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이름 없는 슬픔이 민주주의 뿌리가 되기까지

창립 40주년 맞은 유가협, 그들이 흘린 피와 눈물의 기록을 펼치다
등록 2026-08-06 21:40 수정 2026-08-13 11:59
google구글 선호 매체 등록
1992년 6월13일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의 밤’ 행사가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려 유가족들이 헌화하며 오열하고 있다. 이날 추모 행사를 마친 뒤 촛불행진이 예정됐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됐다.

1992년 6월13일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의 밤’ 행사가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려 유가족들이 헌화하며 오열하고 있다. 이날 추모 행사를 마친 뒤 촛불행진이 예정됐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됐다.


‘참척’(慘慽).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참혹한 비극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한 말이 있을까. 세상은 홀로 남은 이들에게 ‘홀아비’ ‘과부’ ‘고아’라는 이름을 붙여줬지만,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그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담아낼 단어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을 안고, 차가운 거리 위에서 40번의 겨울을 견뎌온 이들이 있다. 세상이 끝내 이름 붙여주지 못한 그 슬픔들을 모아, 그들은 스스로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를 택했다.

어느덧 유가협이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지난 40년은 단순히 세월만 흐른 것이 아니었다. 그리운 이들의 빈자리를 마주하며, 사랑하는 이들이 왜, 어떻게 떠나야 했는지 그 진실의 조각을 찾기 위해 모진 바람을 묵묵히 막아선 세월이었다. 규명되지 않은 진실 앞에서 그들의 역사는 ‘한’과 ‘눈물’이라는 단어로만 엮어내기엔 부족한, 현재진행형의 고통이자 숭고한 투쟁이었다.

그들의 눈물은 결코 절망의 웅덩이로 고이지 않았다 . 삶이 무너져내린 그 자리에서 , 그들은 슬픔을 자양분 삼아 민주주의의 가장 낮은 곳을 닦아나갔다 . 40 년 동안 지켜온 그들의 기억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나무의 단단한 뿌리가 되었고 , 그들이 흘린 피눈물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뼈와 살이 되었다 .

지난 25 년 동안 폐기와 재발의를 반복했던 ‘ 민주유공자법 ’ 이 이제 국회 본회의 표결이라는 마지막 문턱을 앞두고 있다 . 민주유공자법은 1964년 3월24일 이후 반민주적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하다 사망·행방불명되거나 부상한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국가유공자에 준해 예우하는 법안이다. 2026년 3월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고, 패스트트랙 일정에 따라 본회의 통과만 남겨둔 상태다.

너무도 더디게 닿은 걸음이지만 , 이 법안이 국가가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이들과 그 남겨진 가족들의 삶을 온전히 예우하고 기억하는 첫 번째 이정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2026년 8 월 12 일 ,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리는 사진전 ‘보고 싶고 , 만나고 싶어’는 그 역사의 증언대이다 . 전시는 1970 년 가족운동의 시작부터 오늘날까지의 사진과 영상 , 당시 활동 자료와 구술 기록을 담고 있다 . 이는 단순한 기록의 나열이 아니다 . 사진 한 장마다 한 사람의 생애가 , 한 가족의 통곡이 , 그리고 이름을 남기지 못한 채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수많은 이의 시간이 고스란히 박제돼 있다 .

사진전은 우리에게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 “ 오늘의 민주주의는 과연 누구의 희생 위에 서 있는가 .” 40 년 동안 멈추지 않았던 그들의 슬픔과 진실을 향한 발자취를 되새기며 , 뜨거운 역사의 편린을 이 지면에 조심스럽게 펼쳐 보인다 .

 

사진 한겨레 자료, 글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987년 6월 대우중공업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활동 중 실종돼 이듬해 3월 유골로 발견된 정경식씨의 장례식이 23년 만에 열린 2010년 9월7일,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모란공원 추모관 앞에서 그동안 임시보관함에 유골 상태로 있던 고인을 거두는 입관식이 거행되고 있다.

1987년 6월 대우중공업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활동 중 실종돼 이듬해 3월 유골로 발견된 정경식씨의 장례식이 23년 만에 열린 2010년 9월7일,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모란공원 추모관 앞에서 그동안 임시보관함에 유골 상태로 있던 고인을 거두는 입관식이 거행되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2018년 3월20일 부산 수영구 남천사랑의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1987년 경찰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를 만나 사과의 말을 전하고 있다. 현직 검찰총장이 과거사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한 일은 처음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2018년 3월20일 부산 수영구 남천사랑의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1987년 경찰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를 만나 사과의 말을 전하고 있다. 현직 검찰총장이 과거사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한 일은 처음이다.


 

 

1997년 12월22일 내란 및 반란 수괴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두환이 특별사면으로 풀려나자, 그가 수감 중이던 안양교도소 입구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현장 접근을 막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1997년 12월22일 내란 및 반란 수괴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두환이 특별사면으로 풀려나자, 그가 수감 중이던 안양교도소 입구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현장 접근을 막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공장에서 일하다 수은중독으로 숨진 문송면군의 영결식이 1988년 7월17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협성계공 앞에서 열려 700여 명의 노동자와 시민이 장례 행렬을 저지하는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다.

공장에서 일하다 수은중독으로 숨진 문송면군의 영결식이 1988년 7월17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협성계공 앞에서 열려 700여 명의 노동자와 시민이 장례 행렬을 저지하는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다.


 

1991년 4월27일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소속 어머니들의 노래공연 ‘어머니의 노래’가 서울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리고 있다. 이 공연이 열리는 동안 경찰에 의해 사망한 명지대 학생 강경대씨의 주검이 안치된 세브란스병원과 연세대 앞에서는 시위가 계속됐다

1991년 4월27일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소속 어머니들의 노래공연 ‘어머니의 노래’가 서울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리고 있다. 이 공연이 열리는 동안 경찰에 의해 사망한 명지대 학생 강경대씨의 주검이 안치된 세브란스병원과 연세대 앞에서는 시위가 계속됐다


 

제35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린 2022년 6월10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앞에서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앞줄 오른쪽 둘째) 등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관계자들이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제35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린 2022년 6월10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앞에서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앞줄 오른쪽 둘째) 등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관계자들이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1988년 12월22일 정부의 12·20 조치에 따라 복역 중이던 시국 공안사건 관련자 128명이 전국 교도소에서 풀려난 가운데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의 원인이 됐던 박종운씨(왼쪽)가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와 함께 유해가 뿌려진 임진강을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1988년 12월22일 정부의 12·20 조치에 따라 복역 중이던 시국 공안사건 관련자 128명이 전국 교도소에서 풀려난 가운데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의 원인이 됐던 박종운씨(왼쪽)가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와 함께 유해가 뿌려진 임진강을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1988년 5월19일 조성만 열사의 노제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이날 장례식은 서울 경희궁 시민공원에서 열려 1만여 명의 시민과 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1988년 5월19일 조성만 열사의 노제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이날 장례식은 서울 경희궁 시민공원에서 열려 1만여 명의 시민과 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