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까지 식량부족 이어질 거라 예상되는 북한, 그 굶주림의 공포를 아는가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인권OTL-30개의 시선 ⑭]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성인 1명이 하루 섭취해야 할 최저 열량으로 2100cal를 제시한다. 장기간 이보다 적게 먹으면 ‘식량 부족’이란 게다. 미 농무부(USDA)가 7월 초 내놓은 ‘2007년 세계 식량안보 평가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전세계 70개 국가에서 약 9억8200만 명이 ‘식량 부족’을 버텨냈다. 이들 땅에서 ‘밥’은 곧 인권이다. 한반도 북녘 땅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아시아의 두 나라, 아프가니스탄과 북한[%%IMAGE4%%]
미 농무부는 보고서에서 “아시아 지역의 식량 상황이 전반적으로 나아지고 있지만, 두 나라가 문제”라고 꼽았다. 바로 아프가니스탄과 북한이다. 농무부는 “이들 두 나라에선 오는 2017년까지 식량 부족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또 “만성적인 식량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북한에선 지난해 대홍수로 상황이 더욱 악화했다”며 “특히 곡물가 폭등과 고유가에 따른 수송비 인상으로 식량 수입도 쉽지 않고, 외부 원조 식량마저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새삼 ‘위기’를 말한 게다.
‘기부자 피로증’(donor fatigue)이란 말이 있다. 끔찍한 자연재해나 대량 아사 사태로 촉발된 국제사회의 원조 열풍이, 여러 해 ‘위기 상황’이 지속되면서 차츰 무뎌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피로증’이 심각해지면, 애초 국제사회의 원조를 이끌어냈던 참상과 비슷한 수준의 비극이 재현되더라도 초기의 ‘돕자 열풍’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끔찍함에 쉽게도 익숙해지는 탓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해마다 되풀이돼온 북한 식량난이 더 이상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이유도 비슷할 게다.
그래서 다시 북녘을 보게 된다. 2006년과 2007년 여름 잇따른 수해로 수확량이 격감했으니, 봄철을 나느라 식량 재고량도 바닥을 드러냈을 터다. 해마다 남쪽에서 올라가던 쌀과 비료도 받지 못했다. 국제사회의 원조도 드문드문이다. 임박한 파국을 예감한 눈 밝은 이들의 우려가 봄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발이 묶였고,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이란 불행으로 마음의 문마저 닫히고 있다. 올해 북한의 식량 상황은 얼마나 나쁜 걸까? 권태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국제농업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대량 아사자 발생한 90년대와 비슷
“지난 양곡연도(매년 추수가 끝난 11월부터 다음해 추수가 시작되는 10월까지)에는 부족분이 없었다. 사실상 수요·공급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북한에서 필요로 하는 최소 식량 소요량이 연간 약 520만t이다. 자체 생산량과 수입물량, 국제사회의 원조 등 외부 지원을 합해 지난해에는 큰 어려움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2006년엔 약간의 잉여 식량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여름 수해로 피해를 입은 농경지가 20만ha를 넘는다. 이 때문에 40만t 정도의 수확량이 줄어들었다. 2000년 이후 처음으로 식량 부족 사태가 재현됐다.”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객관적 수치만 놓고 보면, 올해 상황은 대량 아사자가 발생했던 지난 1990년대 중반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당시는 배급제 사회였다. 북 당국에서 100만t이 부족하다고 말하면, 고스란히 100만t의 식량이 모자랐다. 지금은 시장도 생겼고, 외국 수입물량도 있고, 국제사회의 지원도 있다. 그나마 조금 나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게다. 하지만 올해는 어려움이 삼중사중으로 겹쳤다. 지난해 여름 큰물 피해를 입은데다, 국제사회의 원조식량도 줄었다. 곡물 가격도 급등해 수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동안은 남쪽에서 매년 40만t가량의 식량을 지원했다. 또 비료도 20만~30만t씩 올려보냈다. 합쳐서 60만~70만t 정도의 식량을 제공해준 셈이다. 이를 앞세워 ‘너희 어려운 거 다 아니까 그만 항복하라’고 밀어붙였는데, 북이 항복하겠나. 굶어죽는 이들이 나와도 북 당국이 쉽게 타협하지 않을 게 뻔하다. 결국 식량난만 악화시키고 말았다. 애초 ‘카드’가 될 수 없었던 게다.”
그나마 핵 문제가 풀리면서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이 재개된 점은 다행한 일이다. 지난 6월29일 미국산 밀 3만7천t을 실은 ‘M/V 볼티모어호’가 남포항에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7월 중 2만4천t이 추가로 도착할 예정이다. 하지만 두 차례 선적분을 합쳐도 6만1천t에 불과하다. 한 대북 인도지원 전문가는 “적어도 한 달에 5만t씩은 들어와야 하는데 속도를 못 내고 있다”며 “8~10월 사이 당초 예상했던 20만t을 모두 들여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그는 “결국 남쪽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기근을 막고 곡물 가격 폭등세를 안정시킬 수 없다”며 “이럴 경우 북쪽 주민들이 동요하면서 사회 불안이 커지는 등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 당국이 최근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지원 사업 확대·연장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한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계식량계획이 지난 6월30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북한 당국은 △모니터 요원 50명 증파 △지원 대상지역 50개군에서 128개군으로 확대 등의 내용에 합의했다. 식량 분배·모니터링 문제로 지난 2006년 일방적으로 국제원조기구 요원들을 쫓아내기까지 했던 북한이 이런 내용에 합의한 것은 “식량 사정이 그만큼 다급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설명이다. “당분간 긴급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게다.
통계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은 대략 100만t 안팎일 것이란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미국이 계획대로 20만t 지원을 완료하고, 세계식량계획도 5만t가량 지원해준다면 부족분을 85만t 정도로 줄일 수 있다. 여기에 북쪽이 추가로 수입할 수 있는 여력을 10만t 정도라고 하더라도, 올 양곡연도 안에 60만~65만t의 식량 부족분은 채우기 어렵다. 1990년대 중반 대량 아사자가 발생할 당시 식량 부족분이 80만t 안팎이었다. 권태진 연구위원은 이렇게 지적한다.
“올봄 못자리를 낼 때부터 초기 작황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비료도 지원받지 못했다. 가을걷이가 어떨지는 충분히 예견이 가능하다. 그나마 봄철엔 재고물량을 풀어 어려움을 넘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마저 바닥을 드러내고 있을 게다. 게다가 8월이면 북에서 크고 작은 수해가 날 게 뻔하다. 당연히 작물 피해가 날 것이다. 현재로선 올해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내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내년까지 이어질 죽음의 그림자
세계인권선언은 전문에서 “공포와 결핍 없는 세계는 사람들의 최고의 소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선언 3조에선 “모든 사람은 생명, 자유 및 신체의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고 적시해, ‘생명권’을 기본적인 인권의 하나로 명시했다. 굶주림의 공포는 곧 죽음이다. 그러니 새삼 말하게 된다. 밥이 인권이다.
[인권 OTL-30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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