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6월 서울 퀴어문화축제에서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 부스를 찾은 이들이 다양한 메모를 남겼다. 호박랜턴 엑스(옛 트위터) 갈무리
‘그날’ ㄱ씨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를 저녁 8시께 빠져나왔다. 발이 아파 예상보다 일찍 귀가했는데 뉴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저기 계속 있었다면 저 일을 겪었겠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남아서 구조했어야 한다는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양가적 감정은 오랜 기간 ㄱ씨를 괴롭혔다. 3년이 흐르며 고통의 크기는 줄었지만 또 다른 의문도 찾아왔다. 나는 마음이 무뎌진 것인가, 괜찮아진 것인가. 희생자가 그렇게 많은데 내가 이런 마음을 가져도 되나. 나는 참사 피해자인가 아닌가.
‘그날’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2022년 10월29일이다. 159명이 희생된 대참사 앞에 사람들은 3년째 말을 잊었다. 혹은 참사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피했다. 참사에 관한 다양한 피해 증언과 고백은 어느새 뉴스 헤드라인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시민 네트워크 모임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이하 호박랜턴)은 사라진 참사에 관한 말을 찾아나선 단체다. “사람들이 참사를 이야기하지 않는 상황 자체가 참사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고 본 것이다. 참사와 연루된 이들을 만나려 이태원 답사 모임과 책 모임, 피해자 인터뷰 등을 꾸준히 시도했다. 시민들은 자신의 ‘말할 자격’을 의심하다가도 가슴속에 품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그 속에 우리가 몰랐던 참사의 다면적인 피해와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 담겨 있었다. 2025년 10월1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호박랜턴 활동가 이상민씨를 인터뷰했다.
2025년 6월, 호박랜턴은 서울 중구 남대문로 일대에서 열린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부스를 차렸다. 퀴어 커뮤니티가 발달한 이태원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퀴어문화축제에도 올 거라 예상했다. 거기서 이태원 참사 생존자 ㄱ씨를 만났다. ㄱ씨는 참사 당일 사진을 보여주며 상민씨에게 당시 상황을 소상히 설명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참사에 연루된 경험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구나’ ‘그날 현장에 있었던 일들을 풀어내고픈 갈증이 있구나’라고 상민씨는 느꼈다.
7월부턴 ‘참사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시민 7명을 인터뷰했다. 전남 진도에서 나고 자란 ㄴ씨는 그렇게 만났다. 2014년 세월호가 침몰한 곳이 진도 앞바다였고 ㄴ씨는 희생자들 또래였다. ㄴ씨는 청소년 시기 내내 ‘내가 그 배에 탄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까’를 고민했다.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자신을 비롯한 진도 주민들이 일상 곳곳에서 참사와 마주쳤음을 깨달았다.

29일 밤 서울 용산 이태원 해밀턴 호텔 뒤 골목에서 압사고가 발생해 120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다쳤다(30일 새벽 2시40분 기준). 사진은 30일 새벽 사고 현장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22.10.30 한겨레
당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해를 수습한 곳은 진도 팽목항이었고 유가족 대기 장소는 진도체육관이었다. 세월호 인양 전까지 3년간 추모 행렬도 모두 팽목항으로 향했다. 이런 시간 속에서 주민들은 “세월호 참사를 아주 오래 겪었다”. ‘당신도 생존자일 수 있다’는 상담사의 말에 ㄴ씨는 처음으로 고통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그리고 호박랜턴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 중에도 스스로가 생존자인지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내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누군가가 내게 ‘생존자’라고 말해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했으니까.”

