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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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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에게 먹힌 꿈, 막내작가 무한노동

방송국 최하층 계급 ‘막내작가’, 계약서 한장 없이 벌어지는 노동착취 현장
등록 2008-11-07 14:31 수정 2020-05-03 04:25
공룡에 먹힌 꿈, 막내작가 무한노동.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공룡에 먹힌 꿈, 막내작가 무한노동.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시작은 단순했다. 한밤중에 20대 초반의 막내작가가 SBS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SBS의 한 심야 프로그램을 외주제작하는 곳에 소속된 이였다. 일하다가 뛰어내렸으니 ‘과도한 의미 부여’도 가능할 텐데 동료들은 숨죽였다. 열악하다고 소문만 무성한 방송국 ‘밑바닥 생활’, 그게 무엇이기에 이리도 사람들을 숨죽이게 할까. 방송사의 ‘막내’들을 직접 만나보자 다짐했다.

과정은 복잡했다. 막내작가들을 접촉하기가 방송작가협회장 인터뷰 잡기보다 어려웠다. 그들은 바빴고, 불안정했고, 끊임없이 누군가의 눈치를 봤다. 이른바 ‘메인작가’가 허락하지 않아 인터뷰를 못한다는 이도 여럿이었다. 모두가 이름과 소속 프로그램을 숨겨달라 했다. 주 70시간이 넘는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누구 하나 “나는 노동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메인작가가 허락하지 않아 말 못해”

“올 것이 왔다, 했죠.”

이성희(26·가명)씨는 딱 잘라 말했다. 공중파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외주업체의 막내작가를 1년째 해오고 있다는 그는 “지난 1년간은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막내로 일하면서 이씨는 2주일에 하루씩밖에 못 쉰다. 오전 10시까지 출근해서 밤 12시 언저리에 퇴근한다. 일이 다 끝나서 하는 퇴근이 아니다. 월급으로 받는 80만원을 택시비로 날릴 수 없으니 필사적으로 ‘막차’에 몸을 실어야 한다. 그래서 밤 12시는 귀가의 데드라인이다. 그렇게 집에 들어가면 늘 새벽 1시.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몇 개월새 얼굴에는 여드름이 잔뜩 솟아나고 몸은 6kg이나 불었다.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서 자료조사, 섭외 등을 하다 보니 몸이 굳어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자살한 막내작가가 속한 팀은 서로 상처를 건드릴까 싶어 쉬쉬하는 분위기다. 해당 프로그램의 김형민 PD가 자신이 칼럼을 써온 웹사이트 ‘하종강의 노동과 꿈’에 글을 올렸을 뿐이다. ‘막내’들은 나이순이 아니다. 철저히 계급순이다. 메인작가 아래에 ‘서브’나 막내작가(자료조사 혹은 스크립터)가 있고, PD 아래 FD나 영상편집 등의 보조직군이 자리한다. ‘막내’는 방송사 카스트제도의 제일 하층에서 꼭대기를 바라보며 매일 밤 방송사의 불을 밝힌다. 2001년 방송작가협회 조사 결과를 보면, 보조작가의 주당 평균 노동 시간은 62시간, 월급은 70만~100만원이었다. 그나마도 외주제작사·케이블 방송을 제외한 공중파 방송사에서 일하는 막내들의 평균치였다.

