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송선자(63)씨는 한철이 어릴 때 함께 길을 걷다 죽어가는 지렁이를 본 적이 있다. “어머, 흙에 있어야 하는데 거의 죽었네.” 엄마는 무심코 말했다. 한철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지렁이를 갑자기 들어올리더니 가까운 화단에 옮겨줬다. 물을 떠와 지렁이 몸에 살짝 뿌려주기도 했다. 엄마는 휴대전화 메모장에 이렇게 썼다. “햇빛에 나와 있는 지렁이가 죽을까봐 화단에 놓아준 착한 아이. 우리 집은 우리 아들이 태어나면서 부자가 되었다. 우리 집 복덩이, 행복이.”
1995년 6월27일 태어났다. 서울 강서구에서 자랐다. 부모에게 똘똘하지 않은 자식이 있겠냐마는 한철은 유독 그랬다. “어릴 때 애가 워낙 똘똘했어요. 학생회장 선거도 나가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아버지(신현국·66)가 딱 바라던 아이, 그런 느낌이어서 되게 예뻐하셨죠.” 한철의 첫째 누나 나라(34)씨의 기억이다.
한철이 서울발산초등학교 6학년일 때 어린이회장 선거에 나가면서 쓴 글을 누나 나라씨가 보여줬다. “활기찬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즐겨 듣는 동요들이 아침방송에 반영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듣는 의견 통을 많이 만들어서 ‘재밌는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 돼지해에 돼지띠가 열심히 뛰겠습니다. 기호 2번 신한철이에요!”
전교어린이회 부회장 공로상, 교내 글짓기대회 우수상, 교내 주장발표대회 최우수상, 고1 때 청소년 시사잡지에 기고한 ‘소말리아의 경제적 자립을 돕자’는 제목의 글. 한철의 파일에는 적극적이었던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흔적이 남아 있다. “한철이를 보고 있으면, 꼭 선생님 어렸을 때 모습을 보는 거 같아 흐뭇해질 때가 많아. 회장에, 방송반에, 정신없지? 그래도 열심히 하는 거 보면 기특해.”(한철이 초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이 쓴 편지)
청년 한철은 유튜브에 종종 ‘영상일기’를 썼다. 2021년 3월10일의 일기는 백화점 나들이를 가면서 엄마, 큰이모와 머리를 맞대고 사진 찍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오늘은 아침에 큰이모가 식혜를 주러 잠시 오셨다 가셨다. 엄마가 일찍 일어나셔서 화장도 하시고 빨리 준비하셨는데, 엄마가 다 준비하고 나서야 일어난 나는 불효자. 백화점 주차장이 밀려서 짜증났지만, 그래도 어무니가 백화점이 많이 이쁘다고 하시고 사진도 많이 찍어 기분은 좋았다.”
한철은 빨간 코트를 입고 백화점 실내 분수 앞에서 해맑게 웃는 엄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엄마랑 새 운동화를 사들고 환하게 웃으며 또 사진을 찍었다. 사랑 표현이 많은 아들이었다. “언제나 엄마 아빠를 사랑한다고 꼭 껴안아주고 이모할머니가 집에 오시면 꼭 안고 사랑한다고 말하던 예쁜 아들.”(엄마의 일기)
2020년 5월 경기도 파주 마장호수에 나들이 가서 찍은 사진 속에서도 한철은 엄마 손을 꼭 잡고 걷고 있다. 이렇게 다정한 아들이 엄마에게 화낸 적도 있다. 한철이 중학생일 때 엄마는 모임에 갔다가 ‘아무개는 안 좋은 애’란 이야길 들었다. 한철에게 ‘아무개와 놀지 말라’고 했더니 아들이 화냈다. “엄마는 왜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 그 애도 내 친구야. 그런 애 아니야.” 엄마는 내심 그렇게 말하는 아들이 대견했다.
그런 한철을 친구들은 좋아했다. 친구 형목씨는 “한철이를 생각하면 웃고 있는 얼굴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항상 웃었다”고 말했다. 친구 수빈씨도 “본인보다 남을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워, 남에게 피해를 주느니 혼자 손해 보고 말 사람이었다”고 했다.
