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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균의 ‘황금폰’, 지나고 보니 ‘판도라 상자’ 맞았다

정치 브로커의 엄포에서 ‘윤석열 내란 도화선’으로… 유력 정치인들 수사·사법 절차는 현재진행형
등록 2026-07-23 22:13 수정 2026-07-28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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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3일 밤 대통령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24년 12월3일 밤 대통령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내가 입 열면 진짜 (세상이) 뒤집히지.”

2024년 10월8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가 이렇게 엄포를 놓자 같은 날 늦은 밤 윤석열 대통령실은 입장문을 냈다. 대통령실은 “국민의힘 정치인들을 통해 명씨를 만나게 됐다”면서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분의 조언을 들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명씨는 ‘윤석열 부부 공천 개입 의혹’에 연루된 핵심 인물이었다. 대선 당시 윤석열 부부가 명씨에게 무상으로 여론조사를 받은 대가로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2022년 6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공천을 압박했다는 의혹이었다.

명씨가 여러 언론을 통해 윤석열 부부와의 친분을 언급할 때만 해도 국민의힘 쪽에서는 ‘수사가 시작되니 대통령 부부를 상대로 무차별적인 의혹을 제기한다’고 명씨를 비판했다. 그러나 명씨, 김 전 의원과 함께 일했던 핵심 공익제보자 강혜경씨가 여론조사를 미끼로 유력 정치인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명씨의 행각을 폭로하면서 사태는 국민의힘 주변 정치인 여럿이 연루된 ‘명태균 게이트’로 번졌다. 이후 윤석열이 12월3일 내란을 일으켰고, 내란을 비롯한 윤석열 정부의 각종 비리를 수사하기 위해 출범한 특별검사에서 검찰의 부실 수사로 가려졌던 명씨의 전방위적인 로비 실태가 하나씩 드러났다.

 

명태균 구속기소된 날 선포된 비상계엄

 

윤석열은 명씨가 구속기소된 2024년 12월3일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야당의 ‘국정 마비’와 ‘입법 독재’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로는 본인과 배우자의 사법 리스크를 모면하려는 사적 목적이 포함됐다는 게 내란 재판에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사건에서 윤석열이 명씨의 ‘황금폰’*이 세상에 드러날 것을 우려해 그가 구속기소된 2024년 12월3일 계엄을 선포했다고 판단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이 사건 판결문을 보면, 윤석열은 애초 박 전 장관에게 2024년 12월3일 밤 9시까지 대통령실로 들어오라고 지시했다가, 명씨의 구속기소 소식을 접한 뒤인 저녁 7시41분께 박 전 장관에게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대통령실로 조속히 들어오라’고 지시했다. 이를 놓고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당시) 명씨가 증거인멸교사가 아닌 증거은닉교사로 구속기소됐다는 보도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윤석열은 이른바 ‘명태균 황금폰’의 행방이 궁금해 피고인 박성재에게 그 파악을 지시하였다는 의심이 든다”고 봤다.

윤석열이 명씨의 황금폰에 집착한 이유는 이 휴대전화에 2021년 국민의힘 대선 경선 시절부터 윤석열 부부와 명씨가 나눈 내밀한 대화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이 밖으로 유출되면 오랜 기간 명씨로부터 수십 차례 무상으로 여론조사를 받았고, 그 대가로 김영선 전 의원의 국민의힘 공천에 부부가 깊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법적 처벌은 물론 정치적으로 치명타를 입을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덩달아 명씨는 검찰 수사를 받으며 구속 가능성이 커지자 윤석열 부부와 관련한 여러 의혹을 제기하며 ‘벼랑 끝 전술’을 펼치고 있었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 위헌적 비상계엄을 준비해온 윤석열이 이런 상황을 맞이하자, 명씨가 구속기소된 2024년 12월3일을 디데이(D-Day)로 정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윤석열이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전 티타임에서 ‘나라가 이래서 되겠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격정적으로 말하며 명태균 공천 개입 사건을 언급했다는 취지의 김용현 진술을 더해보면, 윤석열은 (비상계엄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피고인 박성재에게 명태균 사건을 언급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으로 봄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 사안이 기존 검찰 수사로는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계엄 선포 석 달 전인 2024년 9월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던 창원지방검찰청은 명씨가 김 전 의원으로부터 공천 청탁의 대가로 받은 세비 8070만원에만 초점을 맞췄다. 명씨가 윤석열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제공한 대가로 김 전 의원 공천을 부탁했다는 사건의 전체 맥락을 외면한 채 권력의 핵심부에 대한 수사를 애써 비껴간 것이다. 실제로 창원지검은 명씨의 ‘황금폰’ 은닉 정황을 포착해 구속영장을 받아냈음에도, 끝내 공소장에 윤석열 부부를 피의자로 적시하지 않았다.

이에 명씨는 기소 전 변호인을 통한 입장문에서 “검찰이 나를 기소해 공천 대가 뒷돈이나 받아먹는 잡범으로 만들어 ‘꼬리 자르기’에 들어갔다”며 “‘특검만이 진실을 밝혀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창원지검은 이후 명씨가 2024년 12월12일 변호인을 통해 황금폰을 제출했음에도 끝내 윤석열 부부를 기소하지 않았고, 2025년 1월 김건희 특별검사팀(민중기 특검)에 포렌식(증거 분석) 자료를 넘겼다.

