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초 활동가가 2025년 10월13일 한겨레21과 화상 인터뷰를 하며 이스라엘에서 보낸 시간들을 떠올리고 있다. 화상회의 화면 갈무리
아침이 밝았다. 평화 활동가 해초(27·김아현)는 집을 말끔히 정리했다. 가족들에겐 편지를, 자신이 속한 단체 ‘개척자들’엔 유서를 썼다. 종교는 없지만 어떤 장소를 떠날 땐 항상 기도를 하는 편이다. 그날도 짧게 기도를 마치고 친구들이 준 편지를 마지막으로 읽은 뒤 공항으로 향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긴장됐다. 2025년 9월17일, 해초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향하는 구호선단에 합류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 날이다.
해초를 비롯한 30개 국적 활동가 150여 명은 배에 구호품을 싣고 가자로 향하다 10월8일(현지시각) 이스라엘군에 붙잡혔다. 이들은 감옥에 구금됐다가 사흘째인 10월10일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추방됐다. 한국인이 가자로 가는 구호선단에 오른 건 해초가 처음이다. 순조로웠던 항해와 강압적인 감옥생활의 대비가 전쟁의 고통을 날카롭게 드러냈다. 현재 프랑스로 이동해 안정을 취하고 있는 해초를 10월13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출국하기 전이 가장 무서웠고 긴장했던 것 같아요. 도착 날짜와 비행기편 정도가 제가 아는 거의 유일한 정보였고 먼저 가 본 사람도 없어서요. 이스라엘이 항해자들 장기 구금도 하겠다고 협박한 상태라 위험하겠구나, 충분히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평화 활동가들은 2010년부터 가자 봉쇄를 풀기 위해 배에 구호품을 싣고 꾸준히 가자로 향했다. 이스라엘 해군은 배를 매번 나포하고 활동가들을 구금·추방했다. 1년에 한두 척 출항하던 배는 가자 전쟁 2년이 된 2025년 규모를 크게 키웠다. 2025년 10월 ‘글로벌수무드함대’ 50여 척과 ‘천 개의 매들린 호’ 8척이 구호품을 싣고 가자로 향했다. 이스라엘군의 공격도 심해졌다. 먼저 출발한 글로벌수무드함대는 이스라엘 소행으로 추정되는 드론의 공격을 세 번 받았다. 2025년 5월에도 가자로 향하던 자유함대연합 소속의 배가 드론 공격을 받아 4명이 다쳤다.
해초는 9월19일부터 활동가들과 함께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나포 대비 훈련을 했다. “저희가 닥친 상황을 나누면서 ‘ 우리가 함께 가는구나’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사람들을 만난 뒤부턴 두렵지 않았어요.”
해초는 가자로 가는 항해를 “정말 오랫동안 생각해왔다”고 했다. “전부터 평화의 항해를 하면서 ‘다음 단계는 가자가 될 거’라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어요. 사실은 제주도에서 출발해서 가자까지 가고 싶었어요. 시간이 있었으면 그렇게 갔을 거예요.”
그는 2022년 평화단체 ‘개척자들’이 기획한 항해 프로그램 ‘세계평화대학’에서 요트 다루는 법을 배웠다. 이후 2023년 제주 강정-일본 오키나와-대만을 107일간 항해하며 반전 메시지를 전했다. 2024년엔 미국 ‘골든룰호’에 탑승해 탈핵 운동을 했고, 2025년엔 배 ‘요나스웨일’ 선장을 맡아 제주 강정부터 북쪽 파주 임진각 직전까지 평화의 항해를 했다. 그때 자신의 몸이 ‘매개’가 되는 경험을 했다. “교통 수단도 없는 작은 섬에 바다를 건너 도착하면 제 몸이 여기와 저기를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고 느꼈어요. 선으로 경계 긋는 땅과 달리 바다에선 모든 게 연결돼 있었어요.”

2025년 5월27일 ‘요나스웨일’에 탄 선장 해초가 ‘해군기지 반대’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한겨레 서보미 기자
가자와 한국도 그렇게 연결할 수 있을 듯 했다. “만약 가자에 간다면 한국과 가자를 연결하는 매개가 될 것이고 만약 죽는다면 한국 사회가 다시 한 번 가자에 관심 갖는 계기가 되겠죠. 사실 운동이라는 게 큰 성공을 바라기는 쉽지 않잖아요. 두드리고 저항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하는 건데, 그 한 걸음의 매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가자로 향하는 천개의 마들린호’ 구호선단에 참여해 항해 중인 해초 활동가. 제공 강정친구들, 개척자들
9월27일 가자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그길로 꼬박 11일을 항해했다. 그때만큼은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같은 지향을 가진 이들과 어울리며 잔잔한 바다를 가로질렀다. 그러나 10월8일 새벽 5시40분께, 이스라엘군이 배에 난입했다. “배가 위험 구간으로 들어가긴 했어도 그날 밤은 넘길 수 있을 거라 어렴풋이 예상했어요. 아직 (가자 해상에서) 150㎞ 이상 떨어진 먼 바다였으니까요. 두 명씩 교대로 잠을 자다가 경고 소리에 깼어요. 제 역할은 마지막 상황을 영상으로 찍어 전송한 뒤 바로 휴대전화를 폐기하는 거였거든요. 그 일을 마치자마자 군인들이 배에 올라탔어요.”
