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1088일, 단식 66일째를 맞은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과 이틀간 단식농성을 함께하다
▣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인권 OTL 30개의 시선 17]
교섭은 또다시 중단됐다. 이 기사의 제목이 ‘기륭의 마지막 투쟁 3일간의 기록’이 되길 기대했지만 기어이 기륭 투쟁은 달력을 계속 넘기게 됐다. 8월14일, 변호사들이 참석하는 실무협상까지 갔던 교섭이 저녁 7시께 깨졌다. 전날까지만 해도 양쪽 모두 “끝장을 보겠다”며 새벽까지 교섭에 임했던 터다. 교섭이 열린 서울지방노동청 관악지청의 휴게실에서 협상 타결 소식을 기다리던 이들은 엉엉 울었다. 2008년 8월15일 광복 63주년, 이 시각에도 단식 66일을 넘긴 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생명은 꺼져가고 있다.
취재진은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1085일째 투쟁을 하고 있던 8월12일부터 3일간 그들을 만났다. 김소연(39) 기륭전자 분회장과 유흥희(39) 조합원의 63일째 단식부터 이틀간 기자도 동조단식에 참가했다. 1천 일이 넘는 투쟁, 두 달이 넘는 단식은 숫자가 크다 보니 실감도 안 났다. ‘입에 음식을 넣지 않는다’는 의미에 무지한 한 명의 여성노동자로서 ‘단식 60여 일’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굶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소금·효소 끊었는데 교섭은 또 중단
8월13일 오후 3시 현재 서울 기온 30.1도. 서울 가산동 기륭전자 정문 왼쪽에 위치한 컨테이너의 내부 온도는 32도였다. 컨테이너는 기륭전자 노조의 거처다. 그나마 컨테이너 안은 낫다. 컨테이너 옆에 놓인 사다리를 타고 기륭전자 경비실 지붕 위로 올라서면 김소연·유흥희 두 여성노동자가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천막이 있다. 천막은 뜨거운 햇볕에, 내리치는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천막 옆쪽에는 ‘근조’라 쓰인 시커먼 관이 놓여 있다. 단식 50일째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관이다. 관은 온몸으로 죽음을 암시했다. 8월12일, 단식 63일째에 죽음의 각오는 더 짙어졌다. 두 단식자는 기륭전자 정문 앞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이 한창이던 오전 11시, ‘아래 세상’으로 편지를 내려보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소금도 효소도 끊고 응급조치와 병원 후송도 거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김소연 분회장은 편지에서 “현재 제가 더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밤새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단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한국여성단체연합 박영미 공동대표가 천막을 찾았다. 소금과 효소를 끊겠다는 사람 앞에서 할 말을 찾지 못하던 박 대표는 결국 김소연·유흥희씨를 껴안고 울었다. 그 서늘한 얼굴과 몸뚱아리를 바라보니 동조단식은 자연스러워졌다. 평소 한 끼도 못 굶던 기자는 이틀 동안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내리쬐던 땡볕이 물러가고 억수같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문 오른쪽에 마련된, 동조단식에 나선 이들의 천막도 비를 맞았다. 민주노동당 지방의원단이 단식에 동참했고 네티즌들의 ‘릴레이 동조 일일단식’도 일주일 만에 100명을 채워가고 있었다. 밤이면 촛불들도 가산동 골짜기로 모여들었다.
조합원들에게 ‘처음’을 얘기해달라는 요구는 쉽지 않았다. “우리는 다들 단식 후유증으로 기억이 깜박깜박한다. 기자 양반도 조심하라”는 농담도 나왔다. 위성 라디오와 내비게이션 등을 생산하는 기륭전자(주)의 비정규직 문제는 2005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회사 300여 명의 생산직 노동자 중 비정규직은 290명. 대부분이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월 64만1850원을 받고 일했고, 야근을 밥 먹듯 해도 월 100만원이 채 못 됐다.
저임금보다 괴로운 것은 고용 불안이었다. “퇴근해서 집에 가는데 문자로 왔더라고요,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고.” 오석순(43)씨가 어렵게 기억을 꺼냈다. 그가 생활정보지에서 ‘내비게이션 생산업체인 기륭전자 직원 모집’ 공고를 본 것이 2005년 2월이었다. 이력서 내러 ‘휴먼닷컴’이란 파견업체에 찾아갔더니 그날 온 사람 20~30명 정도를 봉고차에 태워서 기륭전자 2층에 데려가더란다. 이력서는 기륭전자 생산부장에게 넘어갔고 봉고차는 가버렸다. 생산과장, 생산라인 반장의 면접을 거쳐 거의 다 붙었다. 면접 질문은 “잔업, 특근 할 수 있냐”였다.
