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이태원 참사 피해자 향한 ‘입틀막’…생존자들이 말하는 진행형 고통

[이태원 참사 3년]상처 덧내는 납작한 인식… 아픔 치유하며 누구나 안전한 권리 찾기 안간힘
등록 2025-10-23 21:42 수정 2025-11-22 19:36
이태원 참사 3주기를 앞둔 2025년 10월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있는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을 외국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이태원 참사 3주기를 앞둔 2025년 10월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있는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을 외국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성하윤(가명)씨는 지인들과 함께 그날 밤 10시 넘어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세계음식문화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인파에 밀려 참사가 발생한 좁은 골목(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19-3, 119-6)까지 홀로 휩쓸렸다. 사방에서 몸을 짓누르는 압박 속에 허덕였다. 가까스로 탈출한 하윤씨는 현장에서 목격한 장면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수면 보조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었고, 중증 우울증과 공황장애 판정을 받아 1년 넘게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아픔을 견뎠다.

“참사 후유증이 지금도 있냐고요? 없다고는 할 수 없어요. 옷을 살 때 그 옷이 내 몸에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피팅룸에 들어가서 옷을 입어보잖아요. 그런데 입은 옷이 작으면 과거에 온몸으로 겪은 압박 때문인지 갑갑함이 밀려오면서 공포를 느낄 때가 있어요. 제 몸에 맞았던 옷도 시간이 지나 입었을 때 안 맞으면 무섭고 그래요.”

‘피해자다움’ 강요, 과거에 가두는 폭력

고통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고통의 크기는 줄었다. 2024년부터는 약을 먹지 않아도 일상생활이 가능할 만큼 하윤씨는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원하는 공부를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연애도 하고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차곡차곡 계획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하윤씨지만, 바깥의 시선은 여전히 불편하다.

우리를 너무 불쌍한 존재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제가 모든 피해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비치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하윤씨가 2025년 10월13일 한겨레21의 인터뷰에 어렵게 응하며 가장 우려한 점이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 개인이 ‘피해자’라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단일한 존재로 뭉뚱그린다.

‘집에 틀어박혀 고개를 숙이고 웅크린 채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전화나 문자, 인터넷, 에스엔에스(SNS) 활동을 일절 하지 않고 친구들과도 만나지 않는다. 맛집이나 카페도 안 가고, 여행도 안 간다. 회사 또는 학교생활도 어렵다. 평생 피해로 고통받으며 불행한 삶을 산다.’

이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말과 행동을 하는 피해자는 공격 대상이 된다. 사람들의 시선은 순식간에 싸늘해진다. ‘저렇게 멀쩡하게 밥도 먹고, 에스엔에스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학교에 가거나 출근하고, 웃는 걸 보니 피해가 크지 않았거나 없었던 것 아냐? 정말 피해자 맞아?’

이처럼 사회는 피해자들을 ‘피해자다움’ 안에 가두고 거기서 못 나오게 꽁꽁 동여맨다. 이는 피해자를 향한 폭력이다. 10월19일 만난 박민아(가명)씨도 하윤씨와 같은 말을 했다. “저는 (참사 이후) 정신적 트라우마가 없었고, 현재도 없는 피해자입니다. 피해자에게 그런 종류의 트라우마가 당연히 있을 것이라는 인식 혹은 기대가 저는 그 자체로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저와 같은 어떤 피해자들은 그런 낙인과 같은 시선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어요. 피해자는 괴로운 모습이어야만 하나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뿐만 아니라 피해자도 참사 발생일(2022년 10월29일)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런 낙인과 폭력에 노출돼 있다. 이런 현실에서 피해자들은 당연한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의 고통이 만들어진 상황과 조건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그 고통에 집중하는 것은 피해자를 과거에 살게 할 뿐이다.

“여전히 안전하게 얘기할 수 없어”

피해자의 권리란 무엇일까. 앞서 시민사회는 세월호 참사(2014년 4월16일) 이후에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4·16 인권선언)이라는 나침반을 제시했다. 2015년 7월부터 11월까지 전국에서 열린 100여 차례 풀뿌리 토론에 시민 1100여 명이 참여해 만들었다. 세계 인권의 날인 2015년 12월10일 발표된 4·16 인권선언은 △부당한 해를 입었고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존중받을 권리정부와 책임 있는 대표자로부터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받을 권리사건 해결의 전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피해자의 권리’로 선언했다. 이어 재난을 초래한 환경과 이유를 포함한 진실을 알 권리, 재난으로 생명을 잃은 이들을 충분히 애도하고 재난 피해자의 아픔에 동참할 권리를 ‘모든 사람의 권리’로 명시했다.

