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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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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OTL] 지옥철과 만원버스, 깨지 않는 악몽

등록 2008-07-08 00:00 수정 2020-05-03 04:25

매일아침 출근길의 반복되는 고통 앞에 묻다 “당신은 사람답게 이동하고 있는가”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도쿄= 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인권OTL-30개의 시선 ⑪] [%%IMAGE4%%]

“‘출근길 서울 지하철’에서 ‘인간된 권리’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십시오!”

로 박소혜(28)씨가 보낸 전자우편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1년 전, 그는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근처에 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출근 시간마다 지하철에서 느껴야 하는 불쾌감이 회사를 그만두는 데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한다. “인간이 거대한 사람의 물결에 불쾌하게 떠밀리는 건 인권 문제인데, 강남역으로 출퇴근하는 ‘화이트칼라’들이 왜 그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까” 질문도 던졌다.

사당~방배 지나서 강남역에 내린다면

사실 사람들이 일상에서 ‘고통스럽다’고 여겨온 풍경들은 결국 인권 문제였다. 노예제도나 마녀사냥과 같은,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인권 침해도 당시엔 그저 ‘누군가에게 고통스런 일상’이었지 않은가. 그렇게 인권은 늘 ‘발견’돼왔다. 매일같이 콩나물시루 같은 ‘지옥철’과 ‘만원버스’에 실려 노동을 하러 가는 일상이 인권 문제인가를 짐작해보는 일은 그런 ‘인권의 발견’ 어디쯤엔가 있다.

지옥철에 지쳐 회사까지 그만둔 박소혜씨와 “한-일간 가장 큰 차이는 대중교통문화에 있다”고 말하는 황자혜 전문위원(일본)의 체험을 통해 출근길의 인권을 생각해본다. 푸시맨 아르바이트생의 감상을 옮긴 박민규의 2005년 소설 의 풍경도 함께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셔야겠지만,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전철을 타야 하고, 전철엔 이미 탈 자리가 없다. 타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곳을 택하겠는가.”( 중)

매일 아침 7시30분, 박소혜씨는 플랫폼에 선다. 파아, 하아, 까치산역에 지하철이 들어오면 재빨리 몸을 움직인다. 신도림역에서 환승을 위해 계단에 올라서면 그때부터는 ‘내 몸’이 아니다. 지하철 1호선과 2호선 지선에서 쏟아져나온 사람들이 뭉쳐 2호선 강남방향 승강장을 향한다. 지하철이 떠날새라, 문이 닫힐새라 마음이 급해 뛰고 밀친다. 연착이 돼 지하철이 안오면 승강장이 터져나가고 ‘앞 차와의 간격’ 때문에 정차할 땐 지하철 안이 터질 듯 하다. 그럴 때면 박씨의 머리도 지각 걱정에 터질 듯 하다. 에어콘은 모두 가동하고 있다지만, 셔츠는 땀으로 젖어들고 공기는 꿉꿉하다.

강남역에 있는 회사에 사표를 내면서 ‘다시는 강남 부근에 있는 회사에 다니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그는 현재 미아삼거리역 부근으로 이사를 한 뒤 여의도에 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 여전히 한 시간은 걸리는 출근길이지만 ‘최악의 2호선 구간’을 경험한 그에게 4호선~5호선 구간은 그나마 숨쉴 만하다. “강남 출퇴근과 여의도 출퇴근은 그야말로 삶의 질을 바꾼다”는 생각이다.

국토해양부가 지난 4월에 발표한 ‘혼잡역사 안전대책 합동점검 결과’에서 2호선 사당~방배 구간은 출퇴근 시간대(아침 7~9시, 저녁 6~8시) 평균혼잡도 221%를 기록했다. 지하철 한 칸의 승차 정원은 160명, 좌석은 54개다. 혼잡도 221%면 한 칸에 350여 명이 타고 있다는 뜻이다. 혼잡도가 250%를 넘어가면 출입문이 열려도 더 이상 탈 수 없다. 4호선 한성대~길음 구간이 189%, 1~4호선의 평균 혼잡도가 171%였다. ‘치이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 적정혼잡도 150%를 훌쩍 넘어섰다.

