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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 한국 ‘민주주의 복원력’에 탄복하다

외신들, 급변 상황 실시간 타전… ‘친위 쿠데타’ 실패 따른 탄핵·하야·수사 가능성 짚어
등록 2024-12-06 09:34 수정 2024-12-07 08:58
2024년 12월4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일간지 1면 머리기사가 모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채워졌다. 연합뉴스

2024년 12월4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일간지 1면 머리기사가 모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채워졌다. 연합뉴스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멀쩡한 민주국가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경찰이 국회의사당 출입을 통제하자, 국회의장과 의원들은 담을 넘었다. 헬리콥터와 장갑차가 등장하더니,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중무장한 특공대가 국회의장과 여야 각 정당 대표의 체포를 시도했다. 영화 속 괴담 같은 일이 현실로 펼쳐졌다. 전세계의 눈과 귀가 한국으로 향했다. 성난 시민들이 국회를 에워싸고 “대통령을 체포하라”고 외쳤다. 대통령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는 무위에 그쳤지만, 비상계엄 선포부터 해제 발표까지 6시간 남짓한 한국발 희비극에 인류가 울고 웃었다.

“한국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종북 세력’ 척결을 다짐했다.” 2024년 12월3일 밤 10시25분께 윤석열 대통령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자, 전세계 언론이 부리나케 한 줄 속보를 전했다.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군대가 나라를 장악하게 됐다는 소식에 세계가 경악했다. 로이터 통신 등은 담화문 내용을 따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를 장악한 야당이 종북 세력이며, 이들이 반국가 활동을 통해 정부를 마비시켰다고 주장했다”며 “그는 종북 세력을 척결하고 헌법이 정한 민주적 질서를 지키겠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전세계에 전파된 한국 민주화 투쟁사

이후 국회를 중심으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속보와 분석 기사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에이피(AP) 통신은 4·19 혁명(1960년)과 5·16 군사쿠데타(1961년), 12·12 사태(1979년)와 광주 민주화 항쟁(1980년) 당시 사진 자료와 함께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었던 계엄령의 역사를 소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한국이 35년 전 민주화된 이후 처음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88년 제6공화국이 들어서기 전까지 한국은 기나긴 권위주의 정권과 군사 독재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한국전쟁과 이어진 정치적 격변, 끊임없는 저항의 시대에 비상계엄은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비상계엄이 마지막으로 선포된 것은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독재자 박정희가 1979년 (10월26일) 암살된 직후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선포한 비상계엄은 역시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거머쥔 전두환이 이듬해인 1980년 (5월17일) 전국으로 확대했다. 전두환은 군대를 동원해 서울에서 약 250㎞ 떨어진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탄압했고,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목숨을 잃었다.”

경찰이 대형버스 3대로 국회 정문을 가로막았다. 헬리콥터가 연신 무장 병력을 국회 안으로 실어날랐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백척간두에 섰다. 미국 시엔엔(CNN)과 영국 비비시(BBC) 등 각국 방송과 통신사들이 앞다퉈 생중계를 시작했다. 수많은 시민이 국회로 몰려들었다. 본회의장으로 진입하려는 군병력에 국회 보좌진이 소화기를 쏘며 저항하는 사진이 전세계로 타전됐다. 그리고 12월4일 새벽 1시2분께 재적인원 190명 전원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전세계가 다시 한번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에 탄성을 터뜨렸다. 새벽 4시30분께 윤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공식 발표하자, 비비시 방송은 ‘공포와 분노, 그리고 승리: 한국을 뒤흔든 6시간’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활기찬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이 그리 머지않은 과거에야 권위주의 정권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잊을 때가 많다. 한국은 1987년에야 군사독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학생 황주예씨는 비비시에 ‘21세기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은 ‘한국도 북한같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얼마나 소름이 끼쳤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 윤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발표하자 국회의사당 밖에서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문이 박살 나고 유리창이 깨지는 등 국회의사당엔 지난밤의 상처가 남겨졌지만 한국인들은 자기들의 민주주의를 스스로 지켜냈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이 12월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한 생방송을 하고 있다. CNN 방송 화면 갈무리

미국 시엔엔(CNN) 방송이 12월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한 생방송을 하고 있다. CNN 방송 화면 갈무리


