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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대신 흙을 만지는 방과후교실 어떠세요?”

권지담 기자가 성미산마을 ‘도토리마을방과후’ 일일교사 ‘피그렛’으로 지내며 본 공동체 돌봄 30년
등록 2026-05-08 00:41 수정 2026-05-10 13:01
2026년 4월30일 오후 1시40분께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길 ‘도토리마을방과후’ 1·2학년 학생들이 성서초등학교 후문에서 하교하고 있다. 권지담 기자

2026년 4월30일 오후 1시40분께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길 ‘도토리마을방과후’ 1·2학년 학생들이 성서초등학교 후문에서 하교하고 있다. 권지담 기자


“잠깐, 여기서 기다리자.”

2026년 4월30일 오후 1시40분 서울 마포구 성서초등학교 후문 앞. 수업을 마친 성서초 1학년 학생들이 하나둘 나무 정자가 있는 ‘도토리정거장’(한뼘 쉼터)에 모이기 시작한다. 다른 초등학교 앞 풍경과 달리 노란색 학원차는 보이지 않았다.

오후 1시43분이 되자 ‘도토리마을방과후’(도마방) 1학년 7명이 모두 모였다. 아이들은 두셋씩 손을 잡고 한쪽 벽에 붙어 약 100m 언덕길을 내려왔다. 도마방 2학년이 뒤를 따랐다. 언덕 끝 삼거리엔 도마방 교사 ‘자두’(한은혜)가 아이들을 웃으며 맞았다. 손뼉치기로 인사를 대신한 아이들은 자두를 따라 도마방의 생활공간 중 하나인 ‘채텀’(아이들이 지은 티브이 프로그램 속 섬 이름)으로 향했다. 도마방에서 매년 3~4월 단계별로 진행하는 하교 지도 과정이다.

 

학원차 대신 ‘도토리정거장’

 

도마방은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에 만들어진 전국 최초 ‘협동조합형 초등 마을 방과후 돌봄 기관’이다. 부모가 출자금을 내고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참여해 교사와 함께 운영하는 방식이다. 1994년 국내 첫 공동육아협동조합 ‘우리어린이집’이 문을 연 뒤, 1996년 어린이집 안에 초등 방과후 모임인 ‘방과후 방’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초등학교 1~3학년을 대상으로 운영하다 2017년 초등학교 전 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미산마을방과후’와 통합하면서 현재 ‘도토리마을방과후’ 체제가 됐다. 그렇게 방과후 방을 만든 지 올해로 30주년이 됐다. 현재 1~6학년 45명의 아이와 교사 5명이 하교 시간부터 저녁 7시까지 함께 생활한다.

돌봄교실, 늘봄학교, 방과후학교 등 학교 안에서도 초등 방과후 돌봄을 담당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아이들의 방과후를 지배하는 건 여전히 각종 학원 등 사교육이다. 운동회가 사라지고 체험학습이 줄면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공간도 줄고 있다. 친구와 어울릴 시간을 스마트폰과 인공지능(AI)이 메우는 시대, 도마방 아이들은 방과후를 어떻게 보낼까? 학부모들은 왜 학교도 학원도 아닌 이곳을 택했을까? 4월30일 오후 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일교사 ‘피그렛’(별명)이 되어 도마방에서 함께 생활해봤다.

2026년 4월30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길 ‘도토리마을방과후’에서 권지담 한겨레21 기자가 일일교사 체험을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26년 4월30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길 ‘도토리마을방과후’에서 권지담 한겨레21 기자가 일일교사 체험을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오후 1시50분 채텀에 도착한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가방정리와 손씻기, 그리고 책읽기다. 도마방 터전 안에선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된다. 인권도서, 동화책 등 자연스럽게 저마다 책을 집어든 아이들은 곧바로 집중했다. “지오야, 마음속으로 읽으면 안 될까? 시끄러워서.” “알겠어.” 책을 소리 내어 읽던 지오에게 라영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새로운 사람이 옆에 있어도, 말을 걸어도, 30분간 도마방 1~2학년 아이들은 책에 집중했다. 독후감 숙제를 하거나 수학 문제집을 푸는 아이도 있었다. 경계성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도 예외는 없다. ‘독서 시간’이 아닌 엄연한 ‘자유 시간’이다.

