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5월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안나(왼쪽)와 몽키의 모습. 유선희 기자
아이 넷, 아빠는 전업주부, 엄마는 외벌이로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합계출산율 0.8명의 저출산 위기, 사교육비 27조5천억원 시대에 웬 ‘판타지’ 같은 소리냐고? 2026년 5월20일 개봉하는 ‘반칙왕 몽키’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비현실적이라고밖에 여겨지지 않을 선택을 하고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순도 100% ‘리얼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세상이 반칙하면 우리는 우리만의 반칙으로 맞서겠다”는 당당한 선언을 한 이 다큐의 주인공 몽키·안나 부부를 5월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안녕하세요. 전업주부 ‘몽키’(본명 문현준)입니다. 여긴 우리 바깥양반 ‘안나’고요.”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유아차를 밀고, 아기띠를 멘 채 장을 보고 요리하고, 아이들을 줄줄이 스쿠터에 태우고 바람을 가르는 영화 속 모습처럼 몽키는 유쾌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나가 팔꿈치로 몽키를 툭 치며 말했다. “바깥양반 아니고 워킹맘!”
영화는 몽키·안나 가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서술하지 않는다. 그저 맞벌이도 살기 어려운 시대에 외벌이인 안나는 출근을 하고, 몽키가 사 남매는 물론 동네 아이들까지 끌어모아 마을을 누비고 다니며 돌보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보는 내내 궁금증이 치민다. 도대체 몽키와 안나는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됐을까?

2026년 5월5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 도중 몽키의 대답에 안나가 폭소하고 있다. 유선희 기자
운명의 시작은 ‘대학생 국토대장정’이었다. 500㎞ 넘는 이 고단한 행군에 참여했다가 ‘눈이 맞은’ 두 사람은 7년간 연애를 했다. 안나는 “연애하는 내내 ‘결혼하면 무조건 딸·딸·아들·아들 순서로 아이 넷을 낳을 작정이니, 자신이 없으면 나를 놓아달라’고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몽키는 “한강뷰 아파트, 외제차, 명품백, 연 1회 이상 국외여행 같은 요구사항도 아니고 아이 넷은 내가 이뤄줄 수 있는 ‘목표’ 같아서 계속 만났다”고 말을 이었다.
첫째 세빈(초등학교 5학년)을 ‘혼전 임신’하면서 둘은 아이 넷이라는 ‘독특한 목표’를 이루겠다 다짐하며 결혼했다. 연년생으로 둘째 세연이를 가질 때까지 “장모님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맞벌이했지만, 곧 이런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 넷을 키우려면 한 명이 전업주부 역할을 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했어요. 당시 저는 비정규직인데다 직장생활에 대한 고민이 컸고, 안나는 정규직인 터라 합리적으로 제가 직장을 관두겠다고 했죠.”

안나와 몽키와 사 남매 가족사진. 안나·몽키 제공
가부장제의 전복은 놀랍게도 ‘지극히 자본주의적 계산’에 의한 선택이었다. 단, 몽키는 조건을 내걸었다. “성미산마을에 가서 살자”고. 둘째가 태어난 뒤 사표를 낸 몽키와 안나는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셋째 세윤(8)과 넷째 승윤(5)이 태어났고, “목표 할당량을 채운 몽키”는 다큐에 나오는 대로 정관수술을 했다.
몽키가 ‘난놈’이라 처음부터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제가 고향이 대구이고 장손에 장남이지만,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고 저를 믿어주셨어요. 하지만 3년 정도는 누굴 만나든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고 내 선택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차차 극복할 수 있었던 덴 돌봄에 진심인 성미산마을이란 공간적 영향도 컸던 것 같아요.”
사실 몽키보다 더 대단한 사람은 안나다. 안나는 ‘외벌이’로 돈을 벌며 가사도 5 대 5로 분담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취사병 출신이란 경력을 살려 몽키가 요리와 설거지를 주로 하고, 안나가 빨래와 청소를 한다. 안나는 심지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포로 이직하기 위해 ‘청소년지도사’로서의 10년 경력을 모두 포기하고 ‘사회복지사’로 전직까지 감행했다. “가족의 삶에 직장을 맞춰야지, 직장에 가족의 삶을 끼워 맞출 순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부부의 삶이 단순히 ‘성역할이 역전된 가부장제’가 아닌 이유다. 그래서 안나는 ‘바깥양반’이란 호칭 대신 ‘워킹맘’이라고 불러달라 요구한다.

