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초등생 집단 성폭력은 누구의 죄인가…빈곤으로 인한 오랜 방임, 피해자들이 가해자로
▣ 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대구=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이덕수(15·가명)·영수(12·가명) 형제는 경기 ㅈ군에서 착실히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버지와의 성격 차이로 3년 전 가출한 뒤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퀵서비스 배달을 하는 아버지는 아침마다 오토바이로 형제를 학교에 데려다줬다. 하지만 둘은 매번 교문 앞에서 PC방으로 곧장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 불량한 중학생 형들을 만나 절도를 배웠다. 손이 작은 영수가 자판기에서 컵이 나오는 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돈을 훔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심한 매질을 하기 시작했고 “이러다 내가 아이들을 때려 죽일지도 모르겠다”며 아동학대 신고전화(1577-1391)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대구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
방임되는 어린이 문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학대와 방임 속에 멍들고 상처 입고 납치되고 죽어간 아이들의 이야기가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숱하게 되풀이돼 왔다(그럼에도 정부가 미동도 않고 있다는 점은 뒤에 지적하기로 하자). 그렇게 ‘당하기만 하는’ 존재였던 방임 아동들이 이젠 ‘가해자’로 등장하고 있다. 덕수·영수 형제처럼 방임의 그늘 속에서 아이들은 범죄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소리없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무려 100여 명의 초등학생이 각종 성폭력 사건에 얽혀 있는 것으로 드러난 대구 ㅈ초등학교 사건은 이런 현상을 보여주는 최악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은 부모 없는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집단적으로 음란 동영상을 접했으며, 어떤 땐 그 규모가 수십 명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꾸려진 시민사회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의 한 위원은 “아이들 진술서를 보면, 또래 친구들과 모여 음란 동영상을 보다가 엄마에게 걸렸는데, 엄마가 ‘다시는 보지 말라’고 얘기만 하고 말았다는 내용도 있다”고 전했다. 주위 어른의 무관심과 방임이 아이들에겐 음란물을 접하게 만든 텃밭이었던 셈이다.
지난 4월29일 만난 ㅈ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아이들의 방과후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부는 이혼한 가정도 있지만, 70%가량은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에요. 맞벌이 가정은 저녁 6~7시쯤은 돼야 엄마나 아빠가 퇴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늦기도 하죠. 그런데 아이들은 점심 식사하고 학원 두 곳 다녀와도 시간이 비어요. 4시30분이나 5시쯤이면 학원은 끝나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는 거죠. 그때부터 엄마나 아빠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는 비는 시간이고, 그동안 애들이 뭘 하고 지내는지 어른들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특히 빈곤과 가족해체는 아동을 방임에 빠뜨리는 가장 주요한 환경 요인이다. ㅈ초등학교가 있는 지역은 대구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으로 손꼽힌다. 학교 주변에선 제대로 된 학원이나 공부방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 극빈층이 집중된 곳은 아니지만, 어렵사리 생계를 유지하는 서민들이 주로 사는 동네다. 지난 4월30일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연 뒤 기자들에게 “제발 학교나 동네 이름은 밝혀지지 않게 해달라. 보통 성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나 가해자가 이사를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동네 주민은 더 이상 이사갈 곳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4월29일 오후에 찾은 ㅈ초등학교의 풍경은 서울 일반 학교들과 다른 점이 많이 눈에 띄었다. 점심시간을 앞뒤로 1~3학년이 수업을 마친 데 이어 3시께에는 6학년까지 모두 수업이 끝났지만, 4~5시가 넘도록 학교 안팎에는 아이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거나 가방을 멘 채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교정을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끊이지 않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갈 데가 없는 것이다.