오후 2시50분이 되자 아이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매주 화·목요일은 함께 책 읽는 시간이다. 기자가 아이들에게 ‘피그렛’이란 별명을 소개했다. 존댓말을 하자 곧바로 “여기는 반말해”란 지적이 날아들었다. 도마방에선 수평적 관계를 위해 아이와 어른이 서로 반말을 한다. 아이는 교사와 학부모를 이름 대신 별명으로 부른다. 이날은 도마방 학부모인 ‘열무’(이경진)도 전일 ‘아마’(아빠와 엄마를 합해 만든 말)로 함께했다. 아마가 오는 날은, 아마 수만큼 교사들이 쉰다.

이번 달에 읽을 책은 ‘오즈의 마법사’. 기침하며 몸을 배배 꼬던 아이들도 자두의 목소리에 서서히 집중한다. “말하는 허수아비 본 적 있어?”라는 질문에 “윙크하는 허수아비 봤어” “난 달걀귀신 허수아비”라는 답이 이어진다. 오후 3시10분 책읽기가 끝나자 2학년 아이들은 책에 대한 감상을 적어 스케치북에 붙인다. 읽고 말하고 쓰는 ‘문해력 훈련’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2026년 4월30일 서울 마포구 성산근린공원에서 도토리마을방과후 아이들이 땅파기에 열중하고 있다. 땅을 파서 물길을 내어 배수구까지 물이 흐르도록 하는 놀이다. 권지담 기자

2026년 4월30일 서울 마포구 성산근린공원에서 도토리마을방과후 아이들이 땅파기에 열중하고 있다. 땅을 파서 물길을 내어 배수구까지 물이 흐르도록 하는 놀이다. 권지담 기자


 

책 읽고 설거지하고

 

오후 3시40분 간식 시간이 되자, 1·2학년이 섞여 식탁에 앉았다. 간식은 마을 생협(소비자생활협동조합) 유기농 재료로 만든 달걀햄주먹밥이다. 상을 닦을 당번은 가위바위보로 정했다. 당번이 상을 닦고 나서 밥 먹을 준비가 다 되면 아이들은 이현주 시인의 ‘밥을 먹는 자식에게’를 읊는다.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을 고맙게 생각하자’는 내용의 시를 아이들은 줄줄 외운다. 다 먹은 그릇은 각자 설거지한다. 학부모 ‘씨즐’(노민영)은 “위험하거나 일이 커질까봐 어른이 해주는 청소나 설거지 같은 살림을 여긴 1학년부터 배운다”며 “이 과정에서 얻은 생활력과 자립심은 나중에 공부보다 더 큰 힘이 될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오후 4시 ‘성산근린공원’에서는 3·4학년이 야외놀이에 한창이다. 공원 한쪽에선 5명이 쪼그려 앉아 땅속 물길을 내는 일에 열중했다. 돌과 나뭇가지를 이용해 꼬박 1시간 땅을 팠다. 물길을 어떻게 낼지, 땅을 얼마나 팔지 진지한 토론도 이어졌다. ‘흙을 덮어 원상태로 돌려놔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옆에선 야구와 캐치볼, 배구 게임이 펼쳐졌다. 그림그리기를 하던 1학년도 공원에 합류했다.

도마방은 일주일에 한 번 공동체놀이와 나들이를 하고 여름·겨울 방학엔 숙박 캠프인 들살이를 간다. 아이들은 들살이 장소와 프로그램은 물론 식사팀, 놀이팀, 안전팀 등 역할도 정한다. 돌아온 뒤엔 평가서도 쓴다. 아이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함께 노는 시간이다. 2학년 권해율군은 “다방구, 석고뜨기, 바느질 놀이를 실컷 할 수 있어서 집보다 이곳이 좋다”고 말했다. 5학년 이로한군도 “언제든 원하면 자유롭게 놀 수 있고, 들살이에서 여름엔 수영하고 겨울엔 눈썰매를 타는 시간이 행복하다”며 웃었다.

도마방에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도 없다. 이날 4학년 뇌병변장애를 지닌 아이 곁엔 친구들이 북적였다. 도마방은 2020년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시작해 장애 학생 1명을 받고 있다. 장애아이 전담 교사 ‘비움’은 “이곳에선 장애인, 비장애인 편견 없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논다”고 말했다.

