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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어지도록, 다시

늦깎이 배움의 길 가는 일성여중고 만학도들… 고난 뚫고 온 인생, 폐교 위기인들 못 뚫으랴
등록 2026-07-23 21:22 수정 2026-07-2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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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순씨가 2026년 6월22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한씨는 중학교 과정을 밟는 중이다.

한옥순씨가 2026년 6월22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한씨는 중학교 과정을 밟는 중이다.


 

2026년 6월22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수업 종료 종이 울리자 교실 곳곳이 부산스럽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책상에 각자 준비한 반찬들이 놓인다. 할 이야기는 어찌나 많은지, 짧은 점심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오늘 한자 시험 있는 날인데 어떡해!” “어머, 참외도 가져왔네. 맛있겠다!”

코끝에 걸린 안경, 하얗게 센 머리에 사이좋게 뽀글뽀글 볶은 파마머리의 노인들은 점심시간 내내 흥이 나고 즐거웠다. 일성여중고는 과거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가난과 전쟁, 시대적 환경 등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는 2년제 학력인정 평생교육 시설이다.

“그때는 대부분 그랬지, 뭐.”

경북 경산이 고향인 1957년생 한옥순씨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18살에 서울로 와 공장에서 베틀로 옷감을 만들었다.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울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근데 나는요, 지금이 두 번째로 행복한 시절이에요.”

갈빗집, 횟집도 차려서 열심히 살았는데 늘 주눅 들어 있었다. 복지관에서 구연동화도 배웠는데 다들 졸업장이 있었다. 배움이 짧다는 사실이 자신을 위축시켰다. “지금은 자신감이 생겨서 좋아요.”

그는 교실 문을 열면 자신을 반겨주는 언니와 동생, 배움의 목마름을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어 학교 가는 게 참 행복하다며 웃는다.

전남 신안 압해도 농가에서 태어난 1960년생 정곤순씨도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이후 사이판에서 취직한 남편을 만나 40년 가까이 외국 생활을 했다. 사이판에서의 일상이 그런대로 평탄하게 계속 이어질 줄 알았는데 몸에 이상이 생겼다. 지주막하출혈이라는 병명을 얻은 채 한국으로 돌아와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우울증과 공황장애마저 그를 덮쳤다. “그때는 죽고 싶었죠.”

정신과도 다니고 무기력한 생활이 이어질 때 우연히 학교 얘기를 듣고 여기다 싶어 입학하게 됐다. 같은 설움을 가진 친구들과 매일 도시락을 먹고 공부하고, 하교 뒤 종종 모여 즐겁게 지낸다. “지금은 우울증, 공황장애도 없고 적극적인 사람이 됐어요.” 그는 이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각자 살아온 삶의 모습은 달랐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은 똑같았던 두 사람은 이 학교에서 만났다. 졸업하면 뭘 하고 싶냐고 두 사람에게 물었더니 멋쩍어하는 모습에 대답마저 똑 닮았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 싶어요.”

교실 급훈에는 ‘난 할 수 있다’와 ‘배워서 남 주자’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싶지만, 설립자 이선재 교장의 별세로 학교는 2028년 2월 문 닫을 위기에 놓였다. 현행법상 학력인정 평생교육 시설의 주체는 학교법인 또는 공익 재단법인으로 제한돼 있다. 이를 위해선 상당한 규모의 재정 마련과 규정에 맞는 시설을 갖춰야 한다. 학생이 없어 문 닫는 학교가 있지만 2026년 6월 현재, 일성여중고에는 재학생이 950명이다.

학교 쪽은 학습권 보장 및 학교의 공공재 전환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진행하는 등 존속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아버지 같았던 교장선생님이 돌아가시고 폐교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에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 곤순씨가 아쉬운 듯 읊조린다.

“선생님들은 어떡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우리를 가르쳐주시는데. 우리야 늙었지만, 선생님들은 아직 한창이잖아. 정부나 관련 기관이 신경 써서 (학교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

 

사진·글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중학교 과정을 밟고 있는 한옥순씨가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중학교 과정을 밟고 있는 한옥순씨가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한옥순씨가 주름진 손으로 노트 정리를 하고 있다.

한옥순씨가 주름진 손으로 노트 정리를 하고 있다.


 

한옥순씨가 노트 정리를 하며 옆자리 학생과 이야기하고 있다.

한옥순씨가 노트 정리를 하며 옆자리 학생과 이야기하고 있다.


 

한옥순씨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급우들과 도시락을 먹으며 선생님과 대화하고 있다.

한옥순씨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급우들과 도시락을 먹으며 선생님과 대화하고 있다.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실에 급훈이 걸려 있다. 1957년생 한옥순, 1960년생 정곤순씨는 열심히 배워서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실에 급훈이 걸려 있다. 1957년생 한옥순, 1960년생 정곤순씨는 열심히 배워서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2026년 6월22일 서울 강서구 화곡역 인근에서 한옥순씨가 소형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무릎이 아픈 한씨는 언덕길에 있는 자택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역까지는 주로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2026년 6월22일 서울 강서구 화곡역 인근에서 한옥순씨가 소형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무릎이 아픈 한씨는 언덕길에 있는 자택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역까지는 주로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수업에 집중하는 한옥순씨 책상에 분홍색 필통이 놓여 있다. 필통이 귀엽다고 하자 한씨는 “손녀가 어릴 때 쓰던 필통이랑 가방이랑 내가 쓰고 있어”라고 말했다.

수업에 집중하는 한옥순씨 책상에 분홍색 필통이 놓여 있다. 필통이 귀엽다고 하자 한씨는 “손녀가 어릴 때 쓰던 필통이랑 가방이랑 내가 쓰고 있어”라고 말했다.


 

6월23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정곤순씨와 급우들이 각자 가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있다. 싸온 반찬을 서로 나눠 먹는다.

6월23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정곤순씨와 급우들이 각자 가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있다. 싸온 반찬을 서로 나눠 먹는다.


 

정곤순씨(오른쪽)가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1960년생인 정씨는 중학교 과정을 밟는 중이다.

정곤순씨(오른쪽)가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1960년생인 정씨는 중학교 과정을 밟는 중이다.


 

6월23일 한자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교실에는 선생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집중하는 만학도의 눈빛이 가득하다.

6월23일 한자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교실에는 선생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집중하는 만학도의 눈빛이 가득하다.


 

정곤순씨가 하교하며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정곤순씨가 하교하며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6월23일 정곤순씨가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급우들과 콩주머니놀이를 하며 웃고 있다. “언니, 이런 거 많이 해야 우리 치매 예방에도 좋아.”

6월23일 정곤순씨가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급우들과 콩주머니놀이를 하며 웃고 있다. “언니, 이런 거 많이 해야 우리 치매 예방에도 좋아.”


 

정곤순씨가 급우들 앞에서 오카리나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40년 동안 사이판에서 살았던 정씨가 연주한 곡은 ‘고향의 봄’이었다.

정곤순씨가 급우들 앞에서 오카리나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40년 동안 사이판에서 살았던 정씨가 연주한 곡은 ‘고향의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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