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 거절’.
지난 4월, 안정은(23·가명)씨는 학자금대출신용보증기금 홈페이지에서 맞닥뜨린 네 글자에 깜짝 놀랐다. 서울 어느 사립대 4학년 1학기를 다니고 있던 그는 이미 한 달가량 수업을 듣고 있었다. 등록금은 대출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대출이 안 된다니…. 6학기 내내 학자금 대출을 무리 없이 받은 터라 의아해하며 상담기관에 전화했다. “이자가 석 달간 연체됐습니다.”
2만5천원에서 16만원, 이자 눈덩이안씨가 그간 빌린 학자금은 모두 3062만원. 이자만 내는 거치 기간을 10년으로 정했다. 원금은 2015년부터 7년간 갚아야 한다. 1학년 1학기 때 2만5천원이던 이자는 1학년 2학기 5만원, 2학년 1학기 7만5천원 등으로 늘어갔다. 이제는 16만원이 됐다. 대출 일자가 다르기 때문에 이자가 빠져나가는 날짜도 다 다르다. 미처 신경쓰지 못해 연체된 경우도, 돈이 없어서 연체된 경우도 있었다.
결국 학자금 대출까지 거절당한 안씨는 지금 본격적인 ‘마이너스족’의 문턱에 들어섰다. ‘마이너스족’은 높은 등록금으로 입학과 동시에 대출을 받고, 좁은 취업문으로 졸업 뒤에도 대출 이자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20대를 일컫는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20대 당사자 조직 ‘희망청’은 “부모님의 든든한 뒷받침이 없는 대부분의 20대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신용불량자가 되는 마이너스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안씨처럼 학자금 대출 신청을 거절당한 학생은 2008년 1·2학기에만 2만3246명이다. 2007년만 해도 3031명이었다. 1년 만에 6.7배 늘어났다. 이들이 거절당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신용도가 낮아 대출이 거절된 경우, 학자금 대출 이자를 석 달 이상 연체해 대출이 거절된 경우 등이다. 주택금융공사는 자체 개인신용평가시스템(SCSS)을 만들어 학생들의 신용도를 10등급으로 나눈다. 그동안 10등급에 대해서만 대출을 거절하다가 올해부터 9등급 으로 대출 거절 수준을 높였다. 경제능력이 없는 것이 당연한 대학생을 상대로 신용평가를 해 등록금의 유일한 탈출구인 ‘대출’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다.
등록금을 마련하는 데 꼭 대출을 받아야 할까? 이들에겐 다른 출구는 없다. 20대 ‘마이너스족’은 대부분 ‘IMF 베이비’이기 때문이다. 안씨의 부모님은 1990년대 가방을 만드는 중소기업을 운영했다. 외환위기로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 채권 등 갚아야 하는 돈이 일거에 몰아닥쳤고 결국 회사는 문을 닫았다. 이후 부모님은 가방을 시장에 납품하는 일로 전업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재래시장 경기가 나빠져 거의 ‘노는’ 상태다. 외환위기 당시 실직자는 1998년 3월 기준 137만8천 명이다. 97년 12월에 비해 두 배가량 급증했다. 1997년 제일은행에서 은행장 운전기사 일을 하던 차민환(55)씨 역시 그해 은행이 문을 닫는 바람에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곧장 한 사립고등학교 재단 이사장의 운전기사 일을 했다. 250만원이던 월급은 90만원으로 확 줄었다. 차씨는 2002년 대학에 들어간 아들의 등록금을 대줄 수 없었다. “우리 세대가 그런 세대다. 우리의 빈곤이 아들의 빈곤을 만들었다.” 차씨의 자조다.
치솟는 등록금, 사립대 평균 738만원가구소득은 점점 줄어드는데, 등록금은 해마다 치솟았다. 2008년도 사립대학 학생 1인당 등록금은 평균 738만원이다. 지난해에 비해 6.7% 올랐다. 올해 고려대 의대 신입생 등록금이 1480만원을 기록했다. 등록금 1천만원 시대도 이제 옛말이다. 등록금이 해마다 오르는 것은 고등교육 지원 재정이 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 대학 재정의 등록금 의존율은 53.1%다. 미국 사립대학(33.96%)에 비해 20%가량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대학생 1인에 대한 국가의 교육비 지출은 미국이 2만2천달러, 독일이 1만2천달러, 영국이 1만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은 6천달러로 칠레·헝가리·체코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국가 지원은 적고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은 높다 보니 등록금은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외환위기를 겪은 아버지들은 이 등록금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결국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학자금을 대출받으면서 대학 생활부터 ‘빚’과 함께 시작하는 마이너스 인생이 된다.
해법은 학자금 대출이 될 수밖에 없다. 학자금 대출 이용자 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1998년 4만5천 명, 1999년 10만1천 명이던 학자금 대출 이용자 수는 2000년부터 21만5천 명으로 확 늘었다. 정부가 신용을 보증해주는 정부보전 학자금 대출 방식으로 바뀐 2005년부터는 이용자가 훨씬 늘어 2007년에만 61만 명이 학자금 대출을 이용했다.
