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욕설이었다. 내란죄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2025년 1월19일 새벽 3시7분께, 윤석열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후문 앞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이들은 욕설하며 ‘영장 담당 판사 나오라’고 소리쳤다. 이때 대열 앞에 있던 남성이 경찰을 향해 거칠게 다가갔다. 또 다른 남성은 지지자를 향해 ‘위로 올라가자’는 듯 검지를 치켜올렸다. 그러자 군중이 일시에 달려들어 경찰을 밀기 시작했다. 당황한 경찰이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지지자들은 기세를 몰아 1층 창문을 부수고 철문을 밀어올렸다. 건물 안으로 진입해 마구잡이로 물건을 부수고 유리창을 깼다. 음료수 자판기로 문을 막던 서부지법 직원들은 급히 건물 옥상으로 피했다. 건물 밖에서 경찰을 폭행하는 이들도 있었다. 광란은 3시32분까지 30분 가까이 지속됐다.
46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전날 서부지법 담을 넘은 이들까지 합치면 56명이 구속됐다. 헌정 사상 초유의 법원과 판사 테러였다. “티브이(TV)를 통해서 봤던 것보다 10배, 20배 참혹한 현장 상황을 확인했다. 현장에서 겪은 야간 당직 직원들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크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말했다.
조짐은 1월 초부터 있었다. 극우 인사들이 ‘국민 저항권’을 언급하며 무력시위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헌법 위의 권력, 국민 저항권을 발동하자”(이희천, 1월6일치 스카이데일리), “국민 저항권을 일으킬 수 있는 국민 수가 모이고 있다”(역술인 천공, 1월11일 유튜브) 등이다.
국민 저항권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파괴하려는 공권력에 저항하는 국민 권리이자 헌법수호제도”(헌법재판소 2013헌다1 중)다. 헌정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는 이 개념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 저항권의 대표 격인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도 군부독재와 국가폭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려 한 저항이었다.
반면 극우 인사들은 오직 ‘윤석열 지키기’를 목표로 무력 충돌을 부추겼다. “대통령이 체포되면 목숨 걸고 차벽이고 뭐고 다 때려부수고 들어가서 공수처 이×× 다 끌어내갖고 즉결 처형할 것”(신혜식, 한남동 집회 발언 영상)이라거나 “우리가 윤 대통령을 일주일 안에 데리고 나올 수 있다”(전광훈, 1월18일 집회) 등이다. 전 목사는 서부지법 난동 전날인 1월18일 “당장 서울서부지법으로 모여 국민 저항권을 발동해야 한다”며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을 서부지법으로 가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온라인 극우 커뮤니티는 이를 널리 전파하는 창구였다.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1월17~18일 이틀간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비대위 갤러리 등엔 ‘국민 저항권, 나라 엎어질 준비 해라’ ‘서부지법에 국민 저항권 발동, 가슴이 웅장’ 등 제목의 게시글이 대거 올라왔다. “방망이, 칼, 삼단봉, 너클 등 뭐든 좋으니 공격 무기 챙기라”는 내용의 글도 있었다.
극우세력은 평상시 ‘북한군의 폭동’이라 폄훼하던 5·18 운동도 방패막이 삼았다. 극우 유튜버들의 방송엔 “우리도 5·18 운동과 같이 (무장의 길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에 대해 양재혁 5·18민주유공자 유족회 회장은 “평상시 5·18 운동에 망언을 일삼던 자들이 이렇게 이중잣대로 5·18을 소비하고 민주주의의 언어를 오염시키다니 매우 분노스럽다”고 지적했다.
극우 유튜버들은 증오를 부추긴 대가로 거액의 후원금을 챙겼다. 유튜브 수익 집계 사이트 ‘플레이보드’를 보면, 윤석열 체포를 앞둔 1월6~12일 한국 슈퍼챗(온라인 후원금) 1위 채널은 극우 유튜버 신혜식의 ‘신의한수’였다. 일주일 만에 4900여만원을 벌어 그 주 전세계 3위를 차지했다. 1월13~19일에도 2800여만원을 벌어 2위를 차지했다. 증오 정치가 심화할수록 유튜버들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셈이다.
