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4일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6개 야당과 무소속 의원 191명은 ‘대통령(윤석열) 탄핵소추안’을 공동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한국 사회는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로 대통령 탄핵소추 문턱에 서게 됐다. 대통령제를 만든 미국은 235년 동안 대통령을 네 번 탄핵소추(탄핵기소)했으나, 탄핵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은 73년 동안 두 번 탄핵소추했고, 한 번 탄핵했다. 이제 세 번 탄핵소추하고 두 번 탄핵할 길이 열린 것이다.
2024년 11월 탄핵에 대한 책 ‘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펴낸 정치평론가 이철희 전 의원에게 탄핵과 계엄, 그리고 한국 정치에 대해 물었다. 이 전 의원은 “탄핵을 여야 간에 정치로 풀고, 형사처벌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당제가 돼야 타협과 합의의 정치가 발전한다. 현재와 같은 일당독식 제도로는 정치가 발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탄핵 사유가 되나.
“대통령이 담화에서 밝힌 내용은 계엄 사유가 안 되고 국회의 정치 활동은 금지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을 시도했으니 탄핵 사유가 된다. 정치적으로 보면, 친위 쿠데타였다. 권력자가 자기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의 물리력을 동원했다. 유신 쿠데타나 (1980년) 5·17 쿠데타와 비슷했다.”
12월3일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제1호 1번에서 발표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은 계엄령 아래서도 금지 대상이 될 수 없다. 헌법 제77조 3항에 따라 계엄령은 ‘정부(행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해서만 특별 조처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대통령에 대한 세 번째 탄핵소추를 할 수 있게 됐다.
“노무현 탄핵소추는 의회의 쿠데타 성격이었다. 나머지 두 건과 다르다. 박근혜와 윤석열 탄핵소추는 한국 대통령제의 위기로 인한 것이다. 대통령제는 정부의 삼권을 분립했는데, 대통령의 권한이 비대해져서 균형이 깨진 것이다.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고 다른 권한을 침해해서 이를 교정하는 수단으로 헌법에 탄핵 제도를 둔 것이다.”
—탄핵 제도는 그 결과가 극단적이고 그 과정이 소모적이다.
“우리가 경험한 탄핵은 주도하는 쪽이 모든 권력을 쥐고, 당하는 쪽은 모든 것을 잃는다. 특히 탄핵 이후 검찰이 개입해서 탄핵당하는 쪽을 처벌까지 했다. 그러니까 탄핵당하는 쪽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면 내각제는 총리가 불신임당하면 같은 당 안에서 후임자가 나오고, 미국도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부통령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우리도 탄핵을 여야 간에 정치로 풀고 형사처벌을 최소화해야 한다. 여당에 운신의 폭을 줘야 한다.”
—내각책임제의 불신임과 같은 부드러운 권력 교체 방법은 없을까.
“대통령제에서는 어렵다. 대통령제는 임기를 고정하는 제도이고, 그걸 바꾸면 대통령제가 아니다.”
—탄핵이 반복되는 이런 정치를 끝낼 수 없나.
“원천적으로 막는 방법은 없다. 지나치게 센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후보 선출 과정을 고민해야 한다. 윤 대통령처럼 갑자기 외부에서 준비 안 된 후보를 데려와선 안 된다. 정당 안에서 후보를 기르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당이 더 발전해야 한다.”
12월3일 비상계엄령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 뒤 45년 만에 다시 나온 것이다. 계엄이 선포되거나 해제되는 과정이 졸속적이고 불법적이었다.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서도 충분한 동의를 얻지 못했고, 선포 뒤 국회에 통고도 하지 않았다. 야당에선 이번 계엄을 내란 행위로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왜 계엄령을 선포했나?
“합리적으로 설명 안 된다. 윤 대통령이 정상이 아니다. 아마도 세계를 선과 악으로 나눠서 보는 특수부 검사의 태도가 아닌가 싶다. 나는 선이고 악이 창궐하는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검사들은 복잡하게 얽힌 세상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자신한테 반대하면 악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명색이 검찰총장 출신인데, 계엄령 선포 과정에서 법률 검토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계엄 선포의 요건과 절차에 하자가 있다. 민주주의를 배우거나 훈련받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검사들의 수사 포퓰리즘에 박수 쳐 준 결과다. 검사들의 간이 너무 커져서 괴물이 됐다. 이제 그 괴물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비정상적 행동에 ‘검사’라는 단어를 넣으면 많은 것이 이해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조국 사건 이후 우리는 검사들의 비정상 행동을 많이 봐왔다. 그런데 검사 집단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놓쳤고, 직전 검찰총장이 바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검사들이 왜 이렇게 됐나?
“제왕적 대통령처럼 검사들의 제도적 권한이 너무 크다. 그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검사에 대한 개혁 요구나 비판을 돌파해왔다. 이제 대통령 권력까지 장악하니 검사들의 온갖 폐해가 다 드러난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는 왜 검찰 개혁에 실패했나?
“노무현 정부 때는 대선 자금 수사로, 문재인 정부에선 탄핵, 적폐 청산 수사로 개혁이 헝클어졌다. 예를 들어 정치적 과정인 탄핵을 법률적 과정, 형사처벌로 만들어버렸다. 정치로 해결해야 할 일을 검사들에게 넘겨버렸다. 정치에 검사들의 수사를 동원한 결과다.”
—검찰의 수사-기소를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한층 강해졌다. 다음 정부나 정치권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일을 겪고도 검찰 개혁을 못하면 정치권이 없어져야 한다. 검찰 수사가 인권 침해적이고 불법적인 경우가 너무 많다. 피의 사실 유포하는 방식의 수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수사 관행을 쌓아야 한다. 한국이 그렇게 부패가 심각한 사회도 아니다.”
극단적이고 증오에 가득 찬 탄핵 정치를 넘어서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미국에서 들여왔지만, 군사 독재의 영향으로 제왕적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국회가 시작할 때마다 개헌 이야기가 나오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권한은 강하고 통제 방법은 부족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쳐야 하지 않나.
“국무총리를 활용하는 게 어떨까 싶다. 총리의 지위와 권한을 명확히 해서 대통령을 보좌하면서도 견제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무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고, 총리에게 실질적인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이나 해임건의권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정부의 일을 총리와 협의해서 처리하게 하자는 것이다. 현행 제도를 손보면 분권형 대통령제를 할 수 있다.”
—이번에 개헌을 통해 대통령 권한을 줄이고 국회 권한을 늘려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 윤 대통령을 탄핵한다면 개헌해서 전반적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 절호의 기회다. 예를 들어 행정부의 입법권을 없애고, 감사원은 국회 산하로 보내야 한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임명권도 조정해야 한다. 제도가 모든 원인은 아니지만, 고쳐야 할 제도가 있다.”
—왜 한국 정치에 윤석열 같은 사람이 나왔을까. 유권자가 잘못한 것인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정당과 언론의 문제가 크다. 정당에서 저런 사람을 공천해서는 안 됐다. 내부에서 좀더 후보를 걸러서 공천했어야 한다. 또 언론도 당파적 입장에서 벗어나 후보를 충분히 검증했어야 한다.”
—한국의 정당 정치가 취약하다.
“당장은 어렵지만, 다당제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회의원 전체를 비례대표로 뽑는 것이 가장 좋고, 적어도 현재보단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 다당제가 돼야 타협과 합의의 정치가 발전한다. 독일처럼 연정도 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일당독식 제도로는 정치가 발전할 수 없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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