박소혜씨가 강남으로 출근했던 지난해, 2호선 강남역은 686호 특집 ‘가자 출근길, 굽이굽이쳐 가자’에서 ‘출근 시간대 가장 많은 사람이 내리는 역’으로 뽑혔다. 2007년 9월 당시 출근 시간대 하루 평균 하차 인원은 3만4043명이었다. 박씨는 2호선 사당~방배 구간에서 최악의 혼잡을 겪은 뒤 강남역에 도착해 3만여 명의 물결에 휩쓸려 내리는 생활을 반복했던 셈이다.

신주쿠역 “2분 뒤 정확히 옵니다”

하루 평균 이용자가 75만 명으로 일본 도쿄에서도 가장 번화한 신주쿠역은 붐비는 면에서 신도림역과 비슷하다. 한데 열차 문이 닫히려고 하는데도 황자혜씨는 뛰지 않는다. “지금 타는 건 위험한데다가 다음 차가 2분만 있으면 오기” 때문이다. 일본의 출퇴근 정점 시간대인 아침 8시와 저녁 7시, 우리나라의 2호선 시청·을지로 방향과 비교할 만한 야마노테센 신주쿠 시부야 방면은 1시간당 오전 23대, 오후 20대가 운행돼 배차 간격이 약 2분~2분30초다.

연착은 거의 없다. 철로로 사람이 뛰어드는 사고와 같은 비상상황이 생기지 않는 한 연착은 되지 않는다. 사고로 연착이 될 때도 ‘바쁘신 여러분에게 큰 폐를 끼쳐 송구스럽다’는 사과방송과 함께 사고로 인한 지연을 증명하는 쪽지를 배부해 회사에 제출할 수 있도록 한다.

서울 지하철의 출근시간대 배차간격도 2분대다. 하지만 문제는 연착이다. 2006년 11월6일~10일 일주일간 출근시간 지하철 평균 지연시간과 정차시간을 조사한 결과, 신도림역의 평균 지연시간은 2분50초, 신림역은 4분 28초, 교대역은 무려 7분33초나 된다. 평균 정차시간도 신도림역 1분8초, 사당역 1분27초, 교대역 1분22초 등을 기록했다. 정차와 지연의 악순환이다. 1호선도 창동역 3분30초, 서울역 5분 54초, 사당역 6분6초의 평균 지연시간을 보였다. 이런 식이라면 배차간격이 2분이라해도 승객이 플랫폼에 서서 5분 이상씩 열차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일본에서 출퇴근 전철 안을 조금이라도 넓혀보려는 노력은 일본철도(JR) 소부센과 야마노테센의 접(히)는 의자로 나타난다. 1991년부터 선보인 이 의자가 있는 차량은, 문이 4개인 일반 차량과 달리 문이 6개다. 오전 10시까지는 차량 벽면에 접어 붙이고, 오전 10시 이후부터 자동으로 접힌 부분이 내려와 의자로서 기능을 한다. 의자를 접으면 평소보다 많은 인원을 태울 수 있고 문이 많으니 승하차 시간이 단축된다.

역사당 전문인력 포함 수백명 vs 6명

‘지옥철’에서 흔히 일어나는 각종 안전사고, 성추행, 장애인 이동 불편과 같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의 지하철 역사엔 몇 명의 직원이 나와 있을까. 혼잡 시간대 서울 시내 8개 노선 265개 역사에 근무하는 인원은 역무원, 공익요원, 도우미 등을 포함해 총 1578명이다. 한 역사당 6명 안팎뿐이다. 또한 역사별로 ‘비상대응 매뉴얼’이 마련돼 있지 않고 담당 임무도 구분돼 있지 않아 신속한 대처가 어렵다.

