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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이 아니라 민주당이 패배했다

다섯 번째 도전에서도 패배한 김부겸, 그러나 45.05%는 지역주의 균열과 경쟁정치의 가능성을 남겨
등록 2026-06-05 00:30 수정 2026-06-05 10:44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2026년 6월4일 새벽 대구 달서구 선거사무소에서 낙선 인사를 마치고 지지자들과 포옹하고 있다. 대구=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2026년 6월4일 새벽 대구 달서구 선거사무소에서 낙선 인사를 마치고 지지자들과 포옹하고 있다. 대구=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지난 유세 기간 동안에 대구 곳곳을 누비며, 정말 많은 시민을 만났습니다. 그 정말 절규에 가까운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정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아…. 정말 우리 대구가 너무나, 너무나 힘들구나….”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2026년 6월1일 감삼역(대구 도시철도 2호선역) 앞에서 유세하면서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떨궜다. 한동안 얼굴을 들지 못했다. 눈물을 애써 꾹꾹 누르고 있었다.

“대구 시민들 속에서 터져 나오는 그 간절하고, 대구 청년들의 그 애절함 때문에, 제 뼛속 깊이 ‘이대로는 안 된다! 내가 몸을 갈아서라도! 이 대구를 살려야겠다’는 그런 절박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와 함께 해주십시오, 시민 여러분!”

다음 날인 6월2일 대구의 중심가인 동성로에서 마지막 유세를 할 때도 김부겸 후보는 주변을 가득 메운 시민들에게 온몸으로 호소했다. “대구의 미래만 생각해 주세요!” 주먹 쥔 그의 손은 부르르 떨렸다.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바로 대구 시민 여러분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대구의 절규를 듣다

전국 시·도 가운데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지역에서 새로 창출된 부가가치 총합을 그 지역 인구수로 나눈 지표)이 33년째 최하위인 대구. 지난 10년간 약 13만 명의 청년이 떠난 대구. 이처럼 활력을 잃은 대구를 몸이 부서지더라도 바꾸고 싶다는 그의 간절함, 대구의 변화가 나아가 대한민국을 바꾸는 힘이라는 그의 신념은 그 뿌리가 깊고 단단하다.

“내가 군포에서 4선을 하면 그건 월급쟁이다.” 2000년부터 경기도 군포에서 국회의원 3선을 한 김부겸은 뒤늦게 자각했다. 1991년 민주당에 입당하며 제도 정치권에 정식 입문한 뒤로, 정치를 오래 하면서 본인도 모르게 가치 추구를 게을리 한 자신을 돌아봤다. 직장 다니듯 국회의원 노릇 하기가 부끄러웠다. 진영 논리에 빠진 한국 정치에서 실종된 공존과 상생, 화합, 통합의 가치를 실현할 방법을 고민했다. 누군가가 ‘김부겸의 정치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김부겸의 정치였다.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정치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도록 넉넉한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당연히 그런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 사회 변혁을 위한 거창한 담론을 생성하거나 캠페인의 주체는 아니어도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갖고 지금까지 정치를 해 왔습니다.” 김부겸 후보가 책 ‘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김부겸·김태훈 지음, 더난출판 펴냄, 2015)에서 한 말이다.

‘통합’은 획일도 아니고, 갈등의 부재도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진 사람이 싸우더라도 합의할 수 있는 토대, 함께 설 수 있는 토대가 있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김부겸 후보가 추구한 통합이다. 그 가치를 실현할 방법을 고민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2026년 6월2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마지막 유세를 마치고 거리를 걸으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구=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2026년 6월2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마지막 유세를 마치고 거리를 걸으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구=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소명으로서의 정치

그가 찾은 답은 대구였다. 그가 초중고교(대구초-대구중-경북고) 학창 시절을 보낸 지역이자, 민주당을 싫어하는 보수 정당세가 지배적인 지역. ‘지역주의야말로 그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 나아가 공동체의 앞길을 가로막는 암 덩어리’라는 것이 김부겸 후보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국가 자원의 배분율이 공정해지려면 특정 지역을 특정 정당이 독점하지 않아야 합니다. 통 큰 지원을 받으려면 여당도 주려고 하고, 야당도 주려고 해야 합니다. (…) 나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 아주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당신들이 선택한 작은 정치적 다양성이 훨씬 큰 기회로 돌아온다’라고 말입니다. 분명히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

