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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더위와의 사투, 힘내라 고구마 순

포대 이용한 ‘수직 재배’ 실험은 그나마 순탄… 겨울 이겨낸 양파도 예년보다 상태 좋아
등록 2026-06-05 17:41 수정 2026-06-06 07:05

―경기 고양 편

겨울을 이겨낸 갓 수확한 양파가 싱그럽다.

겨울을 이겨낸 갓 수확한 양파가 싱그럽다.


‘유세차 2026년 5월9일 경기 고양 땅 난점마을 볕 좋은 밭에 낸 전남 해남산 고구마 순이 때 이른 고온과 따가운 햇살을 견디지 못하고 일주일 만에 말라 죽은 사연을 두어 자 글로써 고하노니, 도시농부가 키우는 여러 작물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고구마로대, 고구마 순은 한낱 작은 모종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도시농부의 정회가 남과 다름이다. 오호통재라, 아깝고 불쌍하다. (…)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하노라.’

해마다 낸 고구마지만, 올핸 순을 귀하게 구했다. 전남 해남에서 농사짓는 옛 밭장 후배가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러 오면서 손수 가져다준 해남산 꿀고구마 순이었다. 예년보다 면적을 넓혀 정성껏 순을 냈다. 옛 밭장은 포대를 엮어 흙을 가득 담아 고구마 ‘수직 재배' 실험에 나섰다. 올해는 순을 많이 수확해 고구마순김치를 맛보리라 다짐했다.

고구마 순을 낸 직후 이상고온이 시작됐다. 5월 중순에 한여름 더위라니. 불안하게 주말을 기다렸다. 5월16일 오후 텃밭에 들어섰다. 초록이 한결 짙어졌고, 땅은 깡말라 있었다. 방울토마토와 고추, 가지 등 열매채소가 앙상해 보인다. 고구마밭에 이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초록잎은 아예 가뭇없이 사라졌다. 말라붙은 줄기조차 몇 개 보이지 않는다. 여린 순이 이른 무더위를 버텨내지 못한 게다. 어쩌랴, 기후가 변하고 있는 것을. 그나마 옛 밭장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순을 낸 포대에 물을 들이붓듯 듬뿍 줘서 그런 듯싶다.

주중에 비가 내렸다. 혹시 말라붙은 고구마 순이 살아났을까? 기대를 안고 밭을 찾았다. 눈에 띄는 줄기가 조금 늘긴 했지만, 초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순을 다시 내야 할까? 갈수록 더워질 텐데 순이 버텨낼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옛 밭장은 태연히 “고구마는 죽은 것 같아도 다시 살아난다”고 했다. 그다음 주에도 주중에 비가 내렸다. 이틀을 퍼부었으니 달라졌을까? 고구마밭에서 연초록이 보이긴 했다. 하지만 많지 않다. 밭은 여전히 텅 비어 보인다. 땅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고구마 순에 연대의 인사를 건넸다.

비 듬뿍 맞은 양파는 모두 누워버렸다. 양파 줄기가 땅에 닿은 건 수확할 때가 됐음을 뜻한다. 한 주 정도 더 둘까? 밭장이 “그냥 오늘 수확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한다. 아이 주먹만 하게 자란 것도, 팔아도 될 만큼 제법 큰 것도 있다. 예년보다 상태가 좋다. 다들 신났다. “여기 양파는 왜 이렇게 마늘처럼 작지?” 함께 수확하던 동무가 말한다. 양파밭 한쪽에 심은 마늘 서너 개를 뽑아 들고 하는 소리다. “형, 아직 멀었소~.” 동무들이 다 같이 낄낄댔다. 마늘은 두어 주 더 키워 뽑기로 했다.

양파 거둔 빈 밭 두 고랑을 삽으로 뒤집었다. 거름기가 제법 남아 있어 따로 퇴비는 넣지 않았다. 한 고랑에 밭장이 총각무 종자 한 봉지를 쏟아부었다. 남은 한 고랑엔 씨 뿌려 키운 잎채소를 옮겨 심기로 했다. 아삭한 맛이 일품인 로메인, 양상추, 오크상추 등을 집중적으로 뿌리째 캐냈다. 양파가 겨울을 난 자리에 캐낸 잎채소를 호미 하나 간격으로 심었다. 판매용 모종보다 훌쩍 자란 녀석들이니 별다른 몸살 없이 자리를 잘 잡을 터다. 옮겨 심은 밭은 오후 서너 시부터 햇볕이 들지 않는다.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몇 주 더 잎채소를 즐길 수 있기를 기원하며 손을 씻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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