눈물의 경고장을 무시한 사회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동안 안전사고를 당하거나 성폭행·살인과 같은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이 돼왔다. 그럴 때마다 어른들은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대책이란 것도 범인 검거에 치중했을 뿐이다. 학교는 성교육과 같은 가치관 교육보다는 입시교육으로 아이들을 내몰았고, 방에 갇힌 아이들은 인터넷에 탐닉해갔다. 결국 아이들은 같은 학교 후배를 상대로 유사 성행위를 강요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상대를 성적으로 괴롭히는 게 얼마나 나쁜 짓인지는 판단하지 못했거나 무시했다. 아이들이 방임의 터널을 지나 결국 가해자의 탈을 쓰고 돌아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책임자는 가해 초등학생이 아니라, 아이들이 그동안 수많은 사건을 통해 눈물과 죽음으로 보내온 수많은 경고장을 무시한 이 사회와 어른들이라고 본다. 특히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부모와 교사들의 책임은 무시할 수 없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이번 사건에서 가해 학생도 결국 방임이라는 아동 학대의 피해자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가해 아동이나 피해 아동 모두 집단 성폭력이라는 비정상적 상황을 겪게 되면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이게 마련인데, 학교와 가정이 이를 미리 감지하고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이들이 관심과 보호를 받지 못한 셈이다. 이정화 한국아동심리코치센터 대표는 “성폭력 피해 아동은 갑자기 배나 머리가 아프다며 학교 가기를 거부하거나 불안·초조와 같은 심각한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고, 가해 아동도 방문을 열지 못하게 한다든지 뭔가 숨기려 하고 교류가 원활치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된다”며 “이들 모두가 방임에 의한 피해자라는 시각을 어른들이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초등학생 모두 만 14살 이하의 형사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법적인 측면에서도 그 책임은 국가로 대변되는 어른들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이들에 대한 방임은 일종의 아동학대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이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10살 미만의 어린이를 1시간 이상 홀로 집에 방치하기만 해도 그 보호자를 처벌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방임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낮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4월30일 내놓은 ‘2007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를 보면, 방임에 의한 아동학대 판정 건수는 2107건으로, 2001년 이후 해마다 늘고 있다. 전체 아동학대 5581건 가운데 방임이 차지하는 비중도 37.7%로 정서학대(10.6%)나 신체학대(8.5%)보다 훨씬 높다. 나이대별로는 초등학생들이 가장 크게 방임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만 7∼12살이 전체 방임의 75.6%를 차지했다. 이보다 어린 경우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중학생 이상의 경우도 대개 학교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아이를 함부로 방치한 어른이 사회적으로 처벌을 받는 일은 드물다. 지난해 아동 방임 혐의로 고소·고발된 34명 가운데 형사처분을 받은 이는 2명(5.9%)에 머무른다. 한국의 사법체계는 여전히 방임을 사회문제가 아닌, 가정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보고서는 “방임된 아동이 어릴수록 성장환경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비기질적 성장 실패 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며 “이는 아동의 건강 및 안전 문제와 직결돼 있는 만큼, 방임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사회 인프라 턱없이 부족
해답은 어른들의 ‘개과천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방임을 저지르는 이의 열에 아홉은 그 부모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자립지원시설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재호(14·가명)의 경우도 그렇다. 재호네 집이 망가지기 시작한 건 4년 전 아버지의 사업 실패 뒤부터다. 가정 형편이 쪼들리자 부모는 갈라섰다. 일용직 노동자가 된 아버지는 날마다 술을 마셨고 재호는 그 옆에서 안주를 집어먹었다. 경기 ㅇ시의 변두리에 있던 허름한 집에는 온갖 쓰레기가 산더미로 쌓여갔다. 절반은 아버지가 남겨 놓은 술병이었다. 어찌나 많이 쌓였던지 나중에는 인근 고물상이 트럭 한 대 가득 술병을 실어갔다.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 재호는 학교를 빠지는 날이 늘어갔다. 주변의 어른 가운데 어느 누구로부터도 재호는 보호를 받지 못했다. 보다 못한 이웃 주민의 신고로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출동했고, 재호와 아버지는 시설에 맡겨졌다.
경기 부천에서 10여 년째 활동하고 있는 강동주 삼산해오름공부방 교사는 “어떤 부모는 아이가 공부방에도 못 가게 막으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등 차라리 없는 게 아이에게 더 낫겠다 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며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바라기아동센터의 최경숙 소장도 “부모가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양육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제하림 청소년회복센터 소장은 “아이들은 늘 어른들을 보고 따라가기 때문에 부모와 교사, 지역사회의 어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동 방임의 주요 원인이 빈곤의 문제라는 사실에 맞닥뜨리면, 보육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양극화가 심화하고 부모들은 돈벌이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아동 보호를 가정에만 맡길 수는 없게 된 상황이다. 그러나 학교를 마친 뒤 부모가 보살필 수 없는 아이들을 대신 돌봐줄 지역 아동센터나 방과후 학교 등 사회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여성부는 방과후 시간연장형 보육사업을 지원하고 있고, 교육부는 방과후 교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지역아동센터와 청소년 공부방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사업을 하는 기관들임에도 늘 제기되는 ‘원활한 네트워크 구축’은 여전히 멀었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조직이기주의 때문이다. 아동학대 보고서도 “지역마다 가용 자원의 편차가 심하고 지역사회 내 협력체계와의 관계도 일방적이거나 임시적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그 이유를 제도·법적 장치가 부족하고 관련 매뉴얼이 없는 탓이라고 밝혔다.
