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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앞 분향소에 날아온 두 번의 계고장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지킴이들, 긴장감 속 24시간 상주
서울시 “1월12일까지 서울광장 이외 다른 장소 제안해달라”
등록 2023-02-08 07:05 수정 2023-02-08 07:24
2월7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7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2월7일 아침 9시30분. 서울 종로구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 앞에 설치된 천막이 분주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설치된 합동분향소를 밤새 지킨 ‘분향소 지킴이’가 교대하는 시간이다. 교대를 하러 분향소를 찾은 김혜영씨는 다리 깁스를 풀자마자 ‘지킴이’를 하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녹사평역(시민분향소)에는 종종 갔는데 지킴이를 하기 위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다리를 다쳐 깁스를 했는데 풀자마자 나왔어요.” 김씨는 <티브이엔>(tvN) 드라마 ‘혼술남녀’ 촬영 현장에서 격무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한빛 피디의 어머니다. 그는 “한빛이도 (숨졌을 때) 스물일곱이었다"며 "정말 너무나 젊고 한창 예쁜 아이들을 보며 한빛이 생각이 많이 났다”고 말했다.

사흘 전인 2월4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서울광장 한쪽에 분향소를 설치한 뒤, 이곳엔 24시간 동안 ‘분향소 지킴이’들이 상주하고 있다. 서울시가 분향소를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통해 강제 철거하겠다는 계고장을 두 차례 보냈기 때문이다.

2월7일 오전, 밤새 분향소에 있던 지킴이들은 떠났지만 이곳을 찾는 시민들이 하나둘씩 늘었다. 직접 가져온 손수건으로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닦는 사람부터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 영정사진 앞에서 한참을 서서 희생자들을 바라보다 가는 사람들까지 분향소를 찾은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희생자들을 기렸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분향소를 찾은 백관륜씨는 희생자들의 영정사진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백씨는“ 부모 입장에서 상당히 마음이 아프다”며 “이런 참사가 또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출근 시간이 지나자 유가족들도 하나둘 천막에 나타났다. 매일 아침 9시30분께 합동분향소에 나온다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이성기씨는 “(매일 서있는 탓에) 처음에는 다리도 붓고 그랬지만 이제는 무뎌졌다”며 “(신체적인) 아픔을 잊은 지 오래다”라고 말했다.

앞서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가 열린 2월4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시민분향소에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으로 행진했다. 이들은 애당초 광화문광장에 임시 분향소를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경찰이 막아서자 서울도서관 앞 구석에 임시 분향소를 설치했다.

서울시는 당시 입장문을 통해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기습 설치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며 “불특정 시민들의 자유로운 사용을 보장해야 하는 광장에 고정 시설물을 허가 없이 설치하는 것은 관련 규정상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2월6일 오후 1시까지 분향소를 자진철거하라는 1차 계고장을 보냈다.

유가족들은 1차 계고장에 적힌 기한이던 2월6일 오후 1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서울시 정무부시장(오신환)이 전화를 걸어 녹사평역 지하 4층에 분향소 자리를 제공했는데 왜 오지 않느냐고 했다”며 “(지하에 있는) 굴 속에서 유족의 목소리가 사그라들 때까지 숨도 못 쉬고 같이 죽으라는 거냐며 못 간다고 했더니 저희와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와 정부에게 다시 요청드린다. 11월2일 (서울시가) 차렸던 합동분향소 때는 아이들의 영정과 위패도 없었다. 이번엔 영정과 위패가 다 있다. 다시 (분향소 설치 허가를) 요청드린다”고 덧붙였다.

김덕진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대외협력팀장(왼쪽) 및 유족들이 2월6일 오후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서 서울시 관계자(오른쪽)가 전달하러온 분향소 강제 철거 2차 계고장을 거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덕진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대외협력팀장(왼쪽) 및 유족들이 2월6일 오후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서 서울시 관계자(오른쪽)가 전달하러온 분향소 강제 철거 2차 계고장을 거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서울시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약 4시간이 지난 이날 오후 5시30분께 2차 계고장을 보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김덕진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대외협력팀장은 “저희가 수령 거부를 명확하게 얘기를 했는데도 서울시 쪽에서 전달해야 한다며 바닥에 놓고 갔다”며 “저희는 손도 대지 않았다”고 말했다. 2차 계고장엔 2월8일 오후 1시까지 자진철거를 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통해 강제 철거를 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7일 오전 합동분향소에서 만난 안지중 시민대책회의 공동위원장은 “어머님들(유가족)은 분향소를 불법점유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다”며 “(참사 당시) 대응도 못한 책임자가 불법 거치물이라며 계고장을 내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의 일”이라고 말했다.

오신환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주말까지 유가족이 선호하는 장소를 찾아 제안해달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유가족들이 2월12일까지 녹사평역사 추모공간을 수용할 것인지, 또는 다른 장소를 제안할 것인지 밝히지 않을 경우 2월15일 오후 1시 행정대집행을 통해 서울광장 분향소를 강제로 철거할 방침이다.

유가족협의회는 오 부시장 기자회견 뒤 입장문을 내고 “후안무치 서울시와 더 이상의 직접 소통을 중단한다”며 “초라하고 서럽더라도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힘으로 세운 시청분향소를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고경주·홍지희 교육연수생

오신환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2월7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이태원 추모공간 관련 입장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신환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2월7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이태원 추모공간 관련 입장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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