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15일 새벽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두 번째 체포영장이 집행되던 날,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은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찼습니다. 저 역시 새벽 4시30분부터 한남동에서 추위에 떨며 시민들과 함께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관저 입구 근처는 경찰이 통행을 막아 사람들은 오도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등 뒤로 누군가가 저를 밀어붙이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의원님들 지나갑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마치 시루에 빽빽이 들어찬 콩나물처럼 서 있던 시민들이 휘청이며 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곳곳에서 ‘누가 미느냐’는 말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니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나경원, 윤상현, 조배숙, 김기현 등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었습니다. 경찰은 그들을 아무 저항 없이 통과시켰습니다.
잠시 뒤 손에 커피를 든 젊은 남성이 경찰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저 ○○○ 의원실 보좌진입니다. 이 커피를 의원님께 전달해야 합니다.” 그는 단 한 명의 ‘의원님’을 위해 수많은 인파를 뚫고 커피를 사 온 것입니다. 추운 새벽부터 밖에서 떨고 있던 저로서는 그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무척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 보좌관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보좌관은 경찰에 국회 공무원증을 보여주며 “커피만 전달하고 나오겠다”고 다시 간청했지만, 경찰은 단호하게 출입을 막았습니다. “국회의원 본인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자 이 보좌관은 한 번 더 “(그러면) 경찰이 (이 커피를 의원님께) 대신 전달해달라”는 요청까지 했습니다. 경찰이 이마저 거부하면서 그 한 잔의 커피는 결국 ‘의원님’께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커피를 받으러 ‘의원님’이 대열 밖으로 나오셨다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던 듯 합니다. 그 시각 국민의힘 의원 40여 명은 관저 입구에서 성명을 발표하며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인간 띠를 만들어 관저를 지켰습니다. 결국 윤석열이 체포된 뒤인 오전 10시50분, 이들은 관저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자리를 떠났습니다. 몇몇 의원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경찰이 의원님들께 예외적으로 길을 터줬는데, 들어가서는 결국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한 꼴입니다. 경찰이 국회의원들에게 시민과 다른 특혜를 주고, 보좌진이 커피를 가져다드리려던 것이 ‘어서 가서 내란 범죄를 옹호하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국회의원으로서 받는 특권과 봉사는 국회의원 개인을 위한 게 아니라, 헌법 기관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2024년 12월3일 국회가 불법 계엄군에 의해 침탈당하던 상황도 방관했습니다. 여의도에 있으면서도 다수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계엄 해제를 위한 의결에 불참한 채 당사에 머물렀습니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극우 세력이 서울서부지방법원을 공격했을 때, 국민의힘 의원들 일부는 “마음은 이해한다”거나 “거병한 십자군”이라며 폭력을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행정부의 정당한 법 집행도 저지하고 입법부·사법부가 군대와 폭도들에 의해 공격당하는 상황조차 묵인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뱃지는 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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