“아이들이 표와 연결 안되서 그런가…”
따라서 날로 심각해지는 아동 문제를 전반적으로 관리할 ‘조직의 일원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을 보살피고 학업을 지원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각종 아동센터와 공부방, 상담소들을 좀더 작은 지역 단위로 쪼개 확충하면서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과감한 투자가 절실하다. 아이들이 방치되지 않고 어른들의 온전한 관심과 보호 속에 자라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시급한 국정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강동주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아동에 관한 문제는 정치권에서 관심을 안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노인복지와 비교를 해봐도, 노인 문제는 정책이 나오면 착착 진행이 잘되죠. 그런데 아동 문제는 흉악 범죄가 나오면 확 끓어올랐다 금방 식어버려요. 아무래도 (노인과 달리) 아이들이 표와 연결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이들은 이번에 끔찍한 일을 저지름으로써 또 한 번 어른들에게 ‘SOS’를 쳤다. 또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면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다시 자신들의 처지를 사회에 알리게 될까. 무서운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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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지난 3월25일 밤 10시52분께, 인기 록밴드 ‘본조비’의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라(48)는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 라구나 비치의 퍼시픽코스트 고속도로를 시원스레 달리고 있었다. 차량의 흔들림을 감지했는지 이내 순찰차가 따라붙었다. 차에서 내린 샘보라의 입에선 술냄새가 풍겼고, 그의 걸음새도 갈지자였다. 그는 음주운전 혐의로 인근 경찰서로 넘겨졌다.
벌금이나 내고 말 사안이었다. 한데, 예기치 않게 사태가 꼬이기 시작했다. 음주운전 당시 샘보라가 몰던 차 안에는 3명의 동승자가 있었다. 성인 여성 1명과 샘보라의 10살 난 딸 에바 등 2명의 어린이가 타고 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AP통신〉은 4월16일 “라구나 비치 경찰당국은 음주운전에 더해 샘보라를 ‘아동 위해 방지법’(Child Endangerment Act) 위반 혐의로 기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성인이 다음과 같은 행동으로 어린이의 복지를 위태롭게 할 경우 법에 따라 처벌 대상이 된다. (1) 건강상의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도, 16살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일을 하도록 내버려뒀을 때 (2) 부모나 보호자, 또는 기타 자신이 보호해야 할 법적 책임을 진 어린이가 범죄를 저지르는 걸 방치했을 때….”
미 앨라배마주가 시행하고 있는 형사법령의 일부다. 법조문 제목은 ‘어린이의 복지를 위태하게 하는 범죄’. 미 50개 주 정부 모두 법조문에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이와 같은 어린이 보호 조항을 두고 있다. 직접적인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학대’와 달리 ‘방임’은 “어린이를 위험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에 내버려두는 것”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에선 어린이 ‘방임’을 ‘학대’와 엇비슷한 수준에서 처벌하고 있다.
‘방임’의 심각성은 어린이 보호 책임을 진 어른 대부분이 그 ‘위법성’을 의식하지 못한 채 벌어진다는 데 있다. 이는 학대가 위법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는 데 반해, 방임은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법을 어기게 되는 특수성 때문이다. 미 콜로라도주 테니슨어린이센터(www.childabuse.org)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자료를 보면, ‘방임죄’의 사례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네 살 난 아들을 집에서 혼자 돌보던 아버지가 술을 취하도록 마시면, 아동 방임죄로 기소될 수 있다. 적절한 보호를 해줄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든 탓이다. 어린이에게 우발적으로 마약이나 총기류, 각종 포르노물을 노출시키거나, 기타 범법 행위와 가정폭력을 목격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처벌 대상이다. …어른들이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장면을 보게 하는 것 자체가 범죄 구성요건이 된다. 당신이 속도위반으로 경찰에 단속됐는데, 동승한 자녀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있었다면, 딱지를 떼는 대신 아동 방임죄로 기소될 수 있다.”
법이 엄격하다고 해 아동학대와 방임이 사라지는 건 물론 아니다. 미국에선 하루 평균 4명의 어린이가 학대 또는 방임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미 어린이학대방지협회(PCAA)는 지난해 9월 내놓은 자료에서 어린이 학대와 방임으로 미국 사회가 치러야 하는 직·간접 비용이 한 해 평균 1038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