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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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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인권OTL] 사장님보다 노동부 더 나빠요


이주노동자 최저임금마저 깎으려는 정부 앞에
고용주 인권교육이 무슨 소용인가
등록 2008-11-21 13:40 수정 2020-05-03 04:25

다행히 이주노동자를 극심한 인권침해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일들, 예컨대 연수제도라는 이름 아래 벌어졌던 감금노동이나 저임금 착취, 임금 압류, 신분증 압류 등이 연수제도 폐지와 함께 차츰 잦아들고 있다. 대신 제정된 고용허가제 덕분에 이주노동자의 임금 수준이나 처우는 어느 사업장이든 엇비슷하게 하향 평준화됐다.

사장님보다 노동부 더 나빠요

사장님보다 노동부 더 나빠요

요즘은 기업의 일방적인 학대와 차별로 인한 권리침해보다는 상호 이해와 소통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갈등이 더 많은 편이다.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고용주나 관리자들은 하나같이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원인은 다양하다. ‘시간 개념 없고, 느려터지고, 음식 때문에 말썽이고, 기숙사며 공장 환경을 정갈히 하지 못하고, 잔소리 좀 했다고 당장 일손 놓고….’ 속 썩는 사정은 끝이 없다. 그런가 하면 이주노동자들은 다른 소리를 한다. ‘같은 일을 하는 한국인에 비해 임금이 적고, 잔업이 너무 많거나 적고, 한국인들이 무시하고, 맡은 일을 부지런히 해서 다 마치면 남의 일까지 하라 시키고, 한국 음식을 못 먹겠는데 강제로 먹으라 하고, 실수를 하면 정당한 지적을 하는 대신 욕설 등을 하며 비인격적 대우를 한다’는 하소연이다. 그러니 상담활동가들은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주며 서로의 오해를 풀어내고 소통하도록 돕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외국인노동자 고용기업의 관리자 인권교육’을 시행한 덕분에 교육 공간에서도 고용주와 관리자를 만나게 됐다. 물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만나도 함께 나누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너무도 거창해 멀고도 먼 ‘인권’에 대한 이야기 대신, 노상 접하면서도 이주노동자가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속마음과 고충을 전달해 그들의 소통을 도우려 노력한다. 기업 내에서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인권’을 부르짖는다고 해서 확보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개별 기업보다 사회적 의식과 제도가 담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도 보완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고, 고용주와 관리자 교육을 통해 이해와 소통을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

한데 고용주·관리자와 함께 ‘인권교육’을 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최근 들어 노동부가 대단한 ‘뻘짓’을 하는 탓이다. 노동부는 이주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을 주는 것도 아깝다며 최대 3개월로 제한돼 있는 신입 노동자 수습 기간을 이주노동자에게만 늘려 적용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단다. 이러한 제도적 차별 허용은 노동현장에서 불필요한 갈등과 마찰을 일으키고 결국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의 원인이 된다. 연수제도 당시 모순된 제도로 인해 기업 내에서 벌어졌던 온갖 부당한 차별과 인권침해를 생각해보라. 법과 제도가 차별 철폐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별을 보장하고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백날 고용주와 관리자에게 인권교육을 해봐야 헛일이 될 것이다. 기업 내 인권 의식을 하늘같이 높여놓은들 무엇하겠는가! 이주노동자는 제도로 정해진 ‘쥐꼬리’ 임금에 밤낮없이 착취당하다 비명도 없이 스러질 것을….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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