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셀 참사 희생자 고 엄정정씨 어머니 이순희씨(오른쪽 둘째)가 2026년 4월2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참석자들 앞에는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3명을 죽여놓고, 이런 살인자인데도 왜, 왜 4년이라는 형밖에 안 내린 건지…. 진짜 너무 원통합니다, 진짜….”
2년 전 ‘아리셀 참사’로 딸을 잃은 이순희씨는 온몸으로 울었다. 배우자를 잃은 최현주씨, 사촌 동생을 잃은 여국화씨도 몸을 떨며 흐느꼈다.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인 2026년 4월28일, 아리셀 대표 박순관과 그의 아들 박중언(운영총괄본부장)의 형을 절반 이상 깎은 항소심 판결을 성토하는 자리에서였다. 2024년 6월24일 아리셀 리튬전지 생산 공장에서 전지 여러 개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나 노동자 23명이 죽고 9명이 크게 다친 참사는 망각할 수 없는 고통이자 기억이다.
유족들은 ‘용서할 수 없는 판결’ 때문에 또 한번 억장이 무너졌다. “저희 요구는 단 하나입니다. 그냥 (피고인들이) 제대로 된 죗값 받고 다시는 이런 일 안 생기게 하는 것. 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현주씨의 말이다. 국화씨는 “지금 저희는 정신줄 놓기 일보 직전”이라는 말을 토해냈다.
유족이 ‘살인자’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박순관과 박중언이 위험물질인 리튬이 들어가는 전지 생산업체 아리셀 경영을 책임지면서 여러 위험 신호를 무시하고 저지른 위법 행위는 한둘이 아니다. 아리셀 참사는 예견할 수 없었던 운 나쁜 사고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전해액(전지의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용액)이 주입된 이후의 리튬전지가 다양한 원인으로 내부에 단락(리튬전지 내부에서 음극과 양극이 직접 연결돼 전류가 흐르는 현상)이 생겨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리셀 참사 이전에 4차례의 폭발·화재 사고가 있었고, 2023년 9월 아리셀의 안전관리자 업무를 위탁 수행한 대한산업안전협회에서 ‘전지에 화재·폭발 위험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7년 4월 리튬전지를 생산하는 다른 회사에서 전지 폭발 사고가 발생하자 박중언은 아버지 박순관에게 “배터리 공장이 화재 발생에 약한가봐여”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도 박중언은 전지의 발열을 확인할 수 있는 열감지기를 공장에 설치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직접 손으로 전지를 만지면서 발열 검사를 해야 했다. 박중언은 또 2023년 10월25일부터 화재 발생에 대비한 소방 훈련을 하지 않았고, 사고 발생시 대피 요령을 알리는 교육도 하지 않았다. 사업주가 스스로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인을 찾아내고 위험성을 낮추기 위한 조치를 마련·실행하는 과정인 위험성평가도 외면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박중언은 참사 발생 불과 이틀 전인 2024년 6월22일 전지 폭발 사고가 있었는데도 후속 공정을 멈추지 않았고, 같은 날 만들어진 전지를 안전한 곳에 분리·보관하지 않았다. 그 전지 여러 개가 이틀 뒤에 폭발해 참사를 초래했다. 지금까지 언급한 박중언의 위법 행위는 그로부터 아리셀 경영 전반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받으며 사업을 총괄한 아버지 박순관의 위법 행위와 발맞춰 자행됐다. 박순관은 리튬전지 폭발과 그로 인한 화재 가능성을 알고도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고, 재해 예방을 위한 예산도 편성하지 않았다. 노동자 대피, 위험요인 제거 같은 대응조치 매뉴얼도 안 만들었다. 한마디로 안전을 내팽개쳤다. 이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행위가 참사의 원인이 됐다.

디자인주 이다은 팀장
박순관과 박중언의 이런 행위들은 1·2심 재판에서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위의 표 참조) 2025년 9월 1심 법원인 수원지법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순관에게 징역 15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중언에게 징역 15년 및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런데 항소심 사건을 심리한 수원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신현일)의 생각은 달랐다. 2026년 4월22일 박순관에게 징역 4년, 박중언에게 징역 7년 및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해당하는 박순관의 ‘주된 범죄사실’(주위적 공소사실)은 다음과 같다. ‘안전보건관리체계(일터 내 위험요인을 파악해 제거·대체·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고 이를 지속해서 개선하는 일련의 활동)를 구축·이행하지 않아 박중언이 아리셀 공장 3동에서 비상구와 비상통로의 유지 등 안전조치를 하지 않게 함으로써 3동에서 리튬전지 연쇄 폭발로 인해 아리셀 소속 노동자 3명, 파견노동자 20명이 사망하는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했다.’
