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31일 헌법재판소가 안마사 자격을 시각장애인에게만 허용하는 의료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단체인 대한안마사협회는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자유권적 기본권보다 약자의 생존권을 우위에 둔 적절하고 당연한 판단”이라고 반겼다. 반면 시각장애인이 아니면서 각종 스포츠마사지·타이마사지·발마사지 등의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한국수기마사지사협회는 “20만 명의 비장애인이 현재 안마·마사지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모두 곧 단속 나오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합법적으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준수 한국수기마사지사협회장은 “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 이미 ‘비시각장애인들의 직업선택권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어 10일 헌법 소원을 제기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두 단체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3년 6월 법원이 옛 의료법 61조 1항과 4항 등(시각장애인 안마사 독점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자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마사지업에 종사하던 비시각장애인들이 모여 한국수기마사지사협회를 만들었고 2003년 10월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3년 뒤인 2006년 6월,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시각장애인만 안마를 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안마업에 주로 종사하던 시각장애인들이 ‘생존권 박탈’이라며 한강으로 뛰어내렸다. 이에 헌재 결정 석 달 뒤 국회는 다시 시각장애인 독점 조항을 상위법인 의료법에 추가했다. 한국수기마사지사협회는 다시 개정 의료법에 대한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긴 싸움의 끝인 ‘합헌 결정’이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에게도 만병통치약인 것은 아니다. 현재 안마 산업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안마업의 대다수가 성매매와 결탁돼 있다는 점이다. 2008년 10월 현재 시각장애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등록된 곳은 안마시술소 853곳, 안마원 537곳이다. 한 안마시술소에 이름을 빌려주고 영업을 하는 시각장애인 강지만(가명)씨는 “안마원을 제외하고 안마시술소로 등록한 업체는 100%가 성매매 여성과 안마사가 함께 있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안마사협회도 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이규성 사무총장은 “상당 부분 성매매와 안마가 공생하고 있는 형태다. 이를 털어내고 안마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들이 필요로 하는 ‘조처’는 무엇일까. 이규성 사무총장은 “안마 행위가 건강보험에 포함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 안마를 건강보험에 포함하려면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해야 한다. 1원이든 10원이든 보험료가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도 거쳐야 한다. 이규성 사무총장은 “그 과정에서 안마가 의료 행위라는 인식이 생길 것이고, 불법 안마 행위에 비해 가격경쟁력도 생긴다”며 “일본에서도 이미 건강보험에 안마 행위를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2월부터 시행될 안마 바우처 제도 활성화도 대한안마사협회가 바라는 내용이다. 바우처제도는 사회 취약 계층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비용을 지방자치단체가 대는 것이다. 안마 바우처 제도는 노인을 대상으로 안마를 제공하는 것으로,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100~150명의 시각장애인이 안마 바우처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규성 사무총장은 “노인, 산모, 사회취약계층 등으로 안마 바우처 대상이 넓어지면 많은 시각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확보되고, 안마시술소를 벗어나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제도를 통해 안마가 ‘보건안마’로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안마사·공영안마사 제도가 접점이 ‘보건안마’를 고리로, 대한안마사협회와 한국수기마사지사협회의 접점을 어렴풋하게 찾을 수는 있다. 박준수 한국수기마사지사협회장은 “보건안마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울 테니 ‘독점 조항’을 풀어서 안마의 퇴폐 이미지를 벗기고 다양한 안마와 마사지 서비스가 합법화되도록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한국수기마사지사협회는 시각장애인 안마사 독점 조항을 푸는 대신 △산업안마사 제도 도입 △공영 안마원 설치 △5인 이상의 안마 마사지사를 고용한 업소는 반드시 1명의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두게 하는 할당제 실시 △시각장애인 안마사 고용 업소에 면세 혜택을 주는 방안 등을 내놓고 있다.
산업안마사 제도는 기업 등에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고용하게 해 직원들에게 안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해 한 텔레마케팅 업소가 자발적으로 5명의 시각장애인을 고용하고 직원들에게 안마 서비스를 제공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런 내용을 법으로 정해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안마시술소 외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을 열자는 내용이다. 공영 안마원 제도는 국가가 운영하는 안마원으로 일종의 ‘안마 국립병원’이다.
그러나 대한안마사협회는 이 모든 방안에 대해 유보적이며 지금은 ‘안마업을 비장애인에게 개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규성 사무총장은 “앞서 예로 든 기업에서 안마사들은 120여만원의 급여를 받으며 비정규직으로 고용되고 있다”며 “안마 행위가 건강보험의 수급 대상에 적용되고, 안마사의 입지가 ‘준의료인’으로 세간에 인식되지 않는 한 노동의 질이 좋지 않을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결국 안마업을 둘러싸고 시각장애인들은 ‘우리의 마지막 밥그릇’이며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경쟁하게 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주장하고, 마사지업에 종사하는 비시각장애인들은 ‘우리에게도 역시 밥그릇’이라고 주장하는 실정이다.
안마를 둘러싼 또 하나의 직군은 안마 업소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다. 이 여성들이 ‘업소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안마가 퇴폐 이미지를 벗기 위해 해결돼야 할 사항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성매매 여성 위한 현장지원센터 확대현재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상담소 설치, 지원시설 운영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러한 자활 대책이 실속이 없다고 말한다. 표정선 ‘성매매 없는 세상 이룸’ 활동가는 “단속 뒤 경찰에서 조사받는 여성들은 극도의 흥분 상태에 있기 때문에 상담소를 이용할 마음을 갖기가 어렵고, 자활 대책이 실질적이지 않아 여성들이 이용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 시민단체와 여성부는 피해를 입은 성매매 여성들이 상담센터로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현장 밀착형으로 성매매 여성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성매매 여성의 문제를 단발성 사건의 시각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문화적 토대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서울 청량리와 천호동과 같은 전통적 성매매 집결지를 중심으로 들어선 현장지원센터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9곳이 운영 중이다. 표정선 활동가는 “청량리 센터를 2년 넘게 위탁 운영하고 있는데, 해당 지역에 있는 150여 명의 성매매 관련 여성 가운데 100여 명이 적어도 한 번씩은 다녀갔다”며 “사회적 낙인에 대한 공포를 제거할 수 있는 자활 체계가 필요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여성부는 장안동처럼 전통적 성매매 집결지가 아닌 곳에도 이런 현장지원센터를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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