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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읽은 시

배봉기 할머니 고독사 35년… 오키나와 도카시키섬 아리랑 위령비 앞에서
등록 2026-04-30 21:54 수정 2026-05-02 17:05
‘아리랑 위령의 모뉴멘트’ 앞에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군속 노동자를 기리기 위한 제상이 차려졌다.

‘아리랑 위령의 모뉴멘트’ 앞에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군속 노동자를 기리기 위한 제상이 차려졌다.


박마의 감독이 어머니 박수남 감독의 오른손을 잡고 시비를 함께 쓰다듬으며 말을 건넸다. “엄마가 쓴 시가 새겨진 비예요.”

시력을 잃어버린 박수남 감독의 불편한 몸과 손은 자신이 쓴 시가 새겨진 비석을 침묵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일본 오키나와현 도카시키섬에 있는 ‘아리랑 위령의 모뉴멘트’ 앞에서 2026년 4월18일 위령제가 열렸다. ‘아리랑 위령의 모뉴멘트’는 게라마제도에 있던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 21명과 도카시키섬에 있던 군속 노동자 350명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위령비다. 한국에서 10명, 오키나와는 물론 도쿄·교토·후쿠오카 등에서 온 30여 명이 위령제에 참석했다. 위령제는 박수남·박마의 감독의 다큐멘터리 ‘되살아나는 목소리’의 오키나와 상영을 계기로 조직됐다.

도카시키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당한 배봉기 할머니는 1991년 고독사한 지 닷새 뒤에 발견됐다. 이 참담한 비극을 마주한 일본인들이 일본 전역에서 모금운동을 전개해 1997년 10월 위령비를 건립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도카시키섬에 들어온 일본군은 도카시키항 주변 신축한 집을 접수해 주인을 몰아낸 뒤 위안소를 만들었다. ‘붉은 기와집’이라 불린 이 위안소에 1944년 10월10일 오키나와 공습 이후 조선인 ‘위안부’ 7명이 배치됐다. 배봉기는 아키코라는 이름으로 도카시키섬에 주둔하던 일본 해군을 상대해야 했다.

1945년 3월23일 게라마제도에 미군의 공습이 시작됐다. 3월26일 미군이 상륙했다. 3월27일 피란호에 있던 도카시키 주민들은 집단자결을 했다. 일본군 ‘위안부’ 기코마루와 스즈란은 6월30일 군 노동자와 함께 투항했다. 배봉기와 가즈코는 취사를 하면서 최후까지 일본군과 함께하다 8월26일 하산했다. 미군 포로가 되어 이시카와수용소에 갇혔다가 풀려난 배봉기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키나와 나하에서 술장사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1991년 나하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생을 마감했다. 배봉기와 함께 위안소에 있었던 하루코는 미군의 기총소사로 사망했고, 미쓰코는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박수남 감독은 넋이 된 이들에게 시를 헌정했다. “그대들은 우리들 품속에서/ 다시 소생하리라/ 모두의 영원한 새로운 생을/ 영위하리라”

 

도카시키섬(일본)=사진·글 안해룡 사진가

 

*안해룡은 사진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전시와 콘텐츠를 기획하며 사진과 영상을 넘나들면서 다큐멘터리 작품을 만들고 있다. 1995년부터 한국, 중국, 일본 등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사진과 영상에 담는 기록 작업을 했다. 다큐멘터리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다이빙벨’을 감독했다. 현재는 일본에 이주한 조선인 노동자의 위령비와 추모비를 찾아 조선인이 건설한 일본 근대 토목 유산의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인 노동자 위령비를 찾아서 1’(동북아역사재단, 2021), ‘북녘 일상의 풍경’(현실문화연구, 2005)이 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조선 출신 일본군 ‘위안부’와 군속 노동자의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해 일본의 도쿄·교토·후쿠오카 등에서 온 방문단이 도카시키항에서 인사하고 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조선 출신 일본군 ‘위안부’와 군속 노동자의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해 일본의 도쿄·교토·후쿠오카 등에서 온 방문단이 도카시키항에서 인사하고 있다.


 

‘아리랑 위령의 모뉴멘트’ 앞에서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

‘아리랑 위령의 모뉴멘트’ 앞에서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의 시모노세키 재판 투쟁을 지원했던 ‘전후 책임을 묻는다·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사무국장 하나후사 도시오와 하나후사 에미코 부부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의 시모노세키 재판 투쟁을 지원했던 ‘전후 책임을 묻는다·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사무국장 하나후사 도시오와 하나후사 에미코 부부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오키나와 전투 전몰자를 비롯해서 집단자살한 도카시키섬의 주민을 기리는 ‘백옥의 탑’.

오키나와 전투 전몰자를 비롯해서 집단자살한 도카시키섬의 주민을 기리는 ‘백옥의 탑’.


 

‘백옥의 탑’은 도카시키섬에서 희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한 조선인 10명을 기리고 있지만 이름은 새겨져 있지 않다.

‘백옥의 탑’은 도카시키섬에서 희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한 조선인 10명을 기리고 있지만 이름은 새겨져 있지 않다.


 

박수남 감독이 자신이 쓴 시비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박수남 감독이 자신이 쓴 시비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박수남 감독이 도카시키섬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만났던 촌장을 30년 만에 마주했다.

박수남 감독이 도카시키섬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만났던 촌장을 30년 만에 마주했다.


 

‘빨간 기와집' 주인의 친척이던 요시카와 요시카쓰(88)가 일본군이 주민의 주택을 강제로 접수해서 위안소로 만들었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빨간 기와집' 주인의 친척이던 요시카와 요시카쓰(88)가 일본군이 주민의 주택을 강제로 접수해서 위안소로 만들었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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