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령 발동이 무리한 일이고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엄밀하게는 합법적인 틀 안에서 이뤄졌다.”
2024년 12월3일 밤, 윤석열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은 ‘비상계엄령’ 소동으로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고도 이튿날 외신과 한 인터뷰에서 “합법적으로 진행돼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윤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의 위법·위헌성과 절차적 정당성 문제를 지적한 것에 대한 답이었지만 국민은 혼란스러웠다. 국민이 두려운 건 ‘불법적 계엄’이 아닌, 계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국민은 민주주의 성취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지만 이번 윤석열의 계엄으로 그 자부심은 일거에 무너졌다. ‘법과 절차를 지키기만 하면’ 이런 (법도 아닌) 계엄령이 선포돼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을 수 있는 가능성을 45년 만에 목도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과 진보 성향의 법학자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의 역사적 퇴보를 막기 위해 계엄 선포 과정을 민주화하고, 더 나아가 계엄령 제도 자체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많은 국민이 거리로 나와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것이었지만, 박근혜 정부의 군대가 당시 국민의 ‘촛불집회’를 소요사태로 규정하고 비상계엄을 준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줬다.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고도 하지만, 국민은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군대가 등장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몸서리치게 두려웠다.
이후 논의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당시 계엄을 검토한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자기 권한도 아닌데 계엄을 준비해 월권을 행사했다는 것에 비난의 초점이 맞춰졌다. 검찰은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내란예비·음모 혐의에 대해선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하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만약 기무사가 아니라 2년에 한 번 ‘계엄실무편람’을 펴내는 합동참모본부가 계엄을 검토했다면 문제가 없었던 걸까? 12월3일 밤처럼 국방부의 건의를 받아서 대통령이 직권으로 선포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나? ‘계엄’은 전시·사변과 같은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군사적인 필요성, 공공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대통령이 선포하는 것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전시는 적과의 교전 상태를 의미하고, 사변은 폭동 등 국내의 소요 사태를 의미한다.
전쟁이라는 계엄 선포 조건은 비교적 명확해 보이지만, 사변은 모호하다. 조 전 사령관이 검토한 (계엄)‘대비계획 세부자료’에선 ‘계엄 선포 결심 조건’으로 ‘과격·폭력시위’ ‘폭동’ 등이 있으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과격한 시위와 폭동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데, 이는 결국 계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계엄 선포 주체의 판단에 맡겨져 있음을 의미한다.
2024년 윤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을 일방적으로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정당의 활동을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행위’로 규정하면서 계엄을 선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수의 국민이 동의하지 않아도, 대통령 한 명의 판단만으로 언제든 계엄령이 선포될 수 있다.
계엄은 선포 조건뿐만 아니라 실행 과정에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요소가 가득하다. 2018년 합동참모본부가 펴내고 공개한 ‘계엄실무편람’을 보면 “계엄임무수행군의 무기 사용은 관계 법령과 계엄 선포시 하달되는 계엄사령관의 훈령에 의한다”고 명시할 뿐 아니라 “계엄임무수행군이 치안 질서 유지, 불법 시위 단체 행동의 진압 등 국민과 접촉하는 분야에 있어서의 무기 사용에 관하여는 계엄사령부에서 하달하는 무기 사용에 관한 훈련 지침에 의한다”고 밝힌다. 훈령과 지침만으로도 계엄군은 국민에게 총을 겨눌 수 있다.
