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동규씨가 2026년 5월18일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에 있는 하우스에서 히트펌프를 이용해 키운 감귤을 보며 미소 짓고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2026년 5월18일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 현동규(63)씨의 하우스에는 벌써 초록빛 귤이 가지 끝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가온재배(비닐하우스에 인공 열을 공급해 작물을 키워 조기 출하하는 농법)로 키운 하우스감귤은 통상 6~7월에 출하하는데, 5월 중순에 이미 군데군데 노란빛을 머금고 영글기 시작한 것이다. 현씨는 “하우스 내부 온도를 외부보다 2~3도 정도 올려줘야 한다. 보일러 기름값 아끼면 이렇게 빨리 수확이 안 된다”며 귤 하나를 냉큼 따서 노랗게 꽉 찬 속을 보여줬다.
감귤 농사 40년차인 현씨가 다른 가온재배 농가보다 약 보름 일찍 하우스감귤을 출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연료비 절감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2년 전만 해도 기름보일러로 하우스 온도를 올렸던 그는, 매년 3천만원에 달하는 기름값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히트펌프 도입’이라는 모험을 감행했다. 히트펌프는 전기를 써서 주변의 남은 열(공기·물·지중 등)을 뽑아 올려 난방과 온수, 냉방 등에 쓰는 장치다. 히트펌프는 전기히터에 견줘 에너지 효율이 3배 이상 높다. 기름을 태우는 연소 과정이 없어 탄소배출량도 크게 줄일 수 있다.
현씨는 한 대당 3천만원에 육박하는 히트펌프를 2년에 걸쳐 총 세 대를 구매해 농장에 설치했다. 히트펌프를 한 대 도입할 때마다 연료비가 줄어, 현재 한 해 약 1천만원의 전기료만 내고 있다. 기름보일러를 사용할 때와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설치에 총 1억원이 들어갔고, 매년 연료비가 2천만원 줄었으니 적어도 5~6년 안에는 (설치비를) 회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동규씨의 감귤 하우스에 설치된 히트펌프.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제주에서는 자체 생산한 에너지만으로 히트펌프를 가동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제주농업기술원은 2025년부터 1년간 전국 최초로 감귤 하우스에 태양광발전, 히트펌프,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구축해 전력과 난방 수요를 자체 충당하고 있다. 외부 연료를 전혀 쓰지 않고 ‘알이(RE)100(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 감귤’을 출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농업기술원은 감귤 하우스 농가 한 곳을 대상으로 실험을 이어가며 일반 농가 보급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에서는 이렇게 에너지 지산지소, 즉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를 다른 데로 보내지 않고 지역 안에서 소비하는 방식이 차츰 자리 잡고 있다. 전체 생산 전력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2023년 기준 전국 평균(약 8.5%)의 2.4배인 20%나 되는 제주는 이제 재생에너지 생산을 넘어 에너지를 전환·저장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실험에서도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실험이 계속되면 가까운 미래에 제주의 농장과 가구는 기름·가스 보일러 폐기를 고민할지도 모른다. 풍부한 일조량과 바람으로 만든 전기만으로 하우스감귤을 키우고 집 안의 바닥과 물을 데우는 상황이 눈앞에 와 있기 때문이다. 또 풍력발전소 인근에는 남는 재생에너지를 저장할 거대한 배터리 단지가 건설됐다. 기후위기와 관련해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2030년에 임기를 마무리하는 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겨레21이 에너지 전환의 ‘테스트베드’인 제주의 생생한 현장을 여기저기 확인하고, 제주지사 후보들이 이 인프라와 관련해 어떤 공약을 냈는지 들여다본 까닭이다.
우선 제주 현장에는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지역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하나씩 갖춰지고 있었다. 특히 히트펌프는 제주가 국가(2050년)보다 15년 앞당겨 세운 목표인 ‘2035년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데 빠질 수 없는 핵심 장치로 꼽힌다. 현재 일부 대규모 농가에서만 수요가 꿈틀대고 있지만, 제주도청은 탄소중립 외에 난방비 절감 등의 목적으로 가정에 히트펌프를 대량 보급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가정용 히트펌프는 가스보일러에 견줘 연간 난방비를 최대 80%까지 절감할 것으로 기대된다.