물론 변방의 선동꾼만으론 한계가 있다. 제도권 인사의 도움이 있을 때 폭도는 비로소 용기를 낸다. 그 역할을 맡은 게 국민의힘 의원들이다.
폭동 전날인 1월18일, 윤석열 지지자 17명이 서부지법 담장을 넘어 청사 안으로 침입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폭력 행위의 전조였다. 그런데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법원 앞에 나타나 “관계자하고 얘기했다. 아마 곧 훈방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지지자들에게 말했다. 윤 의원은 실제로 강남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신원을 밝힌 뒤 “서부지법 연행자 있죠. 잘 처리 부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 1월21일 행정안전위원회 답변)
다른 국민의힘 의원들도 법원 습격을 옹호했다. 폭력사태를 “일부 시민 거친 항의”(권영세)로 축소하는가 하면 “폭력 책임을 시위대에게 일방적으로 물을 수 없는 상황”(권성동), “경찰이 시위대 길 터줬다”(조배숙) 등 양비론을 펼쳤다. 아예 폭력을 드러내놓고 지지하는 발언도 나왔다. “윤 대통령의 외롭고도 힘든 성전에 참전하는 아스팔트의 십자군”(김재원)이라거나 “집회 참가자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경의와 감사 표한다”(이양수) 등이다.
테러를 당한 법원을 도리어 탓하며 ‘구속영장 발부가 문제’라고 주장한 이들도 있었다. 1월21일 법원 습격 관련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가 열리자 송석준 의원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결과(구속)가 나왔다면 사법행정 차원에서 엄중히 자성하고 시정할 필요가 있지 않냐”고 천 법원행정처장에게 말했다. 장동혁 의원도 “대통령이 경호를 받고 있는데 무슨 도주의 우려가 뭐가 있느냐”며 판사의 구속영장 발부를 재차 비난했다.
천 법원행정처장은 “사법부가 자성하고 돌아봐야 할 부분이 없는지 따져보자는 의견이 많아 다시 한번 돌아볼 생각”이라며 자세를 낮췄다. 그러면서도 “법치는 자칫 유리와 같이 약할 수 있다. 헌법기관에 몸담은 모든 분들이 말씀, 행동이라든지 법치주의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헌정질서를 뿌리째 흔드는 이들을 이제라도 단호하게 뿌리뽑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 5당은 1월10일 김민전 의원 제명 촉구 결의안을 낸 데 이어 21일 윤상현 의원 제명안도 제출했다. 전광훈 목사는 내란선동죄로 고발당했다. 경찰은 서부지법 난동 관련자 90명의 구속영장을 순차적으로 신청하고 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 지도부는 끝내 우리의 소중한 민주공화국에 ‘극우폭동’이라는 지옥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이 지옥문을 닫고 다시는 열릴 수 없도록 봉인해야 한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이 1월20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에 △대통령 윤석열, 윤상현·김민전 의원 제명 △권영세·권성동 지도부 사퇴를, 수사기관에 △극우세력의 연계고리와 지원부대를 찾아낼 것을 촉구했다. 또 민주공화국의 시스템을 바꾸는 정치개혁 논의도 조속히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내란 확정처럼 쓰지말라”...이진숙 복귀하자마자 보도지침?
현직 검사 ‘부정선거론’ 일축…120쪽 총정리 파일 무슨 내용?
“경호처, 김건희 비화폰 번호 장관들한테 주며 잘 받으라고 했다”
민주 40% 국힘 38%…이재명 31% 김문수 11% [갤럽]
국민연금 시행 37년 만에…첫 ‘월 300만원 수급자’ 나왔다
트럼프 “다시 김정은에게 연락해 보겠다”
‘전광훈 지시 받았나’ 묻자…서부지법 난동 전도사 묵묵부답
선글래스 낀 국회‘요원’ 박주민입니다…“전 국민 듣기평가 또 시작”
이재명 요원, 우원식 요원?…“요원 끌어내라” 발언 패러디 봇물
‘전공의 처단’ 포고령에 웃었다는 윤석열·김용현에…“미친 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