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전쟁이 지구촌을 휘감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4년 8월1일로 개전 888일째를 맞았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전쟁은 같은 날 300일째가 됐다. ‘더 나은 전쟁’은 있을 수 없다. ‘더 나은 대응’은 가능하다. 굳이 두 전쟁을 비교하는 이유다.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러시아의 ‘특별 군사작전’은 2022년 2월24일 시작됐다. 침공 2주년을 맞은 2024년 2월24일 우크라이나 인도지원 단체 51개가 공동으로 내놓은 자료를 보면, 2년간의 전쟁으로 어린이 587명을 포함한 민간인 1만582명이 숨지고 1만9875명이 다쳤다. 하루 평균 민간인 42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뜻이다.
이슬람 무장 정치단체 하마스와 이슬람지하드 등 무장세력의 기습 테러를 이유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침공한 것은 2023년 10월7일이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은 전쟁 299일째인 2024년 7월31일까지 가자지구 주민 3만9445명이 숨지고 9만1073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하루 평균 사상자가 437명이란 뜻이다.
개전 당시 우크라이나의 인구는 약 2200만, 가자지구 인구는 약 220만 명이다. 우크라이나보다 10배가량 인구가 적은 가자지구에서, 사상자는 10배 이상 많이 나왔다. 절반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총 사상자도 10만명 가량 많았다. 미국과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서방 세계’는 개전 직후부터 지금껏 우크라이나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가자지구는 철저히 고립된 채 죽어가고 있다. 이 간극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전쟁 300일째, 가자지구의 굶주린 아이들이 산처럼 쌓인 채 썩고 있는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오늘은 뭘 찾을 수 있을까? 한때 사람과 물건으로 북적이던 시장도, 풍성한 수확을 내던 농경지도 쓰레기 더미로 뒤덮였다. 가자지구 전역이 간이 쓰레기 하치장으로 변했다. 이스라엘군은 쓰레기 더미도 공습의 표적으로 삼고 있다. 네덜란드 평화단체 ‘팍스포피스’가 7월18일 펴낸 ‘가자의 전쟁과 쓰레기’에는 갈수록 쌓이는 쓰레기로 인해 가자지구가 직면한 위협의 실체가 잘 드러나 있다.
팍스포피스는 위성사진 분석 등을 토대로 현재 가자지구에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간이 쓰레기 하치장이 모두 약 225곳에 이른다고 전했다. 앞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도 6월10일 보고서에서 “전쟁 6개월여 만에 축구장 150개 이상을 채울 수 있는 33만t 이상의 쓰레기가 처리되지 못한 채 쌓여 있다. 매일 2천t가량의 쓰레기가 새로 쌓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갈수록 무더워지는 날씨와 파괴된 상하수도를 비롯한 위생시설, 굶주림으로 면역력이 약해진 인구와 기본적인 의약품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의료체계가 합해져 가자지구 주민을 위협하는 ‘죽음의 악순환’을 부르고 있다.
“2살 여아가 농가진과 피부염에 걸렸다. 극심한 더위 속에 간이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곪은 부위를 벌레가 자꾸 물어뜯는다. 아이는 극심한 가려움증으로 잠도 못 자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결국 체중까지 극도로 줄면서 여러 합병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일하는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아흐마드 우부 와르다는 7월31일 현지 매체 <더뉴아랍>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폭탄과 미사일이 날아드는 곳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돈다. ‘안전지대’로 지정해놓고도 공습을 퍼붓는다. 가자지구 전체 인구의 90%를 넘는 약 190만 명이 피란민 신세다. 기간이 길어진다고 피란 생활에 익숙해질 리 없다. 커다란 천으로 아무렇게나 사방을 두른 텐트가 ‘집’이다. 상하수도 시설도, 화장실도 있을 리 없다. 이와 벼룩과 빈대도 창궐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7월7일 “가자지구 주민 가운데 약 15만 명이 옴, 수두, 농가진, 발진 등 각종 피부병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전했다. 씻을 물도, 비누와 의약품도 없는 주민들은 환부에 흙을 발라 가려움을 참고 있다.
감염병에 대한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WHO는 7월30일 펴낸 자료에서 “대규모 공습이 지속되고 의료체계는 무너진 상태여서 가자지구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필요한 일상적인 예방접종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아마비를 포함한 예방 가능한 각종 질병에 고스란히 노출된 상태”라고 전했다. 개전 이후 지금까지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만성 호흡기 환자는 약 100만 명, 만성 설사 환자와 A형 간염으로 의심되는 황달 환자는 각각 57만5천여 명과 10만7천여 명에 이른다. 가자지구 주민들 사이에서 “공습으로 죽거나,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죽기는 마찬가지”란 말이 떠돌기 시작한 것도 이미 오래다.