이상민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 활동가가 2025년 10월1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건 사적인 관계 안에서 내 경험이 받아들여지거나 공적으로서 피해자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거랑은 좀 다른 의미예요. 참사와 연결된 경험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자리가 필요한 거죠. 사적 관계에 그런 걸 계속 꺼냈다가 관계에 영향을 미칠까 염려하기도 하고요. 그런 시간이 쌓이다보면 ‘이걸 내가 말해도 괜찮을까’라고 스스로 묻는 지점이 생기는 거예요. 본인이 생각할 때는 분명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참사가 있는데.” 상민씨가 말했다.
생존자 ㄷ씨도 그런 경우였다. 참사 직후 생존자들끼리 모일 기회가 없었고 가끔 지인에게 털어놓은 경험은 좌절로 남았다. 이제는 시일이 많이 흘러 더더욱 참사를 언급하기가 낯설다. “‘이제라도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말씀하겠냐’고 물으니 ‘어렵겠다’고 답했어요. 참사 직후였으면 담백하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각자 사정이 다 달라져서요. 그 얘길 듣고 ‘생존자 지원도 골든타임이 있구나’를 느꼈습니다.” 상민씨가 말했다.
‘피해자’ 범위는 넓고 각자의 경험은 다양하다. 현장에 남아 구조작업을 한 사람, 먼저 빠져나온 사람, 사고 현장을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사람 등…. 각자의 위치를 조심스럽게 확인하지 않으면 대화는 곧 끊어진다. 상민씨가 ‘폭넓은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이태원 참사는 공간이 열려 있고 시작과 끝을 명확히 하기 어려운 참사잖아요. 연루된 피해자가 워낙 많다보니 경험의 층위도 다르고 스스로 (피해자) 자격을 의심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경험을 폭넓게 나눌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피해자 개인에 대한 물질적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런 것이야말로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하는 피해자 지원이죠.”
그렇기에 호박랜턴은 정부가 피해 지원을 ‘신청’받는 데도 비판 의식이 크다. 행정안전부는 2025년 4월부터 피해지원금을 준다며 ‘이태원 참사 피해자 인정 신청’을 받았다. △유가족 △구조자 △(참사 현장) 인근 사업자 △그 밖에 신체적·정신적·경제적 피해로 회복이 필요한 사람(“예시: 부상자와 부상자 가족 등”)이 지원 대상이다.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할 수 있어야 신청이 가능한 구조다.

2025년 4월1일 행정안전부가 게시한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인정 신청 등’ 공고에 참사로 인한 피해 입증 서류 예시가 나열돼 있다. 공고 갈무리
“피해는 어디까지나 해석의 영역이잖아요. 본인의 경험을 말해본 적이 없으면 무엇이 피해인지 스스로 확인한 적도 없을 거예요. 또 어떤 사람을 반드시 ‘피해자’로 분류해야 하는지도 의문이 있어요. 한 사람이 피해로서 해석될 경험을 갖는 것과 그 사람을 피해자라고 부르는 것에는 간극이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그러면 어떤 경험을 했는지 먼저 듣고 그중 피해로 해석될 수 있는 경험을 사회가 파악할 수 있어야죠. 그게 다 제도적 지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신청 방식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피해자임을 입증해야 한다. 정부는 병원 진단서와 실업 인정 서류 등을 입증 예시로 들었다. “정신적 피해를 입었어도 정신과에 안 갔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 그 사람의 피해는 없어지는 걸까요? 그 사람의 이야기는 참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 않나요? 그렇게 행정적으로 접근해서 ‘몇 명 지원했다’는 숫자를 남기면 참사 피해도 너무 축소되잖아요.”
피해 경험을 알기 위해서라도 참사에 관해 더 많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지원 범위를 제한한 뒤에 대상자를 찾으면 그 제도의 대상자도 찾기 힘들다. “애초 행정 당국에 대한 신뢰도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신청을 망설이는 게 당연하잖아요. 일단 최대한 많은 경험을 듣고 그 안에서 필요한 제도적 지원을 고민해야죠. 이 사람에 대해선 어떤 지원이 필요할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참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등을요.”
호박랜턴은 이태원 정기 답사 프로그램과 책읽기 모임으로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텄다. 모르는 사람들과 참사 얘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줄이고 문턱을 낮추려 노력했다. 혼자 이태원에 다시 가기 망설였던 사람이 답사를 오곤 했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각자의 피해 경험과 고민거리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2024년 10월2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노노샵’에서 이태원 참사 2주기 간담회 ‘우리가 참사를 경험하는 방식’이 열려 참석자들이 패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호박랜턴 인스타그램 갈무리
참사 3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겪는 감정도 고통에만 머물지 않는다. 재난이 미친 영향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다른 사람들과도 연결되려 한다. 호박랜턴 구성원 중에는 참사를 목격한 경험을 계기로 미술 치료와 피해자 심리 지원을 연계해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 참사 생존자인 또 다른 구성원도 피해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날 어떻게 되셨냐’ ‘그게 얼마나 힘드셨냐’고만 묻지만 이분들은 3년간 재난을 의미화하는 과정을 지나왔어요.”
그런 경험을 더 듣고 싶다. 1주기와 2주기 때도 참사 현장에서 시를 낭독하거나 추모 공연을 하는 디제이(DJ)가 있었다. 이미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재난을 자기 삶과 연결짓고 있었다. “거기 오는 사람들이 다들 어떠한 마음을 갖고 계실 거라 생각하는데 그걸 풀어낼 장이 없으면 그냥 ‘노는 사람들’로만 비치잖아요. 그게 참 아쉽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호박랜턴은 늘 참사일마다 애도의 축제를 연다. 2025년 축제 제목은 ‘나는 네게 관심이 많아’다. 애도의 마음을 나누며 공연을 함께 보고 이태원 일대를 행진한다.