 

윤석열 부부 사이 엇갈린 법원 판단

 

2024년 11월8일 명태균씨가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2024년 11월8일 명태균씨가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하지만 창원지검이 민중기 특검에 넘긴 황금폰을 포렌식해 나온 자료는 “의혹의 실체를 명확히 규명”(민중기 특검)하기에 충분했다. 윤석열이 2022년 5월9일 명씨와 한 통화에서 “김영선이를 좀 (공천)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며 “내가 하여튼 상현이(당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 윤상현 의원)한테 한 번 더 얘기해놓을게”라고 말한 녹취가 보도됐다. 같은 해 5월10일 공관위 회의록에 윤 의원이 김 전 의원을 거론하며 단수공천을 언급한 사실도 드러났다.

또 명씨가 공천 결과 발표 8일 전 자신이 운영한 미래한국연구소 직원인 강혜경씨에게 “오늘 여사님 전화 왔는데, 내 고마움 때문에 김영선 (공천) 걱정하지 말라고 나보고 고맙다고 (했다)”며 “자기 선물이래”라고 말한 사실 역시 한겨레21 단독 보도로 드러난 바 있다.(제1536호 참조) 실제로 김 전 의원은 2022년 5월 국회의원 보궐선거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됐다.

민중기 특검은 2025년 8월29일 김건희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김씨가 명씨로부터 2022년 대선을 앞두고 58차례에 걸쳐 약 2억7천만원 상당의 대선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무상으로 받았는데, 이를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김씨는 이 밖에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알선수재(통일교로부터 고가 명품 및 금품 수수) 혐의도 받았다.

그러나 법원은 김씨와 명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우인성)는 2026년 1월28일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 중 일부만 유죄로 인정해 김씨에게 징역 1년8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명씨가 ‘영업 및 홍보’ 차원에서 윤석열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제공했고, ‘계약 체결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의원 공천을 두고선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다수결로 결정한 공식적인 결과’라고 봤다.

2026년 4월28일 나온 2심 판결 역시 김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윤석열 부부가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거나 협의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씨가 정치자금법상 ‘정치활동을 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아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1심의 판단 역시 그대로 따랐다.

같은 사안에서 김영선 전 의원에게 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만 기소됐던 명씨도 역시 무죄를 선고받았다. 창원지법 형사4부(재판장 김인택)는 2026년 2월5일 명씨와 김 전 의원 간 돈거래는 ‘공천 대가’가 아닌 ‘급여와 채무 변제’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명씨는 처남에게 ‘황금폰’을 숨기게 한 증거은닉교사 혐의에 대해서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이렇게 김건희씨가 1·2심에서, 명씨가 1심에서 각각 무죄를 받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는 2026년 7월13일 정반대의 결론을 냈다. 재판부는 민중기 특검에 의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과 명씨에게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명씨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법정 구속됐다.

이진관 재판부는 김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내린 기존 선고의 법리를 반박했다. 우선 윤석열이 김씨를 통해 명씨의 여론조사를 받아보는 과정에서 암묵적인 ‘정치자금 수수 합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계약서나 비용 지급 약속이 없더라도 당사자들 간 역할과 행동이 정치자금 수수에 합의 및 공모를 했다고 본 것이다. 구체적으로 윤석열에게 유리하게 나와 대선 선거 전략에 활용된 14차례의 여론조사가 불법 정치자금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김건희씨는 정치인이 아니어서 정치자금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법리를 놓고선 “정치인이 아니어도 정치인인 남편과 함께 명태균의 불법 여론조사를 무상 수수하기로 공모한 공범이기에 유죄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명태균 게이트’에 연루된 주요 인물들.

‘명태균 게이트’에 연루된 주요 인물들.


 

조은희 검찰 송치… 이준석·홍준표는 비껴가

 

‘명태균 게이트’에 휘말린 야권 정치인들을 향한 수사·사법 절차는 현재진행형이다. 우선 오세훈 서울시장이 여론조사를 받고 제삼자에게 비용을 대납시킨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1심에서 시장직 상실형(벌금 1천만원과 추징금 2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2022년 2월 국회의원 보궐선거 경선 과정에서 서초갑 지역구 당원 2200여 명의 번호를 명씨에게 넘기고 여론조사를 받은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2021년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했고, 경북 고령군수 예비후보인 배아무개씨가 이 여론조사 비용 600만원을 대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경찰은 “해당 여론조사가 이 대표만을 위해 진행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이 의혹을 부정해,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취지로 고발된 이 대표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2022년 지방선거에서 같은 방식으로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받은 혐의로 민중기 특검의 수사 대상이 됐지만, 증거 부족 등으로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가 사용하던 핵심 휴대전화로, 2019년 9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윤석열과 김건희씨를 비롯한 정치권 인사들과 나눈 통화 녹음과 15만 개 이상의 메시지가 담겼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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