가자지구 전쟁은 무인기와 인공지능(AI)이 가장 광범위하게 활용된 최초의 전쟁이기도 하다. 표적 암살은 물론 주거지 파괴에도 첨단 기술이 동원됐다. 앞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4월17일 가자지구 주거지의 60~70%가 반파 또는 완파됐으며, 특히 가자지구 북부 지역에선 주거지의 84%가 파괴됐다고 밝혔다. 주거지와 상하수도·전기 시설 등 민간용 사회기반시설을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파괴하는 건 전쟁범죄, 곧 ‘도미사이드’(거주지 말살)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공습과 포격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가 약 3900만t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가자지구 전역에서 ㎡당 107㎏씩 쌓을 수 있는 양이란다. 건물 더미에선 석면 등 유해물이 포함된 먼지가 유출된다. 불발탄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건물 더미에 깔린 수습하지 못한 주검이 부패하면서 각종 병원균이 들끓을 수 있다.
조리용 연료가 부족한 피란민들은 나무와 플라스틱과 쓰레기 등 구할 수 있는 땔감은 뭐든 사용한다. 대기오염과 호흡기 질환의 원흉이다. 중금속과 화학물질이 포함된 막대한 양의 탄약이 사용되면서 토양과 물을 오염시키고 있다. 전쟁이 끝나도 가자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 됐다.
팔레스타인 교육부는 7월29일 수험생 약 3만9천여 명이 올해 ‘타우지히’(고등학교졸업자격시험·6월22일 실시)에 응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타우지히를 통과해야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수험생 가운데 450명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고, 55명은 이스라엘 당국에 구금됐단다. 개전 이후 지금까지 학생 9241명이 숨지고 1만5182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교육부는 약 62만 명의 학생이 전쟁으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자지구 학교의 76%가 폭격으로 반파 또는 완파된 상태다. 전쟁은 가자지구의 미래마저 앗아갔다.
쟁 299일째,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마수드 페제슈키안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방문 중이던 하마스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암살됐다. 이란을 방문한 우방의 지도자가, 이란 국경 밖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목숨을 잃었다. 명백한 주권 침해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즉각 ‘보복’을 명령했다.
하마스는 1987년 제1차 인티파다(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 민중봉기) 때 창설됐다. 창설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도, 그의 후계자인 압델 아지즈 란티시도 2004년 3월과 4월 5주 남짓 간격으로 이스라엘군이 ‘표적 살해’했다. 이들의 뒤를 이어 최고지도자에 오른 하니야는 무장투쟁 중심이던 하마스를 정당으로 탈바꿈시켰다. 그가 ‘합리적 온건파’로 불린 이유다.
2006년 1월 치러진 팔레스타인 자치의회(PLC) 선거에서 ‘변화와 개혁’을 내건 하마스가 전체 132석 가운데 절반을 훌쩍 넘어선 74석을 얻었다. 야세르 아라파트의 정당인 파타당은 45석을 얻는 데 그쳤다. 파타당의 오랜 부패와 무능에 대한 심판이자,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최초의 사례였다.
같은 해 2월 하니야 총리 정부가 출범했다. 파타 쪽은 선선히 권력을 넘기지 않았다. 하마스의 집권에 ‘경악’한 미국과 유럽연합 각국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원조를 끊었다. 이스라엘은 그해 6월 ‘여름비’란 작전명으로 가자지구를 전격 침공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탱크병 길라드 샬리트 상병 구출을 명분으로 앞세웠지만, 5개월여 이어진 당시 전쟁의 목적도 ‘하마스 붕괴’였다
하마스는 파타까지 아우른 거국내각을 구성했지만, 파타의 하마스 흔들기는 계속됐다. 결국 2007년 6월 하마스 소속 무장요원들이 가자지구 북부에 있는 파타 보안군 본부를 무력으로 장악했다. 마무드 아바스 대통령은 곧바로 거국내각을 해산하고 ‘비상내각’을 출범시켰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즉각 원조를 재개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봉쇄에 들어갔다. 봉쇄는 2023년 10월7일 전쟁 발발 때까지 이어졌다.
그간 하니야는 가자지구 휴전협상을 이끌어왔다. 이스라엘 쪽은 휴전 조건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등 협상에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7월24일 미국 의회 연설에서 “최종 승리”를 강조하며, 휴전에 부정적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니야의 죽음으로 휴전 가능성은 더욱 멀어졌다. 중도파와 개혁파를 아우르며 집권해 대미 협상 등 새로운 대외정책을 추진할 뜻을 밝혔던 페제슈키안 이란 대통령도 취임 직후부터 발목이 붙들리게 됐다. 중동 질서가 바뀔 가능성은 차단되고, 가자지구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번질 우려는 더욱 커졌다. 누구에게 이로운 건가? 전쟁은 계속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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