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복장 단속해 토요일마다 단체기합, 휴대전화 색출하려 아이들 몸 뒤지는 선생님… 체벌과 욕설에 짓눌린 학생 인권
▣ 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인권 OTL-30개의 시선③]
지난 4월19일 오전 10시40분께 경기 일산 ㄷ고 교정. 체육복과 운동화 차림의 학생 300여 명이 운동장에 집합했다. “자, ‘토봉’하는 학생들. 빨리빨리 모여. 지각해서 걸린 놈들이 또 지각이냐. 저기 걸어나오는 학생들. 지금 걸어? 빨리 뛰어.” 마치 군대 유격 조교처럼 빨간 티셔츠를 입고 야구모자를 눌러 쓴 이아무개 교사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토봉’이란 ‘토요 봉사활동’의 줄임말로, 주중에 이름표나 실내화 따위를 안 가져와 걸리거나 두발 단속에 적발된 학생들, 돌아다니며 밥을 먹다 걸린 학생들을 불러모아 2주에 한 번씩 실시하는 사실상의 단체기합이다.
오리걸음 뒤에 엎드려뻗친 채 몽둥이로…
걸린 횟수에 따라 분류된 학생들이 곧 오리걸음으로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다. 운동장에 뿌연 흙먼지가 일었다. 교사 4명이 군데군데 흩어져서 아이들이 제대로 걷는지를 감시했다. 오리걸음을 하다 쉬거나 바닥에 앉거나 일어서는 학생들을 잡아서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렸다. 4번 이상 걸린 학생들 무리가 농구대 근처에 도착하자 이 교사는 엎드려뻗쳐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해 시켰다. 엎드려뻗쳐를 하다가 무릎이 흙바닥에 닿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야 4회 이상 너네 다섯 명 놀고 있어? 체육복 봐라. 흙이 묻어가지고. 당장 이리로 올라와. 전원 교단 위로 전력질주.” 그렇게 뛰어온 학생들은 엎드려뻗친 상태에서 “어떻게 4번 이상 걸려?”라는 타박을 들으며 엉덩이를 맞았다. 한 시간여 동안 기합을 받던 학생들은 “교칙 준수!”를 외치며 앉았다 일어서기를 10번 하는 것을 끝으로 토봉을 마쳤다.
땀을 뻘뻘 흘리며 토봉을 끝낸 박아무개군은 “이건 완전 미친 짓”이라며 숨을 골랐다. ㅇ양은 “걸리면 벌점을 매기면서, 오리걸음까지 시키는 건 이중 처벌 아니냐”며 “제발 우리 이야기를 기사로 좀 써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다른 ㅇ양은 “3학년인데, 토요일마다 이렇게 1시간씩 돌고 나면 그날 오후 2~3시까지는 공부도 제대로 못하겠어요. 너무 비인간적이에요. 살다 보면 한 번쯤 교복 넥타이를 안 가져올 수도 있고, 명찰을 안 가져올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게 무슨 죽을 죄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요”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토봉 장면을 운동장 위 계단에서 지켜보던 김아무개양은 “저는 ‘챕스틱’ 발랐다고 걸린 적도 있어요. 그냥 보습으로 발라주는 건데…. 암튼 별걸 다 잡아요. 선생님들 맘 내키는 대로. 또 어떨 땐 아무리 발라도 안 잡혀요”라고 말했다. 이날 ㄷ고 운동장은 마치 통나무 들기만 뺀 삼청교육대를 보는 듯했다.
학생들의 일상 구석구석까지 감시와 통제가 작동하는 이 학교에선 급기야 금속탐지기까지 등장했다. 최근 일선 학교에선 교사와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곤 하는데, 1교시 수업 시작 전에 일괄적으로 걷어 저녁에 돌려주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제출하지 않다 나중에 적발되면 압수당하기 일쑤다.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고 몸에 감추고 있을까봐 금속탐지기를 동원하기에 이른 것이다. ㄷ고 1학년 박성화(가명)군은 “얼마 전 우리 옆반에서는 휴대전화를 제출했는지 검사하려고 선생님이 금속탐지기를 들고 와 공항 검색대에서 몸을 훑듯이 검색을 한 적이 있다”며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휴대전화 압수에 적응이 돼서인지 모욕감이나 불쾌감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고들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학급 담임 교사는 “금속탐지기를 들고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들 몸에 직접 대고 검색하지는 않았다”며 “그즈음 휴대전화를 자발적으로 제출하는 학생 수가 줄어 교사와 학생 간 불신이 커지는 것 같아 이를 막기 위해 농담처럼 한 일”이라고 말했다.