김옥영 방송작가협회장은 “막내들의 무한노동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했다. 방송작가를 여러 명 인터뷰했지만 실명과 얼굴 공개가 가능한 사람은 그 뿐이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김옥영 방송작가협회장은 “막내들의 무한노동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했다. 방송작가를 여러 명 인터뷰했지만 실명과 얼굴 공개가 가능한 사람은 그 뿐이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다른 일을 하다 뒤늦게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다는 최연숙(가명)씨는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면 방송 일은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강원도의 한 방송사에서 일하는 그는 “지방 방송사가 가난하고 제작비가 충분치 않다 보니 꼭지가 3개인 프로그램에 메인작가가 셋이고 거기에 막내작가를 한 명 붙인다”고 전했다. 막내작가 한 명이 세 명의 메인작가를 ‘모셔야’ 하는 상황이다. “정규직과 똑같이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을 새우고 주말에도 섭외를 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4대 보험도 안 되고 식대나 차비도 안 나오니 버티기가 어렵다”고 한다. 방송사가 외진 데 있어 택시비만 한 달에 30만원이 나오지만,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면 감수해야 한다. 그는 “다들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생각에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정란(23·가명)씨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회사 앞이라 잠깐 나온 건데 다시 들어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방송극작과를 졸업하고 교수 추천으로 한 외주제작사에 막내작가로 들어갔다. 이제 일한 지 10개월 남짓. 학교에서 ‘힘든 일’이란 얘기를 수없이 들어 각오는 했지만 현실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루도 안 쉬고 일주일 내내 일하는 경우가 3분의 1이 넘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밤을 새우고요.” 일주일 노동 시간은 70시간을 훌쩍 넘긴다. 처음 석 달간은 대학에서 ‘용돈’으로 50만원씩 줬다. 회사는 공짜로 3개월간 사람을 써보는 셈이다. 이후엔 회사에서 90만원을 준다. 20만원인 월세를 내면 생활이 빠듯하지만 “어차피 돈 쓸 시간도 없다”고 한다.

노동 시간의 절대치보다 힘든 건 일의 내용이다. “막내작가의 일이란 것이 정확한 업무 분장이 없다. 메인작가나 PD의 수발을 드는 일은 다 해야 한다.” 기획회의 참여, 자료조사, 촬영구성안 작성, 섭외, 아이템 선정, 예고 구성, 홍보문안 작성, 프리뷰(촬영 테이프 전부 보기), 편집구성안 작성 등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된 일과 자료 대출, 복사, 공문 발송, 커피 심부름, 출연료 지급 등 잡무도 처리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들거나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모두 막내 몫이다.

최근엔 막내작가들이 촬영 테이프의 타임 코드를 일일이 적어 편집기획안을 작성하기도 한다. PD가 촬영해온 테이프를 전부 보면서 “몇 번 테이프의 재생 10~13분 사이에 어떤 내용이 있다”는 식으로 프리뷰 노트를 작성한 뒤 “1번 테이프의 10분 이후에 5번 테이프의 20분 장면을 갖다 붙여라’는 식의 편집구성안을 작성한다는 이야기다. 한 중견 작가는 “PD의 영역으로 분류됐던 편집 분야까지 막내작가나 기타 보조직군이 기초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협회가 2002년 ‘방송작가 가이드라인’을 발행해 부당한 업무 지시를 막아보려 했지만 현장에선 역부족이었다.

불투명한 ‘방송사 입성 과정’도 문제다. 한국방송 공채 1기였던 14년차 방송작가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로 공채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한데 1990년대 잇따라 문을 연 방송아카데미에서 교육을 수료한 ‘방송작가 지망생’들은 쏟아져나왔다. 80년대 후반부터 작가협회에 근무한 관계자는 “방송아카데미가 관련 방송사 프로그램에 보조작가를 집어넣기 때문에 이런 인맥 없이 보조작가로 취업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막내’들은 첫 번째 좌절을 겪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방송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박혜진(24·가명)씨에겐 돈이 없었다. 일단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100만~300만원 하는 방송아카데미 비용을 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유명 방송작가가 1대1 강의를 한다’는 글을 보고 그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해당 방송작가는 “기초부터 실전 작법까지 1대1(4명 이하)로 강의한다”며 “일주일에 두 번씩 6개월 과정이며 강의료는 매달 30만원”이란 답장을 보내왔다. 2007년 1월이었다.

방송작가 표준계약서도 막내작가에겐 꿈 같은 소리다.

방송작가 표준계약서도 막내작가에겐 꿈 같은 소리다.

