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OTL-30개의 시선’을 마무리하기 위해 한겨레21인권위원 6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결혼이주여성인 이신애(아리옹)씨, 한지혜 청소년인권 활동가,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 황필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등이 시간을 냈다. 위원들은 새 정부 들어 날로 악화하는 인권 현실을 깊이 우려하면서 2009년 또한 끊임없는 삭풍이 몰아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맞서 현장의 폭넓은 계급적 연대와 언론의 대중 친화적 글쓰기로 ‘인권의 빙하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좌담은 12월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렸다.
사회 인권 OTL 시리즈를 마쳤다. 총평을 해달라.
오병일 큰 틀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기조가 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체적으로 파헤친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반면, 구체적이고 현장감이 살아 있는 글쓰기는 좋았다.
한채윤 시리즈의 목표가 인권 고발인지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건지 정보 제공인지, 명확하지 않아 보였다. 인권 문제 해결을 정부한테만 요구해야 하는지, 우리 공동체의 문제는 아닌지에 대한 문제가 별로 다뤄지지 않았다. 기존에 인권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던 마이너스족, 주거권 문제 등을 다뤘던 건 좋았다.
황필규 인권침해가 방치되는 원인 파악 없이는 공감으로 가기 어렵다. 대체 누가, 무엇이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돼야 한다.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이 먼저 잡히고 기사를 써나가야 하지 않나 싶었다.
박래군 처음엔 걱정했는데, 30회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해냈다는 것은 대단하다. 한국의 인권 문제가 다양하다는 걸 보여줘 의미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인권 문제 가운데 어느 게 더 소중하고 덜 중요한 건 아니지만 활동가 입장에서는 어떤 부분에 집중을 해야 하는데, 은 과감하게 전반을 다뤘다.
이신애 이주민 문제를 다룰 때 극단적인 경우를 일반화해 다루는 태도가 거슬렸다.
사회 이명박 정부 시대의 인권 문제를 얘기해보자. 갈수록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한채윤 정부가 내세우는 능률의 문제와 인권 문제가 충돌할 것이다.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서도 왜 그런 사람들 인권까지 챙겨줘야 하느냐는 식 아닌가. 지금도 국가인권위 앞에서 시위하고, 북한 인권 왜 안 챙기냐고 하고, 돈 없으면 인권 문제 해결이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인권 문제와 관련해 정부 탓만 계속 하는 꼴이 될까 걱정이기도 하다. 개인 간의 문제, 편견의 문제도 아주 크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박래군 이명박 정부는 세계가 어떻게 가든 (우리는) 신자유주의로 가겠다는 것이다. 경제위기를 전가해 사회복지 같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예산을 깎아버렸다. 반대로 공안정치를 위한 예산은 증액하고, 경제위기와 공포정치로 억누르려는 게 명확하다. 정부가 제출한 131개 법안을 보면 부자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국가가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대기업 30% 구조조정 지침을 내린다는 애기가 나오는데, 연쇄적으로 노동자를 구조조정하고 이주노동자 차별을 조장할 거다. 국정원 관련 법 7개가 국회에 올라가 있는데 왜 하필 이 시기인가. 연대의 고리를 마련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와 국내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손을 못 잡는데, 계급화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게 모든 운동의 중요한 지점이다. 네 문제가 내 문제고 네가 죽으면 내가 죽는다는 식으로….
오병일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더 견고해지면서 (국가가 국민을) 훨씬 더 잘 통제할 수 있는 시대다. 개개인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그물망은 더 강력해졌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의 보수주의·권위주의 의식이 결합되면서 노골적인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만큼 저항하고 있는가. 이런 세세한 규제에 대해 본질적인 거부감 같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약하다.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인 거부감을 느낄 문화적 토양이 마련돼야 한다. 그런 싸움도 중요한 상황이 아닌가.
불법 체류 단속, 비정규직… 악화 일로사회 경기 마석 가구공단의 토끼몰이 단속에서 보듯, 앞으로도 이주노동자 단속이 강화될 것 같다.
이신애 이명박 정부 들어 심해지고 있다. 출입국관리사무소뿐만 아니라 경찰, (지자체) 공무원 등 세 군데가 합쳐서 이주노동자를 줄이겠다고 한다. 심지어 식당에 가서 불법 체류자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처럼 위협한다. 자기 고객인데 알려주기도 힘들고, 알려주면 문제가 생긴다. 식당 주인도 사업할 권리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다른 불법 체류자를 알려주면, 네가 아는 사람은 안 잡아가겠다고 꾀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 때도 단속은 있었지만 이런 문제는 없었다. 올해 들어선 계약 기간 3년을 마친 이주노동자 가운데 다신 안 오겠다는 이도 많아졌더라. 이명박 정부 들어 이주노동자들을 차별적으로 대하니까.
황필규 법제나 관행상 배제와 동화의 이데올로기가 벌거벗은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다문화가정을 위해 법을 통해 돈을 쏟아붓지만, 한국인과 피를 섞어야만 다문화가정이지 외국인은 외국인일 뿐이다. 전세계 어디를 봐도 그런 나라는 없다. 인신보호법의 유일한 예외가 외국인이다. 노골적이다. 마석 가구공단 단속의 경우도, ‘불법 체류자가 있으면 슬럼화되면서 범죄의 온상이 된다. 그러니 사회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잡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전형적인 외국인 혐오주의이자 인종주의적 발상이다. 난민 신청을 할 때 접수를 거부하는 관행도 살아났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난민, 비숙련 노동자의 배제가 더 심해질 것이다. 테러방지법 문제도 언론은 일반인이 내 문제로 느끼게끔 만드는 게 중요하다. 국정원 강화라고만 비판하면 사안 자체를 고립시키는 방식이 될 수 있다.
한채윤 비정규직 문제는 극장에서 일하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 알게 됐다. 관리자가 ‘서비스 차원에서 앉지 마라’ ‘여자가 뿔테 안경을 끼면 안 된다’ ‘입술이 빨갛지 않은 것도 서비스 정신에 어긋난다’고 한다고 하더라. 정규직은 아침 7시에 출근해도 비정규직은 6시30분에 나와야 한다. 일하다 부상당하면 자기 돈으로 치료해야 한다. 이런 얘기들을 들으면 정말 문제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른 것들까지 읽게 된다. 이런 현장의 얘기에다 전문가의 분석과 기자의 취재를 결합해 인권을 일상 속 문제로 보여줘야 한다. 설득력 있게 얘기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일상 속 내 문제’로 느껴 연대해야한지혜 인권이라는 단어도 그렇다. 내 주변 친구는 아직도 인권이라는 말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쑥스러워한다. 인권이 밥 먹여주냐고 한다. 지금 당장 눈앞에서 학교 친구들이 맞고 피멍이 들고 머리를 잘려도 ‘어쨌든 나는 공부하고 대학 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밥이라도 먹고 살지 않겠나’ 이런 식의 얘기들이 나온다. 청소년 인권활동을 하면서 ‘우리끼리만 얘기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잘 풀어서 다가가고 얘기해야겠다.
사회·정리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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