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5월18일 경북 의성군 고운사 일대 사찰림의 불에 탄 소나무 위에 오색딱따구리가 앉아 있다.

오색딱따구리가 불에 탄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다. 가슴에 검댕이 묻은 모습이 보인다.
한낮의 땡볕에 급경사가 진 산비탈을 올랐다. 거뭇거뭇한 색의 마른 흙을 밟으며 오르다 잔돌에 발이 미끄러져 급히 나무를 붙잡았다. 메마른 나무껍질이 바스락거리며 부서졌다. 손에 검댕을 잔뜩 묻힌 가운데 목을 축이는 찰나,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숲의 ‘의사’ 또는 ‘건축가’라 불리는 오색딱따구리였다.
산불로 발생한 고사목은 각종 병해충의 증식처가 되기 쉬우나 오색딱따구리는 이를 먹이원 삼아 자연방제 역할을 한다. 또한 딱따구리는 굴착 활동으로 이후 다른 조류나 소형 포유류에게 서식처를 제공해 숲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대표적인 지표종이다.

불에 탄 소나무에 치마버섯이 자라고 있다. 치마버섯은 죽은 나무를 분해하는 역할을 해 다시 나무가 자연으로 돌아가게 한다.

검게 타버린 땅에서 초록색 맹아가 싹트고 있다. 고운사 사찰림은 소나무 우점림에서 참나무류 활엽수림으로 천이되고 있다.

산지의 초원에서 자라는 큰원추리꽃이 피어 있다.
2025년 3월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안동·청송·영양·영덕까지 번지며 약 10만4천㏊(대한민국 전체 면적의 약 1.5%)를 태웠다.
당시 산에서 시작해 바다까지 번진 불길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의성군 천년고찰 고운사를 2026년 5월18일 찾았다. 거대한 산불로 사찰 건물 45동 가운데 26동, 사찰림 248.87㏊ 중 242.92㏊(97.61%)가 피해를 본 고운사는 2025년 8월 한국 불교계 최초로 사찰림 자연복원을 공식 선언했다.

고운사 일대 사찰림 수관화(불길이 숲과 나무 상층부로 번지는 현상) 피해지에서 죽은 나무 사이로 수풀이 자라고 있다.

고운사 사찰림이 소나무림에서 활엽수림으로 전환하고 있다.

고운사 일대 사찰림 수간화(나무 큰 줄기가 타는 불) 피해지에서 죽은 소나무들 사이로 활엽수 맹아들이 자라고 있다.
주지 스님(등운)은 “산불이 지나고 며칠 뒤 산을 올라보니 땅에서 싹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불교에는 무상의 개념이 있는데 모든 것은 고정된 상태에 머물지 않고 생멸변화한다는 것이죠. 자연에 맡겨야 환경에 가장 적합한 식생들로 사찰림을 복원할 수 있습니다. 소나무가 많았지만 냉대 기후 대표적인 수종이고, 우리나라는 아열대화가 진행 중이니 자연스럽게 변해야죠.”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와 안동환경운동연합, 불교환경연대, 서울환경연합, 생명다양성재단 등 환경단체와 이규송 강원대 교수 연구팀이 5월22일 유엔 생물 다양성의 날을 맞아 공개한 ‘고운사 사찰림 자연복원 결과 보고서(식생편)'에 따르면 산불 피해지의 76.6%에서 자연복원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숲의 체질도 달라지고 있었다. 산불 직전 사찰림의 약 84%가 숲 가꾸기 사업이 진행된 소나무 우점림이었고, 불에 잘 타는 특성으로 산불 피해는 수관화(불길이 숲과 나무 상층부로 번지는 현상)가 49.57%로 나타났다.
그러나 약 1년 뒤 소나무림의 비중은 기존 58.51%에서 0.58%로 10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 자리를 신갈나무, 굴참나무 등의 참나무류 활엽수가 채웠다. 앞서 중간 보고회에서는 다양한 곤충과 동물도 서식하는 것이 확인됐다. 고운사 사찰림은 산불과 산사태에 더 강한 숲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사찰림 고지대 일대에서 불에 탄 나무 주위로 수풀이 자라고 있다.

사찰림 계곡 부근에 제이줄나비가 앉아 있다.
환경단체와 연구진은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산불 복구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산불 대응을 명분으로 보호지역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자연복원의 회복탄력성을 약화할 수 있다”며 “보호지역 내 산림 관리는 보전 원칙을 우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슴에 검댕을 묻힌 채 죽은 소나무에서 벌레를 찾아 먹고 있는 오색딱따구리는 오늘도 숲의 자연복원을 돕고 있다.
의성(경북)=사진·글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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