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문화제 ‘진압’에 선택권 없이 동원돼 못 먹고 못 자는 전·의경들
▣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인권 OTL-30개의 시선 ⑧]
2008년 대한민국의 가장 인상적인 도시 조형물 ‘명박산성’을 사이에 두고 완전히 다른 두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40만 촛불이 노래와 춤과 자유발언으로 시끌벅적한 난장을 이루고 있던 시각, 왕복 16차로를 가로질러 막은 컨테이너 장벽 반대쪽은 경찰버스와 진압복을 입은 전·의경들만이 고요히 숨죽인 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6·10 항쟁 21주년을 맞은 지난 6월10일 밤 12시께 컨테이너 장벽 너머의 서울 세종문화회관 부근. 경찰버스 의자에, 혹은 길바닥에 대열을 갖춰 앉은 전·의경들의 얼굴에선 오랫동안의 시위 진압에 따른 피곤함이 뚝뚝 묻어났다. 어떤 소대는 길거리에 앉아 간식으로 지급된 손바닥 반만 한 팥빵에 ‘아린쥐’ 주스를 먹고 있었다.
“2시간만 자고 도로 출동” “발이 썩었어요”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의경에게 “요즘 힘들죠?”라고 물었다. 20대 초반에 지칠 대로 지친 인상의 그는 “괜찮아요”라며 가벼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출동한 지 한 달이 넘었다는 그는 잠을 못 자는 게 가장 힘들다면서 “얼마 전 ‘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를 할 때는 길바닥에 방패 깔고 하루에 3시간씩밖에 못 잤어요”라고 말했다. 다른 의경도 같은 고통을 호소하면서 “버스에서 자면 잠잔 것 같지도 않다”고 거들었다.
도로 건너편 서울 종로구청 쪽에서 만난 의경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부대는 5월31일 새벽 0시30분께까지 과천정부청사를 지키다 부대에 복귀한 지 1시간 만에 다시 서울로 출동했다. 경찰이 물대포로 시위대와 맞서던 바로 그날 밤이다. 한 의경은 “오늘도 아침 8시에 숙영지에 복귀했다가 2시간만 자고 10시에 도로 출동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들은 촛불집회가 시작된 뒤 하루 평균 6시간 미만의 수면을 취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옆에 있던 다른 의경은 “출동한 뒤 열흘 동안 발을 씻은 건 단 3번뿐”이라며 “상관들은 주변 공원 화장실 같은 곳에서 씻으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한 동료는 “(발이) 썩었어요, 썩어”라며 피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또 다른 의경은 “하루에 1번 이빨 닦기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6월11일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주변 건물 앞 여유 공간에는 길바닥에 아무것도 깔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자는 전·의경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용변도 이동식 화장실에서 해결한다. 들어가봤다. 소변기 4대에 대변기 2대가 마련돼 있다. 기자도 볼일을 보고 세면대 꼭지를 틀었다. 그러나 한 방울의 물도 떨어지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4·15 교육자율화 조처와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풍자하며 시민단체 쪽에서 핵심적으로 정리한 구호다. 전·의경들 역시 잠을 못 자는 고통만큼 먹는 문제 또한 심각했다. 한 전경은 “저는 밥 먹는 게 가장 힘들어요. 1분 안에 먹어야 하거든요. 씹지도 않고 그냥 넘겨요”라고 말했다. 시위대와 대치하는 상황이 아닐 때도 굳이 그렇게 서둘러야 할까? “버스에서 먹는데, (다른 대원과) 교대를 해줘야 하거든요.” 그나마 서울에 있는 경찰서와 기동대에서 나온 이들은 부대에서 밥을 직접 가져오기 때문에 밥다운 밥을 먹는다. 하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은 따뜻한 밥과 국을 먹을 수 없다. 해줄 곳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삼시세끼를 주문해온 4천원짜리 도시락으로 때우고 있다. 경북 영천에서 시위 진압을 위해 올라왔다는 한 의경은 “버스 의자에 앉아 도시락만 계속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대치 지점에서 불침번 서는 부모들
촛불집회가 장기화하면서 이를 막기 위해 동원된 전·의경들의 피로도 갈수록 쌓이고 있다. 시위대의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만큼 전·의경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도 중요하지만, 이는 묻혀 있는 이슈다. 정권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출동한 그들에게 인권이란 없다. 한 의경은 “시위대는 인간이지만 우리는 인간이 아니에요”라며 자조 섞인 농담을 흘렸다. 다음 카페 ‘전의경 부상자 부모들의 쉼터’가 자신들의 자식을 두고 “현대판 노예”라며 울분을 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양심의 자유도 없다. 국민의 80% 안팎이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잘못됐고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전·의경의 100%는 그러한 집회를 가로막기 위해 온몸을 던져야 한다. 선택은 없다. 지시에 따라야만 한다. 한 의경은 “저도 물론 이곳이 아니라 학교에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촛불집회에 참석했을 수 있겠죠”라고 말했다. 급기야 서울경찰청 기동대의 이아무개 상경은 “나의 정치적 견해와 다르게 시위 진압에 나서는 일은 양심에 반한다”며 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육군으로 도로 보내달라는 행정심판을 냈다.