정유리(20)씨는 “성추행을 알아서 해결하는 데 달인이 됐다”고 말한다. 직장생활 2년차인 그는 얼마전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손이 쑥 들어오”더란다. 정씨는 ‘그 손’을 콱 잡고 소릴 질렀다. “하루이틀인가요. 서 있는데 앉아 있던 남자가 다리를 만지지 않나, 팔짱 낀 척하면서 손끝으로 가슴을 문지르지 않나….” 그나마 씩씩한 그이기에 이 정도 대응을 한다. 한 아줌마가 엉덩이를 콱 쥐었다는 피해 남성(30)의 경우엔 별 말도 못하고 내린 뒤 가슴만 쳤다고 말했다.

김미숙(29)씨는 가슴이 압박된 상태로 2호선 지하철에 타고 있다가 극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하지만 강남 부근에 가기까지는 내리는 사람이 없어 내리고자 해도 내릴 수가 없었다. 두세 정거장이 지나서야 간신히 내려 승강장 벤치 위에 쓰러졌다. 10분정도 누워 숨을 쉰 뒤 다시 지하철을 탔다는 그는 “지하철에 의료 시설 같은 곳은 없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어느 역에도 이용자 대상의 의무실은 갖춰지지 않았다.

다시 황자혜 전문위원의 출근길. 일본에서 보통 한 역의 직원 수는 50∼100명인데, 출퇴근 러시의 정점이 되는 주요 역은 직원 수가 수백 명에 이른다. 그 중 전문인력도 눈에 띈다. 2008년 현재 지하철을 운영하는 JR 히가시니혼 쪽은 장애인을 보조하는 ‘서비스개호조수’ 국가시험 자격증 취득자를 수도권역에서만 2400명 확보하고 있다. 그 밖에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승객들을 안내하기 위한 연수와 교육, 매뉴얼이 있다.

대중교통 내부의 에티켓은 어떨까. 서울에서는 다음 차가 언제 올지 모르고 노선도 한정되어 있다보니 지하철이고 버스고 아슬아슬하게 껴 타는 풍경이 일상이다. ‘쩍벌남’과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새삼스럽지 않다. 게다가 버스의 경우 정류장 인근의 상업시설 광고가 큰소리로 나오고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는 등 ‘소리 폭력’도 심하다. 무가지가 쌓이고 다시 그 무가지를 줍는 사람들에 이리저리 치인다.

일본은 대중교통, 특히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를 걸거나 받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우선석(우리나라의 노약자석)의 경우, 노약자·임산부 외에 전파 영향을 받는 의료기를 장착한 승객의 승차 가능성에 대비해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도록 유도하는 ‘매너존’이 있다. 황자혜 전문위원은 “일이나 관광으로 도쿄에 온 지인들이 ‘차 안이 너무 쥐 죽은 듯 조용하다’며 불편해할 정도”라고 말했다.

“아침저녁으로 기본권 해치는 셈”

철도지하철 공공성 네트워크 오선근 운영위원장은 “의식주에 교육·의료·교통을 더한 6가지는 현대의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고 그 중 교통권은 기본권에 속한다”며 “출퇴근시간 지하철의 혼잡은 사람들의 행복추구권과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만기 녹색교통 사무처장은 “대중교통이 불편해 ‘차나 사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다시 도로가 혼잡해지고 대중교통 상황은 더 나빠지는 ‘적색교통체제’의 악순환을 끝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혼잡과 불편의 극치를 달리는 대중교통 현실은 매일 수많은 사람을 ‘인간 이하’의 상태로 몰아넣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시각 때문인지 시민사회에서도 아직 본격적인 의제로 등장하지 않고 있다.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고민해온 단체들도 지옥철과 만원버스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구체적인 ‘교통권운동’으로 발전시키진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교통문제에는 도시의 여러 근본적 문제가 맞물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메트로 홍보실 관계자는 “수도권 과밀화가 해소되지 않는 한 해결이 쉽지 않고, ‘지옥철’에서 해방되는 순간 지하철 수입 감소로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는 1~4호선 17개 노후혼잡역사에 9491억원을 투자해 승강장·통로·계단 등의 구조를 개선할 계획이다. ‘커트맨’이라 불리는 ‘승하차 질서 도우미’도 2호선 4개 역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서울시도 출근시간대 일부 구간만 운행하는 ‘맞춤버스’와 일부 정류장은 통과하는 ‘급행버스’를 도입할 예정이다.

