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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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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때 못 들어오게 막았다? 와이키키 펍, 오해와 진실

엉뚱한 방향으로 튄 재난의 불똥, 의혹글 올라온 뒤 수백 건 욕설 문자메시지 쏟아져
등록 2022-11-22 04:40 수정 2022-12-09 01:21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T’자 골목 코너에 위치한 와이키키 비치펍. 잠정 휴업 중이다. 박승화 선임기자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T’자 골목 코너에 위치한 와이키키 비치펍. 잠정 휴업 중이다. 박승화 선임기자

“사고 현장 핵심에 있던 술집 ‘ㅇㅇㅋㅋ’ 직원들의 만행을 널리 알리고 싶다.”

이태원 참사 직후 트위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술집 직원들이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에서 가게 난간으로 넘어오는 이들을 막고 영업을 계속했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이 글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급격히 퍼졌다. 이를 접한 이들은 트위터에 분노를 쏟아냈다. ‘이태원 참사 사람들 못 들어오게 막은 ‘ㅇㅇㅋㅋ’ ××들 평생 죄책감에 살았으면 함’ ‘진짜 인간이 맞나 싶다’ 한 언론사는 트위터 글을 그대로 가져다가 ‘단독’이라고 제목 붙인 기사를 썼다.

“모든 재난엔 완전히 재현되지 않는 순간이 반드시 존재한다. 어떤 재난에서도 의혹은 제기된다.” 8년간 세월호 관련 조사위원회 3곳에 참여한 박상은 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이 2022년 9월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세월호 진상조사 8년 평가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누가 잘못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묻고 드러난 사실을 통해 공통의 서사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21>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그날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재구성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트위터에서 의혹이 제기된 ‘와이키키 비치펍’(와이키키) 이아무개(34) 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고심 끝에 언론에 처음 참사 당일 상황을 자세히 털어놨다. 당일 근무했던 와이키키 직원 20여 명 중 사고 현장과 가까이 있던 7명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쓴 진술서도 받았다. 이날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구조된 생존자와 참사 직전 골목을 방문했던 목격자도 인터뷰했다. 119와 112 신고 기록 등을 참고해 그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되짚어봤다.

“처음에는 싸움인 줄…”

서울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 계단을 나와 해밀톤호텔을 따라 걷다보면 오른쪽에 폭 3.2m, 길이 40m가량의 경사진 골목이 나온다. 알파벳 대문자 T와 비슷하게 생긴 이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이태원 세계음식거리가 있다. 이 T자 골목에서 158명(2022년 11월17일 기준)이 숨졌다.

2022년 10월29일 저녁, 서울 한남동에서 부모님과 식사를 마친 뒤 이태원역으로 걸어오던 30대 직장인 김아무개씨는 문득 핼러윈 분위기가 궁금했다. ‘구경이나 해보자’는 생각에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계속 걸었다. 해밀톤호텔을 지나 T자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섰다. 밤 10시25분께였다. 인파는 계속 골목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마트24 편의점 있는 곳부터는 더 못 올라가겠더라고요. 곧 경찰분들이 와서 호루라기를 불며 골목에 올라갔고, 주황색 옷을 입은 구조대원들도 올라갔어요.”

편의점 앞에 서 있던 김씨는 앞쪽에서 흰 연기를 봤다. 그때부터 처음 맡아보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느꼈지만 무슨 상황인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나자 두 사람이 들것에 실려 골목 아래로 내려왔다. 사고가 발생했다는 생각에 김씨는 몸을 돌려 대로변으로 나왔다. 시계는 10시3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T자 골목의 위쪽 맨 끝 왼쪽 모퉁이에 건물이 하나 있다. 지하엔 108힙합클럽, 1~2층엔 와이키키, 3~4층에는 무인이라는 클럽이 입주해 있다. 골목이 경사진 탓에 와이키키의 1층 테라스는 골목에 서 있는 전봇대보다도 높은 위치에 있다. 와이키키 출입구는 세계음식거리 쪽으로 나 있다.

