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사업가 장란. 아들인 왕샤오페이가 대만의 스타 쉬시위안과 결혼했었다. 바이두 갈무리
“팔로 미.”
잘생기고 다부진 체격을 가진 남자가 영어로 “따라와라”라고 했다. 그는 당시 중국 요식업계의 최고 재벌로 떠오르고 있던 장란(67)의 개인 경호원이었다. 그를 따라 베이징 최고 부촌에 자리한 장란의 자택을 방문했다. 한국 언론사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인터뷰를 위해서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때다.
장란은 중국에서 최고급 식당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대중화에 성공한 쓰촨식 식당 차오장난(俏江南)의 창업자다. 올림픽을 앞둔 그 무렵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 이후 눈부신 경제성장에 힘입어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상당한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 소비자들이 부상하던 시기다. 장란은 바로 그 ‘시대적 운’과 타고난 장사꾼 기질을 활용해 중국 요식업의 고급화와 대중화를 이끌며 가장 성공한 여성 사업가 반열에 올랐다. 식당 차오장난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공식 지정 식당이 됐다. 그는 2012년 후룬 중국 부호 리스트(Hurun China Rich List)에서 요식업계 3대 부호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캐나다에 이민을 갔던 장란은 그곳에서 하루에 많을 때는 6개 정도의 시간제 일을 하며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다. 주로 식당 등에서 일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보고 배운 요식업 경험을 바탕으로 1990년대 초반에 중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요식 사업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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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란의 집은 상상했던 것보다는 소박했다. 하지만 잠시 뒤 그가 직접 집 안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소개하는 말을 들으면서 부자들의 집은 과연 겉으로만 봐서는 그 부의 정도를 쉽게 파악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됐다. 집 안 곳곳에 ‘부의 디테일’이 녹아 있었다. 장란은 집 안의 모든 가구와 장식용 그림 등이 얼마나 비싼 것이며 돈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일반적인 물건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이라이트는 화장실이었다. 일부러 화장실을 보여준 장란은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 집 화장실은 프랑스 디자이너 필리프 스타르크에게 의뢰해 설계하고 만든 것이에요. 바로 저 변기가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랍니다. 필리프 스타르크 아시죠?”
장란은 마지막으로 자기 아들 방을 보여줬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이고 프랑스와 캐나다에서 유학했으며 곧 자신의 사업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으로만 봐도 준수한 외모를 가진 청년이었다. 장란의 아들 왕샤오페이는 다음날 베이징 시단에서 열린 새 식당 개업식에서 대면할 수 있었다. 그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왕샤오페이는 이미 중국 내에서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 나이에 벌써 수많은 톱 여배우와 무수한 염문을 뿌리며 연예 매체의 단골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그날 개업식의 주인공도 왕샤오페이였다. 수많은 기자와 인파가 운집했던 그날 개업식은 아이돌 스타의 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왕샤오페이가 탑처럼 쌓인 붉은 단상 위에 올라 마이크를 들자 주변을 호위병처럼 에워싸고 있던 여성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고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장란은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쉬시위안의 전남편 왕샤오페이. 바이두 갈무리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뒤 이들 모자의 사업은 순항하는 듯했다. 게다가 가장 ‘대박을 친’ 사건은 왕샤오페이가 대만 최고의 인기 배우 쉬시위안(서희원)과 2011년 결혼한 것이었다. 쉬시위안은 2001년 대만판 ‘꽃보다 남자’인 ‘유성화원’에서 주인공 산차이 역을 맡아 유명해졌고, 어느덧 동아시아 최고의 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였다. 이들 커플은 만난 지 불과 49일 만에 전격 결혼을 발표했다. 중국 요식업계 재벌집 도련님과 대만 최고의 인기 배우가 결혼한다는 소식은 당시 중국과 대만에서 가장 핫한 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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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결혼 후 남매를 낳았고 왕샤오페이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하루가 멀다고 자신들의 결혼생활을 ‘전시’하고 ‘과시’했다. 그때부터 왕샤오페이는 이미 소셜미디어 중독자였다. 장란과 왕샤오페이는 쉬시위안의 유명세를 이용해 중국과 대만에서 여러 가지 사업 확장을 꾀했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차오장난 등 식당 체인점의 경영권을 빼앗기는 등 그들 모자의 사업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왕샤오페이는 사업보다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에서 더 많은 능력과 영향력을 발휘했다. 많은 중국 매체는 그가 사업 능력은 별로 없으면서 엄마의 후광을 등에 업고 성장한 전형적인 ‘마마보이’라고 혹평했다. 쉬시위안과 결혼한 뒤 그는 사업보다는 각종 연예매체와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 소셜미디어 등에서 더 ‘성공 가도’를 달리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들 부부의 일거수일투족은 마치 왕년의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비를 쫓던 파파라치와 황색 언론들처럼 중국과 대만의 온갖 연예 가십 매체들을 먹여 살려주는 주요 기삿거리가 되었다. 인터넷 소셜미디어가 틱톡과 샤오훙수, 빌리빌리 등 중국판 유튜브 동영상 분야로 확대 발전된 것도 이들의 소식이 시시각각 다양한 버전으로 전달되는 계기가 됐다. 더군다나 쉬시위안과의 결혼 이후에도 그는 간간이 다른 여성들과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호사가들과 연예매체의 입길에 올랐다. 쉬시위안의 고향 대만에서는 갈수록 그의 ‘찌질함’을 성토하는 기사와 안티팬이 늘어갔다.
