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인권OTL] 사회주의자를 잡아라, 거꾸로 가는 역사

등록 2008-09-02 00:00 수정 2020-05-03 04:25

사노련 회원들을 긴급 체포한 정부, 국가보안법의 역주행에 억압받는 사상의 자유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인권OTL-30개의 시선19]

하마터면 역사의 시계가 10여 년 뒤로 돌아갈 뻔했다. 북한과 연계됐다고 공안당국이 주장하는, 이른바 ‘주사파’ 조직 사건을 빼고, ‘사회주의’ 혹은 ‘노동해방’을 주장하는 단체에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딱지를 붙인 마지막 판결은 1992년에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1992년 11월 국제사회주의자그룹(IS)에 대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이적단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하여 국제사회주의자들은 1992년부터 2001년까지 10차례에 걸쳐 155명이 구속되는 기나긴 고초를 치렀다.

불교계 시국집회 임박해 터진 사건들

그 뒤로도 오랫동안 국가보안법의 칼날은 주로 ‘통일운동’ 세력을 향했다. 물론 이적표현물 소지·유포 혐의로 시민과 군인을 체포하는 일이 이따금 벌어졌지만, 재판에서 혐의가 그대로 인정되진 않았다. 그러나 2008년 8월 마침내 북한에 ‘반대’하는 이들로 구성된 ‘조직 사건’이 터졌다. 경찰은 8월26일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회원 7명을 체포했다. 그러나 공안당국의 의도는 일단 법원에서 제지당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 3명은 28일 “사노련이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구성된 단체라는 점 또는 그 활동이 국가 존립의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을 가지는 점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이들의 영장을 기각했다.

영장은 기각됐지만 재판은 남아 있다. 사노련은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을 목표로 삼지만, 북한 등 현실사회주의 체제에 매우 비판적인 조직이다. 사노련 운영위원장인 오세철 교수의 ‘신념’도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다. 그는 노태우 정권 시절에 민중회의 준비위원장, 김영삼 정권 시절엔 민중정치연합 대표, 노무현 정권 시절엔 ‘노동자의 힘’ 대표를 역임했다. 그가 속한 조직들은 일관되게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좌파’로서 그의 정체성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노무현·김대중 정권은 물론 김영삼·노태우 정권도 잡아가지 않았던 오세철 교수를 이명박 정부의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 것이다. 이렇게 공안당국에 ‘잃어버린 10년’은 ‘잊어버린 10년’이다.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가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진전과 인권 개선의 성과를 공안당국은 잊고 싶은 듯이 보인다.

더구나 시점이 묘했다. 불교계의 대규모 시국집회가 열리기 하루 전에 사노련 조직원이 체포됐고, 집회 당일엔 여간첩 사건이 발표됐다. 경찰의 발표를 보면, 간첩 사건은 두어 해 전부터 조사해왔고 사노련 사건은 이미 7월30일 체포영장을 받아둔 상태였다. 그래서 경찰이 사건을 준비하고 시점을 기다렸다가 터뜨렸단 추측이 설득력을 얻는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불교계 행사에 물타기를 하고 촛불집회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사노련 사건의 수사 주체에서도 사건의 성격이 엿보인다.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김도형 변호사는 “국가보안법 조직 사건은 관례상 서울경찰청 보안과에서 수사한다”며 “이번 사건의 수사 주체는 남대문경찰서로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대문경찰서는 종로경찰서와 함께 촛불집회를 주로 관할하는 경찰서가 아니냐”고 덧붙였다. 촛불을 겨냥한 사건이란 것이다. 경찰은 사노련이 촛불집회에 참여해 유인물을 배포하고 거리행진에 참여한 점을 문제 삼기도 했다.

사노련 체포가 돌출 사건은 아니다. 불길한 예감은 올 초부터 감지됐다. 전북경찰청 보안수사대는 1월29일 ‘남녘통일 애국열사 추모제’에 중학생 180명을 인솔해간 혐의로 교사 김아무개(49)씨를 구속했다. 2006년 12월에 열린 추모제 참가를 1년여 뒤에야 문제 삼은 것이다. 한총련 의장 시절부터 10년이 넘게 수배생활을 지속해온 윤기진 범청학련 남쪽본부 의장도 ‘하필이면’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틀 뒤인 2월27일 체포됐다. 촛불집회가 뜨거워진 뒤로는 공안정국의 그림자도 짙어갔다. 국군기무사령부가 6월2일 개인블로그에 레닌의 등에서 인용한 글을 올리고 책자를 소지한 혐의(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 등)로 육군 6군단 소속 전아무개 하사를 체포했다. 기무사는 비슷한 시기에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해병대 권아무개 소위, 특전사 이아무개 중위를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 등으로 체포했다. 하지만 군검찰은 전 하사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당시 권 소위 등을 접견한 김종웅 변호사는 “기무사가 조직 논리에 따라서 이들을 체포했지만, 군검찰은 신경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렇게 공안경찰, 기무사 등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계속됐고 이따금 좌절됐다.