“소화기 좀!” 밤 10시45분께. 음악 소리를 뚫고 누군가 소화기를 갖다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와이키키 사장 이씨는 가게 안쪽에 있었다. 가게 안을 둘러보던 이씨의 시선은 테라스 쪽에 멈췄다. 테라스에 앉은 손님 몇몇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싸움인 줄 알았어요. 항상 있던 일이니까요. (테라스에) 나가서 보니 (길에) 누워 있는 사람이 10명 정도 있었어요.”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는 사람들을 본 이씨는 직원들에게 음악을 끄고 불을 켜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골목 상황을 찍었다. 인근 상인에게 전화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알렸다. ‘소화기’ 소리를 듣고 나서 겨우 2분이 지나 있었다. 직원 한 명에게 물을 갖고 나오라고 했다. 이씨와 직원들의 기억 속에 핼러윈 파티의 밤이 악몽으로 전환된 순간이었다.

당시 가게에 있던 와이키키 직원들이 사고를 인지한 시점도 대부분 밤 10시40~50분이었다. “10시40분쯤 음악을 줄이고 불을 켜라는 지시를 듣고 어떤 사고가 났구나 생각했어요. 테라스로 나가보니 손님들이 의자 위에 올라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가려는 손님부터 통제했어요.”(직원 ㄱ) “10시50분쯤 (가게에서 서로 소통하던) 무전으로 압사 소식을 듣고 (가게 밖으로) 나와 상황을 파악했어요. 가드(보안) 인원도 전부 호출해 물을 나르고 시피아르(CPR·심폐소생술)를 쉬지 않고 했어요.”(직원 ㄴ)

참사 직후부터 사고 인지 시점까지

참사가 발생한 시점은 밤 10시15분으로 알려져 있다. 참사 현장인 골목 바로 옆 가게에서 어떻게 30여 분 동안 이를 몰랐을까. 이씨는 이미 저녁 7시부터 골목에 사람이 빽빽하게 가득 차 있었고 화장실을 가지 못할 정도로 바빠 가게 밖 상황을 알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야외 테라스 쪽에 보안 직원이 있었지만, 그는 시야가 참사가 발생한 지점까지는 닿지 않았다고 한다. 보안팀 직원 ㄷ씨는 “10시40분쯤 계단을 내려가보니 누워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고 진술서에 적었다. 가게 밖에서 대기하는 손님들을 줄 세워 통제하던 직원 ㄹ씨는 “10시 이후 밀림 현상이 극심했고, 인파에 떠밀리는 과정에서 무전기를 분실했다”고 했다. 그는 가게 안으로 들어간 10시40분께도 가게 내부 직원들이 골목길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10시40~50분까지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이씨는 테라스로 넘어오려는 사람들을 막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식 출입구가 아니라 난간을 넘어 테라스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막는 것이 보안 직원들의 업무 중 하나였다. 트위터에 의혹을 제기한 생존자도 이런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트위터에 ‘난간을 붙잡고 겨우 올라타 넘어갔다’ ‘올라가자마자 와이키키 직원들 3명 정도가 술집 팔찌나 도장이 없으면 다시 내려가라고 소리쳤다’ ‘(무전기에는) 올라오는 사람 싹 다 막으라고 ××’라는 욕설이 흘러나왔다고 썼다. 다만 그 시점이 언제였는지 트위터에 기록돼 있지 않다.

“막은 거 맞아요. 사고를 인지하기 전에는 무단으로 들어오려는 사람 막았어요. 직원들은 자기 일을 한 것뿐이에요. 미성년자나 취객들이 (테라스를 통해) 무단으로 들어올 수 있잖아요. 이전에 취객이 테라스로 들어와 손님 테이블의 술을 엎은 사례도 있었고요.”(사장 이씨) 참사가 일어난 다음, 경찰은 와이키키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 전체를 수거해갔다. 이씨와 직원들도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특수본)에 참고인 신분으로 나가 조사받았다.