장란과 왕샤오페이의 사업은 계속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러던 중 2021년, 쉬시위안과 왕샤오페이가 전격 이혼한다는 ‘속보’가 떴다. 그들의 이혼을 둘러싸고 중국과 대만 누리꾼들은 마치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처럼 확연히 다른 분위기와 온도차를 보였다. 이들의 결혼과 이혼을 둘러싼 온갖 루머가 퍼졌고 연예매체와 각종 소셜미디어에서는 또다시 ‘대어를 낚았다’는 듯이 그들에 관한 갖가지 뉴스를 폭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에 관한 뉴스와 관련 동영상들은 2025년 2월2일 쉬시위안이 일본에서 폐렴으로 사망한 뒤 지금까지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쉬시위안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마치 텔레비전 ‘리얼리티 쇼’의 주인공처럼 모든 일상이 대중에게 ‘까발려’졌다.
쉬시위안과의 이혼 이후 왕샤오페이와 장란은 ‘중국 최악의 전남편과 전 시어머니’가 됐다. 장란은 쉬시위안의 명예와 사생활을 ‘팔아먹으며’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했다. 왕샤오페이 역시 웨이보와 틱톡 등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쉬시위안과의 결혼과 이혼에 얽힌 온갖 구질구질하고 찌질한 이야기들을 올리며 연예매체의 단골 기사를 장식했다. 그 재미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구독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들은 쉬시위안의 명예를 팔아먹으며 자신들이 파는 상품도 끼워 팔았다. 봉이 김선달도 울고 갈 천하제일의 상술이었다. 오래전 자신의 집 곳곳에 은닉되어 잘 눈에 띄지 않던 부의 디테일을 과시하던 표정과 눈빛 그대로 장란은 쉬시위안의 사생활과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할 때도 예의 그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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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부부의 이혼 직후 장란은 자신의 틱톡 라이브커머스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이 결혼생활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느냐? 그 여자(쉬시위안)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내 아들이 버는 돈만 썼다. 손주들도 내가 키우다시피 했다.” 쉬시위안과 구준엽이 결혼을 선언했던 2022년 3월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은 정말 순수했는데 (쉬시위안에게) 이용만 당했다.”
2022년 11월21일 왕샤오페이도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내가 그녀에게 사준 침대에서 지금은 그 남자(구준엽)와 자고 있다니 정말 역겹다. 그 침대는 내가 직접 고르고 사서 베이징에서 대만으로 보낸 것이다. 내가 준 침대에서 다른 남자와 같이 자고 있으면서 돈(양육비)까지 더 내라고 한다”고 썼다. 대륙과 대만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침대 논쟁’이다. 대만 누리꾼과 언론은 왕샤오페이를 ‘중국 최악의 쓰레기 같은 전남편’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대륙에서는 쉬시위안을 향해 “중국 남자의 돈만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이자 기생녀, 배신자”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여기에는, 대만은 중국의 경제력에 기대어 살고 있지만 쉽게 그 은혜를 배신한다는 교묘한 정치적 은유가 담겨 있었다.
