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반장을 하는 게 유엔에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까요?” 어느 중학생의 질문이다. 수십 개의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하면서 내가 들었던 가장 어이없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질문이었다.
인권교육을 도덕교육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국제적 마인드를 키우기 위한 교육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사교육이 될 수도 있고 사회교육이 될 수도 있다. 이론 중심으로 심도 있게 할 수도 있지만 체험 중심의 교육이 될 수도 있다. 인권교육을 하면서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대상에 따라 다른 접근방식과 내용이다.
인권에 대해 알려는 학생들은 흔히 ‘반기문 효과’와 ‘한비야 효과’에 의해 인권에 관심을 가지곤 한다.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너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으면 아마 “대통령”이라는 답보다 “유엔 사무총장이오!”라는 대답을 훨씬 자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취임 뒤 많은 젊은이들이 유엔이나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을 꿈꾸고 준비를 하다 보니 유엔의 미션 중 하나인 인권의 증진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들은 이론 중심의 인권교육을 원하며 인권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인권 증진을 위한 유엔 메커니즘이 더욱 관심사가 된다. 인권을 알기 위한 마음보다는 인권을 이용하고자 하는 머리를 준비해놓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교육을 시작할 때, “여기서 반기문처럼 되고 싶어 인권을 알려는 사람은 다 나가달라”고 요구한다. 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대안을 찾다 보면 유엔이 그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되지, 유엔에서 일하는 게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인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다른 한 명은 월드비전의 한비야씨다. 세계의 여러 오지를 다니며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책으로 펴내 많은 이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오지에서의 경험, 특히 구호 부문에서의 경험을 듣고 또는 직접 경험을 통해 인권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한비야의 경험을 원한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 가서 봉사하기를 원한다. 이런 이들에게 집회의 자유나 사형제도의 폐지는 관심사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반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들은 경제적 권리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권리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이런 이들에게는 인권활동을 하는 것이 ‘시혜’가 아닌 ‘의무’임을 반복해 설명하고, 세계인권선언에 나온 권리들이 모두 중요함을 인식시킨다. 그래도 이들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경우가 많아 ‘반기문 효과’의 학생들보다 인권에서 실천의 중요성에 공감한다.
인권이 자신을 개발하기 위해 또는 자기 만족을 위해 점점 더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이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하는 것이 답답하고 어쩔 때는 화가 나기도 하지만, 이들에 대한 교육이 결국 인권 증진에서 효과로 나타날 것임을 알고 믿기에 더 발품을 팔 수밖에 없다. 아직도 ‘인권’이라는 두 글자의 뒤에 자리잡은 어려운 이 개념을 이해시켜야 할 대상들은 너무나 많다.
김희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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