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5월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별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어 보였던 국민의힘에 할 말이 생겼다. 여당이 갑자기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취소’가 가능한 ‘조작기소 특검법’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소속 거의 모든 후보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여당은 당황했지만, 이 대통령이 ‘숙의’를 당부하면서 그나마 퇴로를 열었다.
특검법 발의가 선거에 미칠 영향은 예상 가능했다. 이미 보수진영 전체가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취소 문제를 물고 늘어지던 중이었다. 가령 박상용 검사의 주장을 보라. 그는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특검을 통해 대북송금 사건의 공소취소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선서하겠노라 했다. 물론 선서는 공소취소와 아무 관계가 없다. 선서 거부는 정당화가 어렵다. 그러나 여당이 실제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취소를 가능하게 하는 특검법을 발의하면서, “역시 박상용이 옳았다”는 식의 주장이 가능해졌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모든 권력을 손에 쥔 대통령이 자기 사건에 대한 재판을 무력화하기 위해 그 권력을 활용하는 모습은 클리셰적이다.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콱 와 박히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보수세력은 이 그림을 활용해 이재명 정권을 ‘독재’ 이미지에 연결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국민의힘을 ‘자유민주주의’ 자리에 갖다 놓는다. 국민의힘이 실제 그걸 추구해서가 아니라, ‘독재를 반대하기 때문’에 자유민주세력이라는 논리다. 이러한 상징조작을 통해 국민의힘은 불법적 비상계엄을 통한 내란을 사실상 비호하고 장기간 이에 대한 반성을 거부했다는 맥락으로부터 탈각을 시도한다.
이런 정치 서사를 수용하는 유권자가 있을까? 그렇잖아도 이재명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에 반대할 준비가 돼 있는 유권자라면 가능할 것이다. 과거에 보수정치를 지지했지만 지금은 관망 상태인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장동혁 대표 체제의 국민의힘이 너무나 한심한 데 견줘 이재명 정권은 별달리 반대할 거리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여당의 ‘조작기소 특검’ 발의는 이런 사람들에게 정권에 반대할 명분을 준다. 정권을 견제해야겠기에 마음에 들지 않지만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견제론’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효과는 특히 이런 유권자가 집중된 영남권에서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이 지역 여당 후보들이 특검법 발의에 우려를 표명한 이유다.
이미 보수진영이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길목으로 여당이 알아서 걸어 들어간 이유는 뭘까? 특검을 통한 수사를 추진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굳이 공소취소에 방점을 찍은 모양새를 만들어 그것도 선거 전이라는 시점에 논란을 키운 이유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번 건은 검찰개혁 논란 당시와 같은 ‘당청 간 이견’이나 ‘법사위 강경파의 자기 정치’ 같은 틀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법안 작성과 추진 과정에 언론이 이른바 ‘친명’으로 분류하는 인사들이 전면에 나섰고 발의에 원내지도부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의도 근처에서는 이를 전당대회와 연결 짓는 온갖 해석이 나돈다. 검찰개혁 논란 당시 당원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던 ‘친명’이 뒤늦게 공소취소를 고리로 선명성 경쟁에 나선 것이라는 설, 특정 인사의 지도부 입성 프로젝트라는 설, 정청래 대표 연임 가능성이 커지자 숙제(?)를 빨리 해결하려 한다는 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026년 5월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윤상현 의원의 조작기소 특별검사 추진 규탄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여의도의 속사정이 무엇이든 대중적 관심사는 ‘대통령의 의중은 무엇인가’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설명을 보면 대통령은 숙의의 대상으로 특검법 처리의 ‘시기’와 ‘절차’만 거론했다. 지금 특검법의 구조는 그대로 두고 시점만 지방선거 이후 추진하라는 얘기처럼 들린다. 실제 국민의힘은 그런 취지로 여전히 정치적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재선출된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가 시기와 절차에 더해 ‘내용’ 역시 의견 수렴과 숙의의 대상으로 규정했지만, 여전히 시선은 대통령에게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건 이 이슈가 ‘이재명 정권’의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 지면에서 꾸준히 분석한 것처럼 이재명 정권은 자신들을 주류를 대변하는 유일한 정치세력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이재명 정권에 대한 중도층에서의 지지 확장과 안정화를 도모할 수 있게 하며 장기적으로 국민의힘을 비주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과도한 검찰 수사에 의해 탄압당한 피해자라는 맥락을 ‘현재’ 시점으로 부각하는 것은 비주류적 정치 논법이다. 따지고 보면 이 대통령은 이러한 비주류적 정치로 성장하고 생존해왔으며 이를 통해 성공을 거듭해온 정치인이다. ‘소년공’이나 ‘변방의 장수’와 같은 키워드가 이를 방증한다. 이 대통령이 겪은 여러 정치적 위기도 이 프레임으로 소화돼왔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게 많은 이의 믿음이다. 이는 정치인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이 성공을 거둬온 방식을 더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바꾸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중도 확장력을 갖는 것은 이 대목에서 뭔가 다른 점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집권하면 하던 대로 비주류 정치의 방식을 유지할 거고 그러면 큰 문제가 되리라는 게 보수진영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많은 이의 예상을 깨고 ‘비주류로 집권해서 주류로서 통치’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개인의 정치적 성공 방정식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 지도자의 자리에 맞는 처신을 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이 ‘지도자다움’이다. ‘비주류로 집권해서 비주류로서 통치’하려 한 이전 지도자에게선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대통령에게서 비주류 정치의 흔적을 반복해서 보게 되는 대목이 있는데, 그게 바로 자기 관련 사건을 거론하는 때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까지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북송금 사건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증거조작 사건조작은 강도나 납치 살인보다 더 나쁜 짓”이라고 하거나 과거 조폭연루설을 다룬 에스비에스(SBS) 방송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등 메시지를 발신해왔다. 내용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이는 대통령이 여전히 비주류적 정치의 맥락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통치 방식이 달라지면 정치 구도 역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대통령이 비주류 정치로 스스로 후퇴하면 보수정치가 스스로를 주류로 재구성할 기회가 열리게 된다. 이번 선거에서 잠시 나타난 흐름은 이 가능성의 단서이다. 이러면 이재명 정권의 주류화 기획은 실패하고, 한국 정치는 제대로 된 반성도 없이 양당이 사이좋게 권력을 주고받는 시절로 돌아간다.
이 대통령이 직접 여당에 “마음은 고맙지만 내 사건을 더 이상 정치 쟁점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뜻을 전한다면 어떨까? 통상적 수사와 대응으로 정치검사들의 범죄가 밝혀진다면, 이후 조치도 시빗거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주류다운 담대함이 필요하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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