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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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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에 죽고, 총격에 죽고, 굶어 죽고, 얼어 죽고…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아이들이 죽어간다”

2025년 12월에만 4명의 영유아 저체온증 사망… 팔레스타인 땅에 내린 잔혹한 세밑
등록 2025-12-25 21:17 수정 2025-12-27 12:41
2025년 12월22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의 피란민 천막에서 아이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5년 12월22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의 피란민 천막에서 아이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 서안에 베들레헴이 있다. 그곳의 누추한 마구간에서 2025년 전 아기 예수가 태어났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는 매서운 겨울 추위를 어찌 견뎌냈을까? 성탄 즈음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다시 서러운 소식이 이어진다. 습하고 차가운 피란 천막 안에서 아기들이 얼고 있다.

“아직도 아기의 희미한 울음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도 화들짝 놀라 깨곤 한다. 밤에 아기가 울어 잠을 깨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란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서쪽 마와시 지역의 피란민 천막촌에서 생활하는 에만 아부 알카이르(34)는 2025년 12월18일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방송은 에만에 대해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아기의 옷가지를 싼 작은 가방을 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충격에 빠진 엄마는 여전히 아기를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의 사연을 좀더 자세히 들어보자.

온기 없는 천막에서 멈춘 숨소리

아기 무함마드는 12월1일 태어났다. 신산스러운 피란살이 속에 임신 기간을 가까스로 버텨낸 엄마와 가족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에만은 “임신 기간 내내 정말 힘들었다. 생활 환경은 끔찍했고 기근까지 겹쳤다. 출산을 앞두고 완전히 녹초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무함마드가 건강하게 태어난 순간 그 모든 고통이 한꺼번에 사라졌다”고 말했다.

가족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스와 키프로스를 강타한 폭풍 바이런이 가자지구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피란민 천막촌도 침수됐다. 가자의 겨울은 차가운 우기다. 비극은 12월13일 밤 시작됐다. 에만은 아기 무함마드가 잠든 것을 확인한 뒤 잠깐 눈을 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 다시 아기를 살폈다. 아기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밤 기온은 11도 남짓까지 떨어진 터다. 천막 안에선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없다. 체감온도는 더욱 낮아졌다. 에만은 알자지라에 이렇게 말했다. “아기 몸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손발은 꽁꽁 언 것 같았다. 얼굴은 노랗게 변했고 피부는 경직돼 있었다. 숨도 간신히 쉬고 있었다. 잠든 남편 칼릴을 깨웠다. 당장 아기를 병원으로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타고 갈 교통편을 구할 수 없었다.”

2025년 12월16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의 해안가에서 피란민 여성이 무너진 천막을 손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5년 12월16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의 해안가에서 피란민 여성이 무너진 천막을 손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한밤중이었다. 차가운 날씨에 비까지 쏟아지고 있었다. 아기를 안고 걸어서 병원으로 가는 건 불가능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에만과 칼릴은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에만은 지닌 옷을 모두 꺼내 아기에게 입히고 몸을 담요로 감쌌다. 칼릴은 천막을 정비하고 한기가 들어올 만한 틈이란 틈은 다 막았다. 해 뜨기 무섭게 나귀가 끄는 수레를 빌려 타고 병원을 향해 내달렸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아기 무함마드는 이미 위중한 상태였다.

칸유니스 적신월사(이슬람권의 적십자) 병원에 도착한 뒤 아기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안색이 퍼렇게 바뀌었고 경련으로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황급히 아기를 유아 응급병동으로 옮겼다. 아기 무함마드는 그곳 병실에서 호흡기를 달고 이틀간 집중치료를 받았지만, 12월15일 결국 숨을 거뒀다. 다시 눈시울이 붉어진 에만은 방송에 이렇게 말했다. “보다시피 길거리 천막촌에서 산다. 옷가지 몇 개와 나일론 천막이 뭘 어쩔 수 있겠나? 추위는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렵다. 아침마다 넘친 빗물로 이부자리가 젖어 깨어난다. (…) 무함마드는 건강했다. 출생 직후 여러 검사를 했고 아무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저 작디작은 몸이 천막 안의 추위를 견디지 못했을 뿐이다.”

폭격보다 잔인한 겨울철 추위

12월16일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아기 무함마드가 급성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12월 들어 무함마드까지 모두 4명의 영유아가 가자지구에서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었단다. 무함마드는 에만과 칼릴의 둘째 아기다. 전쟁터에서 나고 자란 맏딸 모나는 갓 2살을 넘겼다. 무함마드를 매장한 뒤 천막집으로 돌아오자 모나는 엄마에게 “아기는 어디 있어요?”라고 묻고 또 물었다. 그때마다 에만은 딸을 안고 통곡했다. 그는 이렇게 탄식했다. “우리 아이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죽어간다. 폭격에 죽고, 총격에 죽고, 굶어 죽고, 얼어 죽는다. 한명 한명 그렇게 죽어간다. 우리 아기가 처음이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대체 이 아이들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천막 안에서 비극적 삶을 살아야 하는 잔혹한 운명을 안고 태어났을까?”