가족이나 애인 등과 겪어야 하는 갈등도 감내해야 한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의경은 “저기 있는 제 고참은 여자친구가 촛불집회에 나온다고 해서 대판 싸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다음 아고라에도 관련 글들이 올라 있다. 친오빠가 전경으로 시위 진압을 하고 있다는 한 누리꾼은 “오빠는 왜 하필이면 전경이 돼가지고, 6월7일 시위에 참가했다가 오빠를 만났는데 저는 서글픔에 눈물이 났다”고 한탄했다.
‘전의경 부상자 부모들의 쉼터’ 카페에서 활동하는 한 전경의 어머니는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들이 사대문 안 경찰서에서 일경으로 근무 중이라는 김아무개씨는 “아들이 작년 7월에 입대한 뒤 농민대회 진압에 나갔는데 ‘엄마, 무서워요’라고 전화왔더라”며 “이번 촛불집회 때도 전·의경 아이들이 다칠까 나갔는데, 어떤 여학생이 전·의경보고 ‘너희 엄마도 너 낳고 나서 미역국 먹었냐’고 하는 말을 듣고 너무 속상했다”고 했다.
전·의경을 아들로 둔 이들은 경찰이 시위 현장에서 다친 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으로 쇠파이프 등이 등장한 6월3일 집회 때 다친 전·의경들을 수송하기 위한 구급차도 현장에 대기시키지 않았다며 부모들은 경찰청에 강력히 항의했다. 그 뒤 경찰은 구급차를 불러 대기시켰다. 다쳐서 경찰병원에 간 뒤 다른 민간병원의 치료를 받으려고 해도 외부 진료 의뢰서 한 장 받아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전·의경 부모들이 시위가 있을 때마다 조를 나눈 뒤 대치 지점에 직접 찾아가 불침번을 서는 것도 다 이런 현실이 만든 결과물일 뿐이다.
싼값에 부리면서 정부 대신 매맞아라?
인권침해 논란에도 유지되고 있는 전·의경 제도는 부도덕한 국가 공권력의 상징이다. 병역 의무를 지려고 입대한 젊은이들을 민간인의 집회·시위 진압에 내몰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정권이 맞아야 할 정치적 매를 전·의경이 대신 맞고 있는 셈이다. 경찰은 전·의경을 싼값에 부리면서 시위대와 정권 사이의 ‘완충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전·의경이 고탄성 용수철일 수는 없다. 그냥 사람일 뿐이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인권단체와 ‘전·의경 부모들의 모임’도 뜻이 모이는 한 지점이 있다. 바로 전·의경 제도의 폐지다. 서구사회처럼 직업 경찰관으로 꾸려진 기동대를 운영하라는 것이다. 인권단체연석회의도 6월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시위대에 대한 탄압과 전·의경의 인권을 무시한 마구잡이 행정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김상균 백석대 교수(경찰학)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의경을 동원한 인해전술식 시위 진압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며 “똑같은 옷을 입은 전·의경의 존재 자체가 시위대의 공격성과 폭력성을 더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전투경찰 제도를 폐지하고 정규 경찰을 통한 시위 대처 방안을 모색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인간 방패막이’가 존속하는 한 전·의경의 인권도 챙기기 어렵고 원천봉쇄와 인해전술식 집회 관리로 인한 시위대의 인권 침해도 막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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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인권침해 논란에다 “우리가 쓸 병사 공급도 부족하다”는 국방부의 논리에 밀려 정부는 올해부터 해마다 전·의경 숫자를 20%씩 줄여 2012년 전·의경 제도를 완전 폐지키로 지난해 결정했다. 하지만 전·의경을 주머니 속의 공처럼 만지작거리는 경찰은 최근 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장전배 경찰청 경비과장은 6월12일 전화 통화에서 “전·의경 제도 폐지 논의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며 “현재 예산 부서 및 국방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시민사회 세력에게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어청수 경찰청장이 내정자 시절이던 올해 초부터 이미 예고돼왔던 일이다. 어 청장은 당시 “전·의경을 2만 명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예산 절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손쉽게 부릴 수 있는 전·의경 제도를 폐지하고 집회·시위 대처를 직업 경찰관으로 이뤄진 기동대에 맡길 경우 막대한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전투경찰은 애초 1966년에 23개 중대 2300여 명의 직업 경찰관으로 출발했다. 1968년 북한 124군부대의 청와대 습격 기도 사건을 겪은 뒤, 1971년 경찰이 국방부에서 병력을 꿔와 군복무 대신 근무하는 현재 개념의 전투경찰을 만들었다. 4년 뒤 “간첩(무장공비 포함)의 침투거부·포착·섬멸, 기타의 대간첩 작전을 수행하는” 본래 목적에다 ‘경비’ 업무가 덧붙여졌다. 경찰 치안 업무를 보조하기 위한 의무경찰은 1982년에 처음으로 창설됐지만, 전경과 마찬가지로 시위 진압에 주로 동원되고 있다. 6·10항쟁이 있던 1987년엔 전·의경 수가 5만6천여 명에 달해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그 뒤로 완만하게 줄어 현재는 4만여 명 선이다.
잦은 구타 사건, 부대장의 자의적인 영창 제도 운영, 0.7평에 불과한 개인 공간 등 여러 인권침해 논란 속에서 인권단체들은 전·의경제 폐지를 주장해왔다.
◎ 연속기획의 제목인 ‘인권 OTL’은 좌절해 쓰러진 사람을 상징하는 이모티콘 ‘OTL’을 활용해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의 슬픔을 담았습니다. 제보와 문의는 syuk@hani.co.kr 혹은 02-710-0552로 해주시면 됩니다.
[인권 OTL-30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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