이 권리들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법(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에도 반영됐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이태원 참사 이후 달라진 일상에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차별받지 않고 혐오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피해자를 둘러싸고 있는 건 ‘가만히 있으라’는 사회적 압력이다.

10월16일 통화한 김진욱(22)씨도 같은 소모임 활동을 하는 또래 친구 2명과 함께 그날 오후에 이태원에 갔다. 그런데 밤 10시가 지났을 때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서 인파를 뚫고 뛰쳐나온 사람들이 세계음식문화거리에 있던 김씨 일행에게 골목을 가리키며 ‘저기서 사람들이 죽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 골목에 가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응급환자를 구급차로 이송하며 밤새워 구조 활동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숨진 사람의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피티에스디)와 우울증이 심해져 2023년에는 4개월가량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다. “지금은 전만큼 괴롭지는 않은데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뭐하고, 좀 그래요. 피티에스디가 원래 그런 것처럼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서요.” 참사 이후로 진욱씨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빨리 뛰고 몸이 굳는다고 했다.

가족과 친구들, 고교 담임교사 등 주변의 관심과 지지로 서서히 건강을 되찾고 있는 진욱씨. 그렇지만 고통에 대한 말하기를 막는 사회 안에서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참사로 많은 사람이 돌아가시고 다친 상황인데도 애도하거나 위로하지 않고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참사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제 피해를 안전하고 자유롭게 얘기할 수 없어요. 저한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난 네가 피티에스디 있는 것도 이해가 안 돼. 그건 약한 애들이나 걸리는 거잖아.’ 몇 년 전 일이 아니라 최근 일이에요.”

‘치료비가 내 세금으로 나가냐’는 질문

피해자를 향한 ‘입틀막’(‘입을 틀어막는다’의 줄임말)은 온라인과 일상 모임 등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참사 직후에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치료 방법을 알고 싶은 마음에 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들어갔어요. 그 방에서 제가 이태원 참사 때 피해를 보고 많이 힘들다고 하니까 참여자 중 한 명이 ‘피해자 치료비가 내 세금으로 나가나요?’라고 묻더라고요. 또 2년 전 일인데, 같이 독서 모임을 하던 사람이 저한테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과 민주당(더불어민주당)은 한통속이라고 생각해’라고 하는 거예요. 항의했더니 그 사람이 ‘미안해. 대신 내가 밥 한 번 쏠게’ 이러더라고요. 이게 밥 한 끼 쏘면 쉽게 사라지는 감정인가요? 그 뒤로 그 독서 모임에 가지 않아요.” 하윤씨의 말이다.

인터뷰에 응한 이태원 참사 피해자 중 일부가 익명 인터뷰 의사를 밝힌 것도,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을 무언가를 각오하고 희생해야 하는 일로 만드는 사회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똑똑히 목격했다.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선원들의 다음 안내만을 기다리던 승객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고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정말로 가만히 있으면 결국 이 땅에는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은 누구보다 강하게 느끼고 있다.

“이태원 참사에 관해 얘기하려고 하면 사람들 반응은 보통 이래요. ‘얘기하지 마’ ‘민감한 주제니까 하지 마’ 이런 거죠. 그런데 다른 얘기도 아니고 우리 안전에 관한 문제잖아요. 이걸 정치인이나 일부 사람이 타인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삼는 게 너무 화나요.”(하윤씨)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법에 새겨진 피해자의 권리에는 생활·의료·심리치료 등 필요한 지원을 받을 권리도 들어 있다. 피해자 중에는 정부로부터 치료비를 지원받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민아씨에게 참사 후 지난 3년 동안 국가가 이 권리를 충분히 보장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단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의료비를 계속 지원받으려면 의사 소견서가 필요해요. 신청인의 질병이 이태원 참사와 인과성이 있는지를 적는 거죠. 참사 후 고작 6개월 만에 의료비 지원이 중단됐어요. 그리고 2주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의사 소견서와 기타 서류를 공단에 제출해서 (의료비 지원) 연장 신청을 해야만 했죠. 그런데 의사들이 그러는 거예요. ‘지금의 신체 통증을 내가 어떻게 6개월 전 이태원 참사와 연관지을 수 있냐. 난 그 소견서를 써줄 수 없다’는 식이었어요. 주변을 보니 다들 그렇게 거절당하더라고요. 이 피해를 입증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고, 그래서 연장 신청을 포기했어요.”(민아씨)