순간이 만들어낸 변화였다.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이 실행됐다면, 영락없이 군사독재로 회귀했을 터다. 아찔한 상황의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주한미국대사관은 12월4일 한국 거주 자국민에게 ‘긴급 지침’을 내리고, 비자 및 여권 인터뷰 등 일상 영사업무까지 취소했다. 대사관 쪽은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 해제를 발표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라며 “잠재적인 혼란을 염두에 두고 공공장소에 있을 때는 주변 환경에 주의를 기울이고 일상적인 안전 예방 조처를 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이어 “시위가 벌어지는 지역을 피하고 대규모 군중, 모임, 시위 또는 집회 근처에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평화롭게 진행되던 시위도 대립적인 분위기로 바뀌고 폭력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익살스러울 정도로 무능했던 친위 쿠데타”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렸다.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12월4일 이렇게 지적했다.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벌어진 학살은 한국 현대사를 규정하는 주요 사건 중 하나다. 올해 노벨문학상 작가 한강의 작품 ‘소년이 온다'에 당시 상황이 자세히 담겨 있다. 하지만 2024년을 사는 한국인들은 광주 학살을 먼 과거의 사건으로 여긴다. 대단히 비극적이지만, 아주 오래전 벌어진 일로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불행했던 역사는 반복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가 했던 모든 일이 그랬듯, 윤석열 대통령은 익살스러울 정도로 무능력하게 ‘친위 쿠데타’를 시도했다.

무릇 독재자를 꿈꾸는 사람이면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쿠데타 매뉴얼’이라도 따라야 했다. 텔레비전 방송을 통제하고, 인터넷은 차단하고, 야당 지도부를 체포하고, 도심 전역에 검문소를 설치해야 한다. 12월3일 밤 한국에선 이 모든 일이 이뤄지지 않았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자유롭게 국회의사당 주변을 취재했다. 야당 지도자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민들에게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저항하라고 촉구했다. 주요 야당 지도자 체포를 위해 특공대가 동원됐지만, 국회의 표결을 막기엔 너무 늦었다. 동원된 장병들은 무력 사용을 주저했고, 비무장 시민들이 그들을 밀쳐냈다.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2027년으로 예정된 잔여 임기를 모두 채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에게 즉각 사임하지 않으면 탄핵할 것이라고 밝혔다. 탄핵을 위해선 국회 300석 가운데 3분의 2 의석이 필요하다. 여당 의석이 108석이니 약간의 안전판을 확보한 상태지만, 대통령의 쿠데타 시도 여파로 적어도 8명은 이탈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미 계엄 해제 요구에 여당 의원 18명이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윤 대통령이 탄핵이란 치욕을 당하느니 자진 사임할 가능성도 있다. 사임하더라도 수사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전직 대통령을 수사해 수감한 빛나는 전통이 있다. 앞선 3명의 대통령 가운데 2명이 퇴임 뒤 감옥에 갔다. 이명박과 박근혜, 두 사람 모두 보수파였다.

이번 사태가 어떤 식으로 끝나든 윤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는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환기하는 사건으로 기억될 게다. 40여 년 만에 처음 겪게 된 비상계엄 상황을 한국은 국회의 표결이란 민주적 방식으로 불과 6시간여 만에 마무리했다. 사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총알 한 발 발사되지 않았다. 오발탄 한 발로도 역사의 물줄기가 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적 규범의 힘이 상황을 압도했다. 저항하는 시민이 이를 물리적으로 확인시켰고, 군대가 동원됐음에도 국회는 차분하게 표결로 상황을 마무리했다.”

외교·안보 영역에 미친 심대한 악영향

실패한 ‘친위 쿠데타’의 파장은 외교·안보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12월3일(현지시각) 한국과 미국이 12월4~5일 워싱턴에서 열기로 했던 제4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제1차 핵협의그룹 도상연습(TTX)이 연기됐다고 밝혔다. 핵협의그룹은 2023년 4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워싱턴선언에 따라 만들어진 회의체로, 북한의 핵 확장 억제를 강화하기 위해 만든 고위급 상설협의체다. 회의와 연습이 언제 재개될지도 불분명하다. 미국 내부에선 “윤 대통령의 ‘자충수’로 한·미·일 3국 협력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그간 윤석열 정부는 ‘굴욕 외교’ 논란까지 불사하며 ‘한·미·일 3국 협력’에 집착해왔다. 뉴욕타임스는 12월4일 이렇게 보도했다.

“미국과 일본의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왜 이토록 충격적으로 권위주의적인 행태를 보였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윤 대통령이 만들어낸 국내 정치적 혼란은 갈수록 커지는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한·미·일 3국 협력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정치적 불확실성에 더해 내각 총사퇴와 대통령 탄핵 추진 등 한국의 혼란상이 더해졌다. 12월3일 전까지만 해도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성공으로 만들어진 워싱턴의 예측 불가능성을 가장 크게 우려했다. 이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이 한·미·일 3국 협력을 위태롭게 만드는 유일한 원인이 아니게 됐다. (…) 윤 대통령의 자해성 행태와 (최근 선거 패배와 여론 악화로) 취약해진 일본 정부의 지도력 탓에 중국에 맞서기 위한 미국의 두 중요 우방국이 동시에 힘을 잃게 됐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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