이 범죄사실의 유무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박중언이 참사 발생 장소인 공장 3동 2층에 있는 비상구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유지해야 할 의무(이하 ‘비상구 유지 의무’)를 위반했는지, 그에 앞서 박중언에게 공장 3동 2층에 비상구를 설치할 의무(이하 ‘비상구 설치 의무’)가 있는지를 짚어야 했다. 공장 3동 2층에 비상구를 설치할 의무가 없다면 박중언이 그 비상구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유지하지 않아도 이를 의무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1·2심 해석이 엇갈린 쟁점 조항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제17조다. 위험물질을 제조·취급하는 작업장과 그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 출입구 외에 안전한 장소로 대피할 수 있는 비상구 1개 이상을 법령에서 정한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구조로 설치해야 한다고 정한 조항이다.
다음은 박중언과 그의 변호인의 주장 요지다. ‘공장 3동 2층은 ‘위험물질인 리튬’이 아니라 ‘위험물질로 지정되지 않은 리튬전지’를 취급하는 작업장이므로 비상구를 설치할 의무가 없다. 설령 있더라도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 비상구가 적법하게 설치됐는지는 건축물 ‘각 층’이 아닌 ‘전체’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공장 3동 1층에 비상구가 설치돼 있었으므로 비상구 설치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없다.’
1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모두 배척했다. “건축물 중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있는 층 또는 1층뿐만 아니라 건축물의 모든 층에서 근로자들의 대피를 용이하게 하는 비상구를 설치하여야 한다는 것이 쟁점 조항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해석”이라는 것이다. 안전보건규칙은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 유지·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위임 사항을 정한 규칙으로, 산업재해 예방이 입법 취지에 해당한다.
비상구 설치 의무를 인정한 1심 재판부는 이어 “(공장 3동 2층) 비상구로 대피하기 위해서는 보안 장치가 설정된 문을 통과해야 하고, (사망자 23명 중 21명이 목숨을 잃은) 패킹룸(전지를 포장하는 곳)과 연구소 사이에 통과할 수 없는 샌드위치 패널이 설치되어 있으며, 비상통로로 사용되는 위치에 전지가 적치돼 있어 비상구·비상통로가 쉽게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유지됐다”고 밝혔다.(아래 이미지 참조) 비상구 유지 의무 위반이라는 뜻이다.

디자인주 이다은 팀장
그런데 2심 재판부 신현일 재판장은 박중언의 손을 들어줬다. 쟁점 조항이 건축물 층별로 비상구를 설치하라고 규정하지 않으므로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없는 층에 비상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령 문언이 가진 의미의 범위를 넘어서는) “확장해석”이라는 것이다. 건축물 전체를 기준으로 비상구가 하나라도 있으면 법을 어긴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신현일 재판장은 그러면서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없는 층은 그것이 있는 층에 비해 위험물질에 내재된 위험성이 발현될 가능성이 작고, 화재 등 위험이 확산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으므로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는 비상구 설치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과연 그럴까.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에서 그렇지 않은 곳까지 급박하게 위험이 확산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법원이 안전불감증을 조장하는 셈입니다. 대전 안전공업 참사(2025년 3월20일, 14명 사망·60명 부상), 부산 반얀트리 호텔 참사(2025년 2월14일, 6명 사망·27명 부상), 경기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참사(2020년 4월29일, 38명 사망·10명 부상) 모두 빠른 시간 내에 화재가 확산했습니다.”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 손익찬 변호사의 말이다.
