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3월30일 한국전쟁 이후 일반에게 공개되는 최초의 북한 영화 ‘참된 심정’이 서울 광화문우체국 6층 북한 및 공산권 정보자료센터 시청각실에서 공개되자, 사전 예약한 관람객이 입장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진정한 의사소통의 조건으로 네 가지를 제시한다. 말은 이해 가능해야 하고, 내용은 사실이어야 하고, 사회적으로 정당해야 하며, 무엇보다 화자는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이 조건들이 철저히 무너졌던 시기가 존재한다.
짧은 치마는 단속 대상이 되었고, 긴 머리는 강제로 잘려나갔다. 술자리에서 흘러나온 말 한마디조차 권력의 감시를 피하지 못했다. 대화는 사라졌고, 표현은 억눌렸으며, 일상의 언어마저 검열 대상이 됐다. 그러나 그런 침묵의 시대에도 예술은 멈추지 않았다.
문학과 음악, 그리고 영화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기록하고 저항의 메시지를 남겼다. 직접 말할 수 없었던 시대, 예술은 다른 방식의 ‘대화’가 되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사회 전반에는 일정 부분 자율성이 확대됐다. 그러나 영화만큼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영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현실을 기록하고, 재구성하며, 관객의 인식과 감각을 바꾸는 매체였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은 권력에 위협이자 동시에 유혹이었다. 실제로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 정권은 영화를 국가 선전의 핵심 도구로 활용했고,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체제에서는 영화와 사진이 철저히 통제됐다. 이미지는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왜곡할 수 있었고, 반복되는 장면과 메시지는 대중의 감각을 무뎌지게 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결국 비판적 사고를 차단하는 장치로 기능하기도 했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은 7·7 선언을 통해 남북 문화예술 교류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북한 영화는 이례적인 관심 속에 상영됐지만, 대학가에서 자발적인 상영 시도는 철저히 통제됐다. 정작 국내에서 영화운동을 이어가던 이들의 작품은 여전히 제약과 검열의 대상이었다. 대외적으로는 개방을 말하면서도, 내부의 목소리에는 문을 닫던 이중적 태도였다.
그럼에도 영화인들은 멈추지 않았다. 검열과 삭제, 상영 금지 속에서도 카메라는 꺼지지 않았고 현실을 기록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한류 영화’의 성장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 했던 창작자들의 치열한 시간이 축적돼 있다. 그리고 그 곁을 함께 지킨 이들이 있었다.
침묵을 강요받던 시대, 그들은 이미지를 통해 말하고 있었다. 그 이미지들은 결국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으로 남았다. 지금의 우리에게 묻는다. 그 시절, 표현을 지켜내려 했던 이들과 그 곁에서 함께 버텨낸 사람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사진 한겨레 자료, 글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990년 4월6일 상영 전날 검찰 등 관계 당국의 처벌 방침이 발표됐음에도, 장산곶매에서 제작한 소형영화 ‘파업전야’가 4월7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예술극장 ‘한마당’ 등 전국 4곳에서 일제히 상영에 들어갔다. 동대문경찰서 사복경찰이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받부받아 ‘파업전야’가 상영 중이던 예술극장 한마당에서 필름과 영사기를 압수하고 있다.

1990년 10월17일 고려대 총학생회가 경영관 강당에서 학생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북한 영화 ‘소금’ 상영을 강행하자 경찰이 교내로 진입해 영화 상영을 중단시키고 있다.

1991년 4월2일 서강대 총학생회가 인문관에서 임수경씨의 방북 관련 비디오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를 상영하자 많은 학생이 강의실을 가득 메운 채 비디오를 관람하고 있다.

1990년 4월6일 검찰 등 관계 당국이 처벌 방침을 발표했음에도, 다음날인 4월7일 장산곶매에서 제작한 소형영화 ‘파업전야’가 서울 혜화동 예술극장 ‘한마당’ 등 전국 4곳에서 일제히 상영되고 있다.

1988년 9월24일 감독, 청년영화인협의회, 시나리오작가, 기술인 등 영화인 200여 명이 서울 중구 명동 코리아극장 앞에서 미국 영화 직접배급 상영에 항의하며 농성하고 있다.

1991년 4월24일 운동권 학생과 어머니 사이의 갈등과 사랑을 담은 이상인 감독의 16㎜ 소형영화 ‘어머니, 당신의 아들’ 상영을 둘러싼 충돌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찰이 영화 상영을 저지하러 서울대 학내로 진입하려 하자 학생들이 저지하고 있다.

1990년 10월31일 북한 영화 상영을 막기 위해 경희대 안으로 진입한 전경들이 상영 장소인 크라운관에 최루탄을 쏘며 영화 상영을 중단시키고 있다.

1990년 10월18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에 따른 후속 조처로 경찰이 집단시위에 초강경 대처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 영화 ‘탈출기’가 상영되고 있던 연세대 학내에 진입한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연세대생 권현수씨가 왼쪽 눈 밑을 맞아 긴급히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고 있다.

1991년 2월4일 애니메이션 창작을 위한 모임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방배본동 서울무비 기획실에서 프랑스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 완성한 실험작 ‘와불’의 시사회를 열고 있다. ‘와불’은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 나오는 전남 화순 운주사의 와불을 모델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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