저체온증은 통상 36.5~37℃ 범위를 유지하는 체온이 35℃ 이하로 떨어진 경우를 말한다. 체온에 따라 △경도(35~32℃) △중등도(32~28℃) △중도(28℃ 미만) 3단계로 구분한다. 경도일 땐 오한, 빈맥, 과호흡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중등도일 땐 오한이 사라지고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며 의식장애와 부정맥 등이 생긴다. 중도에 이르면 반사신경 기능이 사라지고 호흡부전, 부종, 폐출혈, 저혈압, 심실세동 등이 나타난다. 중도 상태로 저체온증이 지속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영유아는 성인에 견줘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체온 손실이 성인보다 빠르게 진행된다. 추위에 오래 노출되면 면역체계도 약해진다. 가뜩이나 영양실조와 설사, 폐렴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 가자지구 영유아에게 추위가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25년 12월18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의료진이 인큐베이터 속 신생아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5년 12월18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의료진이 인큐베이터 속 신생아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전쟁 발발 뒤 세 번째 겨울이다. 앞선 두 번의 겨울에도 가자지구의 아기들에게 저체온증은 최악의 ‘살상무기’였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2025년 1월12일 낸 자료에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간이 주거시설과 방한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가자지구 영유아들이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2024~2025년 연말연시 3주 동안에만 가자지구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영유아가 8명에 이른다”고 집계한 바 있다. 상황은 갈수록 나빠진다. 2025년 한 해 동안 가자지구에서 6~59개월 영유아 9만 명이 영양실조 치료를 받았다. 2024년엔 4만 명 수준이었다.

노골적인 가자지구 강탈 야심

휴전은 말뿐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최신 자료를 보면, 12월22~23일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전역에서 포격과 공습을 지속했다.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라히야와 자발리야에서 이스라엘군은 탱크와 박격포, 소형화기를 동원한 공세를 폈다. 가자시티 동쪽 슈자이야와 투파 등지에선 소형화기와 무인기 공격이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중부 데이르알발라와 부레이즈에서도 이스라엘군은 휴전 1단계에 따라 철수한 ‘노란 선’ 부근에서 탱크와 무인기를 동원한 공세를 지속했고, 밤사이엔 포격과 공습까지 더해졌다. 남부 칸유니스 인근 바니수하일라 등지에서도 탱크와 박격포 공격에 이어 공습과 헬리콥터 공격이 12월23일 새벽까지 벌어졌다. 유엔 쪽은 “10월10일 휴전 발효 이후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379명이 숨지고 992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우리는 가자지구 깊숙이 진입한 상태고, 가자지구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 이스라엘을 방어하고 과거 벌어졌던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할 것이다. (…) 때가 되면 신의 가호 아래 가자지구에서 철수했던 유대인 정착촌 자리에 ‘나할 개척자 부대’를 배치하겠다. 적절한 때에 올바른 방식으로 집행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12월23일 오전 요르단강 서안 베이트엘에서 열린 1200가구 규모 신규 정착촌 건설 관련 행사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나할’은 건국 초기 다비드 벤구리온 이스라엘 초대 총리가 청년들이 정착촌에서 생활하며 군 복무를 마칠 수 있게 한 제도다. ‘나할 개척자 부대’는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는 데 첨병 구실을 했다.

2025년 12월15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서 피란민 가족이 천막 밖에서 모닥불을 피워 한기를 쫓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25년 12월15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서 피란민 가족이 천막 밖에서 모닥불을 피워 한기를 쫓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이스라엘은 아리엘 샤론 총리 시절인 2005년 가자지구에 건설된 21개 유대인 정착촌을 폐쇄한 뒤 정착민 8천여 명과 주둔군을 모두 철수시킨 바 있다. 카츠 장관의 발언은 20년 전 철수했던 가자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다시 건설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가자지구 정착촌 재건은 전쟁 발발 직후부터 이스라엘 극우 진영이 되풀이 주장해온 바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합의한 가자지구 휴전안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점령하거나 합병하지 않는다”고 못박고 있다.

말뿐인 휴전, 끊임없는 학살

가자지구뿐이 아니다. 이스라엘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12월23일 극우파인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의 말을 따 “내게 부여된 사명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가로막는 것”이라며 “끝까지 사명을 완수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네타냐후 총리를 겨냥해 “(연말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 요르단강 서안 합병안을 의제에 올리라”고 재차 촉구했다. 스모트리히 장관은 지난 9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막기 위해 서안지역 면적의 82%를 이스라엘에 합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스모트리히 장관과 카츠 장관은 유대인 정착촌 확대를 통한 팔레스타인 땅 합병을 위해 힘을 모아왔다. 휴전은 말뿐이다. 전쟁은 계속된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은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전쟁 809일째를 맞은 2025년 12월23일까지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7만942명이 숨지고 17만119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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