대구에서 네 번 출마(2012년 총선,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 2020년 총선)해서 세 번 떨어졌다. 2016년 총선 때 대구 수성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일이 유일한 승리다. 선거를 단순히 ‘승패’의 관점에서만 보면 초라한 성적표일 수 있다. 그러나 김부겸 후보는 성적에 연연하지 않았다. 직업 정치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을 조금이라고 낫게 만들고 싶다는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하고 싶었다.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 시절 처음 접했던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마지막 부분을 가끔 되새겨본다고 자서전 ‘정치야, 일하자’(비타베아타 펴냄, 2019)에서 밝혔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을 이루고자 몇 번이고 되풀이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고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김부겸 후보는 그 소명을 안고 다시 대구에 왔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앞줄 가운데)가 2026년 6월3일 저녁 대구 달서구 선거사무소에서 지상파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대구=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앞줄 가운데)가 2026년 6월3일 저녁 대구 달서구 선거사무소에서 지상파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대구=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다시 대구 시민 곁으로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6월2일. 김부겸 후보는 아침 7시40분께부터 대구 지하철 1·2호선 환승역인 반월당역 12번 출구 앞에서 선거운동을 했다. 유세차 단상에 올라 반월당 사거리를 지나는 대구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1시간 내내 팔을 내릴 틈이 없었다. 허리를 펼 여유도 없었다. 단상 바닥에 떨어진 장갑을 뒤쪽으로 치우기 위해 상체를 아래로 굽혔다가 얼른 몸을 폈다. 한 사람에게라도 더 인사하기 위해서였다. 지칠 법도 했다.

그럴 때마다 대구 시민들은 힘을 실어줬다. 승용차를 타고 가던 시민들은 조수석 또는 뒷좌석 창문을 열고 “김부겸! 김부겸!” “김부겸 화이팅!”을 외치며 활짝 편 손을 흔들거나 ‘엄지 척’을 보냈다. 한 택시기사는 김부겸 후보를 “시장님!”이라고 불렀고, 한 시내버스 기사는 그의 앞을 지날 때 경적을 울리며 인사했다. 출발 신호 대기 중에 차 운전석 밖으로 나와 김부겸 후보를 향해 “힘내세요!”라고 외친 시민도 있었다. 대구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는 서아무개(61)씨는 후보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유세 활동을 하며 이 장면을 모두 지켜봤다.

“(문재인 정부 때 국무)총리까지 지낸 분인데, 저라면 (이번 선거) 안 나왔을 것 같아요. 집에 가만히 있고 편하게 밥 먹고 잘 살 수도 있는데 뭐하러 나오겠어요. 그런데 대구 경제가 이렇게 낙후되고 너무 살기 힘드니까. (김부겸 후보가) 자길 희생하는 거죠, 대구를 위해.”

30대 직장인 이정민씨는 침체한 대구 경제의 현실을 눈으로 목격하고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다. “엄청 많이 느끼는 게 제 친구들, 제 또래만 봐도 취업이나 기회를 찾아서 서울, 경기 쪽으로 (절)반은 간 것 같아요. 저도 (직장을) 옮기려고요. 친구 중에 서울에 있는 직장을 다니다가 다시 대구로 온 친구가 있어요. 결혼해서 온 친구인데,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엄청 오래 했는데도 대구에 와서 ‘진짜 직장이 없다. 여기는 자영업자 아니면 공무원 둘밖에 답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중단된 신공항(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 그 첫 삽을 뜨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재원(1조원) 마련, 기존 대구 군공항(K2)과 대구국제공항 부지(주변 개발 예정지를 합하면 최대 450만평 규모)에 삼성·에스케이(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과 리벨리온·퓨리오사AI 등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유치, 이를 위한 세제 혜택 제공. 이렇게 해서 대구를 살리고 대구의 지역 소멸을 막겠다는 김부겸 후보의 책임감과 희생정신은 부채의식에서 출발한다.

“나를 움직인 것은 ‘부채의식’입니다. 아무튼 나는 국회의원도 했고 정치인으로 살아남았지만 꿈을 접고 응어리를 풀지 못한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가슴 한가운데 묵직한 돌덩어리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남은 삶에 대한 어떤 책임, 그러니까 ‘살아남은 자의 책임’이 나를 움직이게 한 겁니다.”(‘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

“정치인 노무현은 싸우지 않고는 공존으로 넘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꿰뚫어보았다. 싸울 때도 항상 가치 실현을 위해 싸웠다. (…) 싸울 때 그는 질풍노도였다. 나도 그 바람의 한 줄기가 되고 싶었다. 대구로 내려간 것은 결국 그 부채의식 때문이다. (…) 그가 벌였던 지역주의와의 싸움에 함께하기 위해 따랐고(…).”(‘정치야, 일하자’)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2026년 6월2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전선야곡을 부르다 눈물을 훔치고 있다. 대구=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2026년 6월2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전선야곡을 부르다 눈물을 훔치고 있다. 대구=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변화를 갈구하는 시민들