군인들은 활동가들을 일렬로 앉힌 뒤 두 손을 드는 ‘항복’ 자세를 취하게 했다. 그리고 배 안의 통신 장비를 바다에 던지거나 연결선을 끊었다. 다른 배의 경우 이스라엘군이 총을 쏴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부수기도 했다. “처음 느껴본 공포에 몸이 스스로 떨렸어요. 어둠 속에서 정말 많은 불빛을 보고 ‘주변에 군인들이 이렇게 많구나’ 느꼈어요. 다른 7척의 배도 하나씩 나포되는 걸 봤죠.”
곧이어 군함으로 옮겨탔다. 한 방에 8명씩 갇혀 꼬박 6시간을 이동했다고 한다. 저녁시간 즈음 바다 물결이 멈추더니 군인들이 “나오라”라고 소리쳤다. “저희가 나오자마자 군인들이 손을 뒤로 모으곤 거칠게 한 사람씩 잡고 어떤 방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손목을 케이블 타이로 꽉 묶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너무 꽉 조여서 고통을 호소할 만큼요. 날씨가 굉장히 추웠는데도 옷을 한 겹만 입게 했고요. 눈도 천으로 가린 상태에서 한 명씩 버스에 탔어요.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옆에 있는 사람이 동료인지 적인지도 분간이 안 됐어요.”
온몸을 결박당한 채 한참을 실려갔다. 어디선가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겼다. 감옥임을 직감했다. 여성 검사원은 옷을 모두 벗게 한 뒤 신체 검사를 했다. “ 누군가 구타당하고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저희가 항의하려 했더니 (이스라엘군이) 바로 총으로 위협했어요. 지금부터 정말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겠구나, 여기서 침착하지 않으면 바로 폭력이 가해질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해초는 시칠리아에서 배운 훈련을 떠올렸다. ‘항상 침착하고 말을 삼가라.’ 예측할 수 없는 폭력 앞에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거였다. “저도 석방 이후 이틀까지 손목에 묶인 자국이 남았을 만큼 거칠게 다뤄졌거든요. 그래도 소리 지르는 걸 참았어요. 여기에 저항감으로 왔다는 걸 눈빛으로 표현하되 최대한 표정은 없애고 묻는 말에만 대답했고요.”
음식은 거부했다. “이스라엘이 주는 음식은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은 선택지가 없었다. 마실 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변기랑 세면대가 있어서 세면대에서 물을 조금씩 마셨어요. 군인들은 저희를 조롱하듯이 눈앞에서 물을 마셨고요. 화장실 휴지도 계속 요구해야 겨우 받을 수 있었어요. ”
이스라엘군은 처음엔 잘 들어주는 듯한 제스처도 취했다. 그게 기만과 조롱이었다는 건 금방 알게 됐다. “군인들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한다는 걸 얼마 안 가 깨달았어요. ‘변호사를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변호사를 못 만난다든가, ‘약을 달라’고 하니 ‘오케이’하고서 소식이 없다든가 하는 식이었죠. 저는 생리통이니까 참을 수 있었지만 당뇨 때문에 지속적으로 약을 먹어야 하는 동료도 있었거든요. 그분은 끝까지 약을 못 받았어요.”
약을 요구하면 ‘의사’ 면담을 하게 했다. “몸이 어떤지 묻고 카메라 앞에서 빙글 돌게 하고 알 수 없는 서류도 쓰게 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약은 주지 않았다. ‘변호사’, ‘판사’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직업 관련 지식이 없다시피해 곧 연출이라고 느끼게 됐다. 해초도 생리통이 심해지자 ‘타이레놀’을 달라고 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타이레놀? 그게 뭔데. 그런 건 없어”였다.
자꾸만 거절당하자 공포감이 들었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됐는데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 밖에서 알 수나 있을까 싶었죠. 주이스라엘 영사님도 ‘사실상 할 수 있는 법률적 조치는 없다’고 하셨고요. 저희에게는 이것(이스라엘의 점령)이 불법이지만 그들에게는 저희가 불법이니까요.”