‘압수’에 적응돼 공항 검색대 지나듯
이 학교에서 금속탐지기는 도난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사용된 적이 있다. 2학년 한 학급의 경우 이번 학기 초에 학생들의 MP3와 전자사전 등이 잇달아 없어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학생부 교사가 금속탐지기를 가져와 학생들 몸을 검사했다고 한다. 이 학급 소속 한 학생의 말이다.
“학생들을 다 일어나게 하고 가방을 검사한 뒤 선생님이 와서 손으로 몸을 만져보면서 검사했어요. 그러고는 금속탐지기를 들고 와서 대보더군요. 결국엔 못 찾았어요. 학생 입장에서는 금속탐지기를 봤다는 게 좀 그래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싶어요.”
따뜻한 온정이 오가야 할 교사와 학생 사이에 차가운 금속탐지기가 끼어들면서 학생들은 상처를 받았다.
두발과 복장 규제 등으로 학생들의 자유를 억누르거나 적발된 학생들을 지나친 폭력으로 다스리는 일은 ㄷ고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남의 한 평준화 지역 고교 2학년인 박성인(가명)군은 지난해 11월 자퇴서를 썼다. 부모님은 “네가 알아서 하라”며 도장까지 찍어줬다. 하지만 성인이와 상담하던 교장 선생님이 “다음에 보자”며 유야무야하는 동안 부모님이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학교 탈출’은 실패했다. 성인이가 학교를 그만두려는 이유는 강제로 실시되는 야간자율학습을 비롯해 두발과 복장 등을 단속하는 학교의 억압적 현실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입학과 동시에 학교는 이른바 ‘반삭’(반 삭발을 일컫는 은어)을 요구했다. 머리카락 길이가 아무리 길어도 2㎝를 넘지 말라고 했다. “내 머리 모양을 어떻게 할지는 내가 가진 고유의 권리가 아닌가”라고 생각해 머리를 자르지 않고 담임 선생님에게 자퇴 의사를 밝혔다. 선생님의 설득으로 자퇴를 포기하고 일단 기준대로 머리를 잘라보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반삭 요구를 따르긴 싫었다.
성인이의 현재 머리카락 길이는 4㎝. 학기 초에는 다른 친구들이 보는 가운데 교실 옆 복도에서 새 담임 선생님에게 맞았다. 두발과 관련한 학교 규정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선생님이 매로 애용하는 단소로 수십대 맞았는데, 정확히 몇 대인지는 기억할 수 없다. 성인이는 “지금 담임은 뻑하면 손발로 때리는데, 뺨을 때리거나 하체를 발로 마구 차기도 한다”며 “그러고 나서는 조용히 불러서 미안하다고 그런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들어서는 일부 담임 교사들이 가위를 들고 다니며 학생들의 구레나룻을 현장에서 잘랐다고 한다. 성인이는 “선생님들이 학생을 자기 밑의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며 “언제 학교를 그만둘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1인시위 했더니 피켓 던지며 “지랄싸네”
물리적 폭력만 학생들을 괴롭히는 건 아니다. 교사들이 툭하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거나 “악법도 법이다”라며 인권침해적이고 폭력적인 말을 하고, 일부 교사는 ‘××새끼’ ‘병신’ 등의 욕지거리도 예사로 던진다고 학생들은 푸념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뜯어고치려고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도 있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이다. 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는 학생들의 것이 아니다. 서울 중앙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이하람군은 지난 4월26일 학교 교문 앞에서 두발 자유를 요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던 중 한 교사에게 피켓을 빼앗겼다. “두발 규제는 다수결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다. 즉각 폐지하라”고 적힌 이군의 피켓은 구겨지고 내동댕이쳐졌다. 이군은 “선생님께 잘못된 것은 바꾸겠다는 얘기를 했더니 ‘지랄싸네’라는 대답이 돌아오더라”라고 말했다.