“아침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목격하는 일이 점점 하나의 스트레스로 변해갔다. 가까스로 문이 닫히면, 으레 유리창에 밀착된 누군가의 얼굴과 대면하기 일쑤였다. …다른 행성의 존재에게 알려주기엔, 인류의 몽타주는 얼마나 슬픈 것인가.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파아, 하아.”( 중)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밀리고 치이고, 숨 막히게 갑갑하고, 땀 나는 몽뚱아리끼리 비비며 불쾌한 기분을 언제까지 홀로 감당해야 할까. 노동자와 학생들의 대이동이 반복되는 도시의 일상, 당신은 인간답게 이동하고 있는가. 잠들면 잊고 눈뜨면 다시 마주해야 했던 반복되는 고통이 이제 당신에게 인권을 묻고 있다.

◎ 연속기획의 제목인 ‘인권 OTL’은 좌절해 쓰러진 사람을 상징하는 이모티콘 ‘OTL’을 활용해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의 슬픔을 담았습니다. 제보와 문의는 syuk@hani.co.kr 혹은 02-710-0552로 해주시면 됩니다.


출퇴근 제도를 바꿔보자

“10시 출근은 쾌적하더라”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안철수연구소 김정석(34) 선임연구원은 아침 9시가 조금 넘어선 시각에 집을 나선다. 그의 업무시간은 오전 10시~저녁 7시. 입사 뒤 몇 달이 지나 그가 직접 선택한 시간이다. 안철수연구소는 연구원들에게 오전 9시 출근과 10시 출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269명의 연구원 중 27%가 10시 출근을 하고 있다.

김 연구원이 서울 강남의 집을 나서 여의도에 있는 회사로 오기 위해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광역버스다. 가뜩이나 좌석이 많아 서 있을 자리도 좁은 버스 안은 출근시간대에 매우 혼잡하다. “10시 출근으로 바꾸고 버스를 타보니 정말 쾌적하더라고요. 연봉에 조금 차이가 있더라도 10시 출근을 할 수 있는 회사가 훨씬 낫다고 봅니다.”

안철수연구소는 창립 초반부터 ‘자유출퇴근제’를 도입했다. 법정 근무시간만 지킨다면 언제 출퇴근하는지 회사가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직원 수가 많아지면서 2001년부터 9시와 10시 출근 중 택일하도록 선택을 좁힌 셈이다.

현재 출퇴근 시간 탄력운용제나 재택근무 같은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회사는 한국P&G, 다우코닝, 유한킴벌리, IBM, 로레알코리아 등 다양하다. 최근 한 잡지가 ‘여성들이 일하고 싶은 회사’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출퇴근 시간에 관한 회사의 정책이 입사자들의 관심 대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출퇴근 시간 조정만으로도 회사는 구인 경쟁력을 얻는 셈이다.

2007년 에 따르면, 강남에 위치한 기업 본사는 1990년 287개에서 2003년 568개로 늘었다. 강남 다음으로는 구로디지털단지나 상암DMC, 판교신도시 등에 기업이 밀집해 있다. 이들 지역의 출퇴근 환경을 쾌적하게 만드는 데 기업의 선택은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직원 수가 적어 인력 운영이 좀더 유연할 수 있는 중소기업의 경우 출퇴근 시간 조정과 재택근무 확대 등 근무 형태의 변화를 통해 복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인권 OTL-30개의 시선]

① 쓰린 새벽의 아이들
② 아이들의 끔찍한 SOS
③ 시퍼런 가위와 금속탐지기, 무서운 학교
④ 내가 10대 레즈비언이다, 어쩔래?
⑤ 인간답게 죽고싶다
⑥ “난 네가 병원에서 한 일을 알고있다”
⑦ 장애인에게 ‘퇴소 협박’하는 복지시설?
⑧ 전.의경은 ‘현대판 노예’인가
⑨ 국가유공자 가족 몰살 사건
⑩ 교도소 밖, 갈 곳이 없다
⑪ 저상버스는 누굴 위해 달리나
⑪ 휠체어 타고 황홀 투어
[인권 OTL] 세계인권선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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