물론 대구 시민 235만 명 중에 국민의힘 정치인 지지자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대구 시민이 김부겸 후보를 지지하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일단 대구니까. 그러고 또 사실, 이재명이가 사실 대통령이 되긴 했지만, 솔직히 대통령이 돼선 안 될 사람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어. (지방)선거 초만 하더라도 내가 ‘김부겸 나온단다. 총리까지 한 사람이 시장 되면 대구시가 좋아지지 않겠나’ 말하면 사람들이 ‘그것도 맞는 말이다’ 이래 들어줬다고. 그런데 시간이 자꾸 가면서 ‘대구는 할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이래 되고.” 대구 달성군에 사는 박아무개(73)씨의 말이다.

민주당 정치인에게 ‘빨갱이’라는 말을 하고, 선거철에 파란 옷을 입고 다니는 민주당 정치인을 경멸하듯이 쳐다보는 시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김부겸 후보는 간절히 외쳤다. 3월30일 대구 중구 2·28 기념중앙공원에서 대구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할 때다.

“국민의힘은 대구 시민 무서운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대구 경제에 관심도 없다가, 무슨 일만 있으면 서문시장에 나타나고, 아쉬울 때만 대구를 찾습니다. 정작 대구가 아쉬울 때는 모른 척하거나 고개를 돌립니다. 말로만 ‘보수의 심장’입니다. 심장이 꺼져가는 데, 어디 청심환 한 번 구해온 적 있어요? (…) 국민의힘을 확 바꾸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번에 한 번 국민의힘을 안 찍어보시면 됩니다.”

이 말은 대구 달서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박종성(49)씨 가슴을 크게 울렸다. “정말로 한 당만 찍어주는 곳이잖아요, 대구가. 그게 정통 보수이고 괜찮은 보수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거죠. 그 부분을 (김부겸 후보가) 탁 때려줬어요. ‘보수를 사랑하는 대구 시민들이 진정한 보수 정당을 원한다면 한 번은 바꿔봐라. 이번에 나를 한 번 써봐라. 그래야 저쪽에 있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린다. 그래서 민주당과 건강하게 경쟁하고, 그러면 정치가 발전한다.’ 이 말씀이 많이 와 닿았어요.”

“보수의 심장 대구를 지켜달라.” 12·3 내란 때 비상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로 재판을 받고 있는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당선인이 5월3일 선거사무소 개소식 때나, 5월27일 동구 방촌시장 유세 때나 자주 한 발언이다. 이건 보수 정당 유지를 목표로 대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대구의 변화와 발전을 목표로 하는 말이 아니다.

“온실 속 화초처럼 (국민의힘 소속이라는 이유로) 계속 연임하고, 중앙당 공천만 받으면 당연히 당선되는 사람들이니까 전투력이 없어요. 경쟁이 없으니까요. 이게 대구 경제를 침체시킨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제가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게 저희 자식 세대들, 지금 중고등학생들 이런 친구들이 무조건 ‘인(In) 서울’ 대학을 가지 않으면 자기 인생은 ‘루저’(Loser)가 된다고 생각해요.” 대구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김희병(48)씨의 말이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2026년 6월2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마지막 유세를 마치고 지지자들을 향해 큰 절하고 있다. 대구=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2026년 6월2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마지막 유세를 마치고 지지자들을 향해 큰 절하고 있다. 대구=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김부겸이 한 번 써먹으라 이기라”

대구 땅에서 땀과 눈물을 흘린 정치인이 김부겸 후보만은 아니다. 그가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전에 대구에 터를 잡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현실 정치에 뛰어든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김부겸 후보는 든든한 선배였다. 2018년 지방선거(대구 북구의회 나선거구 의원)와 2024년 총선(대구 북구갑 국회의원) 출마 경험이 있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구 시의회 비례대표 후보(1순위)로 출마한 박정희(56) 후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처럼 대구에서 활동하는 민주당 정치인들은 많이 위축돼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좋은 분들이 다 떠나세요. 여기에서 못 버티는 거죠. 아무리 노력해도 지지율 차이가 너무 나니까. 저도 선거를 치를수록 자신감이 떨어지는 거예요. ‘내가 이 지역에서 정치를 계속할 수 있을까?’ 너무 힘들거든요. 그런데 김부겸 총리님이 오셔서, 저희한테는 정말 천군만마인 셈이죠.”