작은 위로의 손길도 만났다. 누군가 ‘free palestine’라고 쓴 흔적이 벽에 남아있었다. 이전에 나포된 항해자들이 적어둔 것이다. 방 안 곳곳에 숨겨진 볼펜과 묵주팔찌, 약도 발견했다. “그런 것에서 조금이나마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밤이면 아주 얇은 매트리스와 담요로 잠을 청했다. “정말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 듯” 낡고 더러웠다. 그런 순간마다 해초는 팔레스타인을 떠올렸다. “그들이 우리를 부당하게 대우한다는 건 알았어요. 하지만 감옥에 갇힌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이나 가자 사람들이 처한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죠.”
이스라엘 군인을 대면한 경험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들은 잘 훈련된 병사가 아니었다. 숫자를 틀리게 세거나 좀전에 끝낸 일을 되풀이하는 등 실수가 잦았다. 그런 와중에도 이스라엘의 관점만은 꾸준히 주입시켰다. “이스라엘군이 계속 저희한테 세뇌를 하려고 했어요. 하마스가 저지른 폭력으로 자신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만 계속 호소했어요. 정작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는 듣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이 사람들도 세뇌됐다고 느꼈죠.”
국가의 프로파간다를 순수하게 믿었기에 무자비한 학살이 가능했다. 그 점이 더 안타까웠다고 해초는 말했다. “그 사람들이 무지하고 순수하기에 자신이 저지르는 폭력과 살인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모르는 듯 했어요. 식민지배의 역사가 개인의 삶을 통과하며 만들어지고 있구나, 70여 년의 긴 식민 지배로 꼬인 매듭을 풀기가 쉽지 않겠다는 고민이 들었어요.”
구금 사흘째 해초는 풀려났다. 군인들이 한밤중에 사람들을 깨우더니 한 사람씩 데리고 나갔다. 또다시 의사 앞에서 의미 없는 문답을 하고 카메라 앞을 돌았다. 군인들이 ‘집에 가는 거’라고 했지만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말만 그렇게 하고 또다른 감옥으로 보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동트기 직전, 군인이 여권을 심사하더니 ‘버스에 타라’고 했다. 마침내 석방된 것이다. 이때 해초는 처음으로 저항했다. “‘방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만 하게 해 달라’고 했어요. 이 일이 끝나면 다시는 못 볼 테니까요. 하지만 결국 군인들이 시키는 대로 이동해야 했어요.”
사막 한가운데를 통과하느라 버스 안이 몹시 더웠다. ‘창문이라도 열어달라’는 요구는 ‘고장났다’는 답변으로 묵살됐다. 한참을 달린 버스의 도착지는 다행히도 공항이었다. “비행기에 탈 때부터 굉장한 안도감을 느꼈고요. 모든 사람이 탔을 때 ‘프리 팔레스타인’을 외치면서 감격스러운 이륙을 했어요.”
비행기 창문 너머 가자 땅이 보였다. 도시의 많은 것이 부서져 삭막한 땅이었다. “팔레스타인 땅을 다시 남겨두고 가는 마음이 정말 안 좋았어요. 배에 탄 크루 중 저만 석방된 것도 걱정스러웠고요.” 해초와 함께 알라 알나자르호에 탄 프랑스인 3명은 10월13일에야 요르단으로 추방됐다.

해초 활동가가 석방된 뒤인 2025년 10월11일(현지시각) 튀르키예의 공항 라운지에서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편안히 쉬고 있다. 해초 제공
해초가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가자로 향한 이유는 뭘까. 그는 차곡차곡 쌓인 부채감을 말했다. “많은 단체들이 최선을 다해 활동하지만 목소리가 크게 전달되지 못한다고 느꼈어요. 가자로 들어가는 구호품 공급이 중단되고 거기서 일어나는 매일의 참상을 목격할 때 계속 죄책감을 느꼈고요. 제가 만약 항해하다 죽는다 해도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편안한 죽음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이 가진 힘도 컸다. “ 팔레스타인은 세계에서 가장 참혹한 비극에 처해 있으면서도 꺾이지 않는 긍지를 가졌어요. 팔레스타인 영화를 보면 군인에게 무자비한 탄압을 받는데도 어린 아이들이 스스로를 팔레스타인인이라 소개하고 자신의 역사와 문화에 긍지를 갖는 모습이 나오거든요. 그 점이 굉장히 놀라웠어요.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세계의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영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이들이 나포될 것을 알면서도 가자 항해를 멈추지 않는다. 이대로 인종 학살을 두고볼 수 없다는 절박한 몸짓이다. 해초는 더 많은 시민들이 그 흐름에 동참해주길 바란다. “배를 탄 사람들 중에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사람, 팔레스타인 사람, 무슬림 여성, 이스라엘과 외교적 관계를 끊은 말레이시아 사람도 있었어요. 저보다 훨씬 취약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 용기를 가지고 항해에 참여한 거죠. 그들이 떠난 이유는 팔레스타인에 있어요. 거기에 많이 관심가져주시면 좋겠어요. 10월18일 서울 종로에서 열리는 가자 전쟁 2년 집중 집회에 많이 와 주시길 부탁드려요.”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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