그러나 학자금 대출은 마이너스족이 되는 덫이기도 하다. 대출과 동시에 이자 상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무 소득이 없는 대학생들이 3월 학기가 시작하는 달부터 이자를 내야 한다. 집에서 보조해주지 않는 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몇만원 남짓의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경준(가명·25)씨가 대표적이다. 정씨는 17일 ‘17만원이 미납됐다’고 학자금 대출 이자액 연체를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항상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던 정씨는 4학년 2학기를 맞아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 지난 1년간 휴학해서 모은 돈 중 등록금 380만원을 내고 남은 돈 80만원은 두 달 만에 다 써버렸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석 달 동안 요금을 내지 못해 발신이 정지된 휴대전화, 두 달째 내지 못한 자취방 월세다. 정씨처럼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은 채 학자금 대출을 3학기, 4학기 빌리면 결국 이자를 연체할 수밖에 없다. 대출 이자 혹은 원금을 6개월 이상 연체하면 ‘신용유의자’로 분류된다. 2008년 8월 현재 대학생 신용유의자 수는 7454명이다. 지난해는 1년 동안 3726명이었다. 6개월 동안 연체자 수가 지난 1년 동안의 연체자 수 두 배에 달한다. 신용유의자는 다른 은행 거래와 카드 이용 등이 모두 정지된다. 취업을 할 때 해당 기관에 ‘신용정보’도 넘어간다. 결국 학비를 구하려 빌린 학자금이 ‘대학생 신용불량자’를 낳는 덫이 되고 있다.
휴학하고 일해도 ‘신용불량’ 아슬아슬이들에게 열린 유일한 출구는 아르바이트다. “대학생 근로의 시대가 열린 것 같아요.” 공부만 하던 생활을 접고 다시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게임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정씨의 말이다. 정씨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1학년 때는 멋모르고 학자금 대출을 받았어요. 근데 이게 대출받은 다음날부터 2만5천원 정도씩 계속 이자를 내야 되더라고요. 2학기 때 또 대출받으니 이번엔 이자가 5만원이에요. 계속 이러면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겠다 싶어 2학년 때는 휴학을 하고 고향인 경북 구미로 내려갔어요.” 경북 구미에서 정씨는 3교대를 하는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에서 일했다. 월 70만원을 받았다. 석 달을 3교대 생활을 하고 나니 생활리듬은 깨지고 보수도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미에서 올라온 뒤 이번에는 햄버거를 만드는 노점상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생 때 안 하면 언제 해보냐는 객기도 있었어요.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정씨는 한 해는 학자금 대출로, 다음 한 해는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만들어왔다.
학교 다닐 때는 아르바이트로 버티면서 졸업 뒤 취업에 성공하면 ‘마이너스족’의 탈출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다. 20대, 특히 대졸자가 일자리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2007년 청년실업률은 6.9%다. 전체 실업률인 3.0%의 2배를 넘는다. 취업에 실패하는 비율은 4년제 대학이 가장 높다. 37.2%로 10명 중 4명이 취업에 실패한다. 전문대의 취업 실패율은 15.8%, 실업계 고등학교의 취업 실패율은 13.7%다. 그만큼 사회가 고등교육 졸업자에게 일자리를 주는 데 인색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시장 진입 연령은 25살이지만, 대학 졸업자만을 대상으로 하면 27살이다. 모두 OECD 국가 평균인 23살보다 두 살 많다.
이 때문에 현재 만연한 것은 불안정 취업이다.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는 것이다. 이자를 갚아야 하기 때문에 몇 년씩 절에 가서 고시 공부한다는 것도 배부른 소리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닌 이들은 이제 아르바이트하면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2007년 2월 졸업한 안미림(가명·25)씨는 졸업 뒤 1년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와 취업을 병행하다 지금은 아예 취업을 2년 뒤로 미뤘다. 졸업 뒤 곧바로 취업이 되지 않았지만 매달 15만원씩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아나가야 하기 때문에 마냥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생’ 노릇만 할 수는 없었다. 3일은 이태원 레스토랑에서, 3일은 보습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하지 않는 낮 시간에는 자격증시험 준비, 토익시험 준비를 했다. “두 개를 다 하다 보니 공부는커녕 몸만 힘들었어요. 정신적으로도 지치고요. 2년간 돈만 번 뒤, 공부하겠다고 결심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다만 조금 불안할 뿐이다. 이대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젊은 시절을 다 보내버리는 건 아닌지….
취업이 여의치 않아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는 선·후배들의 고군분투를 지켜보며 졸업 학기를 보내고 있는 류태형(가명·27)씨는 “우리가 껍데기 같다”고 말했다. “취업을 위해 토익 점수와 학점에 연연해야 하죠. 등록금 마련을 위해 대출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죠. 근데 정작 뭘 위해 이 모든 걸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살지 않은 나는 낙오자 같아요.” 류씨는 지난 석 달간 ‘뿌연 미래’로 불면증과 우울증을 앓았다.
졸업 앞두고 ‘뿌연 미래’에 불면·우울안창규씨는 대학생들의 이런 아우성을 다큐 영화 에 담았다. 그는 “학교 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너무 달라졌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낭만, 열정이 필요했는데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돈, 그리고 높은 등록금과 쌓여가는 대출 이자에도 좌절하지 않는 씩씩함이 절실하다.”
1997년 외환위기로 가계가 몰락한 상태에서 대학에 입학한 ‘IMF 베이비’ 마이너스족들은 높은 등록금, 학자금 대출 이자, 취업난이 겹치면서 헤어나기 힘든 마이너스의 늪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