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발행된 725호 표지이야기 ‘파시즘의 전주곡’은 나치를 겪었던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의 고백으로 끝났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 슬픈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나. 전주곡은 처절한 현실이 되었다. “MB 정권은 우선 사회주의자를 잡아갔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탈북자를 잡아갔다/ 나는 탈북자가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누리꾼을 잡아갔다… 그 다음엔….”
달력을 거꾸로. 9월2일 아고라 누리꾼 배아무개(28)씨의 집이 압수수색당했다. 앞서 8월31일 체포된 ‘권태로운 창’ 나아무개(48)씨는 이날 구속됐다. 아고라에서 유명한 이들은 불법집회를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마침내 누리꾼이 집회 참가자를 넘어서 집회 주최자로 처벌받는 ‘신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공안의 바람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몰아친다. 8월27일엔 탈북자 출신 간첩 원정화 사건이 발표됐고, 9월5일엔 원씨의 의붓아버지가 구속 기소됐다. 비록 구속영장이 기각됐지만, 공개적인 사회주의 주장을 통해 국가 변란을 도모했단 이유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활동가 7명이 8월26일 체포됐다. 이렇게 탈북자, 활동가, 누리꾼 누구도 ‘걸면 걸리는’ 시절로 돌아갔다.
그런데 누구도 여기가 끝이라 생각지 않는다. 우선 누리꾼 혹은 촛불들. 나씨 구속을 계기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한겨레21인권위원)는 “배씨에 앞서 누리꾼 중에 이미 압수수색을 당한 사람이 있고 촛불 관련 카페 운영자들에게 정보과 경찰들이 경고성 메일을 보냈다는 증언도 나온다”고 전했다. 그는 또 “촛불집회에 계속 참가하면 처벌하겠단 얘기는 국가보안법상 예비음모죄를 집시법 등에도 적용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9월3일 현재 촛불집회와 관련해 33명이 구속돼 있고, 수배자도 30여 명에 이른다.
“잠재적 석방자”, 9월3일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만난 사노련 운영위원장 오세철 교수는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일단 영장이 기각됐지만, 언제 영장이 재청구돼 구속될지 모른다는 뜻이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한겨레21인권위원)는 “공안당국이 제2의 일심회 사건을 기획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대북 접촉을 했던 통일단체까지 수사를 확대한다는 소리가 들린다”고 우려했다. 사노련 수사 중에 조직사건 6~7건을 준비 중이란 말도 흘러나왔다.
그리하여 공안당국이 간첩이 암약하고 운동가가 포섭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사회운동 진영에선 기성 정치권에 진출한 386세대, 진보정당 당원, 심지어 종교계까지 아우르는 사건이 터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이미 통일운동 관련 활동가에게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다가 집행이 미뤄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수사망이 좁혀오는 단체의 이름도 거명된다. 오는 12월1일이면 제정 60주년, 환갑을 맞는 국보법이 이렇게 회춘했다. 국보법의 회춘은 언제나 한반도의 겨울을 불렀다. 때이른 겨울 공화국에 간첩의 악몽이 살아났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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