장란 역시 이 논쟁을 자신의 라이브커머스에서 ‘침대팔이’에 써먹었다. 장란은 “전남편이 잔 냄새나는 침대는 버리세요”라며 쉬시위안을 조롱하는 듯한 세일즈 문구를 넣고 자신이 파는 침대 매트리스를 팔았다. 왕샤오페이가 어느 날은 술 취한 상태로 자신의 틱톡 계정에 쉬시위안과의 결혼생활에서 자신은 피해자였다는 식으로 라이브 방송을 하자, 다음날 장란은 자신의 라이브커머스에서 그 영상을 배경으로 해서 “해장에 좋은 해장국 즉석식품”을 팔기도 했다. 왕샤오페이와 장란은 쉬시위안이 구준엽과 재혼한 2022년 후에는 자신들의 소셜미디어를 총동원해 그들의 명예와 사생활을 폭로하는 데 집중했다. 쉬시위안을 향해 ‘가정을 버린 무책임한 여자’ ‘자신이 사준 침대에서 다른 남자와 자는 (더러운) 여자’ ‘돈만 펑펑 쓰는 (낭비벽 심한) 여자’ 등으로 온갖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며 일방적인 폭로와 비방을 이어나갔다.
참다못한 쉬시위안이 그들 사이의 이혼 협약서를 공개하고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지만 장란과 왕샤오페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쉬시위안의 명예와 사생활을 ‘실시간 콘텐츠’로 전환해 온갖 물건을 팔아먹으며 상업적 이득을 취했다. 2025년 2월2일, 쉬시위안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에도 그들은 변함없이 라이브커머스에서 그의 죽음마저 영업 소재로 활용하며 물건을 팔아먹었다. 그 후 여론이 악화하자 틱톡은 그들 모자의 계정을 무기한 정지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다른 계정을 통해 왕성하게 ‘소통’하고 있다. 중국 연예매체와 관련 소셜미디어들도 여전히 활발하게, 이미 죽은 쉬시위안과 살아 있는 그의 ‘전남편과 시어머니’ 이야기를 실시간 콘텐츠로 재창조해 짭짤한 수익을 내는 중이다. 구준엽과 관련한 ‘콘텐츠’도 그들의 수익에 한몫하고 있다.

구준엽과 재혼했던 쉬시위안(왼쪽). 2025년 2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티브이엔 ‘유 퀴즈 온 더 블럭’ 갈무리.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하인리히 뵐이 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어느 날 지인의 댄스파티에 참여했다가 우연히 알게 된 한 강도 용의자를 사랑하게 된 주인공 블룸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왔던 블룸은 그 댄스파티가 있고 사흘 뒤에 살인자가 된다. 차이퉁이라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신문사가 그의 이야기를 온갖 거짓말과 곡해로 대서특필해서 하루아침에 강도 용의자를 도와준 ‘빨갱이 좌파’ ‘창녀’ 등으로 둔갑시켰기 때문이다. 차이퉁은 오늘날 일부 연예 유튜버들처럼 매일 블룸의 일거수일투족을 온갖 거짓된 정보와 이야기로 도배하며 평범한 한 사람의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았다. 모두가 차이퉁이 거짓 보도를 일삼는 비열하고 저급한 신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주변 사람은 그 신문을 읽으며 블룸이 ‘빨갱이 창녀’임이 확실하다고 믿었다. 자신의 짓밟힌 명예에 대해 국가와 법마저도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절망한 블룸은 “그들은 살인자이고 명예를 훼손한 자”라며 직접 권총을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거짓말로 써내려간 차이퉁의 기자를 향해 총을 쏜다.
이 책의 부제는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이다. 여기서 말하는 폭력은 언론의 폭력이다. 이 소설은 1974년에 나왔지만 만일 2025년 현재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해서 읽어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퉁을 장란과 왕샤오페이 등의 소셜미디어 또는 한국 가로세로연구소와 이진호 연예 유튜브 등으로 바꿔서 읽을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소설 속 블룸은 자신을 모욕한 기자를 향해 총을 쐈지만, 쉬시위안이나 한국의 김새론 등은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들은 여전히 명예를 훼손당하고 있다. 누가 총을 쏠 수 있을까?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박현숙의 북경만보: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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