2024년 10월26일 호박랜턴이 주최한 핼러윈 액션 ‘멈추지 않는 노래를 해’에서 브라질리언 퍼커션 앙상블 ‘호레이’ 팀이 이태원 거리를 흥겹게 행진하고 있다. 호박랜턴 인스타그램 갈무리
호박랜턴이 결국 주목하는 건 “사람들의 감각”이다. “지금 사람들이 (참사와 관련해) 뭘 느끼는지, 참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듣는 거죠. 저는 더 나은 사회의 대안이 이미 사람들 마음속에 당도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걸 잘 발견하는 일이 활동가의 역할이라 생각하고요.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미 작은 움직임이 곳곳에 있고 개인적으로 실천해왔던 것들을 좀더 확장해서 사회가 같이 해볼 여지도 있어요.”
왜 우리 사회엔 참사 피해자의 증언이 희귀할까. 상민씨는 이 말을 뒤집는다. 왜 우리 사회는 참사 피해자의 말을 듣지 못할까. “우리가 참사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걸 알려면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참사를 모른다는) 아쉬움이 없어요. 이미 다 안다는 듯이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건설’ 구호를 내걸죠. 정작 우리가 같이 짊어져야 하는 책임은 잘 얘기되지 않잖아요. 우리가 (참사에 대해) 모른다는 걸 함께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참사로 인한 죽음은 끝나지 않았다. 2025년 7월과 8월, 이태원 참사 구조에 참여한 44살 소방관과 30살 소방관이 연달아 트라우마로 생을 마감했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 참사의 고통과 싸우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159번째 희생자(참사 생존자였으나 트라우마와 2차 가해로 목숨을 끊은 이재현군) 얘기를 진작 했는데 160번째, 161번째가 없을 리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죠. 사회가 참 무정하다, 관심이 없다는 생각을 해요. 그날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꼭 피해자로 집계하지 않아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관심이 계속 필요하잖아요.”

사고 이후 경찰이 출임을 통제하던 현장이 왕래가 자유로워졌다. 추모객들의 방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2022.11.15/한겨레21 박승화
그런 관심이 한 사람의 삶을 지키고 사회의 재난 이해도를 높인다. 그래서 상민씨는 “참사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국가의 핵심 과제여야 한다고 본다.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갖고 있구나’를 잘 들을 수 있어야죠. 그런 이야기를 종합해가면서 참사를 이해할 수 있겠죠. 그렇게 모으더라도 빈 공간은 여전히 있을 테지만, 그걸 인정하면서도 듣기를 포기하지 않는 게 참사에 연루된 사람의 역할인 것 같아요.”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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