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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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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OTL] MB정부, 대체복무제로 반기문 발등 찍다

등록 2008-07-15 00:00 수정 2020-05-03 04:25

올해 말까지 도입하겠다던 국방부, 국제 사회에 한 약속까지 뒤엎고 대체복무제 입법 나몰라라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인권OTL-30개의 시선 ⑫]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는 것일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허용을 둘러싼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국방부는 지난해 9월 ‘병역이행 관련 소수자의 사회복무제 편입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종교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비록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병의 2배로 국제인권 기준보다 길었지만, 2000년 병역거부권이 공론화된 이후 병역거부자들이 마침내 감옥에서 벗어날 길이 열렸던 것이다. 국방부는 2008년 말까지 관련 병역법 개정을 마치고 2009년 초에 시행한다는 일정도 밝힌 바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나온 이 방안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부정된 적이 없었다. 최정민 병역거부 연대회의 공동대표는 “국방부 실무자들을 통해서 정권이 바뀐 뒤에도 실무 작업이 진행 중이란 얘기를 듣고 안도했었다”고 말했다.

2008년 5월 제네바 ‘거짓말’편

믿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7월4일치 보도에 바탕하면, 정부 관계자는 “국방부가 지난해 9월 대체복무 허용 방침을 발표했을 때도 사실상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국민 여론이 수렴되지 않으면 대체복무 자체를 시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기사의 제목처럼 ‘대체복무 원점서 재검토’라는 요지다. 기사가 사실이라면, 국방부 시계는 민간이 모르는 사이에 지난해 9월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5월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의 국가별 보편적 정례검토(UPR·Universal Periodic Review)에서 한국 정부 대표가 질문을 받았다. 슬로베니아 대표의 병역거부권 관련 질문에 이성주 국방부 인권팀장은 “한국 정부는 지난해 9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며 “이것을 시행하기 위해서 병역법을 개정해야 하고 한국 정부는 올해 국회에 개정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홍영일 ‘양심적 병역거부 수형자 가족모임’ 대표는 “유엔에서 한 답변은 새 정부 들어 나온 최초의 정부 공식 입장이었다”며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답변에 희망을 가졌다”고 말했다. UPR는 유엔 인권위원회가 인권이사회로 위상이 강화되면서 도입한 새로운 국가별 인권 점검 시스템으로, 192개 유엔 회원국의 전반적 인권 상황을 4년에 한 번씩 점검한다.

희망의 근거는 며칠 사이에 희미해졌다. 보편적 정례검토 뒤 5월30일 유엔 인권이사회 쪽의 권고가 나왔는데, 특히 영국 대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군복무가 아닌 대체복무를 수행하도록 즉시 조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답변에서 갑자기 ‘알맹이’가 사라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도에 관한 연구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고만 답했다. 병역법 개정 계획 등을 언급했던 당초의 답변에서 후퇴해, 실체가 빠진 형식적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5월7일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 이후에 무언가 기류의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다.

2008년 7월 서울 ‘자가당착’편

7월4일 보도가 나오고 7월7일 병역거부 연대회의는 기자회견을 열어 대체복무제 원점 재검토 논란을 우려하며 예정대로 입법할 것을 촉구했다. 국방부가 정부 정책의 연속성과 국제사회의 압력을 고려해 입법 계획을 뒤집지 않을 것이란 기대도 있지만, 한편에선 “유엔에서 작성한 문서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입장을 바꿨다”고 비판한다. 은 대체복무제 시행 여부 재확인을 위해 국방부에 질의서를 보냈다. 국방부는 “지난해 9월 대국민 발표시와 같이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대체복무 여부를 검토한다는 국방부 입장에는 변화가 없음”이라고 기존 답변을 반복했다.

앞으로 병무청은 ‘국민적 합의’를 이유로 외부 기관에 6개월 기간의 연구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그 연구 결과를 기초로 국회, 관련 기관 및 단체 등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해 국민적 합의가 이뤄질 경우 도입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라고 답변서에서 밝혔다. 하지만 이미 7월에 들어선 이상 6개월짜리 연구용역 결과가 올해 안에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국방부가 밝힌 일정에 바탕해도 지난해 9월 발표 당시의 계획인 ‘내년 초 대체복무제 시행’은 어렵다는 말이다. 이런 일정상의 충돌에 대해 다시 물었지만, 국방부는 구체적인 답변 없이 “지난해 9월 발표와 입장이 같다”는 말만 반복했다.

