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소리 많이 하는 사회주의자 할아버지가 되는 게 소원이었던 우석균 선생은 ‘민중의 호민관’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 제공
“대체 불가.”
우석균 선생을 추모하러 모인 이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누군가 대체하는 건 애초 불가능하지만, 선생을 두고 하는 말은 그가 해온 사회운동의 범위와 내용을 아무도 대신 할 수는 없으리라는 의미다. 실제로 그의 활동은 폭넓고 거침없고 엄밀했고 그래서 더 대담했다. ‘이윤보다 생명’을 정말 사랑했고, 그런 세상을 열망했다. 거리에서 주먹을 쥐고 외칠 때도 그랬지만, 마지막에는 눈물이 그렁해서도 그 말을 사랑했다. 이 글은 이윤보다 생명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던 그의 넓고 깊은 보폭 중 아주 일부일 뿐인 보건의료와 건강권 활동 이야기다.
선생은 건강을 계급투쟁의 한 측면으로 여겼다. 건강을 한 사회의 노동력 가치 일부이고, 계급투쟁의 모든 곳에 스며든 쟁점으로 보기를 바랐다. 동시에 노동력 재생산으로서의 이중적 측면 탓에 건강은 언제나 불평등하고 상품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도 했다. 자본이 온몸에 피와 오물을 뒤집어쓰고 세상에 나온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의 병적 징후들을 근본부터 싸워서 고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마 이런 자각은 그의 이론적 지평이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동자들의 몸이 얼마나 쉽게 버려지는지를 일찍이 목격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1980년대 중반 다니던 의과대학을 그만두고 다른 동료 선배들과 이른바 ‘현장 실천’을 나갔고, 경기도 성남 지역 공장부터 서울 성수 지역 ‘마치코바’(동네 소규모 공장)까지 노동착취의 본질을 체화했다. 복학해 의사가 된 뒤에는 여러 지역사회 활동을 병행하던 성동주민의원의 봉직의로, 이후 성수의원 원장으로 일한 배경이기도 했다.
지금의 성수동 일대는 자본의 공간 생산과 젠트리피케이션의 성지가 되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소규모 사업장과 공장이 밀집한 지역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공장의 작은 문을 열면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찌르고 눈이 매웠다. 성수의원이 있던 뚝섬역에 내려서면 공기 냄새가 달랐다. 제화·인쇄 등 허름한 소규모 사업장과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을 진료하는 일이 그의 오랜 생업이었다.
“우리 병원은 꼭 문 닫을 때 환자가 몰려. 노동자들이 찢어지고 다쳐서도 대강 싸매고 일하다, 퇴근하고서야 병원에 올 수 있는 거야.”
“가정의학과 의사 중에 내가 아마 꿰매는 거 하나는 잘할걸. 내가 안 하면 이 사람들 결국 응급실에 보내야 하는데 너무 비싸.”
광우병 대책위로, 한 - 미 자유무역협정 ( FTA ) 전문가 자문위원으로 활동할 때는 병원에는 없는 의사가 대기실의 낡고 작은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하기도 해, 간호사가 환자들의 항의와 불만을 감내하기도 했다. 대진의로 진료했던 후배들은 “무슨 1차 의료기관에 이렇게 중환자와 봉합 환자가 많이 오는지 모르겠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선생의 병마가 깊어 성수의원이 문을 닫아야 했을 때, 지역 주민들이 자기 가게 문에 대자보를 붙이고 선생의 회복을 바랐던 일화들은 그런 관계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제가 크면 원장님이 꼭 주례를 서주세요”라고 했던 아이는 네잎클로버를 코팅해 투병 중인 자신만의 의사선생님을 병문안하는 것으로 그 바람을 대신해야 했지만, 아마도 이들에게는 선생이 자주 후배들에게 가르쳤던 ‘민중의 호민관’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가 2021년 10월15일 저녁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성수의원에서 한겨레와 직격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leprince@hani.co.kr
2000년대 이후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구호로 시작된 거대한 국제 반세계화·반자본주의 운동은 그의 건강권 운동을 질적으로 강화했다.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누구보다 민감했던 그는 이런 국제운동의 일부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국내만이 아니라 전세계 어디에서도 만들어진 적이 없는 백혈병 환자와 의료인의 연대체를 만들고, 거대 제약기업에 맞서 약가 인하 운동을 벌였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 반대 운동 조직화를 통해 시장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주먹으로서 제국주의에 맞서는 반전운동가로 변신했다. 종이에 인쇄된 모든 것, 하다못해 중국집 전단까지 읽기를 즐기던 선생은 물 만난 고기처럼 탁월한 비유와 예리한 역사 감각으로 정치적 연설을 하고 글을 써내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건강을 화두로 계급투쟁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확신 있는 활동을 이어갔다.