한철은 춤과 노래를 사랑했다. 케이팝을 좋아했고, 걸그룹 ‘카라’의 팬이었다. 한강에서 놀다 시민 참여 이벤트가 열리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걸그룹 ‘트와이스’의 춤을 추기도 했다. “만나면 단 하루도 한철이의 춤을 안 보는 날이 없었어요. 길에서도 추고, 차 안에서도 추고. 한강에서 한철이가 긴장한 기색도 없이 웃으면서 춤추는 모습에 역시 한철이는 끼가 많구나, 다시 한번 느꼈어요.”(친구 나경)
한철은 레코드점에 가는 게 취미였다. 앨범을 만들고 싶어 했다. 자신의 목표를 이렇게 썼다. “한번 살다 가는 인생 재미있게 살고 싶어 에이앤알(A&R·아티스트를 발굴하고 레코드 기획·제작 등을 하는 스태프)이 되고자 한다. 영화 <비긴 어게인>에 나온 여주인공이 부른 <텔 미 이프 유 워너 고 홈>을 듣고 있으면, 항상 뉴욕에 있는 기분이 든다. 내가 ‘어떤 누군가’가 된 듯한 느낌을 들게 해주는, 그런 가수와 앨범을 만드는 게 목표다.”
대학을 졸업한 뒤 한 연예기획사에 입사하면서 한철은 ‘나’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못하는 것’을 적어야 하는 난에 그는 “못하는 건 많을 텐데 생각은 잘 안 난다. 부적정인 생각은 잘 못한다”고 썼다. 좋아하는 것으론 ‘숫자 2’를 꼽았다. 이유는 ‘1등보단 2등의 미래가 더 희망적이니까’라고 썼다. 안정보다는 꿈을 추구하는 청년이었다. 회사에 다니다 미디어문화융합대학원 석사학위 과정을 시작했다. 앨범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자신이 앨범의 주인공이 되고 싶기도 했다. 가족 몰래 연기학원을 다녔다.
“행복한 일만 있을 것 같았는데, 저한테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아니라 저주가 온 것 같아요. 그래도 좋은 분들과 친구들이 있어서 잘 버티는 중입니다. 27년 만에 처음 있는 일들이라 더욱 어려운 것 같아요. 힘냅시다 우리 다들!”(2021년 12월15일 신한철씨 영상일기) 다니던 회사를 나왔을 때 그가 쓴 일기다. 스물일곱 인생에 항상 신나는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힘든 일을 겪을 때조차 그냥 좌절하기보단 힘내는 쪽을 택했다.
“밥도 먹고. 난 한철이 엄마가 아닌 걸까.”
2022년 10월29일 이태원 참사로 한철이 떠난 지 어느덧 넉 달이 흘렀다. 여전히 엄마는 밥을 먹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꼈다. 아빠 현국씨는 곧잘 울었다. 하나뿐인 기둥을 잃은 것 같았다. 첫째 누나 나라씨와 둘째 누나 마음(33)씨는 남은 두 딸을 위해 정신을 차리려는 부모님이 안쓰럽다. 나라씨는 ‘이 모든 게 운명’이라 생각하려 노력해봤지만, 잘 안 됐다. ‘왜 하필 누가 동생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 일행과 멀어지게 됐을까. 조금만 그 장소에 늦게 갔다면…’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철은 그날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속 여우 분장을 하고 친구들과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갔다. 재밌는 분장이라 사람들이 좋아했다. 세계음식거리에서 행인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부탁해 친구들과 멀어졌다. 순식간에 밀리면서 무리와 멀어지자, 그의 행방을 알 수 없어졌다. 가족은 한철이 심폐소생술(CPR)을 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인파가 많이 몰렸지만 경찰 인력 배치가 됐을 거라고 믿었어요. 최소한의 배치가 안 된 걸 알았다면 누가 한철이를 축제에 보냈겠어요. 서울 시내 축제에 당연히 안전이 확보됐으리라 생각한 거죠. 저도 예전에 핼러윈 축제를 구경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만 해도 (인파를 통제하느라) 봉 들고 서 있는 사람을 봤어요. 주최가 아니었더라도 축제가 열리면 용산구나 서울시나 나라가 신경 써야 했던 거 아닌가요. 어느 한 기관만 돌아봤어도…. 그게 너무 자꾸 생각나요.”(첫째 누나 나라씨)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한겨레21>은 참사 한 달째부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추상화로 뭉뚱그려졌던 이야기를 세밀화로 다시 그려내기 위해서다.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었던 것이 수사 과정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가족을 위한다고 만든 행정 절차가 어떻게 그들을 되레 상처 입히는지 <21>은 기록한다. 재난의 최전선에 선 가족들의 이야기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록하는 우리 사회의 묵직한 사료가 될 것이다. 희생자의 아름다웠던 시절과 참사 이후 못다 한 이야기를 건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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