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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도 최후도 아닌 라이카

등록 2026-08-06 21:42 수정 2026-08-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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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제주에서 벌어진 잔인한 살육의 흔적을 찾아 떠돌다가 너희를 만났지. 땅거미 내리던 어두운 저녁이었어.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르기엔, 멍멍이의 귀여움이 너무 선명해 웃고 말았지.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1947년 제주 학살이, 1957년 떠돌이 개들의 희생이, 2017년 너희와의 만남이, 닿을 듯 닿지 않는 비슷한 발음의 숫자로 머릿속을 헤맨다. 2017년 제주 조천읍 북촌리.

1947년 제주에서 벌어진 잔인한 살육의 흔적을 찾아 떠돌다가 너희를 만났지. 땅거미 내리던 어두운 저녁이었어.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르기엔, 멍멍이의 귀여움이 너무 선명해 웃고 말았지.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1947년 제주 학살이, 1957년 떠돌이 개들의 희생이, 2017년 너희와의 만남이, 닿을 듯 닿지 않는 비슷한 발음의 숫자로 머릿속을 헤맨다. 2017년 제주 조천읍 북촌리.


 

사진쟁이에게 ‘라이카’는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광학회사 ‘라이츠’에서 만든 ‘카메라’. 그 앞글자를 따온 이름 라이카는 기계의 견고함과 뛰어난 렌즈 해상력, 소형화가 주는 기동성으로 사진 역사의 새 시대를 열었다.

또 다른 역사의 문을 연 라이카도 있다. 러시아어 라이카(лайка)는 ‘짖는 녀석’을 뜻한다. ‘짖다’는 뜻의 동사 라야티(лаять)에서 비롯됐다. 아주 딱 맞는 우리말이 있으니, 바로 멍멍이다.

먹이와 잠자리를 찾아 모스크바 뒷골목을 떠돌던 우리의 멍멍이들이 낯선 과학자들의 꼬임에 빠져 납치되듯 비밀연구소로 끌려간 것은 바야흐로 볼셰비키혁명 40주년을 앞둔 1957년 무렵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라는 경쟁과 충돌의 소용돌이를 통과하며 미국과 소련의 대결의식이 미쳤다 싶을 만큼 팽팽하던 때다. 두 나라는 지구를 결딴낼 수도 있는 핵폭탄을 쥐고 있었고, 그것을 머나먼 서로의 나라까지 쏘아 나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도 가지고 있었다. 누가 먼저 쏘든 그것은 모두의 파멸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알았기에 각자는 힘을 과시하면서도 공포에 떨었다.

우주 경쟁은 서로를 향해 겨누었던 응축된 에너지가 살짝 방향을 바꾸면서 불붙었다. 1957년 미국이 최초의 인공위성 프로젝트를 선포했지만, 먼저 성공한 건 소련이었다. 그해 10월,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라 부를 만한 충격에 빠졌다. 비웃기라도 하듯 소련은 한 달 뒤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했다. 인공위성 캡슐에 실린 건 생명체였다. 모스크바 뒷골목을 떠돌던 멍멍이, 라이카는 사람을 우주로 보내도 괜찮은지 알아보기 위한 선발대였다. 로켓의 진동과 지구 바깥의 저중력, 산소 부족과 우주방사선, 장시간의 격리캡슐 생활을 견딜 수 있는지 실험하기 위해 선택된 인간 유사체였다. 집에서 기르는 개보다 스트레스 상황에 더 잘 견딜 거라 여겨진 작은 몸집의 떠돌이 암캐. 라이카는 특수복을 입고 고정벨트에 묶인 채 우주선에 태워졌다. 몸을 돌릴 수는 없었지만, 작고 동그란 창을 통해 멀어져 가는 푸른 지구를 내다볼 수 있었다.

로켓이 발사되자 심박수가 분당 260회로 치솟았다. 평소의 3배였다. 호흡수도 5배에 달했다. 하지만 멍멍이는 살아서 대기권을 벗어났다. 대성공이었다. 한 시간 뒤 소련은 전세계에 소식을 알렸다. 우주선은 103분마다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속력으로 날았고, 피할 수 없는 직사광선 탓에 내부온도가 40도를 웃돌았지만, 식힐 방법이 없었다. 사는 게 기적일 때, 죽음은 당연한 일이 된다. 라이카의 생명신호는 사라졌다. ‘인간의 기준’에선 여전히 성공이었으므로 당국은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몇 달 뒤 궤도비행이 끝나자 우주선은 대기권에 재진입하며 타올라 먼지로 사라졌다. 라이카는 인민의 영웅이 되어 우표와 동상, 담뱃갑과 선전포스터 속으로 죽은 채 살아 돌아왔다. 우주 프로그램이 죽인 최초의 개가 아니었다. 최후의 개도 아니었다.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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