광우병 집회에 중·고교생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에 뜨끔한 어른들은 또 이를 막기 위해 나섰다. 시도 교육감 회의가 소집되는가 하면, 학생부 교사들은 학생들의 촛불집회 참석을 막기 위해 일과 뒤 서울 여의도와 청계천으로 투입되고 있다. 또 경찰은 ‘문자괴담’의 진원지를 찾겠다며 경기 성남 수내고 등 일부 고등학생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까지 했다.
지난 2003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 과정과 학교 안팎에서의 정치활동에서 아동·청소년의 능동적인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법률, 교육부 지침 및 학교 교칙을 개정하고 모든 아동이 결사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충분히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아직 한국의 학교 현장에서 이런 품위 있는 권고는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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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입고 하교하는 남학생들은 모두 장발족이다. 뒷머리가 여느 고등학교 남학생 앞머리만큼 길다. 여학생들의 머리 모양도 제각각인데, 살짝 파마를 하거나 가볍게 염색을 한 친구들도 눈에 띈다. 교복을 입긴 했는데, 여학생의 치마와 남학생의 겉옷만 같다. 안에 받쳐 입은 옷은 모두 다르다. 보통 어른의 눈으로 봤을 때 “얘네들 학생 맞아?”라는 물음이 터져나올 법하다.
최근 서울시내 특성화고교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받는 선린인터넷고등학교의 교문 앞 표정이다. 이 학교는 지난 2004년부터 두발 및 복장 규제를 완화한 데 이어 2년 뒤에는 두발 규제를 아예 폐지했다. 학생과 교사의 요구도 있었고, “자율을 누리되 그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자”는 천광호 당시 교장의 결단도 한몫을 했다는 게 학교 쪽 설명이다. 교칙도 “두발은 자율로 하되, 단정하게”다. 파마나 염색은 금한다고 하고 있지만, 교문 앞에서 본 대로, 실제로는 세게 단속하지 않는다. 채한조 학생부장은 “새학기 들어 5월 초까지 두발 단속에 걸린 학생은 머리를 온통 진한 갈색으로 물들인 여학생 1명뿐이고 복장 단속에 걸린 학생도 교복 대신 체육복을 입거나 슬리퍼를 신고 등교한 학생 대여섯 명뿐”이라고 설명했다.
단속에 걸리더라도 다른 학교처럼 가위나 몽둥이를 들이대는 일은 결코 없다. 조용히 불러서 타이르는 방식으로 ‘해결된다’. 학생들은 이 학교에 체벌용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교사는 없다고 말했다. 2학년 임원빈군은 “처음 학교에 왔을 때는 학생들 머리가 길어 전부 양아치들인 줄 알고 무서웠는데, 알고 보니 머리 길이로 사람 판단하면 안 되겠더라”라며 웃었다.
그럼, 이 학교 학생들은 머리도 길고 옷에 신경쓰느라 공부를 못할까? 결코 아니다. 올해 2월 졸업생 가운데 15명이 미국 주립대에 진학했고, 2명은 일본 대학에 입학했다.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59.8%에 이른다. 전국 실업계 고등학교 가운데 단연 최고 수준이다. 황호규 교장은 “자신의 용모 등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자율을 강조하면서 거기에 따른 문제는 자신이 책임지라고 가르치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생활지도가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내신성적 15% 안에 드는 학생들이 입학하고 입학 경쟁률도 3.5 대 1에 이른다는 게 학교 쪽 설명이다. 지난해 9월 부임한 황 교장은 “처음 왔을 땐 학생들의 머리와 복장을 보고 꽤 당황스러웠다”며 “지금은 애들이 예뻐 보인다”고 했다.
학생들은 처음 입학해서는 대개 호기심에 머리를 길게 길러보고 머리에 신경도 많이 쓰지만 대개 한 학기를 못 넘긴다고 했다. 머리 모양 등에 대한 흥미가 금방 사라진다는 것이다. 임군은 “두발 단속을 당할 때 훨씬 더 머리에 신경이 많이 쓰였던 것 같다”고 했다. 억누를수록 튀어오르려 하고, 놓아두면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이들은 경험으로 깨닫고 있었다. 2학년 배진희양은 “머리를 한번 길러보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것도 좋은 것 같다”고 추천했다.
선린인터넷고의 사례는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나 열심히 하고, 대학 가서 자유를 실컷 누리면 되지 않느냐”는 학생 인권 탄압 논리를 뒤집는 유쾌한 반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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