 도입하는 등 큰 틀에서 사법·행형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서구 사회는 실형을 선고받은 수형자가 형기의 일부를 가택 구금의 형태로 보내거나 낮에는 회사 일을 하고 밤에는 교도소에 입감되는 식으로 지내게 하는 등 다양한 방법들을 시행하고 있다. 물론 중범죄자는 사회로부터 엄격히 분리된다.
한 예로 스위스의 칸톤주 등 7개 주는 중범죄자가 아닌 경우 기존에는 징역형을 선고하던 이들에게 전자발찌를 차고 사회생활을 그대로 하도록 하는 ‘전자 모니터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전자발찌에는 정해진 일과가 내장돼 있어 수형자가 항상 시계를 점검하고 이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엄격한 규율이 가능하다는 게 이들 주정부의 판단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형기를 마치거나 가석방되는 성범죄자들에게 전자발찌를 채워 ‘이중 처벌’ 논란이 일고 있으나, 경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징역형 대체 방안으로 전자발찌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
한국의 교도소는 적극적인 교정·교화보다는 탈옥이나 폭동 등 각종 사건·사고를 막으려는 보안 중심 체제로 굴러간다. 수형자를 오로지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보니 내부의 인권침해가 끊이지 않는다. 수형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한 진정 접수건을 보면, 2002년 993건에서 2005년 1871건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다 2006년 1379건으로 떨어졌으나 2007년에는 1875건으로 다시 급증했다. 역대 접수건의 내용을 보면, 수형자들은 수용 환경, 진료권 제한, 인격권 침해, 부당한 징벌 등을 가장 많이 진정했다.
죄를 지어 교도소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수형자 인권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정치·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이들 수형자의 기본권을 위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는 거의 없다. ‘죄지은 놈들이 무슨 인권…’이라는 세간의 시선에 막혀, 갇힌 자들의 인권은 사회적 논의의 대상도 못 된다.
우선 공직선거법과 형법 등은 형이 확정된 수형자에게 참정권을 아예 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헌법은 참정권이 모든 국민에게 있고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신질환자 등을 빼고는 딱히 주지 않을 이유도 없다. 국제적으로도 수형자에게 선거권을 주는 게 대세는 아니지만, 스웨덴이 1968년 가장 먼저 수형자에게 선거권을 줬고 이스라엘·독일·오스트레일리아 등도 수형자의 선거권을 인정한다. 최은옥씨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씨가 경제를 살리느니 마느니 (교도소 안에서) 우리끼리 후보를 놓고 의견만 분분했다”며 “(투표를 할 수 없어) 우리는 죽은 사람 취급을 한다던데, 정말 그런가 싶었다”고 말했다.
수형자의 흡연권 문제에서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소수 국가에 속한다.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브라질 등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수형자에게 담배를 지급하거나 사서 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라이터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정해진 구멍에 담배를 넣으면 자동으로 불이 붙는 방식을 통해 화재와 방화를 예방한다. 수형자 건강에 나쁘니 안 피우면 좋은 것 아니냐는 시각은, 결정권을 박탈당하지 않은 다수자의 억압적 논리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꿈도 꾸기 힘들지만, 이들 나라는 대부분 중범죄자가 아닌 수형자들이 제한적으로 술도 마실 수 있도록 한다. 이탈리아는 10∼11% 정도 알코올을 함유한 술을 한 사람이 하루에 500㎖까지 매점에서 사 마실 수 있고, 담배를 허용하는 스페인은 맥주에 한해 음주도 허용한다. 교도관이 돈을 받고 수형자에게 담배나 술을 팔았다 적발되는 일이 끊이지 않는 한국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 밖에 수형자의 성생활권을 인정하는 것도 다른 나라 교도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북유럽과 남미 국가 대부분은 정기적으로 배우자나 애인과 일정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조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충남 천안개방교도소를 비롯해 전국 28개 교정시설에서 1박 2일 정도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장소인 ‘가족 만남의 집’을 운영 중인데, 지난해 이용 인원은 453명이라고 법무부가 밝혔다. 수형자 100명에 1명꼴이다. 기본적인 권리로 인정하기보다는 교도소 쪽이 수형자에게 시혜성으로 기회를 베푸는 수준에 그친다.
햇볕을 보고 운동을 하는 체육 시간 확대를 비롯해 의료 접근권 확대 등은 한국 교도소에서 심각하게 제기되는 고전적 문제에 속한다.
한국의 교정·교화가 실패했다고 보는 전문가 가운데는 현재의 교도소 제도를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 이도 있다. 천정환 한국교정복지학회 부회장은 뒤늦게나마 우리나라에도 교정에 복지 개념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도소를 교정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교도관 대신 교정복지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교정복지사는 사회복지학과 함께 교정 관련 학습을 추가로 한 이들 가운데 뽑으면 된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도 “사람들은 범죄자를 감옥에 보내고는 다 잊어버리지만, 더 큰 문제는 거기서 시작된다”며 “감옥이란 제도 자체가 정당한지에 대한 본질적 성찰과 비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한 번도 큰 틀의 변화를 겪지 않은 한국의 교도소. 100살을 맞은 한국의 교도소도 이제 새로운 길을 떠날 때가 됐다. 갇힌 자들의 인권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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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인권 OTL-30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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