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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3일 밤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3일 밤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2024년 12월3일 밤 10시28분,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표독스러운 표정을 보고 많은 국민이 ‘딥페이크 영상인가’ 의아해했다. 그만큼 윤 대통령의 계엄령은 뜬금없이 등장한 공포였다.

계엄 선포를 앞두고 발표한 긴급 기자회견문에서 그는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국회를 “범죄자 집단 소굴”이라고 저주했고, 더불어민주당을 향해서는 “오로지 탄핵과 특검, 야당 대표 방탄으로 사법 행정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는 극언을 쏟아냈다. ‘비상계엄 정국’의 시작이었다.

납득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야당이 윤 대통령의 말처럼 “검사를 탄핵하는 등 사법 업무를 마비시키고 행안부 장관 등 행정부 관료를 탄핵해 행정부를 마비”시킨다 해도, “마약범죄 단속, 민생 치안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하더라도 이 모든 행위는 법 절차에 따라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정치활동을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행위”라고 규정했다.

기자회견 이후 발표한 계엄 포고령에도 적개심이 고스란히 담겼다.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박안수(육군참모총장) 명의로 발표된 계엄사 포고령 제1항은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명시했는데, 입법부의 기능을 제한하는 건 명백하게 위헌적이다.

다행히 국회의원 190명이 국회에 모여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하면서 155분의 비상계엄은 중단됐지만, 전국민이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1979년 10월27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로 계엄령이 선포된 지 45년 만에 일개 명령으로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당할 가능성을 엿본 두려움 때문이었다.

문제는 역사적으로 계엄이 늘 우리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집회·시위에 나설 때마다 해당 시위는 ‘사변’으로 간주돼 계엄 선포의 빌미가 될 수 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도 군대가 계엄 선포를 검토한 사실이 드러나 국민을 서늘케 했다.

한겨레21은 이번 ‘윤석열 계엄’ 파동은 정상이 아닌 대통령과, 이런 대통령이라도 독단적으로 움직이면 얼마든지 비상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 계엄법 제도가 함께 작동한 결과로 본다. 그리하여 우리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계엄’이라는 제도도 함께 바꿔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윤석열이 시도한 ‘친위 쿠데타’ 6시간은 허무하게 끝났다. 이제는 국민이 그 6시간을 심판하는 시간이 됐다. 그리고, 국민이 정치를 바꿀 시간도 함께 도래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한겨레21> 제1542호 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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