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 상황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이를 용납하겠나. 우리 군에서도 따르겠나. 안 따를 것 같다. 솔직히 계엄 문제는 시대적으로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무 우려 안 하셔도 될 것 같다.”(2024년 9월2일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
“(계엄령은) 근거도 없고 현실성도 없고 오로지 상상에 기반한 괴담 선동이다.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 방탄, 대통령 탄핵 정국 조성을 위한 선동 정치의 연장선에 있다. 당파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나라를 뒤흔드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민주당식 괴담 정치를 당장 중단하라.”(2024년 9월3일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에서 계엄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심지어 그 계엄을 대비하는 법을 발의한다고 한다. 외계인 대비법을 만드는 것과 똑같다. 이런 식의 황당한 이야기를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190석 가까이 가지면 이런 황당한 짓을 해도 괜찮은 건가.”(2024년 9월12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2024년 9월 야당에서 제기된 계엄령에 대한 우려를 일축하는 국방부 장관 후보자, 여당 원내대표와 대표의 발언들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석 달 뒤인 2024년 12월3일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전후로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계엄을 선포해도 군이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계엄령 선포를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계엄군 동원과 포고령 발표 등을 주도했다. 괴담이라고 비판했던 추경호 원내대표는 계엄령을 두고 “(대통령이) 고심하며 쓴 카드”라며 옹호했다. 동시에, 12월4일 새벽에 열린 국회의 계엄령 해제 요구 결의 때 국민의힘 의원들을 국회 본회의장이 아니라 당사로 불러 모았다. 계엄 대비법을 ‘외계인 대비법’이라고 했던 한동훈 대표는 “(대통령) 탄핵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현실이 된 계엄령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충암고 선배인 김용현 경호처장이 2024년 8월12일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부터다. 김용현 전 장관은 윤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22년 3월15일 국방부를 찾아가 4월 초까지 국방부 청사를 비우라고 요구한 사람이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였고 그는 인수위원회의 대통령실 이전 태스크포스의 부팀장에 불과했다. 경호처장이 된 뒤엔 행사장에서 윤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현직 국회의원과 카이스트 대학원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등의 입을 틀어막고 끌어내기도 했다. 그는 입틀막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 때도 똑같이 했다”며 사과를 거부했다.
이런 김용현이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계엄령 선포가 우려된다는 말을 가장 먼저 꺼낸 사람은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8월14일 이 의원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 지명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가결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을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계획의 일환은 아니냐”고 지적했다. 다음날인 8월15일 김병주 민주당 의원(예비역 육군 대장)도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만약 윤석열 탄핵으로 가는 상황이 오면 계엄을 선포한다든가 그런 우려가 있다. 친정 체제가 완전히 구축되면 그런 것들을 쉽게 결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김병주 의원은 김용현 전 장관 외에 군 정보를 다루는 여인형 방첩사령관(옛 보안사령관), 북한 정보를 다루는 박종선 777사령관이 모두 충암고 동문임을 지적했다. 1979년 12·12쿠데타 당시 보안사령관은 전두환이었고, 후임자는 노태우였다. 이번 계엄령 사태 뒤 김병주 의원은 “예상대로였다. 계엄 건의를 윤 대통령의 충암고 선배 김용현이 했고, 충암고 후배 여인형 사령관이 있는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될 예정이었다. 계엄 때는 합동수사본부에서 모든 수사, 기소, 재판을 지휘한다. 이번에 국회를 장악했으면 2단계로 군 투입을 확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엄 선포 우려는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으로 한층 증폭됐다. 그는 8월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정권 흐름의 핵심은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는 것이 저의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이후 김용현 장관이 2024년 초부터 계엄령 선포를 모의했다는 의심도 제기됐다. 그는 2024년 3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경호처장 공관에 3명의 군 핵심 사령관을 불러 식사했다. 서울 방어를 맡은 이진우 수방사령관, 특수부대를 맡은 곽종근 특전사령관, 충암고 후배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이었다. 실제로 이번 계엄 선포 때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딴지일보 김어준 대표의 집과 사무실 등에 투입된 600여 명의 병력은 전원이 수방사와 특전사 소속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9월1일 한동훈 대표와의 회담에서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걸 막기 위해 계엄 선포와 동시에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옆에 있던 한 대표는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민주당은 9월20일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민석 등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을 보면, 전시가 아닌 때 정부가 계엄을 선포하려면 국회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다. 또 계엄 선포 뒤 계엄 상태를 유지하려면 72시간 안에 반드시 사후 동의를 받도록 했다. 또 국회의원이 체포, 구금됐더라도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의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들은 9월20일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 국방위원들이 ‘서울의 봄 4법’을 발의했지만, 이것은 ‘이재명의 봄'을 위한 법안이다. ‘찐명’ 친위부대가 계엄을 빙자해 벌이는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이 법 개정이 이뤄졌다면 12월3일 계엄령은 선포될 수 없었다. 아직 이 법률은 국방위에 머물러 있다. 9월 계엄법 개정 발의에 참여한 민주당 부승찬 의원(전 국방부 대변인)은 “사전에 국회의 동의를 받게 하거나 계엄을 유지하기 위해 국회의 사후 동의를 받게 하는 것은 필요하다. 지난번엔 국힘의 반대로 국회에서 처리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계엄의 위험이 현실화한 이젠 패스트트랙에 올려서라도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계엄령 선포는 김용현이라는 인물을 통해 예견됐고, 현실화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계엄령 선포를 윤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계엄사령관 대신 국회에 병력 투입을 지시했으며,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를 박안수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에게 가져다줬다. 계엄령이 해제된 뒤에는 국방부 관계자들에게 “중과부적이었다”는 말을 했다. 중과부적은 수가 적어 싸울 수 없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계엄군 병력을 더 많이 동원할 수 있었다면 이번 계엄령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김용현 전 장관은 12월4일 오후 “국민들께 송구스럽다.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야당은 김 전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으나, 12월5일 윤 대통령은 그의 면직을 재가했다. 12월5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그를 긴급 출국금지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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