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죄 윤석열을 체포하라.”
2024년 12월4일 저녁 6시20분께 체감온도가 영하로 내려간 날씨에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으로 빼곡히 모인 1만 명(경찰 비공식 추산 2천 명)의 시민들은 손에 촛불을 든 채 외쳤다. 시민들의 다른 손에는 ‘내란죄 윤석열 퇴진’ ‘윤석열을 체포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이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주요 시민단체와 노조가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 대개혁! 퇴진광장을 열자! 시민촛불’ 집회를 열었다. 같은 날 광주와 부산, 대전, 대구, 울산 등 전국 각지에서도 시민들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이번 ‘촛불 집회’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 8년 만이다.
이 자리에는 시민단체뿐 아니라 오래전 계엄령을 접했던 중년들부터 계엄이란 단어 자체를 교과서에서나 봤던 학생들까지 다양하게 모였다. 아이를 품에 안고 집회에 참석한 부모도 여럿 보였다. 집회가 열린 동화면세점 앞부터 광화문역 출구 인근까지 시민들 줄이 이어졌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다시 나온 건 하루 전인 12월3일 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때문이었다. 직장인 김진권(50)씨는 “집에서 계엄령 선포 소식을 뉴스로 접했는데 처음엔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반국가세력이 무엇인지 등 대통령의 담화문 자체가 이해가 안 됐다”며 “포고령이 나오고 국회 진입을 폐쇄한다는 소식을 듣고선 진짜 계엄령인 걸 인지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 황당하고 개탄스러운 마음에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행히 계엄이 국회를 통해 해제 결의가 됐지만, 대통령은 물러나는 게 맞는다고 본다. 평화롭게 자리에서 내려오시라”라고 말했다.
자신의 지인들과 이날 집회에 참석한 백창용(55)씨도 대통령의 ‘비상계엄’이란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적잖이 당황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단어도 생소했을 초등학생 나이에 들었던 비상계엄을 2024년에도 또 듣게 된다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아서다. 백씨는 “이게 정말 맞는 일인가 싶었다”며 국회가 폐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이 거주하던 경기 수원시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차를 끌고 이동했다고 한다. 그는 “가족들도 굳이 위험해 보이는 현장에 ‘왜 가야 하느냐’고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에 군을 동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렸을 때 민주화운동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는 부채감 때문에라도 현장에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이어질 집회에도 계속 나올 예정이라고 했다.
대학원생 이재정(30)씨도 계엄령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국회 앞으로 나갔다. 이씨는 “우리가 살아 있을 때 ‘계엄’을 경험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너무 말이 안 되는 일이었고 사람들도 놀라고 어벙한 감정이 컸다”며 “제가 국회로 간다니까 친구들이나 가족이 걱정했지만, 계엄령 선포라는 상황까지 간 상태에서 스스로 나서지 않을 수는 없었다. 몇몇 친구도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어보면서 같이 가겠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만큼 주변 사람들의 분노가 컸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 나온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계엄의 역사는 국민의 피와 눈물로 점철된 흑역사”라며 “비상계엄의 요건을 충족했느냐 아니냐를 따질 필요도 없이 계엄을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역사를 부정하고 헌법을 우롱하는 천인공노할 범죄”라고 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도 “오늘부로 윤석열은 대통령이 아니다. 그러니 오늘 촛불집회를 마무리하고 용산으로 향해 윤석열은 대통령실 무단점거를 중단하라고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혼자 집회에 나온 서울의 한 대학교 4년생 ㄱ씨(26)는 “가족들이 걱정한다”며 이름을 굳이 밝히지 않았다. “저는 서울에 살지만, 아버지가 지방에 계신다. 어젯밤 계엄령 뉴스를 보고 ‘계엄령이 뭐야’라고 문자로 묻자 아버지가 ‘그걸 왜 묻느냐’면서 걱정하셨다. 혹시나 내가 관심을 가지면 위험한 곳으로 갈까봐 걱정하셨던 것 같다”며 “그만큼 가족 모두가 어젯밤부터 잠도 잘 못 자고 안절부절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ㄱ씨가 가족 걱정에도 집회에 나온 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ㄱ씨는 “우리 세대는 역사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얘기였다. 2024년에도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장한다는 게 정말 믿기지도 않았다”며 “이제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인데도 머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물론 저 혼자는 작지만 이렇게 다 모여 있으면 커 보인다. 