“재난은 특정 행위자에게 구체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거대한 비극이 일어나면 강력한 행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대중은 재난이 ‘어떻게’ 일어났는지가 아니라 ‘왜’(누구에 의해) 일어났는지를 묻는다.”(박상은 전 조사관이 자신의 SNS에 쓴 글 중에서)

왜, 누구에 의해 재난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질문은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참사 직후 고의로 인파를 밀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토끼머리띠 남성’이나 골목길에 오일을 뿌렸다는 의혹의 대상이 된 ‘각시탈 남성’도 ‘왜’라는 질문의 표적이 된 사례였다.

가게 안으로 대피시키고 구조활동

사고를 인지한 밤 10시50분 이후 이씨를 포함한 와이키키 직원들은 구조활동에 최선을 다했다. 가게 안으로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한겨레21>이 확보한 참사 직후 와이키키 앞 골목 모습을 찍은 사진과 영상 등을 보면, 직원들이 가게 밖에 나와 심폐소생술을 하거나 인근 인파를 통제하는 등 구조활동을 돕고 있었다. 대피한 사람들로 가득 찬 와이키키 테라스도 직원들 뒤로 보였다.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인지한 직후 눈에 보이는 소방대원은 3명 정도였어요. 그때도 인파가 몰려 경찰·소방 인력이 길을 뚫고 (골목 안쪽으로) 못 들어온 거예요. 몸 좋은 친구(직원) 둘이 앞에서 50~60명을 빼냈어요. 나머지 직원들도 물 나르고 여기저기서 팔다리 주무르고…. 담요 덮고 통제하고 별의별 구조활동을 다 했어요.”(사장 이씨)

이씨는 군대에서 배웠던 기억을 되살려 직접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힘이 빠질 때쯤 옆에서 다른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받던 사람이 숨을 토해냈다. 심폐소생술만 하면 살릴 수 있을 줄 알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리를 옮겨 심폐소생술을 반복했다. 몇 명을 더 했는지 이씨는 기억하지 못했다.

참사 당시 상황과 이후 과정을 정리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연재한 김초롱(32)씨는 “와이키키 술집 직원들이 문을 열어 저와 다수를 구해주셨다. 그분들도 가게를 뒤로하고 참사 현장으로 입장하는 사람들을 막고 통제했다. 언론에서는 주변 상인들이 얼마나 도왔는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관심도 없는 것 같다”고 적었다.

이날 구조활동에 참여한 것은 와이키키 직원만이 아니었다. 와이키키 아래층 108힙합클럽 직원들도 적극적으로 구조활동에 참여했다. 참사 당시 골목길에서 구조된 이아무개(27)씨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깔려 있는 동안 (108힙합클럽) 직원들이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구하려고 노력한 것을 봤다”며 “사람들을 구조해 클럽 안으로 들여보내고 깔릴 뻔한 사람들도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직원분들이 정말 애쓰셨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도 “(클럽 직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좌절스러운 표정으로 울면서 제발 기절하지 말라고, 죽지 말라고 손을 잡아주고 물을 뿌려줬다. 저보다도 클럽 직원분들의 트라우마가 훨씬 심할 것 같다. 직원분들의 심리치료를 제일 바란다”고 적었다.

의혹글 뒤 수백 건 욕설 문자메시지

와이키키 직원들은 참사 이후 병원에 다니고 있다. 참사가 발생한 뒤 보름이 넘었지만 직원 중엔 트라우마 때문에 아직 이태원에 오지 못하는 이도 있다. 자기는 괜찮다고 연신 반복해 말하던 한 직원은 맥주 한 잔을 마신 뒤 토하듯 눈물을 쏟아냈다. 트위터에 ‘ㅇㅇㅋㅋ 만행’ 의혹글이 올라온 뒤 가게 휴대전화에는 수백 건의 욕설 문자메시지가 쌓였다.

이씨는 심폐소생술을 직접 했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한 희생자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골목에 퍼져 있던 역한 냄새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매일 청심환을 먹어요. 술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잠이 안 와요. 계속 생각나요. 그 눈빛이….”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1439호 표지이야기 - 10월29일 이태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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