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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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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OTL] 교도소 밖, 갈 곳이 없다

등록 2008-07-01 00:00 수정 2020-05-03 04:25

출소자 70.6% “취업 안돼 사회 적응 못해”, 위압적인 경찰의 전과자 조사까지 ‘차별’ 심해

▣ 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인권OTL-30개의 시선⑩]

애초 경찰에게서 총기를 빼앗아 그걸로 은행을 털자고 일당 4명과 작당할 때 그의 인생은 이미 나락의 문지방을 넘고 있었는지 모른다. 6월항쟁의 열기에 전두환 정권은 약이 오를 대로 올랐던 1987년 여름. 뒷날의 한국 사회를 가장 적확하게 규정한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탈주범 지강헌이 동료 4명과 함께 서울 북가좌동 한 주택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비지스의 를 틀어달라고 요구하기 몇 달 전이었다.

5명은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후문 파출소에 흉기를 들고 들어갔다. 근무 경찰관의 권총을 간단히 빼앗은 뒤 아예 무기고를 털었다. 그러나 겁이 많던 일행 하나가 자수하는 바람에 사건 일주일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턱없는 영웅 심리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때는 늦었다.

재판부는 강도상해 혐의로 조상석(41·가명)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나머지 공범은 12년형을 받았다. 들고 간 흉기를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치밀하게 계획된데다 범죄 의도가 워낙 반사회적이었기 때문에 높은 형량이 나왔다.

“감방 갔다 왔습니다”로 끝난 면접

아무 생각 없이 교도소 생활을 하던 중 ‘이대론 안 되겠다’는 자각이 밀려온 건 입소한 지 5년쯤 지나면서였다. 공부에 매달렸다. 고졸 검정고시도 통과했고, 건축 기능사를 거쳐 기사 자격증까지 땄다. 워드프로세서를 비롯해 자격증은 모두 11개. “새벽 2시30분이 넘기 전에 두 눈을 붙여본 적이 없다”고 한다. 감옥에 들어오기 전 살았던 만큼의 인생을 감옥 안에서 살고 난 2006년, 그는 가석방의 은전을 입었다. 19년 만에 밟은 민간인의 땅은 은혜로워 보였다. “취직하면 진짜 열심히 일할 자신이 있었”기에 중소규모 건설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하지만 그가 낸 이력서에는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줄쳐진 종이 위에 그는 20살 이후 마흔이 되도록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적어낼 재간이 없었다. 답답하기는 조씨나 회사 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뭐 했어요?”

“감방 갔다 왔습니다.”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성실히 살고 싶었던 그는 솔직히 대답했다. 그러곤 끝이었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이력서를 11장째 쓰고 나서야 조씨는 포기했다. 대신 고용안정센터를 찾았다. 지난해 봄 간신히 작은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이번엔 “천주교 수도원에서 20년 동안 일을 봤다”고 거짓말을 했다. 지난 6월25일 해질 녘 서울의 한 공원에서 만난 조씨는 “그 모든 게 전과자로서 벽에 부닥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작은 리모델링 공사장의 책임자로 일하는 동안 드디어 인생의 안정을 찾는가 싶었다. 150여만원의 월급은 아쉬운 대로 새 여정을 위한 노잣돈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초 ‘전과’가 다시 현재의 발목을 잡으러 나타났다. 이른바 ‘강화도 총기 탈취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경찰은 갑호비상 명령을 내린 바로 그때, 서울에 있는 사무실로 경기 과천경찰서 소속 사복 경찰 4명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사무실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져온 몽타주 2장을 조씨 얼굴과 대조했다. 그러곤 2명이 문 앞을 지키는 사이, 2명이 조씨를 뺀 사장과 나머지 직원들을 데리고 사장실로 들어갔다. 사건이 일어난 날 조씨의 행적과 관련해 1시간여 동안 질문이 이어졌다. 사무실에 홀로 앉은 조씨는 불안과 초조 속에서 그들이 나오길 기다렸다. 밖에 있던 경찰들은 조씨에게 “유전자 정보가 필요하다”며 면봉을 내밀었다. 입 안을 긁어 상피세포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들은 판사가 발부한 영장도 들고 오지 않았다. 조씨는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따졌다.

검정고시, 자격증 따도 무용지물

“경찰이 찾아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범인을 잡아야 하니까, 나처럼 동종 전과를 가진 이들을 찾아올 수 있죠. 그런데 나를 만나야지 왜 회사 사람들을 찾습니까? 저보고는 사건이 일어난 날 뭘 했는지, 알리바이조차 묻지 않고 갔어요.” 정확히 말해 이번에 그의 발목을 잡은 건 전과가 아니라 상식과 절차를 무시한 경찰 행정이었던 셈이다.