“휴먼닷컴에서 그랬어요, LG전자는 3개월짜린데 월급이 더 많고 기륭전자는 월급이 적은 대신 나중에 계약직 됐다가 정규직이 될 수 있어서 오래 다닐 수 있다고.”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어서 그는 기륭을 택했다. 꿈은 날아갔다. 2005년 2월14일에 입사를 하고 4월30일에 해고 문자를 받았다. 무작정 계속 출근을 하자, 휴먼닷컴 사람이 와서 다시 내민 해고 사유는 ‘잡담’이었다.
결국 200여 명이 2005년 7월5일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회사는 7월31일부터 ‘계약 해지’란 이름으로 대량 해고에 나섰다. 직원들이 해고 조합원의 정규직 고용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에 돌입하자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이후 회사는 2006년 3월, 2007년 9월, 2008년 3월 세 차례나 경영권을 이전했다. 회사는 노조원들을 상대로 54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냈다. 교섭은 중단과 재개만 반복했고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던 직원들은 삼보일배 투쟁과 서울시청 앞 시설물 고공농성 등을 거쳐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지난 6월10일, 조합원들이 단식을 시작했고 줄줄이 쓰러졌다. 5일 만에 이미영이 피를 토했고, 강화숙이 병원에 후송됐다. 6월22일에 이인섭, 25일에 최은미가 병원으로 향했다. 단식 30일째에 조합원들이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를 찾아갔고 그가 중재에 나섰지만 결국 회사 쪽과 한나라당만 합의한 안이 만들어지는 것에 그쳤다.
‘기륭’이 책임지는 고용이 쟁점
단식에 쓰러져본 이들은 누구보다 두 단식자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었다. 윤종희(39) 조합원은 교섭장에서 “단식자들에게 강제로라도 응급조치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조언하는 사람들을 향해 “내 몸 같은 사람들이 다칠까봐 미치도록 걱정되지만 지금까지 싸워온 뜻을 지키는 것이 그들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옆에 앉은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을 안고 엉엉 울었다. 열흘간의 동조단식으로 쓰러질 듯 교섭에 임하던 이정희 의원도 같이 울었다.
회사 쪽은 현재 ‘국내 생산라인이 없으니까 정규직으로 들어올 수 없다. 기륭의 자회사를 만들어줄 순 없지만, 하나의 회사를 만들어주고 중국 생산라인의 물량을 빼서 1년간 공장을 돌릴 수 있도록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노조는 ‘본사 정규직화’ 요구에서 한발 물러섰지만, 기륭의 자회사를 만들어 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회사 쪽이 만들어 준다는 회사의 책임이라도 명확히 해주길 바라고 있다. ‘기륭’의 책임 하에 고용되느냐가 교섭의 쟁점인 것이다. 책임을 원하는 노동자와 책임을 피하려는 회사의 접점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성 비정규직 투쟁’을 대표한다. 2008년 3월 현재 우리나라 여성 임금노동자 3명 중 2명이 비정규직이고 그 수는 416만 명에 달한다(한국노동사회연구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 부가조사). 남성은 저연령층(20대 초반 이하)과 고령층(50대 후반 이상)에서만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지만 여성은 20대 후반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비정규직이 많다. 2008년 3월 기준으로 남성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을 100이라 할 때 여성 비정규직은 40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할 법이나 제도는 없다. 회사가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도 기륭전자와 같이 생산라인을 완전도급으로 돌리고 벌금을 물면 그만이다. 파견 기간이 2년을 넘지 않으면 직접 고용의 의무가 없으니, 계약근로가 만료된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법대로’ 나가줘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길어지고 그 방식 또한 극단적으로 내리닫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장기 투쟁’ 현장은 이외에도 많다. 코스콤 비정규지부는 300일 넘게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고 KTX 승무원들도 농성 800일을 넘겼다. 이랜드·뉴코아노조의 파업도 벌써 400여 일째다. 노동건강연대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지난 8월5일 “오랜 농성·파업에 따른 이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고 발표했다.
“사람답게 일하려고 목숨 걸어야 하나”
8월13일 기륭전자 투쟁 현장을 찾은 진보신당 심상정 대표는 “8·15 특별사면으로 죄질이 나쁘고 구속된 지 얼마 안 된 재벌 총수들까지 풀어주면서 기륭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냐”며 “사람답게 일하고 싶다는 데 여성노동자들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현실은 이미 노사관계 문제가 아닌 우리 시대 인권 문제”라고 말했다.