그때부터 박씨는 매주 두 번씩 ‘선생님’의 오피스텔을 찾았다.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은 5명이었다. ‘수하생’ 생활은 1년을 훌쩍 넘겼다. ‘6개월 마스터 과정’이라고 했지만 1년이 되도록 ‘동기’ 4명 중 누구도 취업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생님’의 말은 학생들의 ‘법’이었다. 그는 늘 “이 바닥이 좁다”며 “난 늘 마음속으로 점수를 매기니 잘 보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수업 시간마다 “예능 바닥이 얼마나 개방적인 줄 아냐”며 적응을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여학생들에게 “처녀 손 들어라” “좋아하는 체위를 말해보라”고 했고, 긴치마를 입고 가면 “다리도 예쁜데 좀더 걷어보라”고 했다. 함께 1박2일 야유회를 가서는 학생들과 껴안고 입맞춤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한 명이 나갔다. 남은 4명의 ‘동기’들은 ‘좁은 바닥’에 소문이 날까 싶어 아무 불평도 하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날이 이어졌다.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박씨는 ‘동기’ 중 가장 먼저 취업이 됐다. ‘선생님’이 준 주소를 꼭 쥐고 찾아간 곳은 케이블 프로그램의 외주 제작업체. PD 한 명, 메인작가 한 명, 서브작가 한 명이 있는 사무실이었다. 면접이라 차려입고 갔지만 PD는 그를 보고 메인작가에게 “○○형이랑 얘기한 애야, 그냥 쓰면 돼”라고 말했다. 다음날부터 나오라고 했다.

외주사끼리 경쟁 붙여… 돈 못 받기도

그래도 합격했다는 기쁨에 ‘선생님’에게 연락을 했다. 선생님은 대뜸 “내가 너를 거기 취직시키느라 PD한테 술접대를 하고 돈을 많이 썼다”며 “사례비를 달라”고 했다. 돈이 없다며 박씨가 당황하자 “그럼 일단 내 돈으로 사례를 할 테니 다음달에 달라”는 문자가 왔다. 액수는 첫 월급으로 받게 될 50만원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사례비로 100만~120만원을 받는데 넌 특별히 글을 잘 쓰니까 깎아준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월급이 50만원 정도라는 사실을 이렇게 처음 알게 됐다.

박씨는 그곳에서 열흘을 버텼다. ‘수업료 360만원에 성희롱도 참아왔는데…’ 싶어 끝까지 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자료조사 일은 밤을 새워도 끝이 없었다. 그는 “바로 위 ‘서브작가’는 아예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했다. 집에 가려면 눈치가 보여서 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루는 대중문화평론가를 섭외하지 못하자 PD가 “씨×년아, 막내 주제에 말대답이냐” 등 욕설을 퍼부었다. ‘선생님’은 “3개월만 버티면 더 좋은 곳에 넣어주겠다”고 했지만 그 말은 “3개월 뒤에 사례비 또 준비해라”로 들렸다. 그는 잠적했다. 박씨는 “돌이켜보면 다 허풍이었는데 등용문 없이 막막한 상황이다 보니 그에게 매달렸다”면서도 ‘선생님’의 영향력이 커 여전히 두렵다고 했다.

‘막내’를 착취하는 방송사는 외주제작사가 늘어가면서 점차 괴물의 형상이 됐다. 한 중견 PD는 “요즘엔 아침 프로그램 5일 방송분에 6개 외주제작사를 경쟁시켜 하나씩은 낙오시키고 3번 이상 낙오되면 아예 회사를 아웃시킨다”고 말했다. 백경민(26) 작가는 이같은 시스템에서 일하는 외주제작사의 막내작가로 일했다. 아침 방송의 연예인 관련 꼭지를 맡았던 기간은 ‘피 말리는 경쟁’이었다. 기껏 방송을 만들었는데 그 주에 채택되지 못하면 돈을 받지 못한다. 막내작가의 월급은 제작비를 받으면 떼어주는 식이라 제작비를 받지 못한 외주사는 막내에게 한 푼도 주지 않는다.

