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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오영환 의원 “참사 현장 아랫선에만 책임 돌리나”

수사당국은 현장을 얼마나 알고 있나…소방관 출신 오영환 국회의원 인터뷰
“소방은 고통 곱씹도록 조사하고 입건, 책임질 윗선엔 이제야 형식적 법리 검토”
등록 2022-11-21 05:21 수정 2022-12-09 01:22

“사람을 구하지 못한 날엔 좌절감에 혼자 울었고, 꽉 막힌 도로에서 구급차가 꼼짝 못할 땐 조여드는 심장에 괴로워했다.” -오영환, <어느 소방관의 기도>(쌤앤파커스, 2015)

오영환(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4월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까지 재난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이었다. 서울 광진소방서 119구조대원을 시작으로 산악구조대원, 구급대원, 중앙119구조본부 항공대원 등을 거쳤다. 이태원 참사 직후엔 소방관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면 ‘제 식구 감싸기’로 보일까봐 오히려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2022년 11월15일 국회에서 만난 오 의원은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고 말했다. “참사 관련 수사가 (용산소방서장 등) 아랫선에 집중되는 걸 보면서 이제는 현장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대원들을 지키려는 노력이 나부터 부족하지 않았나 반성한다.”

1단계 발령 이전부터 이미 상황 인지 무전 통보


-서울 용산소방서의 최성범 서장과 현장지휘팀장이 입건되고 소방대원들 출동 기록을 수사한다고 알려지면서 이에 대해 공분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옛 소방 동료들 분위기는 어떤가.

“괴로움, 무력감, 자괴감, 죄책감, 이런 것을 이야기한다. 특히 밤새 현장에서 직접 구조작업하고, 지휘하고, 손까지 떨어가며 국민에게 상황을 브리핑한 용산소방서장이,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 했던 상징 같은 역할을 하신 분이 압수수색당하고 수사 대상에 오르는 걸 보면서 많은 소방관이 큰 충격을 받았다. 현장 출동 구급대원 개개인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꼭 필요한 과정이라면 확인해야겠지만, 그 고통을 곱씹게 하는 게 너무도 잔인한 방식인 거 같다. 특히 꼭 책임을 물어야 하는 책임자들과 동시다발로 이런 수사가 가해진다면 부담이 덜할 텐데 현장에서 노력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집중하니 ‘책임을 돌리려는 게 아닌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용산소방서장이 왜 재난 대응단계를 빨리 상향하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30여 분 대응단계 상향이 늦었다는 이유로 무슨 대단한 혐의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건 굉장히 부당하다. 그런 복잡한 대규모 현장에선 현장 지휘가 독립적으로 이뤄진다. 1단계 발령 이전부터 이미 1단계 이상 대응이 필요한 상황임을 무전으로 통보했다. 형식상 단계를 상향하지 않았을 뿐 이미 현장에서 소방력 요청, 상황 설명이 이뤄지고 있었다. 현장을 알지도 못하는 수사당국이 이렇게 판단할 여지가 있나 싶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정작 재난안전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제야 뒤늦게 형식적인 법리 검토에 들어가지 않았느냐.”


-‘용산소방서도 3명 정도 순찰하게 돼 있었다’ ‘대형 참사 대응 훈련을 받은 구급대원이 서울에 59명뿐이다’ 등 소방의 대응 부실을 문제 삼는 일부 보도가 나왔다.

“소방서의 순찰 개념은 화재 등 실질적인 위험을 확인하는 의미가 크다. 당장 드러나는 위험 요소가 발생하면 그걸 차단하기 위해서다. 물론 소방관도 적극적으로 인파 밀집 상황을 들여다봤으면 좋았겠지만, 다중 운집은 ‘질서유지’와 직결되는 부분이다. 또 대응 훈련을 문제 삼는 보도는 너무나 단순한 접근이다. 소방관은 매년 시행하는 긴급구조종합훈련 등 다양한 직무훈련을 받고 있다. 딱 똑같은 상황에 맞는 교육, 그런 특수한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별도로 있진 않지만 인명구조·응급구조 관련 전문 자격을 취득하고 교육을 잔뜩 받은 사람들이다. 그 (대응 훈련) 유무가 이번 사태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자체장들이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장’


-재난 컨트롤타워로서 누구 책임이 크다고 보나.

“용산구청장이 매년 해왔던 안전관리 대책에서 다중 인파를 신경 쓰고 경찰에 (대책을) 사전 요구하고 고민했다면 경찰도 대응했을 것이다. 경찰도 정보보고서를 작성할 정도로 충분히 인지했는데 대비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안전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법에 규정된 역할도 하지 않았다. 책임 주체는 다양하다. 국가적인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참사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책임이 크지만, 구청장이나 시장 역시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법적 책임에서도 지자체장들이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상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장관의 인사는 사실상 대통령 권한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결단만이 남아 있다. 그런데 참사 이후 순방길에 나서며 이상민 장관을 다독이는 모습 등에서 ‘내 사람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태도가 나왔다. 특히 이상민 장관이 재난대책수립 태스크포스(TF) 단장을 맡은 건 가장 큰 문제다. 책임져야 할 사람에게 수습할 권한을 준 거다.”


-지금 상황과 관련해 소방 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 중 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행정안전부가 소방청의 상급 주무 부처로 돼 있는데, 한 부처 장관이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 보건복지부 등 다른 부처 장관을 지휘하는 게 현장에서 어렵다. 국무총리급으로 상향시켜 모든 부처가 두루 다 협업하고 명령, 이행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 이상민 장관처럼 재난안전관리에 전혀 이해도가 없는 분이 장관직을 맡을 경우 생기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국무총리급으로 격상하고 아래 현장 조직을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방공무원이 2020년 4월부터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반쪽짜리란 비판도 나오는데.

“신분만 국가직이 됐다. 인사권과 지휘권이 핵심인데, 현재 소방공무원 일부 인사권은 시·도지사에게, 지휘권은 소방청장에게 있어 국가직도 지방직도 아닌 형태가 됐다. 인사권 역시 소방청장으로 일원화해야 재난 현장에서 좀더 일사불란하게 지휘와 대응이 가능해지는 상황이다.”

이럴 때 국가의 무관심이 보인다


-소방관 10명 중 1명이 우울증을 앓고 순직보다 자살이 많다는 게 알려지면서 안타깝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해경 등을 위한 심신수련원은 이미 여러 곳에 있지만, 소방관을 위한 심신수련원은 아직 하나도 없다. 특히 소방은 직접적으로 사람을 구하는 일이다보니 죄책감의 결이 좀 다르다. 소방관을 위한 피티에스디(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센터 등 소방 특수성을 고려한 시설과 치료 지원이 필요하다. 소방병원도 2018년에야 추진돼서 준비하는 상황이다. 화상, 위험물질 흡입 같은 직업 특성에 따른 질병이 있다. 그동안 누적된 국가의 무관심이 이럴 때 드러나는 거다.”

글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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