그 뒤 사무실 어느 누구도 그 일에 대해 조씨에게 묻지 않았다. 다만, 이전까지는 직원들이 사무실 열쇠를 놓고 다니던 곳의 위치가 바로 다음날 조씨 모르게 슬그머니 바뀌어져 있었다. 조씨는 2주 뒤 회사를 그만뒀다. 세 달 동안 집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지인들이 옆에서 다잡아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다행히 올해 개나리가 필 무렵 다른 회사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조씨는 “전과자라고 편견 갖지 말고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공원의 지는 노을 속으로 사라졌다.

조씨처럼 범죄를 저지른 대가로 교도소에서 자유형을 치르고 사회로 쏟아져나오는 이들은 해마다 3만여 명에 이른다. 또 다른 범죄를 모의한 상태에서 출소하는 일부를 빼고 대부분의 출소자들은 ‘이번에야말로’라고 벼르며 사회 적응에 의지를 갖는다. 이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문제는 경제적 생존을 위한 취업이나 창업. 하지만 사회와의 오랜 단절에서 오는 ‘인식의 지체’에서부터 이력서 빈칸을 설명해야 하는 데서 오는 막막함, 이미 짙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회인들의 시선 등은 원활한 정착을 막는 걸림돌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6년 실시한 ‘출소자 차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출소자들의 70.6%가 취업이 사회생활 적응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꼽았다. 이는 ‘바뀐 생활에 적응’(47.6%), ‘가족과의 관계 회복’(42.2%), ‘재범 유혹’(12.9%)보다 훨씬 큰 것이다.

교도소에서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딴 이들도 취업난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직종도 건설이나 기계 등으로 단순한데다 현장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내놓은 ‘수형자의 사회 복귀와 처우 연계’ 보고서는 “현재의 수형자 직업훈련 시스템은 기술 숙련을 위한 체계가 미비돼 있으며, 자격 취득 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출소 뒤 실제로 활용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3만여 출소자 23% 3년 안에 교도소로

살인 혐의로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6년 출소한 이희수(43·가명)씨는 “산업건축기사 자격증도 따고 책도 많이 보고 나름대로 준비해서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실무 경력도 없고 인맥도 없는 상황에서 취직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겨우 자신의 과오를 알고도 받아준 한 무역회사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취업이 어려울 경우 창업을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종자돈’ 없이는 이 역시 어렵다. 출소자들이 신용불량인 경우도 많거니와 믿을 것 없는 이들에게 은행이나 자치단체는 담보나 보증인을 요구한다. 2004년 말 남편이 출소했다는 김아무개씨는 한국갱생보호공단 누리집에 경제적 고통을 호소한 뒤 “시에서 생활안전자금을 대출하려는데 보증인이 필요하다고 해 다시 한 번 절망하고 있다”는 글을 올려놓기도 했다.

출소자들이 이렇게 초반에 의지를 갖고 사회 정착을 위해 노력하다가 실패하게 되면 누범의 길에 빠져들기 쉽다. 연간 3만여 명의 출소자 가운데 23%가량이 3년 안에 다시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고 마치 회전문 돌듯 교도소 안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출소자들의 사회 재적응을 돕는 게 추가적인 범죄를 막는 가장 핵심적인 조건이며 결국엔 범죄로 인해 사회가 치러야 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사회방위적 개념의 접근법도 제기된다. 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는 “범죄자의 사회 복귀 실패는 재범의 악순환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사회 안전에 심각한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못박고 있다.

집과 직장에 들어닥치는 경찰

결국 출소자들의 원활한 사회 재정착을 위해서는 교도소 안에서부터 체계적이고 다양한 직업 및 창업 교육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출소자들이 지역 기업들의 직업교육을 이수하도록 하고, 정부는 해당 기업에 세금 감면이나 훈련 비용 제공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를 통해 출소자들은 실질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낸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우리 사회의 최소 수혜자이자 최대 소외자인 출소자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려면 그에 따른 처우를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재범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여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 차원의 대응은 이제 걸음마를 뗐다.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교정본부 산하에 사회복귀지원팀을 새로 만들었지만 올해 확보된 예산은 전혀 없는 상태다. 임재표 팀장은 “교도소 안에서 취업과 창업에 대한 정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출소할 사람들에게는 교육을 하며 이를 마친 사람들을 각 단체 등과 연계하는 방법을 구상 중”이라며 “당장의 성과보다는 장기적 안목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의 사례처럼 출소자의 전과와 비슷한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집과 직장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 주변 사람들에게 출소자의 전과 사실을 ‘방송’하고 다니는 경찰의 행태도 시급히 바로잡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2005년 청송보호감호소를 나온 전과 4범 이상필(44·가명)씨도 2년 전 살인사건 수사차 찾아온 경찰에게 구강 상피세포를 건네주고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씨는 살인 전과도 없었던데다, 경찰이 직장까지 찾아와 위압적으로 구는 바람에 하마터면 전과 사실이 직장 사람들에게 알려질 뻔했다. 이씨는 “청송에서 함께 나온 사람 하나는 일하던 공장에 경찰이 쳐들어와 결국 잘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국가인권위의 2006년 조사에서도 출소자의 절반가량인 48.5%가 ‘전과로 인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경찰서 조사 요구를 받은 적이 1번 이상 있다’고 답했다.