막내작가는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담당 프로그램과 같은 시간대의 방송 3사 시청률을 기록해 제작진에게 문자로 발송한다. 시청률이 낮게 나오면 분위기는 험악해진다. 백 작가는 “막내작가의 업무가 메인작가와 PD의 눈치를 많이 보게 돼 있어 시청률이 낮으면 일은 일대로 하고도 욕을 먹는다”고 말했다. 낙오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 보면 노동 시간은 길어지고 제작비는 빡빡해진다. 그는 “도제식이라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뭔가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여력이 없다. 결국 정신없이 돌아가는 방송의 시청률 경쟁에 우리는 소모될 뿐”이라고 말했다.

촬영 현장에는 배우와 PD 이외에 숱한 ‘보조’들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문화방송 제공

촬영 현장에는 배우와 PD 이외에 숱한 ‘보조’들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문화방송 제공

김영미(32·가명) 작가는 2003년, 한국방송 아침 프로그램의 한 꼭지를 제작하는 외주제작사에 근무했다. 한 달에 50만~60만원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 월급이 끊겼다. 사장은 돈이 없다고 했다. 노동부에 문의했더니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라 보호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같은 회사에 다녔지만 PD 4명, 촬영기사 2명은 정규직이어서 그와 입장이 달랐다. 매일같이 방송3사 동시간대 시청률에 스트레스 받아가며 만들어온 방송이었다. 돈을 안 주다니 괘씸하고 억울해 방송사인 한국방송에 직접 항의해보기도 했다. 한국방송 관계자는 “외주업체에 결제를 다 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계약서 한 장 없이 믿고 일한 대가는 혹독했다. 그는 “함께 일해도 정규직과 계약서 없는 사람이 다르다는 걸 경험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임금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 그 사이 사장은 폐업신고를 했다. 그렇게 소송에 뛰어들고 회사와 싸우면서 그를 괴롭힌 건 “소문이 안 좋게 나서 더 이상 일을 못하면 어쩌나”란 걱정이었다. 2004년 겨울, 그는 1년의 재판 끝에 임금 300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방송사 정규직 노조, 그만 외면하라”

김 작가는 “어떤 프로그램의 몇 회까지 혹은 언제까지 어떤 조건하에 일한다는 내용을 명시한 계약서를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바람이 이뤄지긴 쉽지 않다. 실제로 한국방송, 문화방송, SBS 등 방송사의 구성작가협의회와 방송작가협회 차원에서 계약서를 쓰자는 문제제기를 한 지는 3~4년이 됐다. 김옥영 방송작가협회장은 “방송사 대표들과 만나 매년 원고료 협상을 하는데 그 자리에서 계약서 문제를 꺼내곤 하지만 전혀 먹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송사가 독점계약을 맺기 바라는 스타급 작가들은 계약을 꺼리고, 필사적으로 계약서 한 장이 필요한 막내작가군은 방송사가 꺼리는 형국이다.

정윤미(38·가명)씨는 막내였던 90년대 후반, 새로 온 국장에게 “못생겨서 나가야겠다”는 말을 듣고 하루아침에 잘렸다. 그는 “요즘에도 그렇지만 국장이나 팀장, PD 등이 바뀌면 작가들은 잘릴까봐 좌불안석”이라고 말했다. 중견 작가가 된 지금까지도 국장의 모욕적인 해고 통보에도 움츠려야 했던 막내 시절의 기억은 또렷하다. 그는 “5~6년차까지는 계약서가 없으면 당할 공산이 크다. 어린 작가들에겐 계약서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옥영 회장은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이용해 방송사가 막내작가들을 착취하고 있다”며 “막내들은 무한노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조 김세희 노무사는 “프리랜서로 취급됐던 학습지 노동자들이 오랜 투쟁을 거쳐 노동자성을 인정받았듯, 방송가 보조직군들도 ‘이기는 판례’를 쌓아나가고 싸움에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 방송사의 14년차 PD는 “결국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만으로는 안 된다”며 “힘있는 메인작가나 정규직들, 특히 각 방송사의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 ‘막내’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거대한 방송사의 몸집만큼이나 ‘막내작가’ 계급을 누르는 힘의 구조도 거대했다. 오늘도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이 화려하게 소비되고 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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