“예를 들어 3층에 있는 한 방실에서만 위험물질을 취급하고 피난층이 따로 없는 5층짜리 공장 건물이 있다고 합시다. 2심 판결대로라면 공장 1층, 그리고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3층의 그 방실에만 (직통계단과 연결된) 비상구가 있으면 됩니다. 위험물질로 인한 화재가 그 방실을 넘어 (같은 층의 다른 방과 다른 층으로) 빠르게 확산하는데 1층으로 탈출하는 직통계단이 하나만 있는 경우라면, 3~5층에 있는 사람들은 (비상구가 없기 때문에) 출입구 근처에서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이 됩니다. 그런데도 (공장 전체로 볼 때) 1층에만 비상구가 있어도 된다는 것이 2심 결론입니다. 이것은 상식에 비춰봐도 매우 불합리합니다.”(손익찬 변호사)
결국 항소심에서는 박순관의 예비적 공소사실(주위적 공소사실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범죄사실), 즉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 조치를 하지 않아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다는 점만 유죄로 인정됐다. 정리하면 박순관의 의무 위반→박중언의 비상구 안전조치 미이행→노동자 23명 사망(주위적 공소사실)은 무죄이지만 박순관의 의무 위반→노동자 23명 사망(예비적 공소사실)은 유죄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항소심 판결의 가장 큰 문제는 1심과 달리 피고인들이 피해자 유족과 합의한 점을 피고인들 양형을 정하는 데 크게 반영한 점이다. “기업가가 평소에는 기업의 운영에 있어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에 온 힘을 쏟는 반면, 근로자들의 안전·보건에 관한 부분에는 비용을 최소화하여 이윤을 극대화하여오다가 막상 산재가 발생하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유족과 합의를 시도하고, 유족은 막다른 길에 몰려 생계유지를 위해 선택의 여지 없이 합의에 이르게 되어 결국 기업가는 합의가 되었다는 이유로 선처를 받게 되는 선례가 많다. (…) 이러한 악순환을 뿌리 뽑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산재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피고인들이 유족들과 합의하였다는 사정은 일부 제한적으로만 양형 사유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게 1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아리셀 참사 희생자 고 엄정정씨 어머니 이순희씨가 2026년 4월2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걸 뒤집은 게 신현일 재판장이다. 그러면서 한 얘기가 “합의를 제한적으로 양형에 반영하게 되면, 오히려 피고인으로 하여금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소극적으로 하게 하거나 급기야는 이를 포기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였다. 유족에 대한 2차 가해성 판단이었다. 유족이 ‘내가 합의했기 때문에 피고인들이 가벼운 형을 받게 됐다’고 자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살아야 했습니다. 용서해서 합의한 게 아닙니다. 살아야 하니까, (남편이 세상을 떠나 홀로 키우게 된) 우리 아이들이 살아야 하니까 합의했습니다. 우리 막내아들, 참사가 발생한 해에 자퇴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것 같았고, 그게 너무 두려웠습니다. 아들을 치료하고 설득하는 그 과정을 일일이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합의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최현주씨)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 신하나 변호사는 가뜩이나 합의 과정에서 유족이 사 쪽에 의해 2차 피해에 시달린 일을 2심 재판부가 전혀 살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족이 법률지원단을 민·형사상 대리인으로 선임한 사실을 사 쪽 합의를 담당한 변호사와 노무사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유족에게 개별적으로 수십 회에 걸쳐 연락해 합의하자고 했어요. 전화, 카카오톡, 문자 등 수단을 가리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지금 회사가 곧 망할 예정인데, 당신들이 합의하지 않으면 이 최소한의 (합의금) 금액을 공탁하겠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빨리 합의하는 게 좋다’고 압박했습니다.”
공탁은 피고인의 감형 사유로 작용한다. 유족이 공탁금 수령을 거부하면 이를 차단할 수 있다. 결국 회사 쪽 공탁 발언은 유족이 보상금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압박 수단이다. 피해 회복이라는 피해자의 권리마저 빼앗는 술책이다.
신현일 재판장은 재판 내내 유족의 입을 틀어막았다. 유족 대리인이 제출하는 의견서를 받지 않겠다고 했고, 유족이 재판 방청 중에 조금만 울분을 토하면 ‘다음부터 재판 못 나오게 하겠다’ ‘감치하겠다’고 했다. 국화씨는 “재판 내내 죄인 취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반면 신현일 재판장은 박순관, 박중언에게 형사보상을 받을 길을 열어줬다. 대법원은 예비적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가 확정됐더라도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가 확정되면 형사보상 대상이 된다는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2014모2521 결정)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된다면 노동자 23명을 죽게 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 오히려 억울한 형 집행을 받은 사람이 되어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검찰은 2심 판결에 불복해 2026년 4월28일 상고했다. 사법부 테두리 안에서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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