박정희 후보는 김부겸 후보가 가진 힘을 6월2일 동성로 유세 현장에서 실감했다. “깜짝 놀랐어요. 제가 선거운동할 때는 고개를 끄떡도 안 하시고 눈길도 안 주신 분들이 오신 거예요. ‘아니, 저분이 여기를 왔다고? 어떻게 저분까지 오신 거지? 어떻게 마음을 돌리셨지?’ 너무 놀랐어요. 당직 생활을 하면서, 또 북구의원을 지내면서 만난 협회장이랄지 지역 유지들이 있는데, 그분들이 동성로에 다 나오셨더라고요.”

김부겸 후보가 국민의힘 독점을 깨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부겸이라는 한 사람이 대구에서 당선한다고 세상이 확 바뀐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후배들이 성장하기 위한 객관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 내가 이렇게 도전해야, 비록 중간에 좌절하게 되더라도 누군가 내가 이룬 성과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

김부겸 후보는 마지막 유세 때 그간 선거운동을 하면서 만난 많은 얼굴을 떠올렸다. ‘대구 좀 꼭 좀 살려달라’는 시장 상인들, ‘대구에 계속 살고 싶어요’, ‘일자리 좀 많이 만들어 주세요’ 울먹이는 청년들, 유아차에 곤히 잠든 아이를 보여주며 ‘아이가 살아갈 미래를 위해 꼭 당선돼야 한다’고 제 손 잡는 아기 엄마, ‘대구에 와줘서 고맙다’는 시민들…. 그는 대구 시민들이 자신을 써먹길 바랐다. “이번에는 필요하잖아요. 써먹을 수 있잖아요!” “이번 기회에 김부겸이 한 번 써먹으라 이기라.”

그 말에는 30여년의 기다림이 묻어 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정계에 복귀한 디제이(DJ), 즉 김대중 당시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이 민주당을 쪼개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 일은 김부겸 후보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어떻게 하면 야권을 살리고 정권 교체를 할지 고민할 때인 1997년 김부겸 후보는 정치 선배인 ‘노무현’, ‘유인태’, ‘원혜영’ 등과 서울 강남에 고깃집을 차린 적이 있다. 민의도 수렴하고 부족한 정치자금도 조달하기 위함이었다.

가게 이름은 ‘하로동선.’ 여름의 화로, 겨울의 부채다. ‘때가 되면 다시 쓰임새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재명 대통령 임기는 4년이 남았고, 민주당은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한 집권여당이다. 지방재정에서 중앙정부가 주는 지방교부세와 국고보조금 등 의존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에 달한다. 대구 시민이 김부겸 후보를 써먹을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다만 그 기회를 살리고 싶었던 최종 유권자 비율은 45.05%였다. 53.92%의 유권자는 추경호 당선인을 찍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2026년 6월4일 새벽 대구 달서구 선거사무소에서 낙선 인사를 하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2026년 6월4일 새벽 대구 달서구 선거사무소에서 낙선 인사를 하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

6월4일 새벽 2시27분께 김부겸 후보가 지지자들이 모여 있던 대구 달서구 선거사무소 2층에 들어왔다. 지지자들은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김부겸 후보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이 제게, 제게 걸어주신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 선거 기간 동안 저를 믿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 개인의 패배이지, 변화를 열망하는 대구 시민 여러분들의 패배가 아닙니다. 좌절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 우리 대구에 경쟁이 벌어지고, 여야가 서로 시민께 잘 보이려는 노력을 하는 서비스로서의 정치의 가능성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저와 끝까지 경쟁해오신 추경호 후보의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김부겸 후보는 어려운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왔다. 단단한 널빤지를 뚫으려는 그의 헌신은 많은 대구 시민을 움직였다. 불가능한 것을 이루고자 몇 번이고 되풀이해 노력하는 김부겸 후보가 없었다면 45.05%의 득표율은 나오지 않았다. “난 (김부겸 후보 득표율이) 30~40%대만 나와도 성공했다고 봐. 대구 지역 정치인들이 좀, 생각이 좀 안 바뀌겠나.” 박아무개씨의 말이다. 대구 시민 마음에 박힌 김부겸의 정치는 끝나지 않았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2026년 6월2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지지자들이 모인 가운데 마지막 유세를 펼치고 있다. 대구=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2026년 6월2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지지자들이 모인 가운데 마지막 유세를 펼치고 있다. 대구=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대구=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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