돌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이다. 몽키가 세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다니는 모습. 몽키 제공
아이들이 자라면서 몽키는 “유명한 전업주부가 되겠다”고 결심했단다. “아이들이 아빠의 선택을 이해하기 바랐고, 아이를 많이 낳고 키우는 걸 ‘미친 짓’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에 ‘킥’을 날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업주부의 일상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영화도 8할은 몽키가 직접 찍은 ‘릴스’(쇼트폼)로 구성됐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돼야 한다”는 몽키의 생각을 반영한 감독의 결단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SNS 쇼트폼과 영화 스크린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낸 느낌을 준다.
영화 속 몽키는 ‘아빠표 방과후학교’의 진수를 보여준다. 마을 공터에 트램펄린을 설치해 놀고, 마을 뒷산에 밧줄로 집라인을 설치해 태워주고, 동전을 숨긴 뒤 금속탐지기로 찾는 놀이도 한다. 안나가 다니는 교회에서 청소놀이를 하고, 몽키가 다니는 사찰 법당에서 방석놀이도 한다. 장 보러 가서 채소를 고르는 것도 놀이고, 동생 머리를 빗기는 것도 놀이다. “사실 성미산마을에 살면서도 경제적 문제로 도토리마을 방과후학교에 보낼 수 없었어요. 그마저도 아이 넷 모두가 참여하려면 200만원이 훌쩍 넘거든요. 몽키는 대신 네 아이가 하는 여러 놀이에 도토리마을 친구들도 불러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 돕는 방식을 택했어요.”(안나)
동네에선 몽키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힘 좋은 전업주부’인 몽키는 아이들 돌봄을 주도할 뿐 아니라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홍반장’ 역할도 톡톡히 한다. 가전제품 고쳐주기, 빨랫줄 매주기, 페인트칠하기 등 도움을 청하는 어르신들 요구를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보드를 타며 유아차를 미는 몽키의 모습. 스튜디오 그레인풀 제공
몽키의 경쟁자는 ‘재벌 아빠’다. “재벌 아빠에겐 무한한 돈이 있지만, 저에겐 ‘시간’과 ‘체력’이 있어요. 남들은 사교육으로 돌봄을 외주화하지만, 저는 아이들과 24시간을 함께해요. 내 삶의 선택권을 왜 사회적 요구와 기준에 맡기나요? 룰이 잘못됐으니 우린 당당하게 반칙을 하겠다는 거죠.” 영화 ‘반칙왕 몽키’는 결국 한 가족이 삶의 주인공으로 스스로를 호명하는 모습을 담은 셈이다.
그래도 문득 엄습하는 불안감은 없을까? 영화 속에는 이런 고민을 나누는 몽키와 안나의 모습이 나온다. 글쎄. 그 답은 아이들에게서 찾으면 될 듯하다. 첫째 세빈의 꿈은 ‘전업주부’이고, 셋째 세윤의 장래희망은 ‘좋은 아빠’다. 아이들은 ‘돌봄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이미 이해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더 전업주부로 살려고요. 닥쳐올 경쟁, 입시, 가치관 혼란 등 여러 장애물을 아이들이 혼자 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 장애물을 어떻게 넘을지, 꼭 넘어야만 하는지 함께 고민해야죠.”(몽키)
“주말마다 사 남매의 친구들이 우리 집에 몰려와 밥을 먹어요. 우리의 건강한 에너지가 다른 아이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묵묵히 열심히 살려고요.”(안나)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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