한국 건강보험 보장성 운동의 역사에서 그가 한 역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의료보험통합 운동 시기부터 사회보장으로서 건강보험 강화를 위해 싸웠지만, 건강보험에 대한 그의 역사유물론적인 비판은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행되던 시기에 더 날카롭게 빛났다. 이들 세력 일부가 “건강보험의 아버지가 박정희”라고 주장해 그의 분노를 돋운 탓이었다. 선생은 오래전부터 전 국민 건강보험이 위로부터의 시혜가 아니라 1987년 6월 항쟁과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에서 얻은 계급투쟁의 산물이라고 분석했다. “성공한 역사에는 여러 아버지들이 등장하는 법”이라며 자신의 또 다른 전공이기도 했던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1960년대 남북 체제 경쟁, 1970년대 이후 열악한 도시 빈민의 상황, 본격화한 노동자계급의 성장과 사회운동의 폭발을 연결하며 아래로부터 역사로 논증했다.
동시에 그는 건강보험 재정 구조가 공공화됐으나 의료 공급과 이익은 사유화되는 구조, 곧 ‘재정의 공공화와 이익의 사유화'가 한국 보건의료의 바탕을 이룬다고 인식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건강보험 보장성 문제를 제도 개혁 수준이 아니라 계급투쟁 과제 중 하나로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보장은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서도 기능하지만 노동계급의 사회임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0년 의약분업 도입을 반대하는 의사들을 달래려고 부당하게 수가가 인상되면서 적자에 시달리던 건강보험이 2004년부터 당기 흑자를 기록하자, 선생은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을 결성했다. 암의 무상의료 실현이 가능하다는 경험을 통해 무상의료의 기틀을 놓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무상의료 운동이 무상교육으로 나아가고, 공공서비스 분야 사유화라는 자본의 총공세를 막는 투쟁의 보루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료 민영화뿐 아니라 공공서비스 민영화에 맞서 탁월한 논리와 근거를 만드는 싸움은 그의 실천에서 가장 치열한 전선이었다. 그는 ‘단 한 개의 영리병원도 안 된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시절 제주도민의 영리병원 공론조사를 반대로 이끈 주역이기도 했다.
선생은 계엄과 탄핵운동의 한복판에서 말기암 진단을 받고도 극우에 맞선 보건의료와 건강권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발제를 이어갔다. “나는 계엄으로 인한 위장장애인 줄 알았어, 진짜.” 그가 콧잔등을 긁적이며 멋쩍게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누군가는 우석균은 우석균답게 살다 우석균답게 죽었다고 위로를 건네지만, 나는 그가 마지막까지 얼마나 살고 싶어 했는지를 안다. “나는 잔소리 많이 하는 사회주의자 할아버지가 되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걸 못해 아쉽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굴복하지 않는 삶에 대한 자신감이 그에게 있다는 걸 잘 알고 또한 믿었기에, 나는 그가 더 오래 살기를 바랐다.
선생이 떠난 자리는 대체 불가이더라도 그가 가르쳤던 실천의 방법은 우리에게 남았다. 현실에 대한 냉정한 판단력을 유지하되 지나친 비관주의를 경계하며, 모든 이의 건강권이 우선돼야 하는 순간에 결코 타협하지 않으려 애쓰며, 누군가 죽음으로 내몰리는 걸 알면서도 침묵으로 그런 인류 선별에 공모하지 않을 용기. 그럴 수 없을 만큼 자신이 작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자신의 장례조차 조직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던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힘에 대한 무한한 신뢰. 이 모든 배움이 남은 우리를 지켜주리라 믿는다.
그 누구든 세상을 바꿀 용기를 얻고자 할 때 자신의 시간과 곁을 내주고 아낌없는 조언과 지원을 해주던 사람. 더 멀리 내다보도록 자신의 어깨를 내주던 스승. 거인의 어깨 위에서 내다보고 많은 것을 배우도록 애쓴 선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이제 그를 보낸다.
변혜진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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