작은 힘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국회 결의로 6시간 만에 끝났지만, 시민들의 걱정과 분노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중이다. 일각에서 “해프닝”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사실상 탄핵을 자처한 일이면서 동시에 국제 정서적으로나 안보상으로나 국가의 위기를 부르는 일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계엄령이 뉴스를 통해 전달되고 시민들의 자유 제한 등의 내용이 담긴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제1호가 공개되자 시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메신저를 통해 이 소식을 공유하고 전달하면서 탄식했다. 이아무개(60)씨는 “딸과 메신저로 소통하면서 이런저런 걱정을 했다. 정말 일어난 일인지도 믿기지 않았다”며 “자유를 위한다는 대통령의 담화문을 보면 오히려 저들이 공산주의자 같고 독재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인가 싶었다. 주변에서 ‘나라가 망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면서 개탄하고 있다”고 했다. 직장인 안아무개(34)씨도 “21세기에 비상계엄이라니 스스로 탄핵을 자처한 것밖에 안 된다”고 했다. 또 다른 직장인 박아무개씨도 “계엄령 자체도 어이없었지만, 의사들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한다고 밝힌 포고령도 너무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대학교 4학년생 유채원(25)씨는 “학교에서 공부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계엄령 소식을 친구를 통해 들었다. 처음에 이거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책에서만 보던 일이 나타났다는 것에 감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유씨는 이번 사태로 윤 대통령의 탄핵은 사실상 명확해졌다고 주장했다. 유씨는 “그전까지는 아무리 정치를 못해도 사람들이 뽑았기 때문에 탄핵은 심하다고 생각했고 그전에는 뚜렷하지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계엄령까지 나온 건 너무 상식 밖의 행동이라 탄핵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안보상으로 위험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국외에서 보는 시각도 내가 다 민망했다. 대통령의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계엄령 선포 상황 자체가 믿기지 않아 “윤 대통령이 그냥 술을 먹고 홧김에 계엄령을 저지른 것 아니냐”는 웃지 못할 반응도 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아이를 둔 부모들은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아이 등교 여부를 두고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자영업을 하는 이완희(35)씨는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대해 “손바닥으로 눈을 가린다고 하늘이 가려지지는 않는다”며 “나라를 임의로 위험에 빠뜨리게 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은 우리나라의 또 하나의 국치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이번 계엄령은 모국에서 발생한 정치적인 위협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인 라흐만(32)은 “안정적인 나라라고 생각했던 한국에서 계엄령 선포가 하루 만에 됐다는 게 충격이었다”며 “국무위원 모두가 사의 표명했다는 뉴스를 보고 모국인 방글라데시가 떠올랐다”고 밝혔다. 방글라데시는 15년간 총리로 집권했던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가 2024년 8월 퇴진한 뒤 무함마드 유누스가 과도정부 수장으로 있다. 라흐만은 “독재자인 하시나 총리가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니 인도로 도망가서 정부가 멈췄다. 이런 혼란에 군대가 국정 운영 권한을 가져가려 했다가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일이 있었다”며 “지금은 유누스가 민주적인 선거를 준비 중이다. 이런 일들을 겪다보니 남 일 같지가 않았다. 한국도 다시 빨리 안정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타이인 ㅍ(36)씨도 “10년 전 계엄령을 겪은 타이에서의 악몽이 떠올랐다. 한국은 45년 만이라는 뉴스를 봤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런 일을 겪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어젯밤부터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괜찮은지 안부 연락을 많이 받고 있다”며 “하지만 국회 대응이 빨라서 안정됐다고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 대통령 퇴진이 필요할 것 같다. 한국은 몇 년 전에도 대통령 탄핵을 성공한 나라다. 이번에도 곧 윤 대통령이 아웃될 것 같다”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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