제주 제주시 화북일동에 있는 에코패밀리하우스 입구.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구체적으로 제주도청은 2026년 말까지 약 2380가구의 가스·기름 보일러를 히트펌프로 교체하고, 2035년까지 약 10만 가구에 히트펌프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3월12일 발표했다. 가정용 히트펌프의 비싼 초기 설치비 장벽을 낮추고자 최대 980만원을 국비와 도비 보조금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2026년 4월부터 시작된 상반기 보급 사업(1042가구 모집)에 2507가구가 신청할 만큼 도민들의 반응도 뜨겁다.
제주시 화북일동에 있는 제주 에코패밀리하우스는 ‘알이100 건축’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는 건물이다. 최근 입주 공고를 낸 에코패밀리하우스는 제주개발공사가 2025년 9월 10억원을 들여 노후 공공임대주택을 리모델링해 만든 ‘제로에너지’ 주택이다.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발전 설비를 전력원으로 삼아 히트펌프를 사용해 난방을 하고 온수를 쓰는 등 재생에너지 활용을 극대화했다. ‘알이100 감귤’을 생산한 하우스처럼, 공동주택도 완전한 에너지 자급자족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한 사례다.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 평가해보니 에코패밀리하우스의 연간 단위면적(㎡)당 1차 에너지 소요량은 -27.7킬로와트시(㎾h)로 집계됐다. 건물이 자체적으로 생산한 에너지가 사람이 건물 안에서 먹고 자며 쓴 에너지를 초과해 오히려 작은 발전소 구실을 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등급 6가지 중 가장 높은 플러스(+) 등급을 받았다. 제주개발공사 관계자는 “공공임대주택에 히트펌프를 도입한 첫 사례”라며 “앞으로 더 많은 가구를 갖춘 공동주택에 제로에너지 주택을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에코패밀리하우스에 설치된 태양광발전 설비는 약 5천만원, 히트펌프는 약 2300만원에 달한다. 개인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액수다. 제주개발공사 관계자는 “한 가구의 1년 전기료(278만원)에서 222만원 정도를 절감할 수 있다”며 “입주 가능한 세 가구를 기준으로 연간 약 660만원 절감이 가능하니, 4년 안에 히트펌프 가격을 회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개발공사는 향후 기술 향상과 전용 요금제 신설, 각종 지원금 등 여러 혜택이 주어지면 민간에서도 제로에너지 주택 보급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26년 5월19일 제주시 조천읍 북촌베스발전소 단지 내부 모습.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제주에는 베스(BESS·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발전소도 생겼다. 베스발전소는 초과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저장하기 위한 ‘대형 배터리’라고 할 수 있다. 2026년 1월 전국 최초로 가동을 시작한 제주북촌베스발전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력 저장 발전소다.
제주북촌베스발전소에 설치된 배터리 용량은 140메가와트시(㎿h)다. 약 400~500가구가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기존 에너지저장장치가 ‘알이100 감귤’ 하우스 시설처럼 개별 태양광·풍력 발전소 옆에 붙어 특정 용도를 위한 에너지저장소 구실만 했다면, 베스발전소는 제주 전체 전력망에 직접 연결돼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즉, 제주 전역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를 한데 저장해놓고 전력거래소의 지시를 받아 특정 시점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명칭 끝에 ‘발전소’가 붙었다. 정부와 제주도청이 안덕·한림·표선 베스발전소를 연이어 가동하려는 이유는 베스발전소가 전력 과잉 생산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에너지 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간 제주 내 재생에너지 발전사는 ‘출력제어’(발전 중단) 지시로 불만이 많았다. 재생에너지의 특성상 생산량을 예측해 조절하기 어려운데, 낮 시간대 등 특정 시점에 전력이 과도하게 생산되면 전력거래소가 전력망 과부하를 막고자 강제로 발전기를 멈추는 출력제어(2023년 기준 181회)를 지시해왔다. 이는 고스란히 친환경 전력의 낭비와 발전사업 투자자들의 손실로 이어졌다. 2023년에만 약 8500가구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날아갔다.
북촌베스발전소는 현재 낮 동안 제주 전역에서 생산된 과잉 전력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저장해뒀다가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밤 시간대나 전기가 부족할 때 전력거래소의 지시에 따라 방전하고 있다. 전력거래소 제주 본부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제주는 2030년까지 1천 메가와트(㎿) 안팎의 베스발전소 인프라를 확보할 계획이다. 북촌베스발전소의 출력이 35㎿인 점을 고려하면, 베스발전소가 30곳 이상 추가로 들어서야 한다.