연구용역을 병역거부에 대해 비판적인 단체에 의뢰해 대체복무제 도입에 반대할 근거를 만들 것이란 우려도 높다. 국방부는 이미 지난해 9월 한국방송 여론조사 결과 찬성 여론이 과반수(50.2%)였음을 대체복무제 도입의 근거로 든 바 있다.

방한한 반기문과 무이코의 걱정

외부에 내놓는 답변과 달리 국방부 내부 기류는 상당히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체복무제 도입 과정이) 내부적 중단 상태”라고 말했다. 특히 이상희 국방부 장관 취임 이후에 기류가 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유엔에 보고한 다음인 6월에 국방부 내부 입장이 달라졌다”며 “유엔 보고 이후에는 외교통상부, 법무부 등 관련 기관에서 후속 조처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대체복무제 도입 보류 입장을 더 이상 미루기가 곤란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점 재검토 기사가 나온 시점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고국을 방문한 기간에 유엔의 권고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권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반 총장은 7월6일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한국 정부가 UPR에서 제기된 권고안을 모범적으로 실행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UPR 권고안에는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이 포함돼 있다.

촛불집회 인권침해 조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노마 강 무이코 국제앰네스티 조사관도 한국지부를 통해 입장을 전했다. “한국은 지난 UPR과 유엔 인권이사국 선거 당시에도 대체복무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대체복무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고 입장을 번복한다면 굉장히 실망스러운 소식이 될 것이다.” 이렇게 전세계 병역거부 수감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의 병역거부 현실은 벌써 국제 인권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병역거부자 500명이 유엔 인권이사회의 개인통보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개인통보란 유엔이 한 나라의 보편적 정책이 아닌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 인권침해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인권침해에 대한 유엔의 대표적 조처다. 한국은 병역거부자 윤여범·최명진씨를 포함해 지금까지 9명이 인권침해에 대한 개인통보 결정을 받았다. 윤씨와 최씨의 사례에 비춰 500명에 대해서도 개인통보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만약 500명에 대한 개인통보 결정이 ‘무더기’로 나온다면 유엔 인권이사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이 크게 추락하게 된다.

사법부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비록 현행 병역법의 위헌 논란에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합헌 의견을 냈지만, 대체복무제 입법이 무산된다면 또다시 위헌법률 심판제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있다.

한나라당을 제외한 정치권도 한목소리로 대체복무 재검토를 비판했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7월5일 “대체복무는 세계적인 흐름으로 어떤 이유로든 총을 들고 군복무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에 준하는 방법으로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줘야 한다”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국방부가 논의조차 않고 재검토를 얘기하는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입법 안 되면 올해만 900여 수감자 양산

만약 대체복무제 입법이 무산된다면 올해만 900여 명의 병역거부 수감자가 양산될 것으로 보인다. 수감자는 2002년 826명, 2003년 565명, 2004년 756명, 2005년 831명, 2006년 783명, 2007년 571명 등이다.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발표 뒤에 상당수 병역거부자들은 입영을 연기했다. 재판부도 병역거부자 처벌을 피하기 위해 46명에 대한 재판을 연기해둔 상태다. 대체복무가 도돌이표될 경우, 지난해 줄어든 병역거부자 150~200여 명에 한 해 평균인 700~800명을 더하면 올해엔 최소한 900명 이상이 수감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병역거부 수감자는 442명. 이렇게 대체복무제 도입 여부에 수백 명 젊은이의 내일도, 오늘도 달렸다. 국방부가 재검토 논란에 대해 명확한 공식 입장을 밝히는 것은 국가기관의 최소한의 기능이자 국민에 대한 도리다.

[인권 OTL-30개의 시선]

① 쓰린 새벽의 아이들

② 아이들의 끔찍한 SOS

③ 시퍼런 가위와 금속탐지기, 무서운 학교

④ 내가 10대 레즈비언이다, 어쩔래?

⑤ 인간답게 죽고싶다

⑥“난 네가 병원에서 한 일을 알고있다”

⑦ 장애인에게 ‘퇴소 협박’하는 복지시설?

⑧ 전·의경은 ‘현대판 노예’인가

⑨ 국가유공자 가족 몰살 사건

⑩ 교도소 밖, 갈 곳이 없다

⑪ 지옥철과 만원버스, 깨지 않는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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