기륭전자 투쟁 1088일의 밤도 저물어간다. 허전한 배로 컨테이너를 나섰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출근길에 우유를 사먹었을 구멍가게를 지나 퇴근길 술 한잔 기울였을 해장국집을 지났다. “폐에 물이 찼다”는 의사의 경고까지 듣고 있는 단식자들이 사다리를 내려와 사람답게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올까.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지금도 온몸을 던져가며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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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비쩍 마른 몸 위로 흰 옷이 서걱거렸다. 찜통더위와 어울리지 않게 둘의 모습은 서늘했다. 60일 넘는 단식을 하고 있는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과 유흥희 조합원을 8월12~13일 이틀간 인터뷰했다.
몸 상태는 어떤가.
유흥희 지율 스님이 80~90일 단식한 상태와 같다던데. 나는 지난주부터 저혈당 쇼크가 올 수 있다는 경고를 받은 상태다. 단식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아프고 메스꺼워지면 끝이라는데 교섭, 기자회견 등까지 신경써야 하는 김소연 분회장의 상태가 걱정이다.
김소연 머리가 아파서 누워 있었다. 심장이 조여오는 현상이 계속된다. 배고픔은 없다. 30~40일까지는 냄새를 맡으면 먹고 싶고, 아 이거 무슨 냄새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아무 느낌이 없다.
교섭이 고비인 것 같다.
유흥희 지난주에도, 지지난주에도 “이번주가 고비일 것 같다”고 했다. 회사 쪽의 결단이 있어야 하는 거라….
8월12일에 이정희 의원과 조합원들이 2시간 동안 회의를 하고 내려와서는 다들 울더라.
김소연 날 걱정해서 그런다. 내가 결단을 내려서 다들 심각했다. 각오를 했다. 단식이 끝나면서 농성도 끝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소금, 효소, 응급처치를 거부할 것이다.
문제가 왜 풀리지 않나.
김소연 비정규직이 법으로 보호가 안 되는 걸 아니까 회사 쪽은 늘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법대로 하자’는 얘기만 한다. 지난 3월에 사장이 바뀌었을 때도 마치 무릎 꿇고 사죄라도 할 것처럼 하더니 이제는 회장이 선을 그어서인지 사장 태도가 달라졌다. 정부·여당이 역할을 해줘야 했는데 오히려 상황을 더 안 좋게 했다.
유흥희 불법파견 문제로 4년을 넘게 끌어왔는데도 회사 쪽은 “도의적 책임만 있을 뿐”이라 말한다. 기륭 생산라인이 없다고 해서 우리가 경기 시흥에 있는 다른 기륭 라인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는 회사 쪽이 노조원은 물론 여성 국회의원들에게도 거짓말을 한 셈이다. 8월11일 교섭에서는 노조 대표로 들어간 조합원에게 “노조 설립 전에 잘린 사람이 어떻게 들어올 수 있냐, 말 되는 사람끼리 얘기하자”는 식으로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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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2일 오후 4시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과 ‘사회적 중재안’을 논의하고 나온 배영훈 기륭전자 사장(사진)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국내 생산라인이 없으니까 (생산 정규직으로) 들어올 수 없다”며 “반기업 활동을 해온 사람들에게 3년치 임금을 줄 회사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이정희 의원 쪽이 제시한 ‘사회적 중재안’은 어땠나.
이정희 의원의 중재안은 하나도 납득 못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납득하기 쉽지 않다. 우리가 법적 책임이 없다는 얘기는 다들 알고 있다. 직원들이 현실적으로 저렇게 고생하고 있으니 1년5개월의 일자리를 ‘개런티’(보장)해주면 되는 거 아니냐.
생산라인 문제는 회사 쪽이 거짓말한 게 아닌가.
갑자기 노조 쪽에서 기륭의 국내 라인을 찾았다고 해서 그런 게 있나 알아보니, AS를 위해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만 가동하는 라인이었다.
애초 불법파견 판정을 받지 않았나.
당시 현실적으로 법을 지킬 수 있는 회사가 없었다. 결국 500만원 벌금 내고 (불법파견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파견)회사를 만들었는데, 지금 농성하는 분들은 거기에 가기 싫다고 한 사람들이다.
문자 메시지로 해고를 했다고 들었다.
나도 ‘문자 해고’는 너무한다 싶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봤다. 하도급사(아웃소싱 회사) 얘기가 문서 수령이 안된 사람만 문자로 보냈다더라.
단식이 길어지고 있다.
단식하는 것은 너무 안타깝다. 그렇지만 받을 수 없는 안을 내놓으면 어쩌란 말인가. 반기업적인 일을 한 사람에게 3년치 월급을 줄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인권 OTL-30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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