국가가 할 일을 대신 하는 피해자들

행정안전부에 있는 10·29 이태원 참사 피해구제추모지원단(이하 지원단)은 2025년 4월1일부터 이태원 참사 피해자 인정 신청을 받고 있다. 피해자로 인정된 사람에게 생활지원금과 의료지원금, 심리상담, 그리고 치유에 필요한 휴직(최대 6개월)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원단이 피해자에게 더는 확인할 수 없는 기록까지 제출을 요구하며 사실상 신청을 거절한다는 게 민아씨의 이야기다.

“그날 같이 이태원에 갔던 친구 얘기예요. 이 친구도 참사 초기에 인파에 깔린 피해자예요. (‘피해자 인정 신청서’와 같이 작성하는) ‘피해 상황 기술서’랑 그날 이태원역 주변에서 찍은 ‘셀카’ 사진들도 냈어요. 그런데 지원단에서 그것만으로는 피해자 인정이 안 된다며 2022년 10월29일 교통카드 이용 내역이나 다른 카드 사용 내역, 의사 소견서가 있어야 한다고 계속 보완 요청을 했어요. 그런데 당시 카드를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요. 참사 피해 직후 치료받았더라도 의사한테 ‘이태원 참사 때문’이라고 말하고 소견서를 받아놓은 피해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카카오택시 이용 내역이라도 찾으려고 보니 1년 전 것까지만 조회가 가능해요. 신용카드도 그렇고요. 지금 와서 3년 전 결제기록을 어떻게 찾아요. 지원단 입장은 그래요. ‘우리는 신청을 거부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줄 수 있는 걸 다 줬고 더는 증명할 방법이 없는데 계속 보완 요청을 한다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건 거절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참사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피해자가 권리만 주장한다고 말한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 주장에는 피해자를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시각이 바닥에 깔렸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시민 모두의 책임이다.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나라가 잘돼도, 못 돼도 시민의 책임이다.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안전이 돈과 권력을 쥔 사람의 특권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앞장서서 그 책임을 다하는 사람 중에 이태원 참사 피해자도 존재한다.

이 참사가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터뷰에 응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사람이 많이 죽고 많이 다쳤잖아요. 지금도 아픈 사람들이 있고요. 이대로라면 꼭 이태원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밀집했는데 아무런 안전 조치가 없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통해서라도 이 참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진욱씨)

슬픔은 단순히 고통만 주지 않는다. 나를 키우는 힘이기도 하다. 진욱씨는 이태원 참사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고민했다. “‘병원 전 외상소생술’(PHTLS)을 배웠어요. 어떤 현장에서 외상 환자가 발생했을 때 더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싶었거든요. 그런 참사가 또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만일 발생한다면 더 도움이 되고 싶어요.”

사실 이 일은 진욱씨가 아니라 국가가 할 일이다.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신속하게 구조하고, 피해를 복구하고, 재발 방지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등이 2025년 10월2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있는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열린 추모 행사 ‘3주기 빌보드 개막식’에서 서로 얼싸안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등이 2025년 10월2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있는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열린 추모 행사 ‘3주기 빌보드 개막식’에서 서로 얼싸안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평범한 삶 회복 위한 필수조건, 진상규명”

하윤씨는 비록 더디지만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10·29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조사 활동이 진행 중인 일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특조위 활동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피해자만을 위한 활동이 아니에요. 모두의 안전을 위한 활동이에요. 참사를 둘러싼 여러 의문, 과거 수사기관이 이태원 참사 책임자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자들의 인권침해 부분까지 모두 규명돼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요. 굴곡 없이 단조롭고 평화로운 삶이요.” 특히 하윤씨는 피해자들의 인권침해와 관련해 ‘수사기관이 이태원 참사 발생일에 지하철 전동차의 이태원역 무정차 조치를 안 한 당시 이태원역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희생자와 피해자가 그날 이태원역을 이용했는지 확인할 목적으로 이들의 금융계좌를 아무런 사전 고지 없이 추적해 조회한 일’을 언급했다.

물론 진상규명이 다는 아니다.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은 진상규명이 끝난 후에 한 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설명과 사과가 전 과정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것은 우리 사회의 마땅한 의무입니다.”(4·16 인권선언 해설서 중 일부) 3년이 된 시점에서 이 마땅한 의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까닭이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