도마방 졸업생이 꼽은 이곳의 장점도 공동체였다. 고등학교 3학년 윤지오 학생은 “야외 활동과 공동체 생활 경험이 사회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며 “요즘 운동회도 안 하고 수학여행도 안 가서 이런 단합력의 경험이 더 소중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등학교 3학년 권나연 학생도 “초등학교 4학년 늦둥이 동생이 현재 도마방에 다닌다”며 “6년간 함께한 친구들이 제일 친한 친구다. 가족 같은 관계가 든든한 자산”이라고 덧붙였다.

2025년 통계청(현 국가데이터처)이 발표한 ‘2024년 생활시간 조사’를 보면, 초등학생의 하루 평균 학습 시간은 5시간5분으로 2019년(4시간46분)보다 19분 늘었다. 조사 대상(초·중·고·대학생) 가운데 학습 시간이 늘어난 집단은 초등학생이 유일했다. 게임·놀이에 쏟는 여가 시간은 10~19살 기준으로 1시간21분에서 1시간20분으로 소폭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20·30·40대는 게임·놀이 시간이 모두 늘었다.

2026년 4월30일 저녁 7시, 도토리마을방과후 아이들이 모두 떠난 시간 학부모 씨즐(왼쪽)과 열무가 ‘채텀’ 입구 휴게실에 앉아 있다. 두 사람은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도 도토리마을방과후에 보냈다. 권지담 기자

2026년 4월30일 저녁 7시, 도토리마을방과후 아이들이 모두 떠난 시간 학부모 씨즐(왼쪽)과 열무가 ‘채텀’ 입구 휴게실에 앉아 있다. 두 사람은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도 도토리마을방과후에 보냈다. 권지담 기자


 

2026년 4월30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길 도토리마을방과후 장영진 대표 교사.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26년 4월30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길 도토리마을방과후 장영진 대표 교사.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초등 방과후 돌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공공과 민간, 그리고 도마방 같은 협동조합 형태다. 공공은 학교 안 돌봄교실·늘봄교실·방과후 프로그램과 학교 밖 지역아동센터와 다함께돌봄센터가 있다. 민간에선 학원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도마방은 출자금(410만원)과 조합비(월 53만원)로 운영된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돌봄 기능을 맡지만 그동안 정부 지원은 받지 못했다. 도마방 같은 협동조합형 초등 방과후는 현재 서울 5곳, 경기 4곳 등 전국에 14곳이 있다.

2025년 10월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협동조합형 초등 방과후도 변화를 맞았다.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초등 돌봄 기관을 ‘협동돌봄센터’란 아동복지시설로 공식 지정해 정부가 운영비를 지원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도마방은 2026년 1월 협동돌봄센터로 인가받았다. 운영한 지 30년 만에 국가 지원을 받을 문이 열린 것이다.

2026년 5월6일 보건복지부 설명을 종합하면 ‘협동돌봄센터 사업 안내 최종 지침’엔 운영비와 인건비를 지역아동센터 대비 각각 50%, 100%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장영진 보건복지부 아동보호자립과장은 “협동돌봄센터의 운영 자율성을 존중하고 지원을 높이는 쪽으로 최종 사업 지침을 확정해 협동돌봄센터 쪽과 협의를 마쳤다”며 “지방자치단체에서 인력과 시설 기준 등을 승인받으면 내년부터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파민 시대, 마을 돌봄은 살아남을까

 

도마방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저출생으로 성미산마을의 아이가 줄어드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2020년 총 60명(1학년 11명)이던 도마방 아이들은 2026년 45명(1학년 7명)으로 줄었다. 도마방 대표 교사 ‘안테나’(장영진)가 일했던 인천의 한 공동육아 초등 방과후도 젊은층이 마을을 떠나면서 문을 닫았다. 학부모 ‘과메기’(김성훈)는 “예전엔 마을 안에 포스터만 붙이면 아이들이 모집됐는데, 1~2년 전부터는 합정·망원·서교·광흥창·상수·공덕까지 홍보 범위를 넓혀야 한다”며 “정부 지원이 시작되면 조합비 부담이 줄어 정원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자연과 공동체를 중심으로 균형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안테나는 “고학년 남자아이들은 폭력적인 온라인게임과 19금 애니메이션에, 여자아이들은 에스엔에스(SNS) 관계에 매년 빠르게 스며든다”며 “이런 문화에 휩쓸리지 않도록 교사는 물론 학부모, 아이들이 함께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숙제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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