2026년 5월19일 제주시 조천읍 북촌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발전소 단지.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6·3 지방선거 제주도지사 후보로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문성유 국민의힘, 양윤녕 무소속 후보 이렇게 세 명이 출마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제주가 ‘2035년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도록 기존 기후·에너지 정책을 확대·계승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경력을 살려 세 후보 중에서 가장 다채롭게 공약을 꾸몄다. 위 후보의 기후·에너지 분야 1호 공약은 ‘10기가와트(GW) 해상풍력발전소 건설’이다. 추자도 해역을 포함한 제주 바다에 총 100조원의 투자를 감행해 풍력발전소를 세운 다음, 경기도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전력을 직접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위 후보 쪽은 매년 4조2천억원의 매출을 올려 일부(1조원 이상)를 ‘에너지 기본소득’인 ‘바람연금’으로 제주도민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에너지 전문가들과 경쟁 후보들은 천문학적인 사업비 조달이 필요한 10GW 해상풍력발전소 건설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2025년 제주도청과 제주에너지공사는 2~3GW급 해상 풍력단지 조성을 추진했지만, 민간 사업자들이 16조원의 사업비, 기금 출연 등에 부담을 느껴 사업 자체가 좌초된 경험을 안고 있다. 문성유 국민의힘 후보는 5월18일 제주도지사 후보 합동토론회에서 “사업 기간과 경제 효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제주 경제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도민들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도 지적했다.
위 후보는 또 제주 전역에 흩어진 베스발전소를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로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가상발전소(VPP)로 운영하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현재의 베스발전소는 전력거래소의 지시를 받고 에너지를 저장하고 방전하는 그릇에 불과하다. 여기에 인공지능이라는 ‘두뇌’를 심어 베스발전소끼리 정보를 주고받고, 전력시장과 소통해 효율성을 추구하도록 시스템을 고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위 후보는 알이100과 관련해서는 도내 사회복지시설 466곳을 2035년까지 에코패밀리하우스 같은 에너지 자립형 시설로 전면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이 밖에 알이100 적용 범위를 감귤뿐만 아니라 광어 등 수산물로도 확대해 친환경 브랜드 마케팅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문성유 후보는 민선 8기인 오영훈 민주당 지사의 환경 공약을 계승하겠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위 후보처럼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키우겠다는 공약 대신 기후·에너지 관련 산업 육성 방안에 힘을 주고 있다. 문 후보는 국립기후대학원을 설립해 기후 기술을 연구한 뒤 이를 스마트농업 등의 방향으로 산업화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간 제주가 쌓아온 각종 기후 관련 데이터와 기술로 스타트업을 육성해 관광과 1차 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후보는 베스발전소, 히트펌프 같은 도민의 실생활에 밀접한 탄소중립 공약은 소개하지 않고 있다. 문 후보 쪽 관계자는 관련 내용을 묻는 한겨레21의 질의에 “문의 주신 내용은 아직은 검토 단계라 특별하게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무소속 양윤녕 후보는 그간 제주 재생에너지의 주요 사업 파트너가 대기업에 몰린 점을 언급하며 “지역사회에 공유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공공시설과 유휴부지를 활용한 태양광발전 확대, 농촌·어촌형 에너지 자립마을 구축, 마을 단위 알이 100 기반 조성 등을 제시했다.
기후에너지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관련 인프라 구축에 따른 투명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각 후보가 풍력발전 등을 대규모로 조성해 수익을 도민과 나누겠다는 공약을 제시하지만, 사업 지속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정보를 한국전력공사, 전력거래소, 민간 발전소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유권자가 각 후보의 공약 실현 가능성을 검증하기 어려운 ‘정보 비대칭성’이 심화하고 있다.
김동주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재생에너지 발전소나 베스발전소의 전기 판매 요금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일종의 ‘영업비밀’이라 공개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제주 전체 전력 소비와 관련한 데이터는 정기적으로 공개돼야 한다”며 “도민들은 재생에너지에 투입되는 도비를 내는 사람들인데 재생에너지 거래와 관련한 정보를 알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도 탈핵·기후위기 제주행동 실행위원장도 “행정감사 때나 돼야 시민단체는 에너지 정책 관련 자료를 접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제주 시민사회 조직 내에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 에너지 관련 운동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지역 고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정보는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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