체포영장엔 촛불집회 도로교통법 위반 뿐

이렇게 공안정국의 분위기는 올 초부터 물밑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조직 사건에 대한 소문도 있었다. 한지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간사는 “대학로 등 사회과학 서점에서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이 사노련 간행물 등을 사간다는 얘기가 전부터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지난 연말부터 조직 사건 20건이 준비돼 있다는 얘기도 나돈다”고 덧붙였다. 박래군 활동가는 “한가위를 전후해 조직 사건이 잇따라 터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공안경찰이 국회에서 내년 정부예산 심의가 시작되기 전에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해 예산을 확보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사노련 사건이 공안정국의 끝이 아니라 시작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노련이 첫 표적이 됐을까. 한지연 간사는 “사노련처럼 작은 조직을 상대로 먼저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다음에 조금 더 대중성 있는 조직을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더구나 오세철 교수는 사회주의를 공공연히 주장해온 터라 ‘사건’을 만들기에 좋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선례를 만들면 색깔이 사노련보다 희미한 조직도 걸려들 가능성이 커진다”고 덧붙였다. 사노련은 올해 2월23일 출범한 조직이다. 대중행동강령으로 △비정규직 철폐 △노동시간-고용 연동제 △완전한 파업권 쟁취 △노동자 생산통제 등을 내세운다(사노련 누리집 swl.jinbo.ne 참고). 사노련은 혁명적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을 목표로 노동해방연대, 울산노동자신문 등 4개 조직이 결합해 만들었는데, 구속된 7명 가운데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을 지낸 노동운동가 오민규씨 등이 포함돼 있다. 민주노총 안에서 ‘현장파’로 분류되는 이들은 비정규직 투쟁에 앞장서왔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이적단체라는 말은 적을 이롭게 한다는 말인데, 사노련은 노동자를 위한다고 했으니 이적(利敵)의 적(敵)은 노동자란 말인가. 그렇다면 전국의 노동조합이 이적단체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더구나 사회주의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이제 한국에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운동조직이 드물지 않다. 한국에서 사회주의자의 커밍아웃은 1989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철호씨 등 인민노련 사건으로 구속된 이들이 법정에서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공개 선언한 것이다. 이들의 사회주의자 선언은 1990년 발간된 에 담겼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원용수 사회당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저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사회주의자 후보가 출마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좋은 일이지요. 함께 토론도 하고 얼마나 좋습니까?”라고 답했다. 이렇게 87년 이후 한국에서 사회주의는 ‘시민권’을 획득해왔다. 더구나 사노련은 ‘공개’ 조직으로 그들의 주장과 활동은 누리집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확인된다. 사노련 사건의 변호를 맡은 김도형 변호사는 “주장이 공개돼 있어서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고 오세철 교수처럼 신분이 확실한 사람들이니 불구속 수사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사노련의 상비군 폐지와 민병대 창설 주장을 문제 삼는다. 김도형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합헌판결 당시에도 사상의 자유는 인정하되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해서만 보안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며 “이들의 행동은 체포영장에서 경찰이 지적하듯이 촛불행진에 참여해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사실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행동하지 않았는데 주장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법적용이란 것이다. 한상희 교수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란 개념까지 동원할 필요도 없다”며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폭력행동이라면 집회에 앉아서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친 사람은 모두 잡아야 한다는 말이냐”라고 말했다. 더구나 경찰이 추정하는 사노련 회원은 70명을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70명이 결성한 단체가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고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할 목적’의 이적단체로서 위력을 가질까.

최근 판결에서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규정은 비교적 엄격히 적용돼왔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일심회 관련자 3명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회합·잠입·탈출죄를 인정해 최고 7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북한의 기관원과 만난 혐의로 기소된 일심회조차 이적단체로서 ‘단체성’은 1·2·3심에서 한 번도 인정되지 않았다. 올해 1월엔 군사시설 등을 촬영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진작가 이시우씨가 무죄판결을 받았다. 앞서 연말엔 비전향 장기수 묘역에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글귀를 새겨넣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권낙기 통일광장 공동대표가 항소심에서도 무죄판결을 받았다. 비록 국가보안법은 존치했지만 국가보안법 적용은 ‘잃어버린 10년’ 사이에 줄어왔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사람은 1998년 785명에서 2007년 64명으로, 10분의 1 선으로 줄었다. 하지만 공안당국은 정권 교체를 계기로 다시 국가보안법의 화려한 부활을 도모하고, 사노련에 이적단체 규정까지 적용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사노련 사건은 인권 악화 신호탄”

공안당국의 ‘들이대기’는 끝이 없다. 검·경은 여간첩 원정화씨 사건으로 구속된 황아무개 대위에 대해 불고지죄를 적용했다. 박래군 활동가는 “92년 중부지역당 사건 이래로 불고지죄가 처음 적용됐다”고 지적했다. 앞서 7월12일 경찰은 윤기진 범청학련 남쪽본부 의장에게 은신처 등 편의를 제공한 혐의로 육아무개(32)·김아무개(30)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국가보안법 중에서도 인격을 파괴하는 조항으로 지적돼 사실상 사문화됐던 불고지죄와 편의 제공 혐의가 역사를 거슬러 되살아난 것이다.

갈수록 후퇴하는 한국의 인권 상황은 국제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김희진 사무국장은 “한국 하면 국가보안법을 떠올릴 정도로 국가보안법은 국제사회의 오랜 관심사”라며 “사노련 사건을 국제사회가 한국의 인권 상황이 악화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은 아시아의 인권국가로 이미지를 쌓아왔다”며 “이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거리에서 하늘색 물감으로 ‘불가촉’ 시민을 구분하고, 국가보안법으로 빨간색을 덧칠하고 있다. 이렇게 촛불집회 강경진압으로 집회·시위의 자유가 위협당하고, 국가보안법 적용으로 사상의 자유가 위기에 처했다. 사노련 활동가처럼 느닷없이 들이닥친 경찰에 잡혀가는 ‘연행의 추억’이 악몽처럼 살아났다. 연행의 현실 앞에서 오히려 “나부터 잡아가라”는 항의의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이적(利敵)단체의 이적은 이적(李敵), 즉 ‘이명박을 적대시하는 행위’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인권이냐, 야만이냐. 지금 한국은 기로에 서 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