법제도적인 정비도 필요하다. 대표적인 게 전과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이다. 이 법 제2조 4항은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를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형의 실효에 관한 법’을 보면 3년 이하의 징역·금고형은 형의 집행이 끝나거나 면제된 뒤 5년이 지나야 형의 효력이 없어진다. 3년을 넘는 징역·금고형의 경우 형 실효까지의 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난다. 따라서 적어도 출소 뒤 5년 동안은 이 사회가 전과를 이유로 각종 차별을 해도 된다는 법논리가 성립한다. 출소 직후가 출소자의 사회 적응에 가장 중요한 때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현실을 감안한 법 개정이 시급한 대목이다.

출소 5년간 차별 가능한 법 제도

지난 5월 벌써 4번째 교도소를 출소한 박현수(36·가명)씨는 10대 초반 이미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6살 때 구두닦이 집단에 내맡겨진 뒤 쏟아지는 구타와 학대를 피해 뛰쳐나온 박씨는 스스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구두를 닦다 아이들을 때린 혐의로 교도소를 두 차례 다녀왔다. 그 뒤에는 교도소에서 만난 친구와 어울리다 소매치기 혐의를 뒤집어쓰고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마지막으로는 교도소 친구의 꾐에 빠져 맥줏집에 들어가 강도짓을 하려다 붙잡혔는데, 긴장을 풀기 위해 소주 4병을 마시고 가는 바람에 현장에서 잠이 들었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범법자’였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지만, 교도소에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그가 좀더 어린 나이에 교도소를 나왔을 때 기초적인 생활 보장과 취업에 도움을 받았더라면 범죄의 순환 논리에 빠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컸을 것이다. 그는 이제야 한국갱생보호공단의 직업훈련 과정에 문을 두드리고 있다.

◎ 연속기획의 제목인 ‘인권 OTL’은 좌절해 쓰러진 사람을 상징하는 이모티콘 ‘OTL’을 활용해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의 슬픔을 담았습니다. 제보와 문의는 syuk@hani.co.kr 혹은 02-710-0552로 해주시면 됩니다.



‘기쁨과 희망 은행’ 문 열어

최대 1천만원까지 종자돈 대출


취업하기도 쉽지 않고 창업을 하려고 해도 종자돈이 없는 출소자들. 가족 구성원 가운데 누군가 살해당하는 최악의 비극을 겪은 뒤 다시 일어서려는 범죄 피해자 가족들. 담보도 없고 보증 서줄 사람도 없는 이들이 창업을 통해 다시 사회에 발을 내딛을 때 디딤돌이 되어줄 국내 최초의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 은행이 드디어 닻을 올렸다.
지난 6월25일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창립식을 연 ‘기쁨과 희망 은행’이 바로 그 주인공. 이 은행은 앞으로 교도소를 나온 지 2년이 지나지 않은 출소자와 살인사건 피해자 가족들이 창업을 하기 위해 대출을 요청할 경우 연리 2%에 최대 1천만원까지 빌려줄 계획이다. 원금은 최대 3년 안에 상환하면 된다. 물론 담보를 제공하거나 보증인을 세우라고 하는 일은 절대 없다.
기본 요건을 갖췄다고 아무에게나 빌려주는 것은 아니다. 시장조사와 좋은 점포 자리 찾기 등을 내용으로 하는 창업 교육을 받아 수료자로 선정돼야 하고, 이후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뒤 현장 및 실사 검증을 통과해야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아니면, 법무부 교정본부나 한국갱생보호공단의 추천을 받아도 된다.
은행 창립 자본금은 후원금을 모은 5억원으로 시작했고 앞으로 더 늘려나갈 방침이다. 천주교서울대교구사회사목부를 담당하는 김운회 주교가 이사장을 맡았고, 천주교사회교정사목위원회 이영우 신부가 위원장을 담당한다. 후원기업으로는 김앤장법률사무소, 애경, SK, 세계경영연구원, 한울, GB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영우 신부는 “출소자들에 대한 불신과 미움을 허물고 그들이 우리 이웃으로 사회에 적응해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면 오히려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며 “차별과 절망 속에 살 수밖에 없는 출소자들을 포용하면서 희망을 심어주는 은행으로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인권 OTL-30개의 시선]

① 쓰린 새벽의 아이들
② 아이들의 끔찍한 SOS
③ 시퍼런 가위와 금속탐지기, 무서운 학교
④ 내가 10대 레즈비언이다, 어쩔래?
⑤ 인간답게 죽고싶다
⑥ “난 네가 병원에서 한 일을 알고있다”
⑦ 장애인에게 ‘퇴소 협박’하는 복지시설?
⑧ 전.의경은 ‘현대판 노예’인가
⑨ 국가유공자 가족 몰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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