이 때문에 계엄 상황에서 계엄사령관의 권력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 권력과 비교되지 않고, 전제왕권에 비견된다. 국민이 선출하지 않지만 무한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군부독재의 출현을 ‘법’과 ‘제도’로 포장한 것이 계엄의 본질이다.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계엄의 본질은 ‘비상 상황’ 또는 ‘예외 상태’를 빌미로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행위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과의 대치 상황, 전쟁 우려 등을 이유로 계엄을 방치해왔다. 그러나 ‘윤석열 계엄’에서 보듯이 역사 속 계엄은 국민을 ‘빨갱이’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고 학살하는 형식적 법 근거로 오용된 경우가 더 많았다. “계엄을 선포해서 국민과 싸우겠다”거나 “국민을 탄압해서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자기 선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에서 처음 선포된 계엄도 그랬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였던 10월22일 김백일 당시 5여단장이 전남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을 선포했다. 여수군과 순천군에서 발생한 국민 일부의 반란을 진정시킨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당시는 계엄법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김 단장의 계엄 선포 3일 뒤인 10월25일 국무회의를 열어 계엄 시행을 선포했다. 법적 근거로는 합위지경(비상계엄에 해당하는 일본 계엄령 제2조 2항)이 인용됐다. 같은 해 11월에도 제주 4·3 사건을 이유로 계엄이 선포됐는데, 이때도 송요찬 9연대장이 10월에 임시로 계엄을 선포해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가 사후적으로 군사행위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계엄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일본 계엄령을 가져오다보니, 계엄법에는 일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일본 헌법에서 계엄을 규정하는 조문인 합위지경은 공소와 상고를 인정하지 않는데, 국내에서도 계엄이 발령되면 일반 국민도 각 지방에 설치되는 특별법원에서 군사재판을 받을 수 있고, 사형 미만의 형이 선고되는 재판은 ‘단심’으로 끝날 수 있다. 재판을 청구하고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침해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대한민국이 이처럼 불행한 역사 속에서 계엄을 10차례나 경험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비이성적인 대통령이 ‘황당한 계엄’을 선포해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침착할 수 있었던 이유다.
확실히 2024년의 윤석열 계엄은 이상했다고 역사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김득중 성균관대 강사(전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한국 역사 속에서 계엄은 압도적인 병력을 투입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국회의원들을 제압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며 “과거보다 교통이 크게 발달해 빠른 시간 안에 야당 의원들이 국회에 모였고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가결시킨 것도 눈에 띄었다”고 평가했다.
국회가 헌법 제77조 5항(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을 행사해 계엄 해제를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의 계엄해제권을 헌법에 명시한 것은 재임 기간 4차례 비상계엄을 선포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유신헌법이다.
국민의 높아진 인식과 헌법에 명시된 계엄해제권으로 2024년 12월 윤석열 계엄은 6시간 만에 끝났지만 여전히 국민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계엄법과 계엄제도가 남아 있는 한 이 불안감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원칙적으로 군대는 정치에 개입할 수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계엄’이라는 예외적인 경로를 통해서 군대는 정치에 개입하고 국민의 기본권까지도 자의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 이렇게 위험한 계엄을 지금처럼 유지하는 것이 맞을까?
역사 속에서 계엄을 손보거나 바꿀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기무사가 계엄을 검토한 것이 알려졌을 때도 계엄 제도를 손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계엄 관련 제도는 그 이후로도 국방부와 일부 국가기관에서 폐쇄적·자의적으로 관리했다. 계엄 자체를 수정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 대가로 2024년 우리는 다시 한번 윤석열 계엄을 마주했다.
학계와 법조계 안팎에선 계엄 자체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고민하고,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핵심은 민주주의다.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역사사회학)는 “현행 프랑스 계엄법에서도 선포권 자체는 대통령에게 있지만 행정부 수장이 동의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계엄을 선포할 수 없다”며 “군사적 긴급 상황이 아니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기 위해 국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다든지 의사결정을 보다 민주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승만 정부가 인용했다고 언급한 일본의 계엄은 1791년 제정된 프랑스 계엄법을 본뜬 것이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통제장치 없는 권력 기구는 언제든지 폭력 조직으로 돌변할 수 있고, 성문헌법과 규범을 무력화할 수 있다”며 “핵심은 군대와 경찰, 검찰, 정보기관 등 국가권력 기구를 민주적·법적으로 통제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을 군인으로 대하는 계엄을 막는 길은, 군대를 민주주의 군대로 만드는 것이다.
윤석열 계엄 이후 계엄에 대한 시민들의 경계심이 극대화됐다. 다시 한번 변화의 기회가 온 것이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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